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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40화 (140/150)

140화 - 이 일이 끝나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온 사람은 두 팔을 뻗어 내 목에 얹었다.

누군가 뒤에서 내 목을 조르듯 감쌌지만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사람이 등 뒤에 올 때까지 가만히 있던 거야?”

“그야 당연히 누나라는 것을 아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죠.”

나름대로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드래곤의 감각을 지닌 내게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애초에 온갖 결계와 마법진이 설치된 이 집에서 나의 이목을 피하고 몰래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그게 가능한 존재라면 당연히 내가 상대조차 할 수 없을 테고.

“그래서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고 있던 거야?”

뒤에서 목을 끌어안은 것으로도 모자라 뺨까지 가져다 대는 아리안 누나의 행동에 나는 작게 웃었다.

아리안 누나가 이런 사랑스러운 행동이라니, 이전 같았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고민하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한 거겠지.

“이번 일만 끝나면… 우리 결혼할까요?”

“…어?”

분위기도 괜찮고, 꽤 오래 생각해 오기도 했던 것을 조심스레 묻자 아리안 누나는 당황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설마… 지금 말하는 건 정답이 아니었나?!

당황스러워하는 아리안 누나의 표정에 나도 당황스러워졌다.

“어… 혹시 누나는… 결혼 생각이 없어요?”

불안한 마음에 눈치를 살피며 묻자 아리안 누나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이미 우리가 부부… 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조금은 어리둥절해하는 아리안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뿐 나와 아리안 누나가 함께 살며 부부와 다름없는 관계라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제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단 말이지.

거기다 우리 둘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을 뿐 프러포즈와 같은 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쯧, 너나 이 아이나 일반적인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랜데 뭘 그리 인간들의 상식에 얽매이는 거냐?>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신부와 결혼식을 올리는 멋진 신랑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와서 그런다!’

어릴 때부터 마법사들 사이에서 자라온 아리안 누나야 결혼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지만 나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끄응, 어찌 됐건 아리안 누나의 생각도 알았으니 이참에 못 박아둬야겠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와 아리안 누나가 부부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 결혼해요.”

<거참. 결혼식은 무지 중요하게 여기는 놈이 프러포즈는 뭐 이렇게 한심해? 보통 여자가 이딴 프러포즈를 받으면 당장 화를 내고 너를 걷어찰 거다!>

카이서스가 한심해하며 말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아리안 누나의 반응뿐.

내 청혼에 아리안 누나는 귀여운 남동생의 어리광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진 별로 결혼에 관심이 없었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하고 싶어지네. 이번 일이 끝나면 함께 준비하자. 그러니까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돌아오자.”

“당연하죠. 우리 결혼식에 빠질 수 없으니까요.”

내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아리안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말로만 약속할 셈이야? 적어도 도장 정도는 제대로 찍어야지.”

그렇게 말하곤 아리안 누나는 내 손을 잡아 의자에서 일으키곤 어디론가 이끌었다.

어어?

도장이라니 무슨 도장을 말하는 거지?

아리안 누나가 나를 이끌고 가는 곳은 침실 쪽이었다.

<넌 참 운이 좋단 말이지. 나를 만난 것도 모자라 저런 아이까지 만나고 말이야. 저 아이가 없었으면 네가 얼마나 한심했을지 생각하니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평소처럼 카이서스가 나를 긁어댔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카이서스를 상대하는 것보다 나를 침대에 밀어 넘어뜨린 아리안 누나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의 성격 나쁜 드래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까.

* * *

-목표의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아르투크 군도의 어느 섬에서 파괴 본능만이 가득한 대마수가 자신을 고치로 휘감은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대마수가 자리 잡은 섬의 인근 해상의 군함 위에서 섬을 감시하고 있던 부대에서 소식이 전해져 왔다.

통신구의 영상에 보이는 대마수의 고치 외부에는 굵은 혈관과도 같은 것이 가득 얽힌 것이 이전에 봤을 때보다도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혈관들 하나하나가 맥박 치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고치 전체가 꿈틀대고 있었다.

“감시조분들은 조심히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인조분들은 준비하고 계신가요?”

감시조는 통신구를 통해 여러 국가 소속이 뒤섞인 지휘 본부는 물론 나에게도 소식을 전해왔다.

놈이 고치를 깨고 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나갈 채비를 하며 유인조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마법사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대마수가 깨어나는 즉시 유인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마음에 드는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곧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아리안 누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정말로 자신 있는 거지?”

“물론이죠. 우리 결혼식을 세기에 남을 엄청난 결혼식으로 만들 자신 있어요.”

두 황제와 각국의 왕들이 오고, 드래곤 로드나 몇몇 드래곤까지 부르면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물론 드레스와 턱시도는 최고로 멋지게!

대마수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결혼식에 대해 말하는 내 모습에 아리안 누나는 긴장이 탁, 풀렸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실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가자.”

가볍게 타박하곤 짐을 챙기며 나설 준비를 하는 아리안 누나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꼭 누나도 함께 가야겠어요?”

솔직히 나로서는 안전한 트럼벨에 남아서 기다려 줬으면 했지만 아리안 누나는 무조건 함께 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한번 조심스레 묻는 말에 아리안 누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짐을 챙기며 되물었다.

“네가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가는 걸 걱정할 정도로 위험하단 거니?”

웃는 얼굴이긴 했지만 자신을 떼어놓고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듯 단호한 시선이다.

끄응, 괜히 걱정할까 싶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긴 했지만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니 아리안 누나는 남아줬으면 했는데.

그렇다고 만약의 사태가 걱정돼서 남아달라고 하면 만약을 대비해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하니…….

말 그대로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차마 흔쾌히 대답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아리안 누나는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네게 마법서를 받고 나서 놀고만 있지는 않았거든? 나도 내 한 몸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으니까 믿어줘.”

저렇게까지 말하니 더 반대했다간 아리안 누나를 믿지 못한다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거기다 그녀는 마탑주의 제자이자 나를 통해 얻은 드래곤이 직접 쓴 마법서까지 익혔다.

마탑주들과 같은 대마법사에 비견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을 보호할 능력은 충분할 거다.

그럼에도.

“뒤에서 지원만 부탁할게요. 나는 괜찮아도 유인조에게는 누나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뒤에서 지원만 해달라는 말에 아리안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맘 같아선 그 대마수란 놈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네가 안절부절못할 테니 내가 양보해 줄 수밖에 없겠네.”

“알아줘서 고마워요.”

“그럼 출발할까?”

짐을 다 챙긴 아리안 누나가 서두르자는 듯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드래곤제 마법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나로서는 따로 짐을 챙길 필요도 없었기에 아리안 누나의 손을 잡고 그대로 공간을 이동했다.

두 제국과 여러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인지라 따로 알리지 않아도 공간의 이동을 느낀 듯 하나둘 다가왔다.

“저 청년이 그 유명한 드래곤의 대마법사인가?”

“흠, 생각한 것보다는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마법사가 자네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질이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지 않나?”

“뭐라?!”

저마다 국적은 달라도 하나같이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보니 몇몇은 서로 친분이 있어 보였다.

내게 호감을 비치는 이도, 불쾌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는 가운데 고개를 숙여 감사부터 표했다.

“다들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나야 우리 황제 폐하의 명으로 온 거니 자네가 감사할 필요는 없네.”

내게 비실비실해 보인다는 평가를 내렸던 거구의 중년인이 내 인사에 툴툴대며 말하자 그를 우락부락하다 말했던 왜소한 체구의 중년인이 이번에도 그를 타박했다.

“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칠해?”

“잔뜩 기대하고 있던 5년 만의 장기 휴가를 취소당한 데다 이 먼 곳까지 원정을 했는데 좋을 리가 있나! 간만에 손자랑 같이 여행이나 다녀오려 했는데!”

어째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나 했더니, 자신의 휴가가 취소된 원인이 나로 인한 거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거 황실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휴가 좀 취소당한 것 가지고 속 좁게 굴기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자네에게 휴가를 취소당했던 부하들이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아, 아니, 그거야……”

왜소한 중년인의 말에 황실 기사단장이라는 거구의 사내는 차마 대답을 못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의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찬 왜소한 사내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 언데드 로드를 토벌할 때 함께한 적이 있었던 프레첼 제국의 녹색 마탑주, 휴메인 크라우스였다.

“오랜만일세, 언데드 로드를 처리할 때 이후로는 처음이지? 다시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런 일로 만나게 돼서 유감일세. 아, 옆에 있는 마음이 어린 친구는 황실 기사단장인 리카르도 밀로스라네.”

어느 정도 포장하며 말하긴 했지만 나잇값을 못 한다고 돌려 깐 거 아냐?

그나저나 녹색 마탑주와 황실 기사단장까지 보내왔을 줄은 몰랐는데.

마탑주는 대마법사, 황실 기사단장은 프레첸에서 가장 뛰어난 오러 마스터다.

프레첸의 황제가 꽤나 크게 선심을 쓴 모양이다.

<당연하지, 누구 피가 섞였는데 쩨쩨하게 굴겠어.>

내 생각엔 후손들이 선조의 성격을 물려받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은데.

소속을 떠나 가장 존중받을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타이런 제국은 루리스로 인한 피해의 뒤처리를 하느라 바쁠 텐데도 크게 지원을 해왔다.

나와는 안면이 있는 마법병단의 병단장인 유리아 발더스와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

대마수가 되기 이전의 루리스에게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바쁜 와중에도 강자를 보내온 것이 당연한가.

다른 왕국들도 자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기사나 마법사를 보내왔다.

거기다 국적에 상관없이 참여하기로 한 대마법사들까지.

그중에는 스승님도 있었다.

이미 마음속에서 지운 존재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제자였던 자가 대마수가 되어 돌아온 탓에 마음이 심란한 듯한 스승님과 눈인사만을 나누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지휘막사로 들어갔다.

“전달받으셨다시피 마성에 잠식당한 루리스는 이제 대마수로 변했습니다. 고치를 깨고 나온 놈은 본능적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곳으로 이동해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려 들 겁니다. 고치에서 육체를 마수의 것으로 바꾸느라 많은 힘을 썼을 테니까요.”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놈에 대해 설명하고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내가 짚은 곳은 인근에 위치한 도시들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 클레멘스.

“놈이 곧장 이동하리라 예상되는 곳인 클레멘스는 인구수가 5만에 달해서 놈에게 있어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운 곳일 겁니다. 놈이 그곳에 나타난다면 적어도 도시의 인구 절반 이상이 죽겠죠.”

게다가 놈이 날뛰면 마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을 황폐한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겠지.

도시 인구의 절반을 말하자 다들 이미 전달받아서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들을 미끼로 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군. 대피조차 시키지 못한다니 더더욱 그래.”

쉘던 왕국에서 온 오러 마스터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클레멘스의 백성들의 목숨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달린 거나 다름없기에 심란한 모양이었다.

놈이 클레멘스를 노릴 거라 예상하는 이유는 그곳이 인근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레멘스의 주민들을 대피시켰다간 놈이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게 되어버려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워져 버린다.

그렇기에 클레멘스의 사람들에게 대마수에 대해 알리지도, 대피령을 내리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여러분을 모신 겁니다. 아무리 잔뜩 굶주린 놈이라도 이곳에 모인 분들의 공격이라면 놈의 시선을 돌릴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여러분 정도의 실력자가 공격한다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식사를 위해서라도 틀림없이 놈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부터 처리하려고 할 거다.

“핫하, 그래도 우리가 맡은 역할은 꽤 쉬운 편이잖나. 그놈이 눈이 뒤집힐 정도로 실컷 패주고 자네가 기다리는 곳으로 꽁지 빠져라 튀기만 하면 되니 말이야.”

프레첸의 황실 기사단장인 리카르도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말이야 쉽지, 마계의 힘을 지닌 대마수를 유인하며 몸을 빼내는 것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러 마스터인 기사들에 비하면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마법사들이야 후방에서 마법으로 지원하며 거리를 두겠지만… 직접적으로 놈의 시선을 끌게 될 오러 마스터들은 놈의 가까이에서 유인을 해야 한다.

아무리 각국에서 뛰어난 오러 마스터들이라 해도 자칫 잘못했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은 놈을 유인만 해시면 됩니다만… 부디 조심하십시오.”

“걱정 말게!”

리카르도 경이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다른 오러 마스터들도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놈이 깨어나기 전에……”

한 번 더 계획을 설명하려 했으나 대마수는 시간을 더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놈이 고치를 깨고 나왔답니다!”

감시조에게서 연락을 받고 달려온 전령의 말에 우리는 서로 한 번씩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도 움직이죠.”

대마수 사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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