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화 (2/300)

EP.02 곰이 왜 여기서 나와

깨톡. 깨톡.

으아아아아! 제발 그만! 제발 좀!

워라벨 어딨냐 워라벨!

스트레스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아무리 잠이 부족해도 ‘깨톡’ 소리만 들리면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불안해진다.

깨톡이 울리지 않는다는 건, 일이 없다는 소리거든.

울리면 울리는 대로, 안 울리면 안 울리는 대로 스트레스.

좋아. 비가 오면 우산이 팔리고, 비가 안 오면 짚신이 팔려서 좋은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보자.

······.

효과는 굉장했다!

정신승리를 통해 약간의 기력을 되찾은 나는 뽕 맞은 놈처럼 해롱거리며 억지로 눈을 떠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 수하 씨, 교육 일정 잡혔어. 갈 거지?

역시 일이다.

“아, 일하기 싫다······.”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몸을 일으키자, 팔다리가 나 대신 곡소리를 내준다.

이름, 김수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줄여서 수하.

그런데 평천하는 고사하고 수신도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 같다.

직업은 대학원생······. 이었다.

애초에 대학원생을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현재 직업은 던전 잡부.

일단은 이쪽이 주업. 일하는 날은 적지만, 가장 많은 수입을 안겨주는 일이다.

그 외에도 재택근무 하나, 던전 안 가는 날이면 야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총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워라벨 x망 인생’ 정도.

하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 워라벨 따질 상황이 아닌데.

'후...'

└ 가야죠.

└ 평소처럼 더블백만 챙겨와요. 6시까지.

└ 네, 그럼 평소처럼 한 시간 일찍 찾아뵙겠습니다.

* * *

오늘의 일터는 과천에 위치한 교육용 던전.

이제 막 각성한 신참 헌터들의 실습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F급 던전이자, 비각성자인 내가 잡부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던전 중 하나다.

평소와 똑같이 아저씨를 만나 신참 헌터들을 소개받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실습에 들어간다.

실습 내용은 이곳에 존재하는 4가지 몬스터를 잡으며 기본적인 전투 방법과 스킬 활용법을 익히는 것...은 헌터들 역할이고, 내 역할은 별거 없다.

무거운 예비 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장비가 박살 날 때마다 교체해 주는 것 정도.

뭐, 그 외에도 하는 일이 있지만······. 그건 일반적인 잡부가 하는 일은 아니고, 그냥 내가 가진 옵션 정도?

“수하 씨!”

일 생겼네. 괜히 말 꺼냈다.

장비를 내려놓고 달려가자, 새파랗게 질린 채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는 신참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에이씨, 어째 요즘 잠잠하다 했다.

“아저씨, 손잡아줘요.”

나는 우선 아저씨에게 쓰러져 있는 F급, 이범준 씨의 손을 잡아주라고 지시했다.

F급이라고는 해도 헌터는 헌터다. 나 같은 일반인은 손 잡히는 순간 일 치르지.

“됐어!”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마스크를 이범준의 입에 씌워준 뒤 손가락을 들었다.

“자, 범준 씨. 진정하고. 내 손가락 봐요. 손가락.”

그리고는 일정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며 천천히 과호흡 증상을 잡아준다.

“숨 천천히 쉬어요. 천천히. 더 천천히. 좋아요. 힘 풀고.”

가느다랗게 떨리던 손끝이 멈추고, 빠르고 얕게 반복되던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안심이군.

“이제 됐어요. 편하게 앉아서 쉬세요. 아저씨!”

“모두 잠깐 쉽시다. 이참에 장비 점검도 하고.”

아저씨의 말에 네 명의 신입 헌터들이 하나하나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투를 마치자, 그들의 표정은 던전에 들어올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 되어있었다.

자신들이 어떤 세계에 뛰어들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F급이라고 해서 얕봤는데, 정말 이런 것보다 센 몬스터를 인간이 잡을 수 있단 말이에요?”

신입 헌터 중 하나가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 처음이라 그래요. 그래도 오늘은 다들 잘하는 편인데, 보통 한둘은 꼭 피를 보니까.”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한 장호. 일명 ‘한씨 아저씨’라고 불리는 D급 헌터.

D급이면서 늘 E급, F급 던전만 도는, 일명 ‘안전 제일 주의’ 헌터다.

주로 새로운 각성자들이 던전에 적응하기 위해 들어가는 소위 ‘교육용 던전’의 인솔 헌터 일을 하고 있다.

현재 내 생계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수하 씨, 이거 못 쓰겠죠?”

선두에서 치열하게 바위 멧돼지와 사투를 벌였던 김상원이 잔뜩 풀 죽은 표정으로 검을 내밀며 말했다.

“네, 바꾸셔야겠는데요.”

이건 뭐 이가 나간 수준이 아니라 칼날이 죄다 나가서 고철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패도 교체하는 게 좋겠네요.”

나는 곧장 더블백을 뒤적여 김상원이 맡겨놓은 예비용 방패와 한손 검을 꺼내주었다.

F급 최하급 인벤토리, 일명 더블백.

군필이라면 누구나 집어던지고 싶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 인벤토리라는 이름의 트라우마 덩어리. 그래도 내 밥줄을 이어주는 소중한 장사 도구다.

여담이지만, 이거 만든 사람이 행보관이라는 소문이 있다.

“감사합니다.”

새 장비를 받아든 김상원이 망가진 방패와 칼을 나에게 건네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수하 씨가 시키는대로 하니까 금방 괜찮아졌어요. 아까는 죽을 것 같이 무서웠는데, 혹시 의사예요?”

그때, 안정을 찾은 이범준이 나에게 다가와 감사인사를 건넸다.

“에이, 의사가 던전 잡부 일을 왜 해요. 그냥 이래저래 알고 있는 거예요.”

이런 잡기술(?)을 알고 있는 데는 슬픈 사연이 있지만,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슬픈 과거를 머릿속에서 떨쳐내기 위해 바쁘게 손을 놀렸다.

먼저 망가진 장비들을 인벤토리에 넣고, 예비 장비를 꺼내고, 퇴근하면 뭐하지?

뜨끈한 전기장판에 들러붙어서 영화나 볼까.

크, 생각만 해도 행복하군. 그래, 오늘은 큰맘 먹고 치느님을 영접해 보자.

그렇게 혼자서 뭘 볼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곰곰이~ 생각해 봐도오~♪ 고오오옴~♩」

어디선가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렸다.

가사가 뭐이래······. 거기다 살짝 음치네.

이런 정신 나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네 명의 헌터는 모두 지친 표정으로 말없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뭐지?’

「살곰살곰 다가가~알거야아아~♬」

뒤이어 누구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또 한 번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해진 목소리······.

그제야 나는 무언가가, 아주 확실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이거 애 목소리잖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아기였다.

그럴 리가······.

던전에서?

순간 뒷덜미가 찌릿해지며 서늘한 냉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몬스터? 그럴 리가 없는데······.’

과천 던전은 가장 오래된 교육용 던전 중 하나다.

그만큼 수많은 헌터들이 들락거렸고, 이곳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연구가 끝났다.

그리고 이곳에 노래를 부르는 생물 따위는 없다. 절대로.

아니, 그보다 이렇게 완벽한 인간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몬스터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금시초문이었다.

‘설마 애가 던전에 들어온 건가? 어떻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 이제 휴식 끝. 이제 두 종류만 더 잡으면 실습 끝이니까 힘냅시다.”

그때, 아저씨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상한 조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끼지 못한 듯, 평소와 똑같은 말투였다.

‘안돼, 만에 하나라도 애가 던전에 들어온 거면······.’

다급해진 마음에 나는 저도 모르게 아저씨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만에 하나, 그래 만에 하나지만, 애가 던전에 들어온 거라면 절대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생물이라고 해봐야 죄다 F급이고, D급인 아저씨도 있으니 찾아라도 보자.

“아저씨, 노랫소리 안 들려요?”

“노래? 무슨 노래?”

아저씨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기 목소리 같은 거, 안 들려요?”

이어지는 질문에 네 명의 신입 헌터들도 일제히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무슨 소리요?”

“안 들리는데요.”

하지만 하나같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반응.

헌터들의 오감은 비각성자보다 훨씬 민감하니 내게 들리는 것이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귀, 귀신인가?

아니지.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하지만 문득 던전과 몬스터가 버젓이 실재하는 세상에 귀신이라고 왜 없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냐?」

······.

심지어 이놈이 이제 나한테 말까지 걸고 있다.

죄송합니다. 전혀 안 들립니다.

제가 요즘 기력이 허해서 헛것이 들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들리는구나?」

으헝······. 엄마 이거 뭐야 무서워······.

그 순간, 풀숲에서 무언가 보석 같은 것이 반짝 빛을 발하는 것이 보였다.

「찾았다!」

그런 멘트하지 마. 이거 전형적인 사망 플래그잖아.

“수하 씨? 괜찮아?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야?”

내가 새파랗게 질린 채 그대로 멈춰 서있자, 아저씨가 다가와 나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제가 헛걸 들었나 봐요.”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귀신과 절대로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고 했다. 말을 걸어도 절대로 대답하면 안 되고.

그렇게 내가 귀신인지 몬스터인지 뭔지 모를 목소리의 주인공을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있을 때,

“어?”

저 멀리서 희뿌연 먼지가 일어나고, 이내 바닥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켕-! 케겡!

크르르르!

“뭐, 뭐야!”

그리고는 놀랄 틈도 없이 온갖 해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각양각색의 이계 생물들이 미친 듯이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뛰, 뛰어!”

“뭐야!”

“뛰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괴현상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응?”

하지만 놈들은 인간을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하며 오로지 앞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나갔다.

마치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때 동물들이 보이는 것 같은 반응.

그워어어어어-

곧이어 귓가에 묵직한 저음의 포효가 들려오며 팔다리가 경직되는 느낌이 들었다.

“뭐,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몬스터가 높이 자란 나뭇가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머리와 비늘로 뒤덮인 몸통, 어깨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수백 개의 뱀 머리······.

한눈에 보기에도 D급 헌터 하나와 이제 막 각성한 초보 헌터 넷이 상대할 수 있는 놈은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나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 것은 놈의 머리 위로 보이는 거대한 균열이었다.

던전내 균열 생성. 그럼 저거 최하 S급이란 소리잖아.

“아아······.”

나의 불길한 예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아저씨의 입에서 긴 탄식이 새어 나왔다.

“끝장이야······.”

상태창이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던전의 클리어 조건이 바뀌고, 저놈을 죽이기 전에는 탈출 불가능한 던전으로 바뀌었겠지.

바로 그때, 등에 맨 더블백이 가볍게 흔들리더니 그 안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퍼벅’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헌터들이 동시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쓰러졌다.

“에잇! 일이 이렇게 틀어지다니!”

그리고는 일전의 그 ‘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네? 저요?”

“이 몸이 너를 구해주마! 대신 내 부하가 되거라!”

“네?”

이게 무슨······.

“빨리 정하거라! 이대로 죽을 것이냐? 아니면 내 부하가 될 것이냐!”

지금 내 눈앞에는 어디서, 언제 튀어나왔을지 모를 아기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워어어어어-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태양이 가려진 듯 주위가 어두워졌다.

돌아볼 것도 없이, 그 거대한 놈이 내 등 뒤까지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려줘!”

반사적으로 살려달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대답을 하기 무섭게 도톰한 앞발이 나의 배를 강타했다.

“억, 살려준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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