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4화 (4/300)

EP.04 바깥 세상으로

더블백에 숨어 초콜릿을 훔쳐먹고, 제 입으로 실토한다.

거래할 상대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덥석 줘버리고, 내가 없으면 던전을 나갈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먼저 말해버린다.

거기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하니 울면서 모리배니, 뭐니 하는 것까지······.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이 곰의 정신연령은 열 살 이하다.

틀림없다.

즉, 잘만 구슬리면 협상의 여지는 있다는 소리.

우선 대화를 시도해보자.

“나랑 약속 몇 가지만 하면 던전에서 나가는 걸 도와줄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저 녀석은 나가고 싶어 하고, 나는 원하는 게 있으니, 어디까지나 공정거래다.

어차피 나쁜 일을 시킬 것도 아니고, 정말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

“이, 이놈······.”

고미는 먹다 남은 초코바를 손에 든 채 사지를 바르르 떨었다.

미안. 나중에 초코바 많이 사줄게. 용서해주라.

“어때?”

“말해 보거라.”

“우선, 인간을 해치면 안 돼. 이건 최소한의 조건이야.”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냐?”

귀엽게 생긴 게 말하는 거 보소.

무섭게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음, 다치게 하는 것도 안 돼.”

선을 확실히 그어주자.

매번 반죽음, 이런 걸로 일을 처리하려 들지도 모르니까.

이 녀석 정신연령이 정말 어린애 수준이라면, 이런 종류의 문제는 처음부터 선을 그어둬야 한다.

뭐든지 그렇지만, 유아 교육은 시작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흐음······. 알겠다. 그게 첫 번째 조건이라니, 모리배라고 했던 것은 사과하마! 좋은 녀석이었군!”

고미가 환히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쿡쿡 쑤신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무서움인가?

저 순수함에 나도 모르게 교화 당할 것 같다.

“그리고, 꼭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 그것만 도와주면 내가 책임지고 매일 매일 맛있는 거 먹여줄게.”

“말해 보아라, 나는 전지전능한 고미님이다! 뭐든지 들어주지!”

“그럼······.”

······.

이후에 나눈 대화는 어차피 앞으로 다 나올 내용이다. 스포가 되니까 생략하자.

* * *

찰싹, 찰싹.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으으······.”

한 씨 아저씨가 깨어난 것은 고미와의 대화를 모두 끝마친 뒤였다.

정확히는 내가 깨운 거지만.

고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점혈을 했으니 반나절은 기절해 있을 거라고 했다.

균열을 뚫고 나온 몬스터를 죽인 것도 무협지에 나오는 기공술의 응용이란다.

‘격산타웅’이라나 뭐라나.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몬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난 아저씨가 사라져가는 균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균열로 돌아간 것 같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이 상태였어요.”

“뭐?”

아저씨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되물었다.

믿기지 않는 게 당연하다. ‘눈앞에 운석이 떨어졌는데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답니다.’ 하는 이야기나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 외에 우리가 무사할 이유가 없으니까.

고미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밖에 나가서 고미에 대해 떠들고 다니면, 설령 악의가 없다고 해도 내 선에서는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

고미의 힘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발에 챌만큼 널렸고, 순진무구한 슈퍼 먼치킨 아기곰이 그런 악당들 손에 들어가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운이 좋아봤자 다른 펫들처럼 죽을 때까지 던전에서 굴려질 거고, 실험 대상이 되거나 돈을 받고 여기저기 팔려 다니겠지.

‘이유야 뭐가 됐든 내가 데리고 나가는 거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이것 역시 어른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힘이 있어도 애는 애다.’ 라고 말하기에는···너무 세긴 하구나······.

“흐음······.”

내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는 한참이나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가지. 난 나가서 헌터 관리국에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해야겠어.”

이후 우리는 서둘러 던전을 나왔고, 네 명의 신입 헌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던전을 떠났다.

나는 신입 헌터용 보급 장비를 과천 던전을 지키고 있는 군부대에 반납한 뒤 버스에 몸을 실었다.

* * *

버스에 탔을 때는 이미 막차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고, 나는 굳이 조금 돌아가는 노선을 택해 몸을 실었다.

피곤해서 발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고미를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대화가 가능한 인간을 만난 적은 몇 번인가 있지만, 직접 바깥세상에 나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럼 여태 뭐 하고 살았는데?」

「괴수들을 잡았느니라.」

「다른 건? 몬스터 잡는 거 말고 다른 일도 했을 거 아니야?」

「없느니라.」

「친구는?」

「없느니라.」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고미의 표정은 너무나도 서글펐다.

내 사정도 사정이지만, 녀석을 데리고 나온 가장 큰 이유는 그 말을 할 때 보인 슬픈 표정 때문이었다.

인간적으로, 이렇게 조그만 아기곰이 던전에서 몬스터만 잡고 산다는 건 좀 너무 하잖아.

그리고 이왕 나왔으니 버스의 창문을 통해서라도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지금 내 수준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일 테니까.

평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버스의 맨 뒷좌석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더블백의 옆구리 부분을 슬쩍 열어 창가에 기대어 놓은 후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 덮어두었다. 짐이 없는 덕에 그 정도로도 충분히 더블백을 가릴 수 있었다.

“오오오오······!”

잠시 후, 아기 같은 목소리가 옷 틈새로 새어 나왔다.

“쉿! 사람들이 네 목소리 들으면 안 된다니까! 그리고 얼굴 내밀면 안 돼. 틈으로만 봐. 곧 제대로 구경시켜줄 테니까. 알았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 아, 알았느니라······. ]

머릿속에 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뭐야?”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되물었다.

지금 고미의 목소리는 귀를 거치지 않고 나의 머릿속에 직접 들려오고 있었다.

던전에서 목소리를 들었을 때와는 다른 감각.

[ 전음이니라! 하찮은 잔재주지만 아주 편리하지! ]

정말 온갖 걸 다 할 줄 아는 곰이구나.

[ 오오, 이것이 바깥세상이구나! 아름답다! 지상에 별이 깔린 것 같구나! 이제 인간들은 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곳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냐? ]

“뭐, 대충 그렇지.”

[ 그나저나 너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은데, 이 이동하는 쇳덩어리는 무엇이냐! 속도가 제법이구나! ]

“버스. 자동차라고 들어봤어?”

[ 오오, 굉장하구나! ]

고미는 그렇게 한참이나 차창 밖을 내다보며 전음으로 ‘이것은 무엇이냐!’, ‘저것은 무엇이냐!’, ‘오오······.’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머쓱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굳이 돌아가는 길을 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기 전, 고미는 아주 서글픈, 하지만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나 내 귀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 * *

“으아아아! 집이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전기장판의 조절기를 돌렸다.

3 정도면 적당하겠지. 오늘은 고생했으니 평소보다 뜨뜻하게. 죽다 살아났으니 제대로 지져주고 싶다.

[ 이제 나가도 되는 것이냐? ]

고미가 기대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얼른 나와.”

그리고는 이내 초콜릿 색의 보송보송한 털 뭉치가 방안에 나타났다.

“참으로 누추하구나.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이냐?”

가방에서 나온 고미는 곧바로 팩폭을 퍼부었다.

하긴, 세상에 처음 나와서 제 발로 밟은 땅이 반지하 원룸이니 조금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건 없잖냐······. 나, 상처받는다.

“걱정 말거라, 내가 있으니 곧 아흔 아홉 칸 짜리 집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큰 집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사내가 야망이 없구나!”

고미가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지만, 나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억하고 있다. 그 상태창이니 뭔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

“응, 그게 없으면 안 돼.”

“쯧쯧, 어째서 요즘 이능자들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냐? 예전에는······.”

내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아기 곰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것을 보자니 정말이지 기가 차다.

어쨌든, 나는 틀림없이 각성했다. 고미의 입에 묻은 초콜릿 냄새가 그렇게 진하게 느껴진 것도 내 스킬 때문이었고.

다만, 아직 상태창은 없다.

그리고 상태창이 없으면 헌터로 등록을 할 수 없으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태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 고미는 자신의 능력으로 상태창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자, 그럼 그 상태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다오.”

“으음, 기다려봐.”

나는 ‘상태창’을 보여주기 위해 곧바로 책상에 앉으며 컴퓨터를 켰다. 가장 좋은 샘플은 역시 게임이나 웹소설, 너튜브 영상 정도겠지. 근데 이 녀석, 한글 읽을 줄 아나?

“너, 한글은 읽을 줄 알아?”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니, 화는 좀 내지 말고······.

왜 이렇게 쉽게 발끈하니. 칼슘이 부족한가?

“알았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줘. 금방 되니까. 그동안 전기장판에 등이라도 지지고 있어.”

너도 세상 밖에 나왔으면 전기장판에 등 정도는 지져봐야지.

세상에는 즐거운 일이 얼마든지 있고, 나는 가능하면 고미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저 지금 내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이 정도라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 말은 뜻하지 않게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오오! 일상적으로 집에서 벼락을 맞는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제법이구나! 이 시대의 인간들도 제법 훌륭한 방식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있었군!”

아무래도 ‘전기’와 ‘지지다’라는 단어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일단 누워봐.”

“그런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일단 누워보라는 말에 고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전기장판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갸, 갸아······!”

어느 짤방에서 본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바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그란 눈이 더욱 동그래지고, 쾌감(?)에 젖어버린 두 눈에서는 거의 레이저에 가까운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 이거야.”

온라인 게임 리뷰를 컨텐츠로 하는 너튜브 영상을 보여주자, 고미는 전기장판에 배를 깔고 드러누운 채 신기하다는 듯 연신 눈을 빛내며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몇 개의 영상을 시청한 후,

“좋다. 이제 다 파악했느니라! 보아라! 이 몸의 권능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앞발을 들어 허공에 대고 꾹꾹이를 시전했고,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된 화면 하나가 떠오르며 엄청난 수의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한 메시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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