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황금색 상태창
‘모, 몬슐랭 파이브 스타!’
출시 즉시 이계생물은 물론이고 반려동물 간식계 부동의 원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명 ‘합법적 마약’, 몬슐랭 시리즈.
그것도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최고 등급, 파이브 스타!
「최고의 펫에게는? 몬슐랭!」
「최고의 테이머가 되고 싶다면? 몬슐랭!」
「최고의 펫을 위한 최고의 고품격 간식, 몬슐랭!」
「드래곤마저 사랑하는 최고의 간식! 몬슐랭 파이브 스타!」
「크오오오-!」
「일반 반려동물용 간식, 펫슐랭 시리즈도 기대해 주세요.」
실제 S급 테이머와 그 펫인 드래곤이 쌍으로 출현, ‘진짜 드래곤’이 ‘진짜 브레스’를 뿜은 뒤에 게걸스럽게 몬슐랭을 먹어대는 광고는 헌터계는 물론이고 반려동물 간식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몬슐랭~♪ 몬슐랭~♬」
지금 내 머릿속에는 세 개의 뿔을 가진 드래곤이 불을 뿜는 장면과 함께 몬슐랭 CF의 BGM이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경쾌하고 귀여운 음악이 지금의 나에게는 파멸의 전주곡처럼 느껴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눈을 돌리자, 고미가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저기요. 잠깐만요!”
나는 황급히 임성한과 고미 사이를 막아섰다.
마지막 테스트가 ‘기다려’ 테스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 테스트에 몬슐랭 파이브스타를 꺼내는 게 어딨어!
튜토리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왕이 나오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그, 몬슐랭 파이브 스타는 좀 너무하지 않을까요?”
“아시겠지만, 펫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자신을 향한 공격과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1급 허가증 나온 펫은 어지간한 곳에는 모두 출입이 가능해지니 이 정도 검사는 해야죠. 1급 못 딴다고 해도 이 아이 정도면 2급은 충분히 나가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마냥 사람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런 건 또 깐깐하구나.
임성한의 말대로 1급 허가증은 아무 펫에게나 발급해주지 않는다.
본래 펫이나 반려동물이 출입하지 못하는 곳에도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게 1급 허가증이니까.
펫도 결국 몬스터의 일종이다 보니 잘못 건드리면 여지없이 이빨이나 발톱을 들이민다. 당연히 상황에 따라 정말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때문에 1급 허가증이 없다면 펫을 대동하고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내가 1급을 받으려 한 것도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고미에게 즐거운 일을 잔뜩 경험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면 1급 허가증이 필요했으니까.
‘어떻게 하지? 고미가 이걸 버틸 수 있을까?’
순간 식탐으로 빛나던 고미의 눈동자가 머리를 스쳤다.
식탐이라고 쓰고, 광기라고 읽어야 할 것만 같던 그 눈빛.
먹을 것에 대한 끝없는 갈망, 집념, 집착,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넘실대던 그 눈빛.
답은 명확했다.
‘안 돼, 여기서 멈춰야 해.’
바로 그때, 머릿속에 애써 흥분을 눌러 참고 있는 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수하, 걱정하지 마라. 나는 견딜 수 있다. ]
고개를 돌려보니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코를 벌름거리고 있는 고미가 보였다.
[ 이 산을 넘어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견뎌낼 수 있다. 비켜라. 나를 믿고. ]
정말 이 녀석이 견딜 수 있을까? 몬슐랭의 유혹을?
[ 수하, 나는 위대한 곰이니라. 해낼 수 있다. ]
고미가 한 번 더 진지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내왔다.
좋아, 여기서는 녀석을 믿어보자.
“알겠어요. 그럼 시작하죠.”
저, 정말 믿어도 될까. 말하자마자 약간 후회되네.
대답하기 무섭게 몬슐랭 파이브스타의 봉인이 해제되며 달짝지근한 향기가 방안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자, 곰돌아, 이거 먹자.”
임성한이 포장을 뜯고 바 형태의 간식을 흔드는 순간, 달콤한 향과 함께 사료 냄새 비슷한 것이 코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펫용 간식이라 그런지 인간인 내게는 그리 끌리는 냄새가 아니었다.
“고미, 기다려!”
고미를 향해 손을 뻗으며 기다리라고 말하자, 홀린 듯 몬슐랭을 향해 걸어가던 녀석이 우뚝 발을 멈춰 섰다.
“기다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코는 벌름거리는데, 눈에서 빛이 안 난다. ‘끼잉’거리는 소리도 내질 않는다.
그리고는 마치 내 걱정이 기우였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정말로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와, 굉장한데요. 식성 까다롭기로 유명한 용종도 테이밍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흔들리는 게 몬슐랭 시리즈인데.”
임성한이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럼 테스트 통과인가요?”
“네, 더 볼 것도 없네요.”
“고미, 이제 괜찮아. 먹어.”
내 허락이 떨어지자, 고미가 쪼르르 달려가 몬슐랭을 낚아채 입으로 집어넣었다.
[ 수하. ]
이어서 녀석의 귀가 쫑긋서고, 꼬리가 빠르게 두어 번 흔들렸다.
어째 느낌이 좋지 않다. 기분이 언짢으신 것 같은데.
[ 이번 한 번만 참겠다. ]
응? 뭘 참겠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찰나, 다시 한번 전음이 들려왔다.
[ 또다시 나에게 이런 것을 먹였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 ]
고미의 그 살기 가득한 말에 등줄기에서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럼 저는 서류 작성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실래요?”
그때, 임성한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임성한의 발소리가 적당히 멀어지자, 고미가 곧바로 입에서 몬슐랭을 뱉어냈다.
“맛없어?”
[ 단내가 나서 조금 기대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이 없구나. 싱거운 데다가 약간 비린 맛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마정석의 맛이 느껴진다. ]
“뭐라고?”
마정석을 먹는 펫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그렇다고 그 비싼 마정석을 갈아서 펫용 간식을 만들었단 말이야? 괜히 비싼 게 아니었구만.
“그게 용종도 몬슐랭을 좋아하는 이유인가······.”
[ 도마뱀 놈들이 이걸 먹느냐? ]
몬스터의 정점인 용종을 도마뱀이라니······.
하지만 고미라면 정말 용의 뚝배기를 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그렇다고 들었어.”
[ 흥, 과연 약한 놈들이 좋아할 맛이군. 힘이 없으니 마정석을 흡수해서라도 힘을 키우려는 더러운 놈들이다. ]
워······. 왜 이렇게 각을 세워. 용들이랑 안 좋은 일 있었나.
그래도 내 입장에선 다행이다. 이 녀석이 몬슐랭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돌연 고미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럽게 전음을 보냈다.
[ 응? 수하. 저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귀를 기울여 보거라. ]
고미의 말에 따라 정신을 집중하고 바깥쪽에 귀를 기울이자, 문밖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임성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내 '진짜' 스킬은 ‘지구력 강화’와 ‘감각 강화’였다.
그리고 내가 구라 상태창에서 감각 강화 스킬을 지우고 테이밍과 지구력 강화만을 남긴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였다.
감각 강화 스킬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무심결에 정보를 흘리기도 쉽고, 그 정보를 엿듣거나 엿볼 기회가 생길 테니까.
설마 이렇게 빨리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그 대상이 임성한 씨가 될 줄은 몰랐지만.
“네, 네. 펫도 아주 훌륭합니다. 영입할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입? 길드 영입인가?
그런데 왜 F급을 영입하려는 거지?
설마 악덕 길드나 불법 펫 거래 업체 브로커 짓을 하는 건가?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위잉-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서류 한 장을 손에 든 임성한이 걸어들어왔다.
“김수하 씨, 허가증 드리기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뭐죠?”
“그······. 혹시 테이머스라고 들어보셨나요?”
“테이머스요?”
모르는 이름이다. 국내에서 이름난 길드라면 웬만큼 다 알고 있지만, 생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정말로 악덕 길드 브로커 짓을 하는 건가?
“신생 길드인가요?”
“어······. 아뇨, 길드는 아니고요.”
길드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단순한 친목 단체에요. 테이밍 능력 가진 헌터들이나 이계 생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인데. 음, 반려견 동호회?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실 거예요.”
“그런 게 있었나요?”
헌터들 중에 그런 초식초식 평화로운 인간들이 있다고?
하긴, 이 사람도 펫 잃는 게 싫어서 던전 도는 거 포기했다고 했지.
“네, 아무래도 펫을 단순한 생물 병기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테이머스는 펫과 정말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동호회거든요. 그래서 전투 능력은 없어도 그만이고, 헌터로 잘 나가지 않아도 마음만 맞고 펫을 사랑하시는 분이면 누구나 다 가입할 수 있어요.”
‘테이머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임성한의 눈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맑고 순수했다.
목소리도 살짝 달뜬 것이 테이머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하, 이런 얘기인 줄도 모르고 멀쩡한 사람 의심했네.’
대학원에서도 그렇고, 잡부일 하면서도 그렇고, 너무 권모술수가 판치는 곳에 오래 몸을 담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감각 강화 스킬을 감춘 게 나름대로 의마가 있다는 것 정도는 확인했으니 그걸로 만족하자.
“첫 만남에서 이런 제안하는 게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고미가 너무 예뻐서 드리는 제안이에요. 수하 씨도 하루 만에 고미와 이렇게까지 마음이 통하는 걸 보면 좋은 분인 것 같고요. 우리 함께 반려 펫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임성한은 수줍으면서도 열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음, 가입해서 나쁠 것 없는 조직 같기는 한데······.
한 번 고려해볼까? 일단 나도 이런 쪽으로는 정보가 워낙 없으니까.
혹시 고미와 놀러 갈 곳이라던가, 뭐 이런 것도 추천해 줄지도 모르고.
난 여행은커녕 남들 다 가는 흔한 유원지도 거의 가보지 못해서 이런 쪽으로는 영 꽝이니까.
“어, 그럼 혹시 종종 모임도 갖고, 펫이랑 같이 갈 좋은 장소 소개도 해주고 뭐 그러나요?”
“그렇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혹 생각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당분간은 좀 바쁠 것 같고, 기회 되면 한 번 연락 드릴게요.”
신이 나서 ‘테이머스’에 대해 늘어놓던 임성한은 멋쩍은 듯 웃으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고, 나는 기분 좋게 그것을 지갑에 집어넣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알아둬서 나쁠건 없겠지. 상대는 B급 헌터니까. 사람도 좋아보이고.
“마음 내키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어서 임성한이 내민 1급 허가증을 받아든 순간.
눈앞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어?”
“왜 그러세요?”
방 밖으로 나가려던 임성한이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사람의 눈에는 이 빛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 아닙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얼버무리며 고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서는 여전히 휘황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저자가 말한 그 테이머스라는 조직에 들어갈 생각인 것이냐? ]
고미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전음을 사용해 물어왔다.
설마······. 저 녀석에게도 이 황금빛이 보이지 않는 건가?
“이 황금빛, 안 보여?”
나의 질문에 고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 무슨 빛 말이냐? ]
이 녀석에게도 안 보이는 게 확실하군. 대체 뭐지?
그 눈부신 황금색 빛덩어리를 손으로 툭, 하고 건드리자, 갑자기 ‘띵’하는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첫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