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7화 (17/300)

EP.17 갓-고미님의 수제 찐빵

예상치 못한 만남.

예상치 못한 생김새.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입질!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게 말을 꺼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저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왔다.

이래서 선물을 가지고 산신령을 찾아가 보라고 한 건가?

“그래, 말해보거라. 온 김에 해결해 주고 가지. 그렇지 않아도 공짜로 영약을 받아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느니라.”

고미는 선뜻 산신령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니까.

“이계의 존재들이 계속해서 지리산의 지기(地氣)를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제가 땅으로 돌아간 뒤 지리산의 신령이 되어야 할 수다르 9세는 태어나지도 못할 것입니다.”

약재를 달이는 수다르 8세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사태가 이리될 때까지 왜 손을 쓰지 않은 것이냐?”

“본래는 인간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각성자들이 저를 찾아오지 못하고 있어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

······.

저, 산신령님. 산삼을 들고 이렇게 산 깊은 곳에 있는 폭포를 찾아와 산삼을 바위 위에 늘어놓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미가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다. 무엇을 해주면 되겠느냐?”

“지기가 집중되어있는 몇 곳에 봉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봉인을 파괴해 주시면 됩니다.”

“모두 몇 개지?”

“다섯 개입니다. 세 개는 장군 말벌 밀집지의 중심부에, 두 개는 철갑 개미굴의 심처에 있습니다.”

봉인이 설치되어 있다는 장소를 듣는 순간, 우연이라도 봉인이 파괴되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철갑 개미고 장군 말벌이고 보상은 짜면서 위험도만 높은 대표적인 몬스터였고, 벌집이나 개미굴을 잘못 건드리면 여간 성가신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다오.”

하지만 고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녀석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마저 내려앉아 있었다.

“아 참, 혹시 마정석이나 마력이 깃든 금속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 쓸만한 무기라던가.”

“무기는 없지만, 금속과 마정석은 몇 개 있습니다.”

“쓸 곳이 없다면 좀 빌리고 싶은데.”

“빌리시다니요. 그냥 내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나중에 갚도록 하겠다.”

수다르가 부채를 들지 않은 쪽 손을 들어 가볍게 허공에 휘젓자, 커다란 항아리가 열리더니 보라색의 마정석 몇 개와 시커먼 바윗덩어리 같은 것이 고미에게 날아갔다.

“좋아. 이제부터 무기를 만들어주마. 무기가 있어야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고미가 팔뚝을 걷어붙이는 것처럼 보송보송한 털로 뒤덮인 자신의 팔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우우웅-

그러자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고미의 젤리가 불로 달군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번뜩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났다.

‘잠깐, 저 녀석이 진짜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

확실히 고미는 대단한 녀석이다.

아직도 그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녀석이 만든 조각상의 모양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고, 고미! 잠깐만! 뭘 만들려고?”

“검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느냐?”

검이라는 말에 막연하게 느껴지던 불길한 느낌이 점점 더 확신으로 변해갔다.

손으로 만드는 무기라는 게 다 그렇지만, 날붙이는 특히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걸 동그란 모양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해 터진 찐빵과 짱돌로 대체하는 녀석이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돼, 고미가 칼날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쥐어 짜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동시에 그나마 제작 난이도가 낮아 보이는 물건······.

“고, 고미, 검보다는 역시 방패나 철퇴가 나을 것 같아. 지금 내 실력으로 검술은 무리야. 역시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방패나 철퇴가 좋을 것 같아!”

“흐음, 인간들은 검을 가장 좋아하니 당연히 검을 만들어주려 했는데, 정말로 그걸로 충분하겠느냐?”

고미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아니야. 내 실력으로 검 한 자루로 공격과 방어를 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그보다는 방어와 공격을 확실히 나눠 두는 게 낫지 않을까?”

“확실히 초심자에게는 그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무기는 역시 검이 좋지 않겠느냐?”

“아, 아니야. 일단은 철퇴, 아니, 그냥 몽둥이로도 충분할 것 같아. 어설프게 칼을 휘두르다가 내가 찔릴지도 모르고!”

“하긴, 어설픈 검사는 날붙이에 되레 자신이 다치기도 하니······. 알겠다. 그럼 철퇴와 방패로 만들어주지.”

< 호감도가 2 상승합니다. (55/50) >

< 고미의 제자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호감도가 상승할수록 제자가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

그리고는 호감도 상승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정보가 떠올랐다.

아마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점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방해하지 말거라. 내 아주 멋진 방패와 철퇴를 만들어 줄 테니.”

말을 마친 고미의 젤리가 다시 용광로처럼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눈 부신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고미류 제작술! 조물, 조물!”

빛이 정점에 이르자, 고미가 땅에 엎드려 바닥에 늘어선 마정석과 검은 바위를 녹여낸 뒤 마구 조물딱거리기 시작했다.

‘여, 역시! 검은 아니었어!’

아동용 찰흙을 만지는 듯한 어설픈 손놀림.

섬세한 작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짧고 굵은 다섯 개의 손가락.

대충 재료를 한데 섞어 녹인 다음 큰 틀도 잡지 않고 손 가는 데로 모양을 잡아가는 작업 방식까지!

‘곰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군.’

검이 아니라 방패와 몽둥이를 선택한 나의 판단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자, 살짝 보랏빛을 띠는 터진 찐빵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악이야.’

고미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최악이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 밸런스가 무너질 것 같다.

터진 부분을 옆으로 하면 좌우로 밸런스가 무너질 거고, 위로 두면 무거울 거고, 아래로 두면 공격을 당하는 순간 여지없이 균형을 잃겠지.

“후후후후후! 어떠냐 수하? 이 몸의 역작이?”

방패를 완성한 고미가 자신감이 줄줄 흘러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휴우······.”

심지어 줄곧 고미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추던 수다르마저 탕약을 식히는 척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자, 산신령은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이 영감, 아니, 수달이!’

모양이라도 좀 잡아달라고! 당신은 손재주 좋은 것 같은데!

“자, 들어보거라.”

고미가 방패를 번쩍 들어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또다시 눈빛에 기대가 가득하다.

목숨이 걸린 일인데, 안 된다고 말할까?

“응?”

하지만 방패를 받아들자,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야, 왜 밸런스가 좋은 건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밸런스가 좋다.

모양과 무관하게 절묘한 밸런스.

심지어 터진 부분을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도 완벽한 밸런스가 유지됐다.

‘왜?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현상에 넋을 놓고 있을 때,

< 칭호 효과가 적용됩니다. >

-고미님의 부하는 고미님이 제작한 무기를 들었을 때 능력치 보정을 적용받습니다.

-겉모양에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오직 마음의 눈으로 보았을 때만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문장이지만······. 마음의 눈?

나는 감정 스킬을 사용해 고미가 만들어준 방패의 옵션을 확인해보았다.

< 날카로운 곰정사의 눈 (E) 스킬을 사용합니다. (잔여 1) >

- 감정에 실패했습니다. 아이템의 등급이 너무 높습니다.

말도 안 돼! 이게 E급 이상의 방어구라는 소리야?

이 곰팡이 핀 보라색 찐빵이?

‘상태창.’

심지어 능력치를 확인해보니 힘과 체력이 각각 3씩 올라 힘은 8, 체력은 10이 되어 있었다.

······.

“자! 이것이 너의 첫 번째 무기다! 보아라! 한눈에 보기에도 웅혼한 기상이 느껴지지 않느냐!?”

어처구니없는 모양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패의 옵션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무기를 완성한 고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에 든 ‘무언가’를 휘두르며 외쳤다.

호기심을 느낀 산신령은 슬쩍 실눈을 떠 고미가 만든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게 뭐야? 주걱?’

고미가 만든 ‘몽둥이’는 마치 커다란 밥주걱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주걱과 면봉의 중간쯤 되는 생김새.

그나마 손잡이 부분은 울퉁불퉁 요철이 있어 어디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방패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재료를 써서 생각보다 잘 만들어지지 않았구나. 그래도 이곳의 괴수들을 잡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번 더 감정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 갓- 고미님의 웅혼한 기상이 깃든 철퇴 (E) >

- 위대한 고미님의 마력이 깃든 철퇴입니다.

- 능력치 보정 : 힘+5, 체력+3

- 특수 옵션 : 약점에 적중했을 시 2.5배의 데미지.

- 비고 : 아직 미완성된 상태이므로 재료를 보충해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이것도 쓸만하네······.

손에 들고 가볍게 휘둘러보자, ‘찐빵’과 마찬가지로 밸런스가 잘 잡혀 있을 뿐 아니라 무게도 아주 잘 실렸다.

‘왜 이렇게 무게가 잘 실리는 건데?’

오른손으로 철퇴를 휘두르며 왼손으로 막는 동작을 취해보자, 전혀 무기에 휘둘리거나 동작이 흐트러지는 것 없이 깔끔하게 원하는 동작이 나왔다.

“오오, 수하,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하구나! 과연 나의 부하답다!”

한 손에는 터진 찐빵을 들고 밥주걱을 휘두르는데 모양새가 나온다고?

하아아······.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니지, 내가 생각을 바꾸면 되는 문제잖아.

모양이 뭐가 중요하겠냐. 중요한 건 옵션이지 옵션.

사람도 외모보다는 속이 중요하듯, 고미가 만들어진 무기도 내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자.

정신 승리가 꼭 나쁜 건 아니지, 암.

“허허, 과연 고미님의 부하답군요. 처음 손에 쥐어보는 무기인데도 아주 훌륭하게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때, 줄곧 나의 슬픔을 외면하던 수다르 8세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간신이 됐을 양반 같으니.

내가 아까 당신 한숨 쉬는 거 다 봤거든? 고개까지 저었잖아!

“훗. 그럼 이제 출발하면 되겠군. 가자 수하.”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과 나를 바라보던 고미가 흡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 이것을 가져가십시오.”

그러자 수다르가 손을 휘둘러 나에게 동그란 알약 몇 개를 날려 보냈다.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켜주는 알약입니다. 일시적이지만 근력을 향상시켜주는 효과도 있으니 요긴하게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오, 이 산신령 양반, 왠지 사회생활 잘할 것 같다.

“훗. 수하, 잘 챙겨두거라. 산신령의 영약은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말이다.”

양손에 방패와 철퇴를 들고 산신령이 준 영약까지 챙겨 모든 준비를 마치자, 고미가 앞장서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탕약이 식기 전에 돌아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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