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9화 (9/300)

EP.09 고미와의 약속

뭐지? 왜? 초코바 좋아하잖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부터 점검해보자.

“맛이 없어?”

[ 아니, 맛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처음에 먹었던 초코바가 더 입에 맞느니라.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데?”

[ 나는 순수한 단맛을 선호하느니라. 이것은 바삭한 식감이 섞여 있고, 단맛이 덜하다. 게다가 단맛의 종류도 적구나. ]

단맛의 종류라니, 무슨 소리인지는 대충 알겠는데, 초코바의 단맛에도 종류가 있었나?

난감하다. 난 단 걸 싫어해서 이런 쪽에는 약한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투윅스를 먹어 치운 고미가 곧바로 ‘스니커’ 하나를 뜯어 입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 좋다. 네가 약속을 지켰으니, 나도 약속을 지켜야지. 우선 가장 중요한 약속부터 지켜보자꾸나. 어디로 가면 되겠느냐?]

“정말 우리 부모님을 구해줄 수 있는거야?”

약속을 지키겠다는 고미의 말에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가슴을 채워나갔다.

‘만약 고미도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고미라면 반드시 부모님을 깨워줄 수 있을거야.’

두 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머릿속을 울린다.

2년 전, 부모님이 장사를 하던 곳 근처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일명 ‘유령 게이트 사태’.

던전과 게이트가 출현한 이래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재난 중 하나였다.

그때만 해도 인류는 유령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당연히 대처 방법도 몰랐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중 S급은 없었으나, 백치가 되어 버린 사람, 정신병 증세를 보이게 된 사람, 원인을 알 수 없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 사건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내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의 상태를 본 의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죄송합니다. 이건 제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던전에서 나오는 치료제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치유 능력을 가진 헌터에게 부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내가 잡부일을 시작한 것도 비각성자가 헌터와 조금이라도 끈을 만들 기회가 가장 많은 직업인 동시에 보수도 높았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각성할 기회가 가장 많은 직업이기도 하고.

1년 전, 한씨 아저씨의 소개로 어렵게 B급 치료 능력자를 섭외하는 데 성공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유령종에게 당한 게 아닌 것 같아요. S급 힐러를 불러온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아직 S급 치유 능력자가 없으니까요.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몇 개의 약재 이름을 적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분량을 먹이세요. 임시방편이기는 하지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사이에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죠.」

병원비에 던전에서 나온 치료제를 비롯해 약재까지, 한 달에 들어가는 돈만 천만 원 가량.

도저히 대학원생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투잡, 쓰리 잡을 뛰며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그렇게 구르고 구르다 고미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고미를 처음 만났던 날, 2년 간 이를 악물고 버틴 것이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

「널 바깥에 데리고 나가줄게. 대신 우리 부모님을 구해줘.」

「좋다. 전지전능한 이 몸에게는 불가능이 없느니라. 내가 너의 부모를 구해주지!」

* * *

[ 왜 그러느냐? 지금까지 보았던 것 중에 표정이 가장 좋지 않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위대한 곰이다. 반드시 네 부모를 구해주마.]

고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태도에 잠시 약해졌던 마음도 거짓말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 가야지.”

[ 그 택시라는 작은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것이냐? 위대한 이 몸에게는 더 큰 버스가 어울린다.]

고미는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를 타고 싶다고 말하며 나의 뒤를 쪼르르 쫓아왔다.

아장아장 걸어오는 고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까닭 없이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들 이래서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아, 부하는 나지.’

그런데 왜 자꾸 애 키우는 기분이 드냐.

“택시가 더 비싸고 좋은 거야.”

[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큰 버스가 더 웅장한데 어째서 작은 버스가 더 비싼 것이지? ]

“버스는 여러 명이 타니까, 돈을 나눠서 내는 거야. 게다가 정해진 곳밖에 가지 않고. 택시는 내가 가자는 대로 가거든.”

[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사람이 많다면 돈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 많은 편이 더 즐거울 텐데 말이다. ]

언젠가 출근길과 퇴근길 대중교통 맛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발언이군.

“어쨌든, 당분간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는 다니지 않는 편이 좋아. 넌 너무 눈에 띄니까.”

[ 흠흠. 하긴, 누구라도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볼 테니, 조금 곤란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구나. 모두가 나에게 선물을 가져다주고, 나의 부하가 되고 싶다고 아우성이겠지. ]

< 고미의 호감도가 1 상승합니다. (19/50) >

그때, 뜬금없이 호감도 상승 메시지가 떠올랐다.

‘흐음, 착각이든 뭐든 고미의 기분이 좋아지면 호감도가 올라가는 건가?’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오해로 누군가가 더 좋아지거나 싫어지거나 하는 일은 일상적으로도 많이 벌어지는 일이니까.

조금 날로 먹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날로 먹든 익혀 먹든 맛만 있으면 그만이니 일단 땡큐.

< 고미의 호감도가 1 상승합니다. (20/50) >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 또다시 알림음과 함께 호감도 상승 메시지가 떴다.

‘이번엔 또 왜?’

“호오, 이것은······.”

고개를 돌려보니 고미가 ‘스니커’를 뜯어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투윅스는 안 오르는데, 스니커는 오른다.

즉, 일정 수준 이상 맛있다고 판단한 음식에만 호감도가 오른다는 소리군. ‘나쁘지 않다’ 정도로는 안 된다 이거지?

‘프리타임을 먹었을 때 반응이 가장 좋았으니까 프리타임만 먹이는 게 나으려나?’

그렇게 우리 아이에게 맞는 사료가 뭔지 고르는 애견인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강남 성부 병원이요.”

간단하게 목적지를 밝히자, 반백의 기사 아저씨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병문안 가세요?”

고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사님 몰래 택시 뒷좌석에 숨어든 상태였다.

“네.”

“누구? 친구? 부모님?”

“부모님이요.”

“아이고, 부모님이 나이도 얼마 안 되실 것 같은데, 많이 편찮아요?”

“아뇨 뭐. 큰 문제는 아니고요.”

나는 심드렁하게 답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가 말을 거는 것이 특별히 불편하거나 불쾌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 수하, 너무 걱정하지 마라. 위대하신 이 몸이 있으니, 네 부모는 반드시 깨어날 수 있을거다. ]

고미가 답지 않게 진지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기곰이 보기에도 표정이 보통 어두운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 그래, 고마워. 이번 일만 끝나면 맛있는거 많이 사줄게. 좋은 곳도 많이 데려가 주고. ]

나는 황금색 상태창 뒷면에 있는 구라 상태창에 메시지를 써넣어 고미에게 보여주었다.

구라 상태창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정말로 희소식이었다. 이건 앞으로 두고 두고 유용하게 사용할 무기가 되어 줄 테니까.

그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택시가 멈춰서고, 커다란 병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자, 수하.」

고미가 짧은 다리로 택시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다.

별다른 말은 안 해도 평소와 달리 짤막한 두 다리를 급히 움직이는 고미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건방진 놈들 같으니, 감히 내 부하의 부모를 건드려? 내 만나기만 하면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성난 표정으로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나는 그만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 * *

부모님이 누워있는 병실 안에 도착하자, 익숙한 약 냄새가 코끝을 타고 폐속으로 흘러들었다.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지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병원에 오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부모님은 죽어가고 있으니까.

“핫! 잠입 성공! 살곰! 살곰!”

병실 창문을 넘어 들어온 고미가 만세를 하듯 두 손을 치켜들며 외쳤다.

“큭큭, 대체 뭐야 그 살곰살곰이라는 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러더니.”

그 귀여운 모습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무거웠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고미류 잠행술! 살곰살곰이니라! 대성하면 그 어떤 곳이라도 숨어들 수 있지!”

1급 허가증이 있으면 고미를 데리고 병원에 들어올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기곰 한 마리가 들어오고 나서 줄곧 의식불명 상태였던 부모님이 깨어나면 누가 봐도 이상하니까.

B급 치유 능력자도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치료한 F급 헌터의 아기곰, 어둠의 조직이 군침을 흘릴만 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내가 먼저 병실에 들어오고, 고미가 내 냄새를 맡고 몰래 따라 들어온 것이다.

“이제 치료를 시작하겠다!”

고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우웅-

그리고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고미의 두 발이 허공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어······. 너 날 수 있었어?”

“훗, 이 몸은 전지전능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도마뱀 따위도 할 수 있는 것을 이 몸이 못할 리가 없지. 게다가 나는 날개 없이도 우아하게 날 수 있느니라.”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잘난 척을 늘어놓은 고미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이마를 짚었다.

“어때? 치료할 수 있겠어?”

나의 질문에 고미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이번에는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다.

“으음······.”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내리깐 채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돌연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고미의 손가락 사이에는 수십 가락의 보송보송한 털이 쥐어져 있었다.

“조용히 하거라. 오랜만이라 집중이 필요하니.”

말을 마친 고미는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이내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던 털들이 침처럼 빳빳하게 곤두선 채 허공에 가지런히 줄을 섰다.

“고미류 침술. 웅기조식(熊氣調息)!”

고미가 바늘처럼 변한 자신의 털을 덥석 잡아 아버지의 정수리 부근에 꽂으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침이 미간과 양쪽 관자놀이에 꽂혔고, 이내 아버지의 전신에 검은색의 털침이 빼곡하게 박혀나갔다.

“후우우우······.”

순식간에 아버지를 고슴도치로 만든 고미는 긴 숨을 내쉰 후에 또 한 번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뜯어 어머니에게 똑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이, 이제 된 거야?”

“일단은.”

고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서늘한 예감이 가슴을 스쳤다.

“설마······. 네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건 아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