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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31화 (131/150)

131화 - 드래곤 정말 싫어

“흐어어억!”

숨을 크게 들이켜며 나는 누워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새로 생성된 심장이 힘차게 뛰며 울리는 박동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헉, 헉!”

식은땀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니 로드가 미소를 띤 채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잘된 모양이구나.”

<다행은 무슨! 영감탱이가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나까지 고생하게 만들고 말이야!>

평소처럼 머릿속에서 울리는 카이서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으으…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내가 정신적으로 느낀 시간과 실제 시간이 다르다 해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겠지.

그만큼 내가 느낀 시간은 엄청났으니까.

내 물음에 대답해 준 것은 로드가 아니라 카이서스였다.

<일 분도 안 지났어.>

‘뭐?! 내가 느낀 건 몇 달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그건 네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고 바깥에서 보기엔 고작 일 분 동안 심장이 터졌다가 다시 복구된 것뿐이다. 애초에 네가 느낀 고통의 시간도 드래곤이었다면 찰나로 느꼈을 거다.>

경험한 고통의 시간과 실제 시간의 괴리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나를 카락스가 이리저리 살피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흠! 이제 조금이나마 드래곤의 이름에 어울리는 수준이 됐군. 반쪽짜리기는 해도.”

서클 브레이크가 드래곤들에게 있어선 기본이라고 했었지.

서클을 부수고 나자 가늠조차 가지 않았던 카락스의 수준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힘은 나의 두 배 정도였다.

확실히 나더러 반쪽짜리라고 할 만도 하네.

그럼 로드는 어느 정도나…….

로드에게서 느껴지는 힘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생각을 잠시 멈췄다.

그야말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대한 마력.

그 힘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정도였다.

카락스는 굳어 있는 나를 보고는 무슨 일인지 눈치챘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이제 막 서클을 부순 너와 모든 드래곤의 정점에 있는 로드를 비교하려는 건 너무 양심 없는 것 아니냐?”

아까부터 자꾸 진실만을 말하며 말로 사람을 후려치던 카락스가 로드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로드도 참 음흉한 구석이 있으시단 말이지.”

히죽 웃으며 말하는 카락스의 뜬금없는 말에 로드는 멋쩍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영문을 몰라 하고 있자니 카락스는 나를 향해 혀를 차 보이며 말했다.

“아무리 기억을 읽은 것이 미안하다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로드가 네 서클을 깨는 걸 선뜻 도와준 것 같아?”

“네?”

카락스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서클을 부수기 전의 내 힘만으로도 악용할지 우려된다며 기억까지 읽어놓곤 순순히 서클을 부수게 도와줬다고?

지금까지의 내 기억을 읽어 내 성향을 파악했다 쳐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잖아.

<하여간 서클을 부숴도 눈치 없기는 그대로라니까.>

카이서스가 혀를 차며 평소처럼 나를 무시하고는 설명했다.

<그 루리스라는 놈, 보나 마나 마계의 힘에 직접 손을 댔을 거다. 그러면 결국 더 큰 힘을 위해 이쪽 세계와 마계를 이으려 들 테고, 그렇게 되면 엉덩이가 무거운 저 영감탱이도 일족을 이끌고 나서야 한단 말이지. 그래서 너로 하여금 그걸 막게 하려는 거다. 뻔하지.>

의기양양해하며 말한 카이서스의 추측은 아마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카이서스의 말을 듣지 못하고 내게 설명해 준 카락스도 비슷한 소리를 했으니까.

로드도 먼 곳을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차피 루리스를 막을 셈이었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너는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건데?’

<음? 아, 그거야…….>

시원하게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녀석도 카락스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눈치챈 모양이다.

“그런데 만약 제가 로드의 뜻과 달리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어쩌시려고요? 아무리 기억을 읽으셨다고는 해도… 제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인간은 쉽게 바뀌잖습니까.”

여전히 이해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묻자 카락스와 로드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야 네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 해도 그저 귀찮은 일이 하나 생길 뿐이니까 그렇지. 너도 조금 전에 카락스나 로드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껴봤잖아. 귀찮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편한 해결책이니 너로 하여금 루리스를 막게 한다고 결정한 거다.>

으음, 확실히 조금 전에 느낀 힘은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지.

애초에 서클을 부수기 전 내 처분을 간단하게 결정한 것도…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간단하게 처리할 자신이 있어서였구나.

나는 뒤늦게야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건 시한부 인생에서는 벗어났으니 그건 다행이네.

“로드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 힘으로 어떻게든 해봐야겠군요.”

그놈의 섭리 때문에 힘이 넘쳐나는 드래곤들 대신 내가 고생해야 한다니.

뭔가 억울하다.

체념하며 힘없이 대답하는 나를 두 드래곤은 그저 웃으며 쳐다보았다.

결국 모든 걸 체념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선 루리스의 행방부터 찾아야겠네요. 돌아가서 흔적이라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자 웃고 있던 카락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긴 어딜 가? 설마 서클을 부수고도 이전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나 지금 서클을 죄다 부숴 버린 상태였지.

“쯧쯧, 서클 브레이크의 마법은 네가 지금껏 사용한 마법들과는 달라. 나름대로의 요령이 필요하단 말이지. 지금 돌아가면 어디서 그 요령을 배우려고?”

“어… 카이서스에게 배우면 되지 않을까요?”

“그 녀석이? 가르친다고? 잘도?”

조금 전 내가 돌아간다고 했을 때보다도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진심을 다해 묻는 카락스의 모습에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요.”

<뭐?! 방금 무슨 뜻이야? 날 무시하는 거냐?!>

‘그렇지만 너, 뭘 가르치는 능력은 암담한 수준인걸. 솔직히 스승님을 만나기 전에 네게서 마법을 배울 때 정말 힘들었단 말이지.’

카이서스가 뭔가를 가르치는 방식은 대충 이랬다.

-그건 대충 이렇게 빡! 하고 힘을 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인단 느낌으로…….

이따위로 설명하는데 뭘 어떻게 배우란 거야?

낮은 서클 마법을 배울 때도 힘들었는데 서클 브레이크의 마법을 카이서스에게 배우라니.

차라리 독학하는 게 빠를지도 몰라.

“서클 브레이크를 다루는 데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카락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서클 브레이크를 이룬 인간은 처음이라… 한 7년하고 3개월쯤?”

그 묘하게 구체적인 기간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 그때쯤이면 내가 나설 필요 없이 루리스가 마계와 이쪽 세계를 완전히 이어서 드래곤들이 나서야 할 거 같은데.

대략 정신이 멍해진 나를 보던 카락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다. 요령만 깨달으면 되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농담이라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하긴 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 쉽지도 않고 금방 끝나지도 않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나는 내 예감이 정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내 생각보다도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서클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요령이라며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한참 늘어놓던 카락스는 내 반응을 보더니 난감해하며 말했다.

깜빡 잊고 있었다.

카락스가 좀 더 말이 통해 보이기는 해도 카이서스와 같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넌 대체 드래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긴 뭐야, 제멋대로인 종족이지.

서클을 부숴서 간신히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카이서스를 만나기 전 무능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은 루리스라는 위험한 놈까지 적으로 둔 상태다.

굳어버린 내 얼굴을 난감하다는 듯 쳐다보던 카락스는 이내 뭔가를 떠올린 듯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서클을 부술 때 카이서스와 직접 만났다고 했었지?”

“아, 네.”

서클을 부순 직후 말해주었던 내용을 다시 묻는 카락스의 말에 나는 의아해했고 카이서스는 어째선지 불안해했다.

<설마?>

“별수 없지. 경험을 통해 몸으로 직접 체득하는 수밖에.”

경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될 때까지 한다는 식으로 굴린다는 건가?

내가 의아해하는 사이 반발한 것은 카이서스였다.

<안 돼! 절대로 허락 못 해! 누구 맘대로 그렇게 하겠단 거야?!>

내가 모르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듯한 그는 카락스를 향해 들리지 않을 고함을 내질렀다.

‘왜 그래? 대체 카락스가 하려는 게 뭔데 그래?’

<끄응…….>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침음만 흘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의아해하며 카락스에게 카이서스의 반응을 말해주었다.

“카이서스가 절대로 안 된다는데요?”

“내가 뭘 말하려는지 눈치챈 모양이지?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야? 정신을 동화해서 서클 브레이크를 사용하던 감각을 직접 느끼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는 건 녀석도 잘 알 텐데… 설마 이 녀석, 네게도 뭔가를 숨기고 있던 건가?”

“네? 그럴 리가요. 저희는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뭔가를 숨길 수 있을 리가요.”

내가 그의 말에 반박하자 카락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건 대등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고, 드래곤인 카이서스의 정신력이 너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녀석이 맘만 먹으면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출 수도 있단 말이지.”

“네?!”

확실히 제대로 된 드래곤이었던 카이서스와 아직도 반쪽짜리에 불과한 내 정신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카이서스, 너 여태까지 날 속인 거야?’

<속이긴 뭘 속여! 그냥 알려주지 않은 것뿐이지!>

‘그럼 뭣 때문에 카락스가 말한 방법을 하지 않으려는 건데?’

<그게… 끄응, 맘대로 해라!>

카이서스는 무어라 말하려다 이내 침음을 흘리며 포기했다.

“뭘 하면 되죠?”

내 물음에 카락스는 웃어보였다.

“맘 편하게 먹어.”

그렇게 말한 카락스의 마나가 내게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니, 준비할 시간도 안 주고 일단 저질러 버리는 것은 망할 드래곤들의 전통 같은 건가?

나는 눈앞이 빠르게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과 함께 다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조금 전까지 카락스에게서 서클 브레이크에 대해 배우던 로드의 둥지가 아니었다.

여긴 또 어디지?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일 힘조차 없을 정도였다.

‘카이서스!’

뭐가 잘못된 것 같단 생각에 카이서스를 불렀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젠장!”

심지어 익숙한 목소리인 데다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어라? 이건 분명 카이서스의 목소리인데… 왜 잔뜩 화가 나 있지?

거기다 카이서스가 말을 하다니, 서클을 부술 때처럼 내면으로 들어온 건가?

상황을 판단하려 애쓰던 중에 어떤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것은 카이서스의 기억이었다.

세계의 섭리에 대한 의문과 반발.

가장 위대한 종족인 드래곤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카이서스는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이고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섭리를 거스르거나, 그 간섭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다.

기억이 흘러들어 오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방법들이었으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섭리에 저항하려 한 것에 대한 반작용인지 강대하던 육체는 점차 쇠하며 죽음을 향해갔다.

드래곤의 능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이 내게 흘러들어 온 카이서스의 기억.

<기분 더럽군, 드래곤인 이 몸이 고작 섭리에 대들었단 이유만으로 죽어가야 하다니.>

현재의 카이서스가 아닌 과거의 기억 속의 카이서스가 하는 생각이 내게도 전해진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섭리에 대한 분노로 으르렁거리며 속으로 온갖 욕설을 중얼거리던 카이서스의 감각에 인간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접근을 느끼고 짜증을 느낀 카이서스는 단숨에 침입자를 짓누를 생각을 하다가… 떠올렸다.

<내가 섭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섭리에서 벗어난 놈을 내가 만들어주마.>

어, 이거 설마…….

혹시나 하는 내게 카이서스의 생각이 계속해서 전해졌다.

자신의 힘을 다가오는 인간에게 주입시킨다.

<엄청난 힘을 손쉽게 얻으면 인간은 그걸 휘둘러 보고 싶어지지. 어떤 인간이라도 말이야. 크크크, 인간에겐 섭리가 미치지 않는다면… 제대로 섭리에게 엿을 먹일 수 있겠지!>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과거의 나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내가 겁먹지 않도록 카이서스는 평생 해본 적 없던 인자한 드래곤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죽어가던 차에 말벗이 생겨서 다행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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