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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42화 (142/150)

142화 - 덫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밝은 빛이 계속해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대마법사들은 계속해서 미리 설치해 둔 공간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며 약속 장소로 대마수를 유인했다.

추가로 자극할 필요 없이 대마수가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은 좋았으나 놈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워낙 빠르게 뒤쫓아 오는 대마수로 인해 그들은 견제용 마법조차 사용할 틈 없이 다음 이동 마법진으로 움직여야 했다.

마법진과 마법진이 가까우면 마나의 파장이 뒤섞여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 탓에 마법진들은 각각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연속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마법진과 마법진을 이동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후우, 잠시 쉴 틈도 안 주는군!”

마법진으로 이동해도 순식간에 위치를 파악하고 달려오는 대마수의 움직임에 휴메인은 혀를 내둘렀다.

이동한 직후에는 작은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어졌던 대마수가 다음 마법진 위에 올라설 때쯤에는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다.

“그보다 저것, 점점 거리가 멀어지긴커녕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잡니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멀리서도 똑똑히 보이는 거대한 대마수를 응시하던 유리아의 말에 다음 마법진 위로 올라서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무의식적으로 대마수의 방향을 쳐다본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리아의 말대로 대마수의 모습이 더욱 크게 보이는 것이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마법진을 사용해 공간을 뛰어넘는데도 따라오는 것만 아니라 거리를 좁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만큼 놈이 빠르다는 소리였다.

마법진과 마법진 사이를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이미 오러 마스터들은 예상외의 대마수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지 오래.

애초에 공간이동 마법진을 미리 곳곳에 설치해 둬서 계속 이동하지 않았다면 마법사들도 이미 따라잡히고도 남았을 거다.

“안 되겠소. 나눠져서 움직입시다. 지금처럼 함께 움직여선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을 테니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대마수를 보며 잠시 생각하던 휴메인이 내민 의견에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쫓아오지 않는 쪽에서 쫓기는 쪽을 지원해 주고 놈을 견제하자는 말입니까.”

어차피 공간이동 마법진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근방에 잔뜩 만들어두었기에 일행을 나눈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쉘던에서 온 궁정 마법사가 마음이 급한지 소리쳤다.

“흩어질 거면 서두릅시다! 이틈에도 놈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 나는 63번 마법진으로 이동하겠소!”

목적지까지 이어진 백여 개의 공간이동 마법진 중 하나의 번호를 말한 그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각자가 이동할 마법진의 번호를 말했다.

백여 개에 달하는 마법진의 위치와 번호를 기억하는 것쯤은 대마법사와 그에 가까운 자들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나는 67번으로 이동하겠네.”

“그럼 전 61번으로 이동하죠.”

“저는 65번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휴메인과 유리아, 그리고 카밀라를 마지막으로 이동할 위치를 정한 마법사들이 빠르게 마법진을 발동시키며 사라졌다.

또다시 바로 앞에서 표적을 놓쳐 버린 대마수는 다시 코를 킁킁거리며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각인되어 있는 그 냄새를 쫓아 대마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표적의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대마수의 얼굴을 어디선가 날아온 냉기가 강타했다.

[그륵?]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시야가 가려진 탓에 대마수는 불쾌하다는 듯 그르렁거리고는 머리를 흔들어 피부에 내려앉은 서리를 털어냈다.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계속해서 각종 마법이 날아와 자신의 시야를 가렸지만 놈은 개의치 않았다.

아까 전 처음 마법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자신이 잊을 수 없는 마나의 향기를 떠올리면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원하는 향기를 쫓아 대마수는 허기도,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조차도 잊고 일직선으로 달렸다.

그 모습을 유리아는 어이없어하며 쳐다보았다.

“저 미친 괴물은 우리 공격은 신경 쓰지도 않는 건가?!”

닿는 즉시 주변 전체를 얼려 버리는 혹한의 숨결을 마치 귀찮다는 듯 고개만 흔들어서 털어냈다.

게다가 지금껏 놈에게 퍼부어진 마법은 과장을 좀 보태서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였음에도 놈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기색이었다.

“정말 저 괴물을 드래곤 꼬맹이가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침음을 삼키며 중얼거리던 유리아는 대마수의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쫓기는 사람이……”

대체 어떤 운 없는 마법사가 놈에게 쫓기고 있는지 볼 셈이었다.

그리고 이내 대마수가 노리는 사람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찌푸려졌다.

“…설마?! 알아보기라도 한 건가?”

대마수가 쫓고 있는 것은 적색마탑의 마탑주인 카밀라였다.

대마수가 되어버리기 전의 루리스가 집착하던 대상.

“우연일 리는 없겠지.”

우연히 카밀라가 뒤쫓기는 거라 보는 것도 이상했다.

곳곳에 흩어진 마법사들 중 카밀라는 대마수에게서 먼 곳으로 이동한 편이었으니까.

자신에게 가까운 마법사들은 전부 무시한 채로 카밀라만을 노리고 직선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카밀라만 노리는 것 같은데… 어째서? 분명 대마수가 되면서 이성을 완전히 잃었다고 들었는데.”

혼란스러워하는 유리아의 짐작은 사실이었다.

대마수로 변하며 사라진 줄 알았던,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있던 루리스의 찌꺼기가 카밀라의 마나를 느끼고 깨어나, 대마수를 폭주시키고 있었다.

찌꺼기만 남은 저열한 욕망과 집착이 대마수의 끔찍한 굶주림마저도 뛰어넘은 것이다.

“칫, 그보다 카밀라가 위험하겠어.”

유리아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대마수는 카밀라를 향해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카밀라 역시도 자신을 향한 대마수의 끈질긴 시선에서 루리스를 떠올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에게 헤이스트를 걸고 다음 마법진으로 달리고 있었으나 어느새 놈의 숨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가까워진 것이다.

대마법사가 아무리 마나의 축복으로 뛰어난 신체를 가졌다 해도 마법사는 애초에 육체 단련에 전념하는 직종이 아니었다.

마법진 간의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이나 달리다 보니 그녀의 체력도 떨어져 가는 중이었다.

다음 마법진의 코앞까지 도착한 서둘러 마법진을 발동할 준비를 하려는 순간.

지친 탓인지 카밀라의 발이 꼬이며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빠르게 몸을 추스른 카밀라가 마법진 위에 올라섰으나 잠시 휘청거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마침내 가까이 다가온 대마수는 카밀라가 마법진을 발동하기 전에 붙잡겠다는 듯 커다란 손을 뻗어왔다.

우악스러운 대마수의 손에 붙잡히면 마법진도 제대로 발동되지 않을 거란 직감에 카밀라의 얼굴이 굳었다.

쾅!

마치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대마수의 손은 투명한 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카밀라는 투명한 벽으로 자신을 보호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채고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코앞에서 표적을 놓쳐 버린 대마수는 전신을 잠식하는 분노에 거칠게 으르렁거리며 새로 나타난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런 대마수에게 투명한 벽, 앱솔루트 실드를 사용한 라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긴 했는데, 지금까지 스승님께 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크르르르르르!]

빈정거리는 라엘의 말에 대마수가 으르렁대며 주먹을 휘둘러 앱솔루트 실드를 깨려 들었다.

이론상 9서클의 마법까지도 방어가 가능한, 방어계열 마법 중 가장 단단함을 자랑하는 앱솔루트 실드였지만 마기에 잔뜩 휩싸인 대마수의 주먹 앞에서는 위태위태했다.

“미친! 전보다 더 세졌잖아?!”

<당연하겠지. 지금껏 뭐 하러 저것이 고치에 틀어박혀 있었던 거라 생각한 거냐?>

“그래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앱솔루트 실드를 고작 후려치는 것만으로 깰 수 있을 정도라니!”

투덜거리며 소리치던 라엘이 또 하나의 마법을 준비했다.

아무리 더블 캐스팅을 익혔다고 해도 9서클의 마법을 동시 시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드래곤의 능력을 지니게 된 라엘에게 있어선 당연히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퍼억! 키이이잉!

쉴 새 없이 쳐댄 대마수에 의해 끝내 앱솔루트 실드가 부서지고 말았다.

타격음에 뒤이은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괴롭혔지만 대마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방해하는 라엘에게 재차 주먹을 날리려 들었다.

화아악!

하지만 라엘의 손에서 쏘아진 지옥의 검은 업화가 대마수의 얼굴을 뒤덮었다.

지금껏 대마법사들과 다른 마법사들의 마법을 가볍게 무시하던 대마수였으나 9서클에 직격당한 것은 무시할 수 없어 보였다.

[크라아아아아!]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내지르며 뻗어가던 주먹을 거두고, 대마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뒤덮은 검은 업화를 황급히 털어냈다.

한껏 끌어올린 마기 덕분에 헬파이어의 불길은 빠르게 잦아들었지만 이미 대마수의 얼굴은 잔뜩 녹아내린 상태였다.

이내 끔찍할 정도의 재생력으로 대마수의 얼굴은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갔으나 두 눈에 깃든 분노는 무척이나 격해져 있었다.

[주… 죽인다!]

분노 때문인지 인간의 말까지 떠올려 낸 대마수가 거칠게 달려들자 라엘은 재빨리 하늘로 날아올랐다.

“네가 날 붙잡을 수 있다면 말이지!”

그렇게 말한 라엘은 퍼엉! 하는 파공음까지 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런 그를 대마수가 땅을 박차며 뒤쫓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유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할 일은 끝난 모양이네. 나머지는 드래곤 꼬맹이가 알아서 하겠지.”

그녀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지쳤는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라엘과 대마수가 사라져 간 하늘을 쳐다보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순식간에 유리아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라엘은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며 대마수를 유인했다.

대마수는 마법진으로 쉴 새 없이 움직였던 마법사들도 따라잡았었으나 단순히 비행할 뿐인 라엘을 상대로는 뒤처지지 않고 쫓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무리 달려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던지 대마수가 분노 가득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아아아아! 서어라아……!]

그 포효에 라엘이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대마수조차도 멈춰 섰다.

[크르르?]

자신이 멈추라고 외치긴 했지만 정말로 멈출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무엇……?]

“이전엔 듣는 사람을 화나게 할 정도로 말을 잘하더니 많이 과묵해졌네.”

[죽인다!]

라엘의 말이 비웃음이라는 것은 대마수의 희미해진 이성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분노를 터뜨리며 달려드는 대마수를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라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무엇을 바라건, 내가 있는 이상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그 말과 동시에 라엘의 몸에서 드래곤임을 드러내는 강대하고 순수한 마나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마나에 호응하듯 사방에서 일어난 하얀 빛이 대마수를 중심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포위한 채로 좁혀오는 정체를 알 수없는 빛줄기에 대마수는 주춤하거나 방어를 하는 대신 자신의 무식할 정도로 강인한 육체를 믿고선 쏟아지는 빛줄기를 뚫고 나가려는 듯 라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점점 좁혀지던 빛줄기가 달려들던 대마수를 뒤덮었다.

…그리고.

대마수는 순간 멈칫했다.

새하얀 빛줄기가 마치 새까만 마기를 품은 자신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꼈는데 정작 그 빛줄기에 휩싸였음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크륵?]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던 대마수는 이내 의아함을 잊고 재차 움직였다.

이유 같은 것은 모르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화가 나게 만드는 인간을 없애기 위해서.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던 라엘은 별다른 기교가 필요하지 않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마나의 폭력으로 반격했다.

드래곤의 힘을 품은 존재와 대마수의 충돌으로 생겨난 충격파가 사방을 뒤흔들며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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