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145화 (외전) (145/150)

145화 - 외전(1)

“뭐야, 저 꼬맹이는?”

수도인 트럼벨과 연결된 길이라고 해서 모두 치안이 좋고, 크고 넓은 길은 아니다.

트럼벨에서 멀고, 외딴 곳과 이어진 길일수록 치안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외진 길의 치안 악화에 한몫을 보태기 위해 길가의 수풀 속에 숨어 있던 사내들 중 하나가 혼자 길을 걷고 있는 소녀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도시는커녕 작은 마을과도 한참이나 떨어진 외진 곳에 돌아다니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게 나들이에나 입을 법한 카디건과 셔츠, 바지의 가벼운 차림인 데다, 결정적으로 혼자이고 몸을 보호할 무기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다.

그녀의 모습에 나름 잘나가는 무쇠투구 도적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남자가 눈치를 살피며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저런 애도 텁니까?”

그 말에 도적단의 두목인 로피가 신참의 뒤통수를 때리며 짜증을 냈다.

“그럼 여자애 혼자니까 그냥 보내주려고? 옷차림만 봐도 돈 좀 있어 보이잖냐!”

그의 말대로 소녀가 입은 옷은 멀리서 봐도 비싼 옷인 것 같은 티가 났다.

그들 중 가장 안목이 떨어지는 도적이 보더라도 천의 재질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데다 붙어 있는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장식만 떼서 팔아도 꽤나 받을 수 있어 보였다.

“게다가 지금 가진 돈이 없더라도 잡아서 몸값은 받을 수 있을 거고, 또… 크흐흐! 가자!”

신참에게 설명을 늘어놓던 로피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로피의 말에 무쇠투구 도적단이 소녀에게 겁을 주려는 듯 큰 소리를 내며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다.

“크하하하하! 꼼짝 마라!”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우효! 혼자 다니는 여자애라니 정말 운이 좋군!”

여자애 혼자이기에 전혀 긴장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각자의 무기를 건들거렸다.

투박하고 낡은 창과 못 박힌 몽둥이, 날만 세워놓은 칼에는 살짝 녹도 슬어 있었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성인 남자라도 겁을 먹을 만한 광경이었으나 소녀는 겁을 먹기는커녕 귀찮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두운 금발에 갈색 눈동자의 소녀는 뚱한 표정으로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자신 앞에서 건들거리는 도적단을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못생긴 아저씨들까지 튀어나와서 길까지 막네.”

한숨까지 내쉬며 중얼거리는 소녀의 모습에 산적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요 맹랑한 꼬맹이가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우리가 동네에서 흔히 보는 선량한 아저씨들처럼 보이냐?”

자신의 칼을 들이밀며 흔들어 보이는 도적단의 두목 로피의 말에 소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는 아저씨들은 생각이 없으신가 본데요. 이런 외진 길을 여자애 혼자 걷고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해요?”

“하! 이년이 어디서 뭔 책이라도 많이 본 모양인데 혼쭐이 나봐야……”

소녀는 상대가 자신을 비웃으며 말하거나 말거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열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주머니에서, 단검도 아니고 장검이 튀어나왔다.

그 믿기 어려운 광경에 도적단의 두목으로서 나름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던 로피조차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두목이 그러니 다른 도적들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눈만 끔뻑였다.

“이, 이게 무슨……”

아직까지 무슨 일인지 파악 못 하고 입술만 달싹이는 로피에게 소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들은 혼쭐나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소녀는 말을 뱉음과 동시에 도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작은 주머니에서 기다란 장검을 꺼낼 때부터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는 것은 알아챘지만 그녀가 보이는 움직임은 더더욱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소녀가 기사와 같은 몸놀림으로 검을 들고 달려들자 가까이 있던 도적이 기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꽤 무게가 나가는 만큼 두꺼운 칼을 휘둘러 소녀의 검을 막을 셈이었지만…….

서걱!

“히익!”

그리 품질이 좋지는 않아도 두꺼운 만큼 검을 막아내는 데는 충분할 거라 생각했던 칼이 단숨에 잘려 나갔다.

자신의 칼이 잘려 나가는 모습에 비명을 지르는 도적을 가볍게 비웃은 소녀가 휘두르던 동작 그대로 칼끝을 돌리더니 검 손잡이 끝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꾸웩!”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반쯤 허공에 뜬 채로 날아가서 땅바닥에 처박히고는 움직이지 않는 도적의 모습에 도적들의 몸이 굳어버렸다.

“다음?”

너무나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들을 쳐다보는 소녀의 모습에 도적들은 잠시 침묵하다 이내 비명을 내질렀다.

소녀를 습격하는 것에 신참이 주저했던 것은 뭔가 불안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멍청한 두목 로피는 습격을 지시했고 그 덕에 도적단은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적들은 로피를 원망하며 도망치는 와중에도 칼침이라도 한 대 놓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검 손잡이에 관자놀이를 맞고 날아간 것이 로피였으니까.

“으아아악! 어서 도망쳐!”

“저 여자애가 우릴 다 죽일 거야!”

로피를 제압한 움직임만으로도 자신들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무리 모여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을 깨달은 도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소녀가 다시금 주머니에서 꺼낸 뭔가를 만지작거리자 달아나려던 도적들은 몸을 돌릴 새도 없이 자신의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몸이 굳어 도망치지도 못하고 눈만 굴리는 도적들을 보며 소녀는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외삼촌이 만들어준 장난감이야. 성능 확실하네.”

사실 도망치는 적들을 붙잡는 게 아니라 위험한 자들을 만났을 때 제압하라는 용도로 만들어준 것이었으나, 아무튼 소녀는 외삼촌이 만들어준 아티팩트에 만족했다.

“그럼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확인해 볼까.”

“으으! 나 정신 차렸어! 나 이제 아주 정신 똑바로 박… 으악!”

날이 서 있지 않은 검신으로 가장 가까이 있던 도적부터 시작해서 무자비하게 후려 패는 소녀의 모습에 도적들은 공포에 질려 신음만 흘렸다.

“으, 으으! 왜 시킨 건 대장인데 대장은 한 방에 보내고 우리는 죽어라 패는 건데?!”

두들겨 맞을 차례를 기다리던 도적 중 하나가 간신히 공포를 이겨내곤 악에 받쳐 소리쳤다.

확실히 부하들은 수십 대씩 두들겨 맞고 있었지만 정작 습격을 지시했던 두목인 로피는 단 한 대만으로 큰 고통 없이 기절해 버렸다.

신나게 도적을 두드려 패고 있던 소녀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두목이었어? 몰랐는데… 알았어. 나중에 깨어나면 더 많이 패줄게.”

말 한마디로 두목을 조져버린 챠로, 맞으면서도 싹싹 빌다가 기절해 버린 샌디, 맞기도 전에 공포에 질려 기절해 버린 치퍼 등등…….

자신의 선배들이 하나하나 쓰러져 가는 한심한 꼴을 보고 있던 신참 프레디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냥 고향에서 목수나 할걸…….

그리고 이내 프레디의 차례도 찾아왔고, 극심한 고통 끝에 그의 의식이 어두워졌다.

결국 마지막 도적까지 쓰러뜨린 소녀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꺼내 들었던 검을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조금 떨어진 곳의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파라! 괜찮니?!”

“어?! 외삼촌이 여긴 어떻게 왔어요?”

급하게 튀어나왔지만 태평하게 자신을 보고 묻는 파라와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져선 널브러져 있는 사내들의 모습에 파라의 외삼촌이자 휴먼 드래곤인 라엘은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저기, 파라야. 위험한 일은 없었니?”

“아뇨? 그냥 길 가다가 사소한 시비가 붙었을 뿐이에요.”

그 사소한 시비의 결과를 훑어본 라엘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을래?”

그 말에 신나서 자신의 활약을 늘어놓는 조카의 모습에 라엘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위험할 때 쓰라고 준 제압의 마석을 도망치는 도적이나 잡을 때 썼다고?”

순간적으로 라엘은 1킬로미터 밖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러 마스터라도 잠깐이나마 마비시킬 수 있는 아티팩트를 고작 도망치는 약해 빠진 도적에게 써버렸다니.

“그래도 저한테 나쁜 짓을 하려던 놈들을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얌전히 보내줬으면 계속 도적질을 했겠죠. 그것도 나름대로 위험한 거라고요.”

당당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조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외삼촌이 어떻게 여길 알고 온 거에요?”

어리둥절해하는 조카의 모습에 라엘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위험해지면 쓰라고 준 거니 당연히 위치추적마법도 걸어두었지. 혹여나 네가 아티팩트를 쓰고도 위험을 벗어날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

“어쩐지 너무 빨리 공간이동으로 오시더라니. 내가 외삼촌을 불러낸 셈이네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파라의 태평한 모습을 보며 마나를 퍼뜨려 주변에 아무런 위협도 없음을 재차 확인한 라엘이 널브러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도적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이 도적들은 어쩔 셈이니.”

그 말에 파라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었는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음, 근처 경비대에 끌고 가서 넘기기는 귀찮으니 대충 도적이라는 팻말을 걸어두고 나무에 묶어두면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라엘은 또 다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외진 곳에? 누가 발견하기도 전에 산짐승들 밥이 될 텐데.”

“아, 그런가?!”

전혀 생각 못 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파라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라엘이 재차 물었다.

“그보다 가출은 왜 한 거니? 누나, 아니, 네 엄마가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더라.”

이유를 묻는 외삼촌의 말에 가출 소녀는 눈을 찡그리며 화냈다.

“가출 아니거든요?! 엄마가 여황배 무투대회에 참가하는 걸 허락 안 해주셔서 그냥 허락 안 받고 참가하러 가는 거예요.”

‘그걸 보통 세상에선 가출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조카야……’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라엘에게 그의 내면에서 함께 동거하는 존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어릴 때 몇 마디 말로 너를 때려잡던 아이답구나! 저게 바로 젊음이지!>

‘늙은이가 젊음 타령 하면 좀 징그럽거든?’

카이서스에게 대꾸한 라엘은 조심스레 조카를 설득하려 시도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 가벼운 대련도 아니고 수많은 실력자들이 진검으로 전력을 다해 싸우는 대회에 나간다니 걱정돼서 말리는 거겠지. 아무리 대회지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뛰어난 근위기사인 아빠한테 직접 검을 배웠으니 괜찮아요.”

‘매형은 왜 굳이 이 말괄량이에게 직접 검을 가르친 거야?’

라엘의 매형이자 파라의 아버지인 루밀리온은 학연, 지연, 혈연 그중 메이엔과의 결혼으로 취득한 혈연 덕분에 오러 마스터인 라엘의 부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거기다 라엘에 대한 호감으로 다른 오러 마스터들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

그 덕에 루밀리온은 크라우드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의 근위기사였다.

그런 그가 직접 가르친 파라는 피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남녀 상관없이 또래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성격.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 데다 겁도 없는 말괄량이였고, 근위기사인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인지 어느 정도의 정의감도 있었다.

어쩌면 메이엔이 딸의 무투대회 참가를 반대한 이유는 파라가 다칠까 봐 걱정한 것 외에도 괜히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서 사고를 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만난 김에 파라를 집에 데려다주는 게 좋겠지?’

<제 어미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단숨에 가출까지 해버리는 애가 네가 돌아가자고 해서 잘도 돌아가겠다.>

카이서스의 말에 라엘은 순간 멈칫했다.

그의 말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럴싸했으니까.

‘그, 그럼 어쩌지?’

<별수 있나. 억지로 데려갈 게 아니라면 어른으로서 저 아이가 하려는 것을 지켜봐 주고 보호해 주는 게 낫겠지.>

역시나 설득력 있는 카이서스의 말에 라엘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리고는 허공을 보며 말했다.

“저 좀 늦어질 것 같아요. 네. 파라가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타이런 제국의 무투대회까지 같이 가줘야 할 것 같아서요. 네.”

허공을 보며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라엘의 모습에 파라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신기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대화를 마친 라엘이 다시 자신을 쳐다보자 파라가 물었다.

“혹시 외삼촌 지금 통신구도 없이 외숙모랑 통신한 거예요? 역시 외삼촌… 아, 그런데 외삼촌도 무투대회에 같이 갈 거예요?”

신난다는 듯 물어오는 조카의 모습에 라엘은 벌써부터 지친 표정으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네가 사고를 치지 않도록 어른인 내가 따라가서 봐줘야지.”

자신을 사고뭉치 어린애로 보는 외삼촌의 말에 파라는 불만인지 입을 비죽 내밀었으나 항의는 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이미 사고라고 할 만한 것을 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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