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개인정보
루리스라는 자에 대해서는 전 암살 집단이자 현 정보 조직인 세인트 혼에서조차도 알아낸 정보라고 해봐야 내가 스승님께 전해 들은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스승님이 아직 마탑주가 되기 전인 32년 전에 고아원에서 당시 9살이던 루리스를 보고선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때 이미 차기 마탑주로 손꼽히고 있던 스승님이 알아보고 데려왔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던 루리스는 빠르게 마법을 익혀 나갔다.
마탑주의 제자이자 연인으로서 촉망받던 마법사는 어느 날 칼라마쉬의 서에 손을 댔고, 막으려는 스승과의 대결에서 패해 사라졌다.
그 후 타이런 제국에 다시 나타날 때까지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5년 전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타이런 황궁에 들어간 그는 빠르게 황제의 신임을 얻어 마물과 마인 등을 만들어내는 등의 일을 저질렀다.
아바툴의 둥지, 언데드 로드 등 각국을 위협했던 여러 사건들이 그의 소행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밝혀졌다.
그 때문에 여러 나라가 더욱 눈에 불을 켜고 루리스를 쫓고 있었다.
적색 마탑에서 사라진 이후의 행적들은 세인트 혼에서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루리스가 적색 마탑에서 사라지기 전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루리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내 스승님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적색 마탑은 이전과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절벽을 등진, 작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붉은 벽돌의 탑.
마탑의 입구에 곧장 착륙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탑에 소속된 사람만 열 수 있는 문이 열리자 문 근처의 책상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엘? 여긴 무슨 일이야?!”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것은 내가 적색 마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맞붙었던 수습생 2인조 중 하나인 카터였다.
“마탑의 마법사가 마탑에 돌아오는 데 이유라도 있어야 해요? 그보다……”
분명 수습생을 벗어나 마탑의 정식 마법사가 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수습생이나 하는 입구 안내를 하고 있는 거지?
마탑에 소속되어 있는 인원들은 하나뿐인 출입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외부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탑에 용건을 가지고 찾아오는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안내하는 일을 수습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했다.
“카터야말로 여기 왜 있어요?”
수습생들이 할 일을 왜 정식 마법사가 하고 있냐는 뜻으로 묻자 카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연구 중에 가벼운 사고를 내서 말이지.”
사고를 낸 벌로 수습생들이나 하는 일을 하게 됐다는 거네.
뚱하게 대답하는 카터의 말을 듣고 누군가가 한심하다는 듯 소리치며 다가왔다.
“가벼운 사고는 무슨! 네가 일으킨 폭발 때문에 연구실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
마탑 내부의 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칸델 씨의 말에 카터는 움찔하면서도 툴툴거렸다.
“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잖습니까. 어차피 마법의 연구와 사고는 떼려야 뗄 수도 없는 관계기도 하고요.”
“기본적인 안전 수칙만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폭발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친 사람이 없어서 이 정도로 끝난 거라는 걸 다시 설명해 줘야 하나, 카터 군?”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해봐야 혼만 날 거란 것을 눈치챈 카터가 입을 다물자 칸델 씨가 나를 돌아보았다.
“라엘 군, 오랜만이군. 탑주님을 뵈러 온 건가?”
“네, 칸델 씨도 별일 없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뭐, 몇몇 놈들이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별일 없기는 하지. 탑주님이라면 꼭대기에 계시니 올라가 보게.”
그 몇몇 놈에 속하는 카터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칸델 씨가 째려보자 시선을 피했다.
그 두 사람을 뒤로하고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승강기가 없었더라면 마탑의 마법사들은 아무도 고층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거야.
뭐, 승강기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으니까 탑을 높게 지은 거겠지.
승강기에 대한 잡생각을 하는 사이 최상층에 도착했다.
최상층은 오롯이 마탑주만을 위한 공간.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고풍스러운 붉은 문 앞에서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두드렸다.
“스승님, 라엘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렴.”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스승님은 못 본 사이 나이가 들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실제 나이에 비하면 여전히 젊어 보이시지만 이전에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던 것에 비하면 10년 정도는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보나 마나 루리스 때문이겠지.
아무리 연을 끓었다고는 해도 옛 제자였던 놈이 엄청난 짓들을 저지르고 다니니 스승님으로서도 무척이나 힘드셨을 거다.
마음의 평정이 흐트러진 탓에 노화를 늦추고 있던 마법의 힘도 흔들린 거겠지.
“요즘 바쁘다고 들었는데 어쩐 일로 온 거니? 내가 보고 싶어서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스승님이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맞은편의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는 스승님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분명 내가 바쁜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만 애써 외면하시는 거겠지.
안 그래도 힘들어하시는 스승님께 죄송했지만 루리스에 대해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죄송한 마음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루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스승님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슬픈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스승님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니?”
“뭐든지 말해주세요.”
내 말에 스승님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처음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 소매치기를 당했었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노리는 놈들이 많아서 여비가 든 주머니 같은 귀중품에는 추적마법을 걸어뒀었지. 그 덕에 소매치기를 쫓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소매치기를 뒤쫓은 끝에 도착한 것은 어느 허름한 고아원.
“처음에는 고아건 뭐건 경비대에 넘길 생각이었지만… 그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에 생각이 바뀌었다. 마법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마나가 이끌리는, 마법사가 되기에 타고난 체질이더구나.”
그것은 마나의 축복이라 불리는, 선천적으로 마나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체질이었다.
그래서 스승님은 소매치기였던 고아 루리스를 제자로 거두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적색 마탑으로 돌아온 스승님은 루리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나의 축복을 받는 체질답게 루리스는 무척이나 빠르게 마법을 익혀 나갔단다. 아, 물론 너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루리스가 마법을 익히던 속도에 대해 말하던 스승님은 나를 보고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제아무리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 해도 드래곤의 심장과 피를 받아들인 나와 비교하는 건 무리지.
“루리스는 무척이나 조용한 아이였다. 스승인 나조차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지. 그래서 그 아이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무척이나 놀랐단다.”
스승님의 얼굴에는 쓴웃음과 서글픔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마법을 가르치고 배우며 그 외의 시간도 함께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잠시나마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던 스승님은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내가 대마법사의 칭호와 함께 마탑주가 되자 제자이자 연인과 함께할 시간도 줄어들었고… 그가 바뀌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법사들을 공격하고 칼라마쉬의 서를 훔친 자의 얼굴을 확인할 때까지 말이다.”
한숨과 함께 잠시 괴로워하던 스승님은 혼잣말하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걸까… 은퇴하게 되면 단둘이 외딴섬에서 오붓하게 지내자던 아이가 대체 왜…….”
중얼거리던 스승님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섬이요?”
나의 물음에 그제야 머릿속의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것을 알아챈 스승님이 당황하며 설명해 주었다.
“응? 아,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이야. 내가 은퇴하게 되면 함께 아르투크 군도의 섬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거든.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는 섬에서 단둘이 살면서… 바다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구경하자면서.”
미치기 전의 루리스는 꽤나 낭만적인 인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섬이라는 말을 들으니 내륙만 생각하고 찾아다니고 있던 나는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다 쪽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만약 지금까지 우리가 놈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가… 바다 위에 있어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카이서스조차도 침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바다 쪽도 찾아야 한단 소린데… 육지보다 더 드넓은 바다의 수많은 섬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스승님께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해요. 갑자기 찾아와선 스승님께서 불편하실 이야기만 해서.”
내 사과에 스승님은 애써 미소 지어 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니? 네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었는데. 찾아와 주니 기쁘단다.”
나를 안심시키듯 그렇게 말해준 스승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었다.
“바쁘더라도 식사 정도는 같이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후후, 다들 네가 언제쯤 얼굴을 비치려나 고대하고 있던 차였단다.”
응? 다들이라니?
스승님과의 식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커진다는 예감에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마탑에 퍼지며 지하의 대강당에 거의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연회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기에 마법사들이 각자 식사거리와 마실 것들을 들고 모였다.
나보다도 경험 많은 수많은 마법사들 앞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발표라도 하듯 말하자니 몹시 부담스러웠지만 이 모습을 스승님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터라 그만둘 수도 없었다.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드래곤 로드를 만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초로의 마법사들마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다들 내게로 몰려와 개인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을 물어봐 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연회에 참석한 마법사들은 많았고, 나는 혼자였기에 모든 사람의 질문에 답해줄 수 없었다.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다 보니 내게 말을 걸기 위해 다툼이 일어날 정도였다.
결국 마탑에서도 연륜이 높은 마법사들이 주로 내 앞으로 다가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의문을 내게 물어왔다.
머리가 새하얗게 센 나이가 지긋한 마법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빨리 답을 내놓으라는 듯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채근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정말.
마법으로 노화를 늦춰 백발이 아닌 사람도 있었고, 정말로 해답을 내놓으라며 채근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스승님은 웃으며 쳐다보았다.
* * *
스승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탑을 떠난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아르투크 군도였다.
스승님의 이야기에서 나온, 예전의 루리스가 노후를 보내려 했다던 곳이니까.
아르투크 군도는 왕가의 여름 피서지이기도 한 서쪽 해안의 항구도시 데오른에서 쾌속선으로 이틀 정도를 가면 나오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었다.
물론 수백 개 모두가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섬은 아니지만 꽤 크기가 있는 섬들이 수십 개인 데다 제각기 떨어져 있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전부 수색하기에는 무척이나 힘든 곳이었다.
내가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게 다행이지.
나는 발밑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곳곳에 박혀 있는 섬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펼쳐진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나의 감각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감각을 쳐내듯 반응하는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마기.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르투크 군도는 바다 한복판에 있는 터라 크라우드 왕국이나 타이런 제국, 그 외의 국가들이 병력을 모아 오기에는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병력뿐만 아니라 이곳까지 수송할 선박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으니까.
더 큰 문제는… 그걸 기다릴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거다.
마나를 통해 느껴지는 마기가 절대 심상치 않았다.
‘마계의 문을 열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었어?’
<이럴 리가 없는데……?!>
카이서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지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였다.
각국의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간 뭔가 일이 터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마법 주머니에서 통신구를 꺼내 연락을 취했다.
-라엘 드리안 자작님, 통신 연결했습니다.
당번을 서고 있던 왕실 소속의 마법사가 내 통신에 응답하자 나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루리스의 거처로 의심되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아르투크 군도의 중앙에 위치한 곳인데 섬의 이름은 모르겠군요. 지원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어서 혼자서라도 막아보겠습니다.”
-네?! 잠시…….
통신을 받던 마법사가 나의 일방적인 통보에 당황한 듯 뭐라 말하려 했으나 나는 통신을 종료했다.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할 통신 담당 마법사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도 소용돌이치며 한곳에 모여드는 마기의 강렬함은 가볍게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니까 일단은… 인사부터 날려볼까?
스태프를 꺼내 들고 가볍게 손짓했다.
내 의지에 따라 마나가 요동치며 하늘의 한복판에 구멍을 뚫었다.
“일단 큰 거 한 방부터 날려볼까.”
거대한 운석이 바람을 가르며 마기가 흘러나오는 섬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