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1화 (11/300)

EP.11 진격의 곰트라이더

식료품 코너에 들어가기도 전에 목표물이 눈에 들어왔다.

카트.

그것은 장을 보는 것을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마트에 비치된 합법적인 마약.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카트에 오르길 원하고, 누구나 카트를 몰아보길 원하지.

아니, 애들만이 아니다. 남자들은 나이를 먹었어도 장을 보러 가면 은근슬쩍 카트로 드리프트를 해보고, 젊은 아빠들은 아이와 놀아주는 척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즉, 이것은 인간이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놀이 기구 중 하나다. 세상에 0원보다 싼 것은 없으니까.

[ 그것은 무엇이냐? ]

카트를 끌고 오는 나의 모습에 고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거봐라. 뭔지도 모르면서 벌써 몸이 달아올랐지. 그게 본능이라는 거다.

“자, 이 위에 타봐.”

카트에 오르라는 말에 고미의 동공이 확장되고 꼬리가 움찔대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 알겠다! ]

녀석이 날렵하게 카트 위에 오르자, 나는 가볍게 몸을 푼 뒤에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카트의 바퀴가 부드럽게 바닥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오, 오옷!”

고미의 입에서 육성으로 흥분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 수하! 이, 이것은!”

아기 같은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오기 무섭게 사방에서 시선이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일 낮이라 마트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

저녁이나 주말이었다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저 펫, 지금 말하지 않았어?”

“펫이 말을 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펫이 어떻게 말을 해.”

스킬을 활성화하자, 강화된 청각을 통해 사람들이 고미에 대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것은 카트라는 것이다!”

나는 황급히 고미의 말투와 목소리를 따라 하며 일부러 큰소리로 외쳤다.

“뭐야, 말투 왜 저래.”

“펫이랑 놀아주는 건가? 그런데 저 펫 너무 귀엽다.”

“아니야, 분명 펫이 말한 거 같은데?”

“에이, 곰이 어떻게 말을 해.”

“엄마, 엄마, 나도 곰, 나도 곰 만지고 싶어!”

“안 돼!”

고미를 만지고 싶어 난리가 난 아이들의 아우성과 나의 수치를 무릅쓴 대처 덕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펫이 말을 할 리가 없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생각 때문이었지만.

“고미, 아직 말은 안 된다니까!”

[ 미, 미안하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그만······. ]

“괜찮아. 즐거우면 됐어. 대신 주의해줘. 초코바 못 먹게 될지도 모르니까.”

[ 알겠느니라! ]

그렇게 작은 위기(?)를 무사히 넘긴 우리는 곧바로 간식 코너로 카트를 몰았다.

사실 고미를 싣고 카트를 모는 것은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래서 남자는 커도 애라고 하는 건가.

[ 수, 수하! 달려라! 달려! 나는 조금 더 빠른 것을 원하느니라! ]

신이 난 고미의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아! 꽉 잡아 고미!”

나는 슬금슬금 속도를 올리다가 적당한 타이밍을 쟀다.

필살기를 사용할 타이밍.

그리고 마침내 코너가 나타났을 때,

좋아, 지금이다!

“간다, 드리프트!”

[ 우웃! 수하! 굉장하다! ]

“큭큭, 어때? 재밌지?”

[ 태어나서 이렇게 즐거운 것은 처음이다! 바깥에 나오길 잘했느니라! 최고다! ]

고미의 그 말에 나는 뿌듯함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대체 얼마나 심심하게 살았으면 이걸 가지고 이렇게 좋아할까?

「그럼 평생 몬스터만 잡고 지냈다고? 그 외에 다른 건?」

「없느니라.」

「친구는?」

「없느니라.」

고미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대화가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웠을까?

‘휴, 안쓰러운 자식. 좋아. 오늘은 내가 책임지고 재밌게 해주마.’

그렇게 속으로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 고미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28/50) >

잊고 있던 호감도 상승 메시지가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무려 5점 상승.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고미를 보니 호감도니, 퀘스트니 하는 것 따위는 잠시 잊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 잊고 싶었다.

지금은 그저 순수하게 고미를 즐겁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닥쳐, 분위기 깨지 말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나는 속으로 시스템 창을 향해 세 번째 손가락을 세워준 뒤 신나게 카트를 몰았다.

가는 길에 적당히 좌우로 카트를 흔들어주고, 코너가 나오면 적당히 드리프트. 이 완벽한 주행 테크닉을 보라!

아,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어디까지나 고미를 위한 거다. 내가 즐기고 있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광란의 질주 끝에 – 사실 정말로 뛴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공중도덕이라는 게 있지 - 간식들이 장엄하게 늘어선 식료품 코너에 도착하는 순간.

덜컹, 하고 카트가 흔들리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돌풍처럼 초코바를 휩쓸어왔다.

이게 몇 개야? 하나, 둘, 셋······.

초코바를 가져오는 고미의 속도는 문자 그대로 전광석화. 감각 강화 능력을 가진 내 눈에도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으니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내가 염동력이라도 써서 초코바를 쇼핑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아마 속으로 ‘능력 참 쓸데없는 데 쓰네’하고 있겠지.

구성은 전에 먹었던 것 중 입맛에 맞지 않았던 투윅스 같은 것을 제외하고 프리타임과 스니커, 그리고 편의점에는 없었던 다른 초코바 몇 가지.

이 먼치킨이! 그 능력을 초코바 쓸어오는 데 쓴단 말이야?

[ 후훗, 수하. 이 몸은 지금 몹시 기분이 좋다. 혹시 원하는 것이 있느냐? 뭐든지 말해 보거라. ]

고미가 보기 드물게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 내 캐릭터라면 득달같이 이게 필요하다고 말했겠지.

하지만 막상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런 질문을 받으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음······. 아이템이 필요하긴 한데.’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구경이나 많이 했지 직접 몬스터를 잡아본 적은 없다.

잡아본 적이 있다고 해도 맨몸으로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강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장을 본 뒤에는 신인 헌터용 보급 장비라도 받으러 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싸구려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고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내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가는 건데 뒤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은 없다.

앞으로 헌터질 하려면 실력도 키워야 하고.

각성도 했는데 괜히 다른 직장 구하느니 적당히 강해져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일하고 고미랑 탱자탱자 놀아야지.

후훗, 꿈에도 그리던 워라벨 라이프가 눈앞에 있구나!

“아이템이 필요하긴 해.”

[ 하긴. 네 녀석은 약하니 그런 것이 필요하겠구나. 내 생각이 짧았다. 흐음······. 하지만 당장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데. ]

고미가 난처하다는 듯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약한 건 사실이지만······. 너무 하는구만.

[ 이럴 줄 알았다면 도마뱀 놈들처럼 아이템을 모아둘 걸 그랬구나. 이 위대한 몸에게 어울리지 않는 탐욕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자제했거늘······. ]

말을 하는 와중에도 고미의 눈은 간식 코너에 있는 온갖 초콜릿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저기, 식탐이라면 네가 드래곤보다 더 할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면 화내겠지.

[ 좋다. 그럼 지리산에 가서 이 몸이 직접 만들어 주마. ]

고미가 알파벳 초콜릿 한봉을 집어 들며 말했다.

마치 이것이 아이템 값이라고 말하는 듯한 몸짓.

“아이템도 만들 수 있어?”

상태창을 만드는 녀석이니 아이템을 만드는 것 정도는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놀랍기는 하다.

설마 아이템 제작 스킬도 가지고 있는 건가?

잠깐, 내 칭호 효과가 고미의 권능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거였지?

이거 잘하면 던전 안 돌고 탱자탱자 워라벨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그런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고미가 물방울 모양 초콜릿을 한봉 집으며 말했다.

[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 몸은 전지전능한 곰이니라. 재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사탕과 젤리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초콜릿 말고도 맛있는 게 많은데 왜 초콜릿만 종류별로 집는 거냐.

“이것도 먹어 봐.”

[ 그것은 무엇이냐? 초코바만큼 맛있는 것이냐? ]

“먹어보면 알아.”

이후 애들이 좋아하는 간식 몇 가지를 더 고른 뒤에 내가 먹기 위한 라면과 보존식 몇 가지를 샀다. 나야 뭐 딱히 간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고미 먹을 거나 실컷 사줘야지.

그렇게 쇼핑을 마친 후, 나는 카트에 앉아있는 고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카트의 즐거움은 타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오의(奧義)는 오히려 드라이빙에 있나니.

“자, 이제 네가 몰아 봐.”

[ 내, 내가 이것을 몰아도 되는 것이냐! ]

고미의 목소리에는 긴장과 흥분이 가득 묻어났다.

마치 어린이용 장난감 자동차에 처음 오른 아이처럼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

“응, 대신 너무 빨리 몰면 안 돼. 천천히. 알았지?”

[ 아, 알겠다! 나를 믿거라! ]

말을 마친 고미는 흥분을 이기지 못해 가볍게 손을 떨며 카트의 아랫부분을 붙잡았다.

음······. 키가 작아서 손잡이는 못 잡는구나. 여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

그리고는 이내 위태로운 고미의 첫 번째 주행(?)이 시작됐다.

드르륵, 드르륵, 바퀴가 작은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고미는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움직이며 연신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녀석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지. 잘한다. 빨리 가면 다른 사람이랑 부딪혀.”

[ ······. ]

운전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고미는 나의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음, 운전 교습하는 느낌이네.’

슈퍼 먼치킨답게 고미는 빠르게 카트 운전에 적응했고, 이내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주행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간식 코너를 벗어나 계산대 가까운 곳에 이르렀을 무렵,

[ 수하. 그런데 그······. 드리프트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 ]

“응?”

[ 그 필살 드리프트라는 것이 아주 멋지던데······. ]

“푸하하, 그래. 가르쳐 줄게. 그러니까 방향을 먼저 틀지 말고 속도를 어느 정도 붙인 다음에······.”

나는 친절하게 고미에게 드리프트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설마하니 이 녀석에게 기술(?)을 가르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고미는 두세 번의 실패를 맛보았지만, 금세 훌륭하게 드리프트를 해냈다.

[ 보, 보아라 수하! 해냈느니라! 우하하하! 역시 이 몸은 위대하지 않느냐!? ]

“그래 그래, 역시 대단하네.”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가볍게 손뼉을 쳐주자, 기분이 좋아진 고미는 카트에서 손을 떼고 만세를 하듯 두 손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

띠링.

알림음과 함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히든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1) >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축하합니다. 히든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2) >

거기서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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