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마수는 웃는다.
라엘의 스태프 끝에 맺힌 마나가 계속해서 응집되며 빛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입에서 뿜어진다면 브레스라고 불리는 파괴광선은 주변의 소리까지 잡아먹으며 대마수를 향해 뻗어나갔다.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파괴광선의 모습에 대마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대마수의 입가에서 마기가 응집되더니 라엘이 쏘아 보낸 것과 비슷한 힘이 느껴지는 검은 광선이 쏘아졌다.
대마수의 입에서 뿜어진 마기의 브레스에 라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대마수가 아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때는 라엘이 사용한 브레스에 저항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비슷한 것을 사용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라엘의 파괴광선과 대마수의 마기 브레스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끼이이이이이!
막강한 두 개의 힘이 맞붙자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두 힘이 부딪히는 충격이 사방에 퍼져 나갔다.
폭발하듯 발생한 충격파는 땅을 뒤집으며 먼지구름을 불러 일으켰다.
그 충격파는 브레스를 사용한 라엘조차도 피해 갈 수 없었기에 라엘은 먼지구름을 뒤집어쓰며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순간 먼지구름으로 인해 시야가 가로막히고 사방에서 날뛰는 마나와 마기가 예민한 감각마저도 뒤흔들며 서로의 모습을 감추었다.
“크윽!”
한참이나 주변을 뒤흔들던 두 브레스가 공멸하자 라엘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며 먼지구름과 마나, 마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시야와 감각을 방해하는 것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대마수가 라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먼지구름을 헤치며 자신을 향해 정확히 달려드는 대마수의 모습에 라엘의 표정이 굳었다.
모든 감각이 방해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오직 본능만으로 공격을 한 것이다.
먼지구름과 마나와 마기의 폭풍으로 대마수의 공격을 뒤늦게 알아챈 라엘은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대마수를 보며 황급히 실드를 전개했다.
하지만 아무리 앱솔루트 실드라도 급하게 전개한 탓에 대마수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마기에 휩싸인 거대한 주먹이 빠르게 전개되어 가던 실드를 가격하자 미처 완성되지 못한 실드가 깨져 나갔다.
앱솔루트 실드가 깨져 나가며 방어력만큼이나 강렬한 충격파가 라엘의 몸을 뒤로 날려 버렸다.
“크윽!”
신음 소리를 내며 날아간 라엘이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며 대응하려 했으나 대마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라엘이 날아가자마자 뒤따라 달려든 대마수는 반격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마기로 휘감은 두 주먹을 휘둘러 댔다.
날아가는 와중에도 앱솔루트 실드를 겹쳐서 전개하며 방어와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라엘이었으나 계속해서 휘둘러지는 대마수의 주먹에 깨져 나가는 실드를 보충하기에 바빴다.
속절없이 방어에만 급급한 라엘의 모습을 보며 대마수는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라엘이 분노를 내뿜으며 재차 전개한 앱솔루트 실드에 손을 뻗어 마나를 불어넣으며 한편으로는 스태프에 또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스태프 끝에 휘몰아치듯 모여드는 마나가 마법을 빚어나가는 순간 대마수가 눈을 빛냈다.
[크라라라라라라!]
주먹을 날려대던 대마수의 입이 쩍 벌어지며 귀를 찢는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저 듣기 괴롭기만 한 커다란 소리가 아니었다.
외침에 실린 난폭한 마기가 거칠게 주변을 난도질하자 라엘의 스태프 끝에 맺히던 마법도 크게 흔들렸다.
경악하며 눈을 크게 뜨는 라엘의 모습에 대마수는 흡족하게 웃으며 손끝에 마기로 이루어진 손톱을 길게 뽑고는, 라엘을 찔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자신의 손톱에 꿰인 채로 부들거리는 라엘을 바라보던 대마수는 그대로 손톱째로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으득, 으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터져 나가는 감촉과 비릿함을 즐기던 대마수는 자신의 몸에 차오르는 새로운 활력과 힘을 느끼곤 전율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마기와 이번에 흡수한 드래곤의 힘, 그리고 불로불사의 육체.
이것으로 그 누구도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드래곤들조차도!
이제 남은 것은 마음대로 날뛰는 것뿐이다.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던 여자를 떠올리곤 입맛을 쩍, 하고 다신 대마수는 이내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집착하게 만드는 여자를 쫓아가기 전, 일단은 허기진 배부터 채울 셈이었다.
놈의 시선이 향한 것은 라엘과 유인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대도시, 클레멘스였다.
대마수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클레멘스의 성벽을 넘어갔다.
그리고 살육과 파괴를 일으키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카카카카카! 크카카카카!]
* * *
[크카카카카!]
대마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유리아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질겅이다 툭 내뱉듯 말했다.
“이봐, 드래곤. 이 새끼 웃는데?”
대마수마저 제압해 버린 내게 더 이상 꼬맹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는지 그냥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가 떼로 달려들어도 어찌할 수 없었던 대상이기에 혹시나 깨어날까 두려운 모양이다.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실실 웃고 있는 대마수를 힐끗 쳐다보곤 이내 하던 일을 계속하며 대답해 주었다.
“냅둬요. 좋은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니까.”
내 대답에도 찜찜하다는 듯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질겅이는 유리아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여러 표정으로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에는 어두운 표정의 스승님도 있었다.
대마수를 보고 있을수록 스승님의 마음만 심란해질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서둘러 준비하던 것을 마무리했다.
“이제 슬슬 치우겠습니다.”
나는 주변을 포위한 채로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마나를 집중했다.
스태프를 겨눈 채 뚫어져라 노려보던 허공이 억지로 밀어 넣어 뒤흔든 마나로 인해 내가 바란 대로 갈라지며 그 너머의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느껴지지 않는 그저 어둠만이 존재할 뿐인 공간.
시간조차 제대로 흐르지 않는 차원의 틈새였다.
내가 지닌 드래곤의 힘으로도 전력을 다해야 열어젖힐 수 있는 이곳이라면 대마수에게 걸맞은 감옥이 되어줄 것이다.
해치우지 못한다면 다시 나타날 수 없도록 해버리면 그만이니까.
열려 있는 차원의 틈 속을 힐끗 쳐다보고는 마나를 움직여 바닥에 쓰러져 있던 대마수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실실 웃으며 눈을 감고 있는 대마수의 모습에 나는 눈을 살짝 찡그리고는 그대로 차원의 틈에 던져 넣었다.
차원의 틈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대마수의 몸뚱이는 물속에 떠다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천천히 떠 있었다.
대마수의 커다란 몸이 전부 차원의 틈 사이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열린 차원의 틈을 붙잡고 있던 마나들을 거둬들였다.
강제로 열렸던 것을 서둘러 복구하기 위함인지, 차원의 틈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으로 돌아갔다.
차원을 열고, 대마수를 집어넣고, 차원을 닫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람들 중 프레첼의 황실 기사단장 리카르도가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허, 참. 이렇게 쉽게 끝날 줄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는 괜히 헛고생만 한 것 같아.”
리카르도의 말에 투덜거리며 답한 것은 녹색 마탑주인 휴메인이었다.
대마수를 공격해 유인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제대로 타격을 입힌 것은 없다 보니 기분이 찜찜한 모양이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놈을 유인조차 하지 못했을 거예요, 여러분 덕분에 제가 무사히 놈을 잠재울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내가 그들의 공로를 언급함에도 다들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다.
그만큼 대마수는 자신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였으니까.
“그보다 너무 좋게 끝내준 것 아닌가? 네가 말한 대로라면 놈은 계속해서… 행복한 꿈을 꾼다는 거잖나. 그런 놈은 고통 속에서 죽어가며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는데 말이지.”
입에 문 채로 질겅대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유리아가 투덜대듯 말했다.
아마 마지막까지 웃음을 흘리고 있던 대마수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겠지.
“흠, 흠!”
그러자 그녀의 근처에 서있던 누군가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유리아와 함께 타이런 제국에서 온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자신에 비하면 나이, 직위, 권위 등등 많은 면에서 모자란 부단장이 자신에게 눈치를 주듯 헛기침을 하는 모습에 유리아는 의아해하면서도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부단장이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방향을 확인하곤 그의 헛기침의 의미를 이해하곤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뭐… 어차피 끝난 일이니 상관없으려나.”
아무리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고 결국은 대마수가 되어 토벌당했다지만 일단 그의 과거는… 적색 마탑주 카밀라의 제자였다.
유리아가 조용히 눈치를 살피자 다른 사람들도 얼떨결에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대마수의 스승이었다는 흠이 생기기는 했으나 한 마탑의 주인이자 이제는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은 대마법사의 스승이기도 했다.
괜히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여러모로 좋을 것이 없으니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냥 미안하다거나, 안쓰럽다거나, 그냥 주변에서 눈치를 보니까 자신도 눈치를 본다거나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문 채로 차원의 틈이 열렸다 닫힌 자리를 쳐다보고 있던 스승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못난 제자 때문에 이곳까지 오셔서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옛 제자가 저질렀던 일로 인한 죄책감이나, 그 옛 제자를 토벌하는 데 손을 보탰다는 슬픔은 없었다.
그저 담담한 모습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그 모습에 눈치를 살피던 사람들도 진중한 표정으로 그 감사를 받아들였다.
“아닙니다.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애초에 그대 때문이 아니라 대륙의 위험을 막는 일이었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게.”
훈훈한 분위기로 이어지던 중 유리아가 툭 내뱉듯 말했다.
“걱정 마. 우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한 보상은 그쪽의 못난 제자가 해줄 테니까.”
그러면서 슬쩍 나를 쳐다본다.
스승님의 못난 제자를 누구라고 정확히 지칭하지 않았다고 은근슬쩍 그 못난 제자가 나인 걸로 만들어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작게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이죠. 드래곤의 보물 창고를 털어서라도 보답해야죠. 아마 그 담배를 끊는 데 도움이 될 물건도 있을 겁니다.”
<얀마! 왜 자꾸 내가 모은 보물들을 네 멋대로 나눠주겠단 건데?! 그건 네가 벌어서 사주든가 하라고!>
‘네 것은 내 것, 내 것은 내 것이니까.’
보물을 건드리겠단 소리에 금세 튀어나와 화를 내는 카이서스에게 가볍게 대꾸하고는 유리아를 쳐다보았다.
늘 입에 달고 사는 담배를 끊게 해주겠다는 말이 언짢았던지 눈을 찡그렸다.
절대 끊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어주고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모두 돌아가죠. 다들 휴식이 필요해 보이네요. 저도 그렇고요.”
대마수를 잠재우고, 차원의 틈을 열었다 닫은 나는 물론 대마수를 유인하느라 쫓고 쫓긴 다른 사람들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잔 말에 하나같이 얼굴에 화색이 돈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입을 열었다.
“오! 빨리 돌아가세.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먼지를 죽어라 마시는 것도 못 할 짓이니까.”
“하하, 난 미뤄진 휴가를 즐겨야겠어. 손자와 여행하며 들려줄 이야깃거리도 새로 생겼으니 기쁜 일이야.”
“후, 나도 한동안은 휴가나 가야겠어. 그 미친 대마수에게 쫓기는 경험을 하고 나니 온 몸의 진이 다 빠진 기분이야.”
“각자 돌아가기 전에 우선은 숙영지로 가서 뭐라도 제대로 먹고 쉽시다.”
“하하! 다들 노인네들처럼 왜 그러십니까? 물론 저도 한동안은 쉬고 싶지만요.”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며 귀환을 재촉하는 것을 보니 내 생각보다도 지쳤던 모양이다.
하긴 공격도 통하지 않는 데다가 상식으로 이해하지도 못할 만큼 살벌한 힘을 지닌 존재를 상대했었으니까.
지친 사람들을 데리고 지휘 막사가 있는 숙영지로 돌아가기 위해 매스 텔레포트를 시전하며 나는 유리아를 슬쩍 쳐다보았다.
분명 그녀는 대마수가 너무나도 너그러운 최후를 맡게 된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었지.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끝없이 뒤쫓기만 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나는 작게 웃으며 뒤바뀌어 가는 시야 속에서 대마수가 사라져 간 허공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