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6화 (6/300)

EP.06 1급 테이머 김수하

< 이름 : 김수하 (F) >

< 칭호 : 평범한 사육사 (F) >

< 보유 스킬 >

- 테이밍 (F)

사용자보다 능력치 총합이 70% 이하인 생물을 펫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 펫 1)

- 지구력 강화 (F)

지구력이 약간 강화됩니다. 더 오랜 시간 일할 수 있습니다.

< 능력치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

“블라인드 처리를 거의 안 하셨네요?”

가시모드로 활성화된 상태창을 확인한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헌터 사회에서 정보는 총칼 이상으로 강력한 무기다.

그러니 대부분의 헌터는 가시 모드를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피치 못하게 상태창을 공개할 때도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게 상식이었다.

지금 내 행동은 그런 상식을 벗어난 머저리 짓이고.

“네. 그러면 안 되나요?”

나의 대답에 등록 창구 직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하하, 전 어차피 큰 욕심 없어요. 그냥 근근이 밥이나 먹고 살면 그만이고, 스킬도 능력치도 딱히 대단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짐짓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말의 내용 자체는 진심이다.

다만, 진짜로 내 패를 다 깔 생각 같은 건 없다. 이 험한 세상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그저 충분한 힘을 갖추기 전에는 최대한 별것 아닌 놈처럼 보이고 싶을 뿐이다. 좋은 스킬 생겼다고 나대다가 크기도 전에 박살 나는 사람, 잡부일 하면서 여럿 봤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직원의 눈에 ‘사람은 좋은데, 머리가 나쁜 것 같네’라고 쓰여있다.

사람 속 읽는 건 자신이 있다. 대학원 생활하며 남은 건 눈치와 사람 보는 눈밖에 없거든. 전공도 그렇고.

“으음······. 정말 이렇게 하시게요? 보통은 블라인드 처리 많이 하시던데.”

“괜찮아요. 우리 집 가훈이 성실, 정직, 노력이거든요. 괜히 남 속이려다가 의심만 더 사요. 그리고 펫 등록도 하려고 하는데, 바로 가능하죠?”

“본인이 정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펫 등록은 3층입니다. ”

“감사합니다.”

나는 한 번 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펫 허가증 서류를 들고 3층으로 향했다.

‘먹힌다! 먹힌다고!’

‘구라 상태창’이 먹힌 것을 확인한 나는 3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선 채 주먹을 바르쥐며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실험 1 클리어. 대성공이다. 매일 헌터들 상태창 보는 사람도 전혀 의심을 안 한다.

[ 왜 그러느냐? ]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에 고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쪽쪽 빨며 물었다.

아마 손가락에 남아있는 초코바의 잔향(?)을 음미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초코바 먹은 게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였는데, 맛이 남아있긴 한 건가?

“그러면 맛이 느껴져?”

나의 질문에 고미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 이 몸의 미각과 후각은 너희 인간들에게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초코바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지. 하지만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하구나. 어서 이 등록이라는 것을 끝내고 초코바를 내놓거라. ]

음······. 굉장히 궁핍한 느낌이 드는 위대함이군.

좋아. 타이밍 좋게 먹을 거 얘기가 나왔으니 마지막 난관을 넘기 전에 확실히 딜을 해놔야겠다.

“알겠어. 펫 등록 때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도록 협조 좀 부탁해. 대신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 걱정하지 말 거라! 말했다시피, 나는 신의를 아는 진정한 곰이니라. ]

초코향이 살짝 가미된 손가락을 핥는 고미의 눈이 식탐으로 빛났다.

이 자식, 먹는 거 너무 밝히는 거 같은데. 그래도 먹을 거 안 내놓는다고 바닥을 뒹군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좋아. 그럼 가자.”

3층의 펫 등록 센터에 도착하자, 덩치 좋은 스포츠머리의 남자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펫 등록하러 오셨어요?”

“네.”

“헉······.”

남자는 고미를 발견하자마자 두꺼운 팔뚝으로 무언가를 안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덩치랑 안 어울리게 노는 분이네.

“설마 저 사랑스러운 아이가 헌터님 반려 펫인가요?”

“네.”

“아아······.”

‘반려 펫’이라는 단어와 표정만 봐도 알겠다. 이 사람, 동물 엄청 좋아하는구나.

아마 테이머겠지. 펫 등록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테이머가 진행한다. 검사 도중 테이밍이 풀린다거나, 몬스터가 날뛰면 테이머가 진정을 시켜야 하니까.

그리고 첫스킬은 자신의 성격이나 관심사와 관련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니 테이밍 능력을 갖게 된 거겠지.

“아우, 정말 너무 예쁘네요. 제가 이 일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귀여운 친구는 처음이에요.”

검사관은 고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말투가 TV에 나오는 유명한 반려견 행동 조련 전문가와 비슷하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 후훗. 이 녀석은 뭘 좀 아는구나. 벌써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있지 않느냐? ]

상대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고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흡족한 표정으로 한껏 턱을 치켜들며 남자를 올려다봤다.

아니, 내려다보는 건가. 분명히 각도 상으로는 고미가 아래인데, 표정은 내려다보는 것처럼 거만함이 가득하다.

“와아, 예쁘다고 해주는 거 알아듣는 거니?”

사내는 예뻐 죽겠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면서도 함부로 고미를 만지거나 안지는 않았다.

단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동물을 잘 안다는 느낌. 특히 던전에서 나온 생물들은 천성이 몬스터인지라 갑자기 다가오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제 이름은 임성한입니다. 테이밍 계열의 B급 헌터고요.”

“B급이요?”

내가 그렇게 되묻자, 검사관은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놀랐다. B급이 던전 안 돌고 헌터 협회에서 펫 등록업무를 하고 있다니. 수입이 10배 이상 차이날 텐데······.

이분도 워라벨 파인가. 파장이 맞는군.

“B급인데 왜 던전 안 도시고······.”

“하하, 아이들이 저 지키다가 죽는 거 몇 번 보니까 도저히 던전은 못 돌겠더라고요. 뭐 테이밍은 단순히 스킬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지식이 필요한 분야라 등록도 도와주고, 그런 지식도 알려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좋은 분이네요. 김수하라고 합니다.”

나는 웃으며 임성한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런 팍팍한 세상에 이렇게 마음씨 좋은 B급도 있구나.

“이런, 사족이 너무 길었네요. 그럼 이제 검사 시작할까요?”

임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아시다시피, 테이밍 능력은 펫을 절대복종 시키는 편리한 능력이 아니에요. 특히 테이밍에 성공했더라도 친밀도가 낮으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는 점, 명심하세요.”

“네.”

“등록 절차에서는 간단한 명령 수행 여부를 통해 펫을 잘 통제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만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일정한 교육 기간을 거쳐야 하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

설명을 마치고 등록 신청서를 읽어내려가던 임성한이 나와 고미를 번갈아 바라보며 조심스레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 근데······. 각성 날짜가 어제인데, 1급 허가증을 신청하셨네요?”

“네, 이 녀석이 말을 잘 듣거든요. 머리도 좋고, 저랑 사이도 좋고.”

펫 허가증의 등급은 전투력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테이밍의 ‘안정성’과 펫의 ‘안전성’에 따라 주어진다.

이것도 펫의 본질이 몬스터이기 때문에 생긴 제도다.

던전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는 것에 대한 인증마크랄까.

요약하자면, 등급이 높을수록 ‘우리 애는 얌전해요.’, ‘우리 애는 말 잘 들어요.’ 정도.

따라서 1급 허가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테이머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해당 없지. 고미 말고 다른 펫을 길들일 능력도 없고.’

그리고 내가 노리는 것은 테이머로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1급 허가증에 붙는 다른 혜택이었다.

“으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시면 1급은 발급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알고 계시죠?”

“네.”

“일단 수하 씨보다 능력치가 낮은 펫만 테이밍 할 수 있으니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제압은 가능하겠네요. 이 부분은 검사 생략해도 될 것 같고, 우선 통제 능력 한번 볼까요?”

역시. 테이밍 스킬의 설명에 나보다 능력치가 낮은 개체만을 길들일 수 있다는 내용을 넣어놓길 잘했군.

앞으로도 내 능력을 아는 헌터들은 모두 고미가 엄청난 먼치킨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 역시 구라 상태창을 완전히 오픈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걸로 실험 2도 클리어.

경험 많은 B급 헌터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면, 다른 놈들도 절대 의심하지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뭘 시키면 될까요?”

“음, 1급이니까 조금 복잡한 동작을 시켜주셔야 합니다. 앉아, 일어서, 손, 이런 다른 동물들도 간단히 할 수 있는 거 말고요.”

“고미, 앞구르기.”

나의 한마디에 고미가 날렵하게 앞발로 바닥을 짚고 구른 뒤 벌떡 일어났다.

토실토실한 아기곰이 완벽한 공 모양으로 변해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임성한의 입가에는 절로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명령을 완수한 고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한없이 귀여운 모습이지만, 나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존심 센 녀석에게 이런 짓을 시켜도 되는 걸까?

“좋아. 뒷구르기 하고 손바닥 세 번 짝짝.”

이어지는 명령에 고미는 제꺽 재주를 부리고는 우아하게 앞발을 모아 손뼉을 쳤다.

완벽해. 서커스단에 취직한다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재목이다.

아니면 헌터등록만 해두고 고미랑 너튜브나 찍을까. 위험한 건 사양인데. 이 정도면 순식간에 다이아 버튼 받을 것 같다.

이후 임성한의 지시에 따라 TV 동물 프로그램에 소위 ‘천재 개’로 소개되는 녀석들이 보여주는 복잡한 명령을 두세 개 더 성공했을 무렵,

[ 수하, 언제까지 이 짓을 시킬 것이냐? ]

잔뜩 성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역시,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너튜버의 꿈은 접어야겠군.

나는 김수하, 포기가 빠른 남자지.

“와아, 너무 훌륭해요. 머리가 굉장히 좋네요. 이거 앞날이 기대되는 테이머인데요? 복종 테스트는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아요.”

다행히도 임성한이 때맞춰 테스트를 중단해 주었다.

그러나 더 큰 시련은 그 뒤에 있었으니······.

“그럼 이제 마지막 테스트로 넘어가 볼까요?”

말을 마친 임성한이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순간, 나는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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