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 추적 개시
회의실 안에는 국왕 전하와 로라스 왕자, 재상인 아라크난 공작과 왕국군 사령관 마일렌 공작 등등 크라우드 왕국의 고위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이제 루리스라는 자를 찾아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겠나?”
아라크난 공작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대신해 내게 물었다.
대부분은 내게 호의적이었으나 일부는 아직 젊은 내가 국왕 전하의 특별 대우를 받고, 이렇게 나의 한마디 말 때문에 모이게 된 것이 못마땅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자존심 세우는 것들이 꼭 있다니까.>
‘다른 사람 입장에선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돌일 테니까.’
솔직히 카이서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루리스를 막지 않으면 마계의 문이 열릴 테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마계의 문이라는 말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린가? 마계의 문이라니?”
너무나도 직관적인 명칭이었으나 그렇기에 다들 내가 말한 것이 말 그대로의 뜻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루리스는 마계와 우리 세계를 잇는 통로를 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설마 했던 것을 내가 말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말도 안 돼!”
“마계와의 통로를 열려고 한다는 게 확실한 거요? 자작이 착각한 게 아니오?”
탄식하듯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내게 대놓고 의심이 담긴 물음을 던졌다.
의심하는 물음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제가 왜 드래곤 로드께 불려 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드래곤 로드의 이름을 팔자 나를 의심하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로드에게 직접 확인할 수도 없는 데다 드래곤 로드도 못 믿겠다고 대놓고 말하기엔 불안할 테니까.
“인간이 일으키려는 문제는 인간의 손으로 막으라고 하시더군요. 드래곤들이 직접 나서게 되면 인간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요.”
약간의 날조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드래곤들이 세계의 섭리에 얽매이지 않고 나설 수 있을 때쯤이면 이미 마계의 문이 열려서 대륙 곳곳이 피해를 입은 이후가 될 테니까.
나는 루리스가 마인을 만들어낸 것은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한 연습이나 다름없었다는 것과, 타이런 황궁에서 수많은 마도구들을 훔쳐 달아났던 것을 언급했다.
이렇게 아무리 설명해 봐야 루리스가 마계의 문을 열려 하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루리스가 위험인물이고, 찾아내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쯤은 다들 느낄 수 있겠지.
단순히 내가 원한 때문에 루리스를 잡으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국왕 전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이런 제국에 연락하게. 우리보다 먼저 그자를 쫓고 있었으니 적어도 뭔가 단서라도 있을 테지.”
황궁 학살과 황실 비고의 약탈로 인해 이미 루리스는 타이런 제국의 추적을 받는 중이었다.
“타이런 제국에는 제가 연락하도록 하겠나이다.”
아라크난 공작이 제국과의 공조를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국왕 전하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지시를 내리려는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마일렌 공작이 입을 열었다.
“드리안 자작, 드래곤들도 염려할 정도로 그 마계의 문이 위험한 것은 잘 알겠네. 그렇다면 만약 그 마계의 문이 열렸을 때 상대해야 할 것들의 수준은 어떻게 되는가?”
왕국군의 총사령관답게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적의 수준부터 파악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카이서스에게 들은 마계의 무서움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인간들만의 힘으로 상대하려 한다면 확실히 멸망하게 될 겁니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마물들은 물론 오러 마스터들과 대마법사들도 상대하기 벅찬 마족들도 이쪽 세계에 눈이 뒤집혀서 넘어올 테니까요. 왕이나 대공급의 고위 마족들은… 드래곤조차 쉽게 상대하지 못합니다.”
“으음…….”
“허어!”
침음을 흘리는 사람도, 탄식을 내뱉는 사람도 모두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다.
마계의 문이 열렸던 고대의 전쟁은 이천 년 전의 일이었다.
드래곤을 제외하면 그때의 일에 대해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나 역시도 카이서스가 아니었으면 결코 믿지 못했겠지.
“믿기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무조건 막아야 하는 일이라는 거군.”
마일렌 공작은 믿기 어려워하는 얼굴이었지만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한데 선생, 그 루리스라는 작자는 무엇 때문에 그 마계의 문이라는 끔찍한 것을 열려고 하는 건가?”
문득 로라스 왕자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왕자의 물음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로 생각했다.
루리스가 마계의 문을 열려고 하는 이유라…….
칼라마쉬의 서를 훔치고 제국에 투신한 것은 카밀라 스승님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제국을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마계의 문까지 열려 하는 이유는…….
“그건 저도 알고 싶습니다.”
스승님에 대한 집착은 알고 있지만 그 집착이 어쩌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것으로 발전한 것인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긴, 미친놈의 생각을 이해하면 그게 더 문제겠지.”
로라스 왕자는 스스로의 대답에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제각기 루리스를 찾아낼 방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여러 마탑에 지원을 요청하여 마법사들이 흔적을 찾게 하거나 다른 나라에도 루리스에 대해 알려서 찾도록 하는 등의 방법.
물론 마계의 문과 같은 위험한 정보는 기밀로 유지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마계의 문에 대한 이야기가 퍼졌다간 공포와 혼란으로 인한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던 중 누군가 내게 물어왔다.
“드리안 자작은 그자를 어떻게 찾아볼 셈이오? 역시 적색 마탑과 함께 찾으려는 거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혼자 움직일 겁니다.”
혼자서 찾아다니겠다는 내 말에 몇몇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굳이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하려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 * *
드래곤의 날개는 크고 아름답지만 정작 날개의 본래 목적인 비행에는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드래곤은 몸 전체를 마나와 동화시키고 마나의 흐름을 통해 비행한다.
마나 그 자체이기에 공기를 비롯해 모든 물질의 저항도 받지 않기에 엄청난 속도의 비행이 가능하다.
드래곤의 피와 영혼을 품은 서클 브레이커인 나도 그런 비행이 가능했다.
한 시간 만에 크라우드를 벗어난 나는 쉘던 왕국의 북서부에 도착했다.
지상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의 높이의 하늘로 올라온 나는 마나의 통제력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마나를 통해 마기를 찾아보았지만 이곳에서도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쉘던 왕국은 예전에 루리스가 언데드 로드를 불러낸 적이 있으니 뭔가 단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마기를 잘 숨긴다 해도 마계의 문처럼 엄청난 짓을 꾸미면 마기가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올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여기도 꽝이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수색하지 않은 지역들을 떠올려 보았다.
크라우드와 타이런 제국은 물론 인접한 나라들까지 돌아다니며 수색을 하는데도 단서가 없으니… 범위를 더욱 넓혀야겠지.
아무리 내가 한 번에 넓은 범위를 수색한다 해도 혼자서 했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다.
그나마 크라우드 왕국과 타이런 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 말을 믿고 움직여 주지 않았다면 내가 찾아 헤매야 할 범위가 훨씬 늘어났을 테니까.
‘각국이 내 말을 그리 의심하지 않고 따라준 것은 다행이긴 한데… 혹시 이것도 세계의 섭리가 영향을 끼친 거야?’
문뜩 생각난 것을 떠올리자 카이서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동기화를 하고 나니 지능이 조금이나마 오르기라도 한 모양이구나!>
‘그 말을 진심으로 한다는 게 느껴져서 더 짜증 나거든?’
카이서스에게 가볍게 쏘아붙이고는 마나의 통제를 거두어들였다.
아무리 나라도 보름 동안 계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색하는 것은 조금 피곤했다.
크라우드뿐만 아니라 타이런 제국, 그리고 그 외의 지역까지 약간이라도 의심 가는 곳이 있으면 곧장 날아가서 수색을 했는데…….
보름 동안 내가 마나를 퍼뜨려 수색한 곳만 해도 타이런 제국의 영토와 맞먹는 넓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리스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이 답답했다.
정말 마계의 문을 열려고 하는 게 맞나?
다른 차원과 이어지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면 적어도 지금쯤 흔적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멀리까지 퍼뜨렸던 마나에 대한 통제를 거두어들이며 문뜩 생각했다.
설마 마계의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다른 짓을 꾸미는 건가?
‘아예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달아나서 숨은 거라면 좋을 텐데.’
<흥,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고작 실패할 게 두려워서 도망칠 놈이 그딴 짓들을 했겠느냐? 게다가, 네가 본 그놈이 그런 말랑말랑한 놈으로 보이든?>
카이서스가 코웃음을 치며 묻는 말에 나는 잠시 루리스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예의 바르고 조용해 보이지만 눈에서는 감출 수 없는 집념과 광기가 엿보이던 진짜 미친놈.
아마 그만두느니 죽을 때까지 발악해 대겠지.
‘아, 이거 안 되겠네’ 하고 순순히 포기하고 도망칠 놈이 아니다.
<게다가 마계의 문이 열리려는 게 아니고서야 인간들이 세계의 섭리에 영향을 받았을 리가 없잖느냐.>
흠, 확실히 각국의 이해관계라든가 감정을 무시하는 협력을 이끌어 내려면 세계의 섭리가 영향을 끼치지 않고는 무리지.
‘흠, 그러면 놈을 찾는 방법이 잘못된 것 아닐까?’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잔뜩 언짢아하는 기색으로 소리쳐 댔다.
<무슨 소리야?! 마기를 찾을 때는 마나를 퍼뜨려서 찾는 게 가장 좋거든?! 농도 높은 마기와 접촉한 마나가 반발할 때 생기는 반응이 가장 찾기 쉬우니까!>
감정까지 실어 소리쳐 대는 카이서스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수색 방법을 알려준 것도 카이서스였다.
자존심이 넘치는 카이서스에게 대놓고 네가 틀린 거 아니냐고 물은 거나 마찬가지니 화낼 만도 하군.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지. 다른 방법은 없나 싶어서 해본 말이야.’
<지금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 딴생각 말고 하던 대로 계속해.>
괜히 또 삐질까 봐 살살 달래주자 카이서스는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너무 초조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많은 곳을 뒤졌지만 아직 찾아보지 않은 곳도 많으니 계속 수색해 보는 수밖에.
오늘은 이쯤 해두고 돌아가서 쉬어둬야겠다.
조금은 지친 데다 제대로 쉬어둬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색을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몸 전체를 마나와 동화시키며 비행 속도를 높였다.
거의 저항을 받지 않는 비행이었기에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음에도 그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날아가던 철새들이 내가 바로 곁으로 날아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지나치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며 흩어질 정도였다.
아무리 빠르게 비행해도 트럼벨에 도착할 때쯤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트럼벨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나는 속도를 낮추고 기척을 숨겼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면 여러모로 소란스러워질 테니까.
안 그래도 이래저래 피곤한데 더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질색이다.
마나를 이용해 소리와 모습까지 지운 채로 날아온 나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집 앞마당에 내려설 수 있었다.
모습을 숨기던 것을 해제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한숨을 내쉬듯 말하자 거실의 벽난로 앞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아리안 누나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나를 맞이했다.
“왔어?”
그녀가 읽고 있는 것은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가져온 마법서로 어느 드래곤이 심심풀이로 썼다는 것이었다.
“마법서는 익힐 만해요?”
내 물음에 아리안 누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어려울 거라 생각은 했는데 예상보다도 난해하네.”
드래곤이야 심심풀이로 썼을지 몰라도 드래곤을 제외한 종족들에겐 지고한 수준의 마법서이기에 영재로 소문난 아리안 누나조차도 익히는 데 어려워하는 모양이다.
‘조금은 쉽게 풀어서 쓰지 그랬어?’
<저 정도면 충분히 쉽게 쓴… 아니, 저건 내가 쓴 게 아니라 다른 녀석이 쓴 거라니까?!>
‘그래, 그래.’
카이서스는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어느 드래곤이 쓴 거라고 말했지만 말이지.
누가 봐도 카이서스가 쓴 게 분명하다.
카이서스 성격상 다른 드래곤이 쓴 책을 자신의 개인 서고에 보관해 둘 리가 없으니까.
어째서 자기가 마법서를 썼다는 걸 숨기려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카이서스의 마법서를 익히는 것이 잘 안 돼서인지 아리안 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익힐 거면 차라리 루리스를 찾는 거나 도와줬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어차피 루리스를 찾는 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투입 된 데다… 전 누나가 그 마법서를 익힐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애초에 아리안 누나의 마법에 대한 열망은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루리스에 대한 수색보다 마법서를 익힐 것을 권했던 거다.
말은 안 해도 지금의 수준으론 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꽤나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후, 네가 그렇게까지 믿어주니 포기도 못 하겠네.”
작게 웃으며 대답한 아리안 누나는 화제를 돌렸다.
“루리스를 찾는 일은… 그다지 진전이 없는 모양이네.”
얼굴만 보고도 눈치챈 아리안 누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마. 작정하고 모습을 숨긴 사람을 찾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그자가 만만한 사람도 아니라면서.”
아리안 누나의 말대로 마물을 만들고, 제국마저도 농락한 놈이 숨으려고 작정했으니 쉽게 찾지는 못하겠지.
“그냥 답답한 것뿐이에요. 놈을 찾아낼 다른 방법은 없나 싶기도 하고.”
“음… 그럼 다른 곳에서도 단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다른 곳에서 단서라니요?”
“음, 그 루리스라는 자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보면 뭔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자를 쫓고 있지만 그자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게 많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수색이 지지부진한 지금, 다르게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