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8 친하게 지내세요
[ 퀘스트 보상으로 정식 상태창을 제공합니다. ]
메시지가 사라지자, 밤새 만든 수제 상태창 위로 눈부신 황금색 상태창이 덧씌워졌다.
자, 잠깐! 이게 뭐야!
내 구라 상태창은? 그게 얼마나 유용한데!
나 그거 있어야 한다고!
다급한 마음에 상태창을 만져보자, 다행히도 구라 상태창이 사라지지 않고 동전처럼 뒷면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휴...놀랬잖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황금색 상태창을 살펴보자,
< 김수하 (F / Gomi ~ F) >
< 칭호 : 위대한 고미님의 부하 1호. (F / Gomi ~ F) >
- 위대한 고미 님의 권능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 위대한 고미님과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더욱 강해집니다.
< 보유 스킬 >
- 개보다 낫다. (F / Gomi ~ F) : 위대한 곰의 후각은 개보다 뛰어나며, 청각과 시각 역시 월등합니다. 위대한 고미 님의 부하가 된 순간부터 당신이 보는 세상은 예전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 호랑이와는 다르다. (F / Gomi ~ F) : 위대한 곰의 인내력은 호랑이 따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위대한 고미님의 부하 역시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을 갖게 됩니다.
< 이제부터 고미에게 더 넓은 세계를 알려주세요. >
< 고미를 행복하게 해줄 때마다 보상이 팡팡! >
······.
이 묘하게 깨발랄한 말투는 뭐냐.
스킬이랑 칭호는 왜 이 모양이고, 최대치는 왜 SSS도 아니고 L도 아니고 Gomi인 건데.
그때, 고미가 동그란 눈을 데룩데록 눈을 굴리며 물었다.
[ 왜 그러느냐? ]
“이거, 안 보여?”
눈앞의 황금색 상태창을 가리키자, 고미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상태창은 ‘구라 상태창’과 달리 고미에게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다려 봐. 가시 모드.”
[ 오오오! 이것이 무엇이냐? 상태창이 꿀 빛이구나! ]
황금색 상태창이 모습을 드러내자, 고미는 연신 귀를 쫑긋거리며 잔뜩 흥분해 박수를 쳐댔다.
[ 이능의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호랑이 따위와는 다르다니! 그렇지! 나는 호랑이 따위와는 다르다! 이 시스템이라는 자는 뭔가 아는 녀석이구나! ]
그리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스킬 이름이나 설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황금색 상태창과 갑자기 나타난 퀘스트의 정체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때, 또 한 번 알림음이 들리며 주르륵 메시지가 떠올랐다.
< 고미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호감도 17. >
< 퀘스트 개방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정식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
< 메인 퀘스트 : 고미의 제자가 되어 보자! >
- 당신과 고미는 아직 정식으로 사제 관계가 되지 못했습니다. 고미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식으로 계약을 하세요.
< 달성 조건 >
1. 호감도 50 이상 (17 / 50)
2. 고미와 정식으로 계약 맺기.
< 퀘스트 보상 >
하급 권능 (택 1). 능력치 강화 (+7).
“뭐야, 정식으로 계약? 그런 게 가능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에 고미의 손에 들려있던 초코바가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녀석이 초코바를 떨어트릴 정도라니,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어, 어떻게 알았느냐?”
게다가 같이 상태창을 보고 있으면서 퀘스트가 뜬 것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왜 당황하지?
나한테 감추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아, 아니. 그 왜 이계의 군주라든가, 초월자라든가, 뭐 그런 거 있잖아. 너도 그런 거냐고.”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을 돌렸다.
보다 정확히는, 생각할 틈을 만들기 위해 말을 돌렸다.
“흥, 그런 시답잖은 놈들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라! 모두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다!”
고미가 가볍게 앞발을 내지르자, 날카로운 검을 휘두를 때 나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나는 흥분한 고미를 앞에 두고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 퀘스트 개방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
분명히 그렇게 떴었지······.
퀘스트 개방 조건이 대체 뭐였을까? 헌터 등록? 1급 펫 허가증? 아니면 둘 다?
개방 조건이 뭐가 됐든, 이 퀘스트가 앞으로 내게 닥칠 위험을 막아줄 방패가 되어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고미의 힘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이 녀석을 탐낼 게 분명하니까.
‘고미를 지키고 나도 안전해지려면 선택지는 두 가지 밖에 없어.’
영원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거나, 내가 강해지거나.
고미가 슈퍼 먼치킨이면 뭐하나, 내가 인질로 잡혀버리면 끝인데.
게다가 언제까지고 남들 눈을 피해 다니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계속 숨어다니고 싶지는 않다.
결론은 심플했다. 내가 강해지는 것.
하긴, 어차피 대학원도 그만뒀고 평생 잡부 일만 하며 살 수도 없으니, 헌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일이 좀 험해서 그렇지 여가 시간도 확실하고.
다만 호감도를 높이는 게 퀘스트 조건이라면 고미는 그 사실을 모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보험하는 사람이나 영업하는 사람이 나한테 잘해주면 왠지 의심부터 가고, 보험 이야기 꺼내면 갑자기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싹 사라지는.
‘속이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문제는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이 뭐냐 하는 건데······.
우선 초코바부터 먹여보자.
어차피 사주기로 했던 거니까.
“으음, 대단하네. 그럼 이제 초코바 사러 갈까?”
“초코바!?”
마법 같은 세 글자에 고미의 눈에 또다시 광기가 어렸다.
정말이지, 광기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눈빛.
“응, 네 덕에 허가증도 등록증도 쉽게 받을 수 있었으니까.”
“후후후, 그렇지. 이 몸의 도움을 받으면 무엇이든 만사형통이니라! 곰이 재주를 부리면 사람은 돈을 번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어······. 그게 그런 뜻이었나. 속담 자체도 좀 틀렸고, 해석도 지나치게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긍정적이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뭐.
“그러게. 곰은 대단하네.”
“후훗, 네 녀석이 드디어 이 몸의 위대함을 깨달아 가는구나! 자, 가자!”
* * *
건물 밖으로 나오자, 고미는 질문 하나 없이 어깨와 목에 잔뜩 힘을 넣은 채 힘차게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런데, 어디서 초코바를 살 수 있는지는 알고 움직이는 걸까?
어디로 가나 보기나 해보자는 마음에 말없이 녀석의 뒤를 따라 걸어가 보자, 놀랍게도 편의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초코바 파는 곳을 알았어?”
“후후.”
고미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냄새를 기억해 두었느니라.”
“거기서 여기까지 냄새를 따라왔다고?”
아까 그곳에서 이 편의점까지는 적어도 이삼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데, 냄새로 따라오는 게 가능한 건가.
그 순간, Gomi 라는 등급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고미 등급이라는 게 이 녀석과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래도 지구력 강화랑 감각 강화만 가지고는 뭐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퀘스트 메시지에 따르면, 앞으로 다른 이능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 녀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 뭐가 좋은지, 도통 모르겠다는 거지. 그냥 무지막지하게 세다는 것 외에는 정확히 아는 게 없으니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이 난 고미가 편의점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고, 고미!”
황급히 녀석의 뒤를 따라 편의점 안으로 뛰쳐 들어가자, 알바생이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털 뭉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이거 뭐 불곰국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두 발로 걷는 아기곰이 당당하게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놀라는 게 당연하지.
“죄,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를 하든 말든, 알바생이 자기를 쳐다보든 말든, 고미의 시선은 오로지 초코바에만 못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목표를 향해 직진이라니, 상남자군.’
평소에 내가 사 들고 다니는 것은 ‘프리타임’이라는 초코바였고, 그 옆으로는 ‘스니커’와 ‘투윅스’, ‘핫브레이커’같은 다른 초코바가 진열되어 있었다.
황홀한 눈으로 그 초코바들을 훑어보던 고미는 이내 깊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 이럴 수가, 초코바라는 것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참으로 고민이 되는구나. 어떤 것이 가장 맛이 좋은 것이냐? ]
그래도 전부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걸 보면 제법 어른스러운 아기곰이다.
답지 않게 깊은 고민에 빠진 고미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나는 곧장 그 초코바들을 종류별로 두 개씩 집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 우, 우옷! 모두 사주는 것이냐! ]
< 고미의 호감도가 1 상승했습니다. (18/50) >
고미의 전음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과 동시에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겨우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호감도였냐······.
거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도 아니잖아.
초코바 잔뜩 먹이면 50되는 건가.
“헌터세요?”
반쯤 넋이 나가 고미를 바라보고 있던 알바생이 정신을 차린 듯 초코바의 바코드를 찍으며 물었다.
“아, 네.”
“저 펫 실제로 보는 거 처음이에요. 대부분 막 무섭게 생겼던데, 얘는 진짜 귀엽네요.”
놀란 표정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알바생의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음, 저 녀석이 좀 귀엽긴 하죠.”
“그런데 던전 생물이 초코바를 먹나요?”
알바생의 질문에 나는 그제야 곰이 초코바를 먹어도 되는지 걱정이 들었다.
‘개도 잡식성인데 초콜릿은 먹으면 안 되잖아. 곰이 초콜릿 먹는 건 괜찮은 건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초코바를 먹은 상태라 당연히 먹어도 되는 건 줄 알았다.
“어······.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그냥 좋아하니까 주고는 있는데.”
“조금 오지랖 부리는 것 같기는 한데, 알아보고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던전 생물이 초코바 먹는다는 얘기는 처음 듣거든요.”
“아니에요, 충고 감사합니다.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편의점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손에 들린 십여 개의 초코바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잠깐만, 너, 그런 거 먹어도 되는 거야?”
[ 괜찮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은 먹으면 바로 알 수 있느니라. ]
언제나처럼 눈치챌 새도 없이 초코바를 가져간 고미가 ‘투윅스’를 뜯으며 답했다.
“옴뇸뇸······.”
녀석은 신이 난 표정으로 초코바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연신 입을 오물거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호감도 상승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뭐야, 왜? 초코바가 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