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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46화 (146/150)

146화 - 외전(2)

붙잡은 도적들을 데리고 인근 도시로 텔레포트 해서 경비대에 넘기고 난 후, 라엘은 파라와 함께 타이런 제국의 수도인 하이넨 근처로 텔레포트 했다.

파라는 직접 산과 들을 지나며, 국경을 건너는 등의 여행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고 투덜거렸지만 먼저 도착해서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이 무투대회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일 수 있을 거란 라엘의 말에 납득했다.

사실 마법을 통한 빠르고 간편한 여행에 익숙해진 라엘이 말이나 마차, 혹은 도보 여행의 불편함과 피곤함을 겪기 싫어해서 그런 거지만.

정체가 들켜 소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하이넨 내부가 아니라 외곽으로 이동했기에 두 사람은 남들처럼 줄을 서서 하이넨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렸다.

하이넨 거주자가 아닌 외지인 전용의 관문에 서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음 사람 오십쇼.”

드디어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파라는 기대감과 흥분으로 눈을 반짝이며, 라엘은 한참을 줄 서느라 피곤한 표정으로 경비병 앞에 섰다.

하루에 수많은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해야 하는 관문 경비병의 표정도 라엘과 비슷했다.

“신분을 증명할 것이 있습니까.”

신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하이넨에 들어서는 것이 무척 지연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추가 절차와 심사를 겪고, 심지어 출입이 거부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두 사람에겐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있었다.

“크라우드에서 온 파라 아마렛이에요.”

파라가 태어나고 자란 네팔렌 가문은 드래곤인 라엘 덕분에 유명했으나 네팔렌 가문의 손녀사위이자 파라의 아버지인 루밀리온의 가문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그 덕에 경비병은 별 다른 반응 없이 파라가 건넨 신분증명패를 확인하고 되돌려 주었다.

“확인했습니다. 하이넨에 방문한 목적은 어떻게 되십니까.”

“이번에 열리는 무투대회에 참가하려고요.”

그 말에 경비병은 순간 어리둥절한 감정을 살짝 드러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무투대회에 참가한다고 하기에는 그저 어리고 예쁘장해 보이는 소녀인 데다 무기라고 할 만한 것도 지니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파라의 출입 심사를 마친 경비병이 이번에는 라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엘은 아직까지 적색 마탑의 소속에서 따로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적색 마탑의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패로 신분 증명을 대신했다.

“제카스, 적색 마탑 소속입니다.”

태연하게 적색 마탑 시절에 알게 된 사람들의 이름을 섞어 자신의 이름으로 밝힌 라엘의 모습에 경비병은 의심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에게 있어서 마법 처리가 되어 있는 신분패를 조작하는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다.

“로브를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적색 마탑의 마법사시로군요. 일행이신 아가씨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파라의 부모님과는 각별한 사이라 보호자로 따라왔습니다.”

가족이니 각별한 사이라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다.

가짜 이름을 대고, 관계도 은근슬쩍 숨기는 이유는 라엘의 정체가 드러나면 소란스러워질 테니까.

“하이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원에 문제가 없었기에 검문은 별문제 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관문을 통과하여 드디어 하이넨으로 들어서자 라엘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검문보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게 더 힘들다니까.”

그 말에 카이서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는 인간에게 조용히 연락했으면 줄 같은 건 설 필요도 없이 편하게 들어올 수도 있었을 것을.>

하이넨에 아는 사람 중에는 은퇴 이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직 마법병단장도 있고 심지어 현직 여황도 있었다.

아마 줄을 서기는커녕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들어섰을 거다.

‘그랬다간 내 정체가 금방 밝혀져서 귀찮아졌을걸?’

<크크, 내 장담하건대 이 모든 쓸데없는 짓에도 불구하고 네 정체를 알아채는 놈이 나올 거다.>

‘에이, 설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정체를 감추려 하는……’

“라엘 드리안?”

“헉?!”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본명에 라엘은 카이서스와 대화하다 말고 기겁하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길가의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성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무척이나 놀랐는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정도였다.

‘전직 마법병단장이 왜 여기서 나와?!’

<오, 이건 내 예상보다도 더 빠른데. 네 녀석의 운은 정말이지…….>

카이서스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잠시 후.

“하하하! 그러니까 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고작 무투대회에 참가하겠다는 조카의 뒷바라지인 건가? 대단한 꼬맹이구나, 위대한 존재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투대회에 나서다니.”

신기해하는 전직 마법병단장 유리아 발더스의 말에 파라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뚱한 표정이 되었다.

“전 꼬맹이가 아니고 파라 아마렛이라는 이름도 있고, 올해로 열여섯 살이라 이제 보살핌받을 시기는 지났거든요? 한 사람의 당당한 참가자로서 기분 나쁘네요. 그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말하던 도중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누구기에 자신의 외삼촌을 알고, 편하게 대하는 건지 의아해진 파라가 뒤늦게 그녀의 정체를 물었다.

자신을 몰라보고 그런 것 같기는 해도 당차게 대답하는 파라의 모습에 유리아는 더욱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 외삼촌과는 달리 아주 당찬 아이로구나. 나는 유리아 발더스라고 한단다.”

작위나 이전의 직위 같은 것을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이름은 너무 유명했기에 파라는 그녀의 정체를 눈치채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앗! 그럼 아줌마가 제국 마법병단장이었다던 그 할머니였어요?!”

많이 들었다는 듯 놀라워하는 말에 유리아는 순간 벙찐 표정이 되었다.

분명 높은 경지로 인해 중년 정도로 보이긴 하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는 할머니라는 말이 전혀 모자라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대마법사이자 전직 마법병단장으로서의 정체를 알고도 이렇게 태연하게 할머니라고 칭하는 상대는 오랜만이었다.

<하여간 네 조카가 말로 상대를 공격하는 실력 하나는 일품이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유리아는 가벼운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다시금 라엘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네가 여기 온 걸 알고 있나?”

자신을 보며 묻는 말에 라엘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각국에 했던 부탁을 잊은 겁니까? 전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줄도 서고, 가짜 이름까지 대면서 들어온 건데… 도대체 당신이 왜 여기 있었던 겁니까?”

억울하다는 듯 묻는 말에 유리아는 그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그야 내가 사는 집이 이 근처니까. 그리고 이 카페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해서 자주 오는 곳이고.”

반박할 거리라곤 전혀 없는 유리아의 답변에 라엘은 침음만 삼킬 뿐이었다.

‘끄응, 운도 없지.’

낙담한 기색이 역력한 라엘의 모습에 유리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비밀로 해줄 테니 재미있게 놀다 가시게나.”

“비밀로 해주신다니 그건 다행이네요.”

이미 한번 걸린 판에 비밀로 한다고 해서 그리 다행인 것은 아니지만 라엘은 힘없이 감사를 표했다.

“괜히 드래곤이 하이넨에 나타난 것이 알려지면 시끄러울 테고, 그랬다간 은퇴 후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중인 나도 귀찮아질 테니 말이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평온을 위해서라는 말에 라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대마수로부터 대륙을 구한 데다 드래곤이기도 한 자신에게 좀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나?

차를 마시며 읽던 책이나 마저 읽겠다는 유리아를 뒤로한 채 다시 거리로 나선 라엘과 파라는 무투대회의 참가 신청을 받는 접수처로 향했다.

텔레포트로 단숨에 움직인 덕분에 무척이나 빨리 도착해서 여유롭게 접수할 수 있었지만 파라 혼자서 움직이던 속도대로라면 접수 마감 기한을 맞추기도 아슬아슬했을 거다.

하이넨에 입성할 때보다는 못해도 한참이나 줄을 서서 무투대회에 참가 신청을 마친 라엘과 파라는 지쳐서 곧장 숙소를 구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이나 줄을 서는 행위를 하루에 두 번이나 했으니까.

카이서스에게 물려받은 둥지의 수많은 보물들 덕분에 돈은 언제고 넉넉했기에 라엘은 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여관의 최고급 방 두 개를 빌렸다.

그리고 조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말괄량이 조카가 또다시 몰래 나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간단한 알람마법을 겹겹이 걸어두었다.

그러고 나서야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라엘은 어디론가 통신을 연결했다.

미세한 마나의 움직임과 함께 그에게서 뻗어 나간 파장이 먼 거리를 뛰어넘어 어느 통신구에 닿았다.

잠깐의 기다림 후.

라엘의 시야에 누군가의 모습이 허공에 떠올랐다.

-라엘! 혹시 파라의 흔적이나 위치를 찾은 거야?

무척이나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의 메이엔에게 라엘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불안을 해소해 주었다.

“응. 파라는 지금 내가 데리고 있으니 걱정 마.”

-저, 정말! 후, 다행이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았을까 무척 걱정하고 있던 중 동생이 자신의 딸을 찾았단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

-라엘, 당장 파라를 내 앞으로 데려다주지 않을래? 이 엄마를 걱정하게 만든 만큼 혼을 잔뜩 내주지 않으면 엄청 화가 날 것 같거든.

마치 암흑가의 조직 보스가 ‘가서 나를 배신한 그 녀석을 데려와. 어떤 몰골이든지 상관없으니 고통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상태로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라엘은 어릴 때 자신을 혼내던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곤 식은땀을 살짝 흘렸다.

“여기까지 와서 억지로 데려가면 아무리 파라라도 엄청나게 슬퍼할걸. 내가 곁에서 지켜볼 테니 하고 싶은 건 하게 해주는 게 어때?”

드래곤인 자신의 동생이 곁에서 지켜준다면 세상 누구보다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다.

-그렇게 해준다면 괜찮지만… 응?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라니? 너희 지금 어딘데?

“내가 누군지 잊었어? 텔레포트로 순식간에 하이넨에 도착했지. 지금 무투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숙소를 잡고 들어왔어.”

그 말에 메이엔은 살짝 당황한 듯한 모습이 되었다.

-어, 어쩌지? 파라가 가출한 걸 아버지에게도 알렸는데… 어차피 무투대회에 참가하는 거라면 하이넨으로 먼저 가서 기다려 보겠다고 하셨거든.

메이엔의 말이 들리자마자 방의 문짝이 날아갈 기세로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이곳에 감히 내 외손녀를 데리고 있는 놈이… 라엘?”

“와… 정보조직의 수장이니 빠르게 찾아내실 수는 있겠지만 너무 빠른 거 아녜요? 제가 가출했을 때는 찾지도 않으셔 놓고.”

약간의 섭섭함을 담아 라엘이 말하자 사나운 기세로 방 안으로 짓쳐들어왔던 그의 아버지, 데스웬이 작게 헛기침했다.

“그야… 셋이나 있는 아들놈 중 하나와 하나뿐인 외손녀는 다르잖냐.”

“아니, 자식과 손녀를 무슨 희귀도로 나눠서 아끼는 거예요?!”

황당해하는 라엘의 모습에 데스웬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앗! 외할아버지!”

옆방에서 들리는 소란을 들었는지 방에서 나와 고개를 내밀었던 파라가 데스웬을 발견하곤 무척이나 환한 표정이 되었다.

데스웬 또한 환한 표정이 되어 그런 파라를 맞이했다.

“건강해 보이는구나! 우리 귀여운 강아지!”

…우리 귀여운 강아지?

라엘은 자신의 부친에게서 들을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호칭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아버지?”

그리고 잠시 후 힘겹게 내뱉은 말에 그의 아버지이자 한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있는 힘껏 아들의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척했다.

제아무리 암살자 출신의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같은 공간 안에서 계속해서 시선을 피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데스웬은 멋쩍어하며 말했다.

“원래 나이가 들면 성격도 변하는 법이다.”

그 변하는 정도가 너무 크게 느껴지긴 했지만 라엘은 굳이 말하지 않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튼 파라는 무투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제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게요.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시고 이만 복귀하세요.”

보통 사람이라면 은퇴를 하고 편안한 노후를 준비할 나이인 데스웬이었으나 오러 마스터의 강건한 육신과 정신은 아직까지도 세인트 혼의 수장을 맡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대륙에서 손꼽히는 정보조직인 세인트 혼의 수장 자리는 여유라든가 한가함 같은 단어와 거리가 무척이나 멀었다.

외손녀를 찾는다는 이유로 자리를 비우고 이곳까지 온 것 자체가 무척이나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아마도 외손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업무들까지 뒤로 젖혀두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렇기에 라엘은 그의 걱정을 덜어주려 말했으나 데스웬은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차하면 통신구로 업무를 지시해도 되니 한동안 자리를 비워도 문제는 없을 거다. 여기까지 온 이상 외손녀의 활약은 직접 봐야지.”

외손녀의 재롱, 아니, 활약을 직관하겠다는 의지가 뻔히 보이는 부친의 모습에 라엘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는 거대 정보조직의 냉철한 수장은 보이지 않고 외손녀를 끔찍이 아낄 뿐인 팔불출 할아버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름과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라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데스웬이 합류한다면 라엘의 정체를 들킬 확률이 늘어난다.

그런 생각에 라엘이 난감해했으나 뒤이어 나온 말에 더욱 난감해졌다.

-그럼 나도 같이 데려가 줘!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엄마인 나도 곁에서 봐줘야지!

통신을 종료하는 것을 잊고 있었던 탓에 계속 연결되어 있던 메이엔이 자신도 딸의 무투대회를 관전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아, 그러면 나도 같이 보고 싶구나. 파라도 응원하고, 겸사겸사 그이와 데이트도 하고 말이지.

곁에서 통신을 듣고 있었는지 라엘의 어머니인 마를렌까지 끼어들며 외손녀의 대회 참가를 보러 오겠다고 말했다.

그 두 사람까지 합류한다면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확률이 더욱 높아지겠지만 라엘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라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 모시러 갈게요.”

아무래도 정체를 숨기려면 폴리모프로 겉모습까지 완전히 바꿔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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