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갓 고미님의 수제 상태창
<위대한 고미님의 부하(1호)가 고미님의 능력에 감탄합니다.>
<위대한 고미님의 부하(1호)가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비처럼 쏟아진다.
<······ 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놀랍니다.>
<······ 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 상태창에 대해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 가 ‘이게 아니야’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고미야, 이게 아니야. 그만! 내 생각이나 말을 전부 글자로 써주는 게 아니라고!”
<고미님이 ‘뭣이!?’ 라고 대답합니다.>
들리는 것도 메시지로 바뀌네.
신기하긴 한데, 정말 신기하긴 한데······.
뭔가 크게 잘못 만든 참신한 발명품 같은 느낌이다.
설마 아까 보여준 영상에서 나왔던 채팅이나 자막까지 모두 상태창 메시지로 착각한 건가?
“미안, 그런데 일단 이거 좀 아무것도 안 뜨게 바꿔줘. 너무 정신없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눈앞에서 상태창이 사라졌다.
“흐음, 이런 것이 아니더냐?”
“뭔가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네.”
확실히 실물을 본 적이 없고, 게임도 모르고 웹소설도 모르니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을 수밖에 없겠지.
“일단 내 이름과 보유 스킬은 꼭 나와야 하고, 스킬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해. 그리고 등급하고 칭호······. 어······.”
이후 상태창에 떠야 하는 기본적인 내용과 꼭 나와야 하는 내용과 안 나와도 되는 것들을 상세히 설명해주자,
“흐음······.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고미는 귀찮은 기색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다시 홀로그램 창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못 참겠다는 듯 조그만 귀와 짤막한 꼬리를 신경질적으로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에잇, 차라리 네가 해보아라!”
녀석이 성을 내며 앞발로 홀로그램 창을 툭 밀치자, 반투명한 화면이 나에게 날아왔다.
“그런 게 돼?”
“흥, 안될 것이 무엇이냐! 네놈이 직접 만들 거라!”
직접 시스템 창을 만들다니······. 그런 게 가능하다고?
나는 반신반의하며 잘못 만들어진 부분을 손으로 슥슥 문질러 보았다.
“헐······.”
이게 되네······.
내 시선이 저도 모르게 고미의 얼굴 위와 상태창을 오갔다.
‘이 녀석, 진짜 정체가 뭐지?’
진지하게 고미가 이계의 신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스템창은 헌터나 던전 이상으로 베일에 싸인 현상으로, 시스템 창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손을 댈 수 없는, 그래서 연구조차 불가능한 초과학적 현상. 그게 바로 시스템 창이니까.
“후후후후······. 그래. 나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느니라.”
나의 시선을 느낀 고미가 전기장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엎드렸다기보다는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장판과 하나가 되어 있는 수준.
음······. 신이라고 하기에는 위엄이 너무 없는 것 같기는 한데. 이 녀석, 대체 정체가 뭘까?
「나의 정체는 말해줄 수 없다.」
처음 만났을 때 고미가 했던 말이다. 심지어 정체를 알려주지 않으면 데리고 나갈 수 없다고 말을 했는데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지만 그 반응을 통해 나는 고미가 믿을만한 녀석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거짓말을 해도 될 걸 말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녀석이 나를 속이고 지상에 나와 나쁜 짓을 꾸밀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단호하게 굴어놓고 이제와서 묻는다고 대답해주지는 않겠지······.’
이에 나는 고미의 정체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상태창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한시라도 빨리 헌터 등록하고, 이계 생물 보유 허가증 받아야지. 몇 달이고 애를 더블백에 넣어 다닐 수는 없으니까.
동물학대 + 아동학대다. 동물학대도 끔찍한데 아동학대라니, 인간 김수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진짜 상태창을 봐둔 적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렇게 이런저런 수정을 거친 후 마침내 제대로 된 상태창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고미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됐다!”
“우하하하! 보았느냐! 이것이 나의 능력이니라! 이제 나의 위대함을 알겠느냐!”
“자!”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고미가 보석처럼 맑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아, 이런 거 모르겠구나.
“너도 같이 손을 내밀면 돼! 하이파이브! 어······. 뭔가가 잘 됐을 때 하는 거야.”
“오오! 요즘 세상에서는 일이 성사되었을 때 그런 의식을 치르는 것이냐! 좋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곰이니라!”
고미가 기쁜 듯 도톰한 발바닥을 내밀어 나의 손바닥에 부딪히며 외쳤다.
“이렇게 하는 것이냐!”
“응, 이제 내일 협회에 가서 등록만 하면 돼. 그럼 너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야. 대신, 약속은 꼭 지켜야 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신용 있는 곰이니라! 한번 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지!”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동이 트기 무섭게 고미와 함께 집을 나섰다.
펫을 데리고 다니는 헌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뒷짐을 진 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아기곰이 얼마나 시선을 끌지는 안 봐도 눈에 선했으니까.
게다가 허가증도 없이 그러고 다녔다가는 곧바로 은팔찌 차는 거지 뭐. 상태창을 보여준다고 해도 일단 조사는 받아야 할거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대중교통이 아닌 깨깨오 택시를 선택했다.
[ 오오, 이 작은 버스는 무엇이냐? ]
택시가 도착하자, 고미는 살금살금 택시의 뒷좌석에 숨어들었다.
[ 택시라는 거야. 버스보다 비싼 이동 수단이지. ]
[ 흐음, 어째서냐? 전에 그 큰 버스가 더 크고 웅장했는데, 이것은 작지 않느냐? ]
[ 꼭 크다고 비싼 건 아니잖아. ]
[ 그래도 나는 그 녀석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위대한 이 몸에게는 큰 것이 어울린다.]
나는 시스템 창에 글씨를 써넣는 방식으로 고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차피 가시 모드가 아니면 이 메시지는 나와 고미 눈에만 보이니까.
그렇게 한 시간쯤 갔을까.
마침내 택시가 멈추고, 중앙에 공터가 있는 20층 높이의 헌터 협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의 공간은 실내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일부 이능의 실연(實演) 및 실험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들었다.
“우오오!”
택시에서 내리기 무섭게 고미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이곳이다! 이곳이야! 이곳이 나의 거처로 적당하겠구나!”
그 발언, 내 스위트 홈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니······.
왠지 상처를 받아버렸다.
“수하! 이 집을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손에 못 넣어. 그리고 당분간은 말하면 안 된다니까. 대화는 전음으로만.”
“어째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냐!?”
나는 대답 대신 고미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어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렸다.
“끼, 끼잉.”
같이 지낸 지 불과 하루 만에 깨달은 사실인데, 이 녀석은 기분이 좋아지면 이상한 소리를 낸다.
강아지나 아깽이들이 내는 낑낑거리는 소리 같은 거. 아니면 ‘오오오······!’ 하면서 눈을 빛내거나.
즉, 이렇게 들어주는 게 상당히 기분이 좋다는 소리겠지. 아무튼 이상한 녀석이다.
“말하는 곰을 데리고 있으면 보나 마나 연구 대상이니 뭐니 해서 최소한 며칠은 저기 갇혀 있어야 할 거야. 그럼 맛있는 건 물 건너가는 거지. 그러니까 당분간 대화는 전음으로만.”
“서, 설마, 그 초코바라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것이냐?”
고미의 눈이 초점을 잃고 어지럽게 흔들린다. 초코바 못 먹는다는 게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을 말인가.
“응. 아마도?”
“그럴 수는 없지. 어서 가자.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겠느니라. 이제 내려놓거라. 내 발로 걸어서 가겠다. 이, 이것은 위대한 이 몸에게 어울리지 않는 위엄 없는 이동 방식이니라.”
“알았어.”
짧은 협상을 마친 후, 나는 고미와 함께 당당하게 헌터 협회의 건물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로 걸어갔다.
“어, 저기요. 등록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신규 각성자 이신가요?”
자로잰 듯 깔끔한 단발머리를 한 안내 직원이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네.”
“2층으로 올라가서 우측으로 가시면······.”
설명을 하며 로비 한쪽에 있는 계단을 가리키던 여직원의 손가락이 돌연 우뚝 멈춰 섰다.
“어······.”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데스크의 한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털 뭉치 하나가 입을 헤 벌린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꺄악······! 어떡해!”
여직원이 높다란 목소리로 입을 가리며 외쳤다.
“고미! 이리 와!”
“설마 저게 헌터님 펫이에요?”
“네.”
“어떻게 해! 진짜 너무 귀엽다! 저 이렇게 귀여운 펫 처음 봐요! 어디서 주워오셨어요? 전투 능력 있는 펫인가요?”
네. 있습니다. 아주 심각하게 있습니다. 보시면 기절하실걸요.
“아뇨, 별 능력 없어요. 그냥 평범한 곰이에요.”
하지만 ‘저놈이 S급을 한방에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 뭣이?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내 힘을 보여주마! ]
그 말을 들은 고미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전음으로 외쳤다.
예상한 반응이다. 이놈은 자존심이 상당히 세니까.
예상한 반응이니 당연히 대책도 있다.
초. 코. 바.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마법의 단어를 내뱉자, 고미는 분한 듯 씩씩거리면서도 얌전히 내 곁으로 걸어왔다.
“어머, 어떻게 해! 진짜 너무 귀엽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거에요?”
“네, 그렇네요. 그럼 이만 등록하러 가보겠습니다.”
* * *
2층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신규 각성자 등록’이라고 쓰여있는 창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창구로 걸어가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눈이나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몸까지 돌려가며 고미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예인이 지나가도 이렇게 쳐다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역시 아침 일찍 오길 잘했다.
“신규 각성자 등록하러 왔는데요.”
창구의 여직원에게 말을 건네자,
“네, 먼저 서류부터 작성해 주세요.”
사무적인 대답과 함께 간단한 서류 몇 장이 돌아왔다.
각성 일자, 각성 상황, 보유 스킬, 신상 명세 등등······.
나는 빠르게 공란을 채운 뒤 직원에게 다시 그 서류를 돌려주었다.
“네, 김수하 씨. 그럼 가시 모드로 상태창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해서 보여주시면 되고요. 다만 스킬 등급은 공개해 주셔야 합니다.”
“네, 상태창. 가시 모드.”
명령어를 말하자, 피땀 눈물로 만들어진 수제 상태창이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좋아. 실험 1, 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