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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25화 (125/150)

125화 - 구출(2)

타이런 황궁 인근에 위치한 숲은 황실의 사냥터였으나 전쟁이 터진 이후엔 관리인만을 제외하면 출입하는 이가 없었다.

그 숲의 깊숙한 곳에 몰래 들어온 우리는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내 물음에 세인트 혼의 요원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위치를 확인했다.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곧 도착할 겁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밀 통로의 출구로 다시 시선을 향했다.

설마하니, 세인트 혼에서 타이런 황궁의 비밀 통로에 대한 정보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이백 년 전, 황궁의 보수와 증축이 끝나자 제국은 황궁의 정보를 숨기기 위해 건축가와 인부들을 몰살시켰다.

건축가들 중 하나는 자신들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고, 복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황궁의 비밀 통로에 대한 정보를 자식에게 비밀리에 전달했다.

그리고 그 건축가의 후손은 복수를 위해 세인트 혼에 몸을 담갔다… 라는 건데.

‘제국은 원한을 안 쌓은 쪽을 찾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속으로 혀를 차며 한 말에 카이서스가 껄껄 웃었다.

<같잖은 힘을 가진 놈들일수록 원한을 잔뜩 쌓는 법이지.>

‘너도 만만치 않게 여기저기 원한 쌓고 다니지 않았냐?’

<음?! 아,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대충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뭐 이런 건가.

카이서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주위를 살피던 중 갑자기 저 멀리서부터 고함 소리가 격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카이서스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곁에 있던 세인트 혼 요원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래도 제국 놈들이 알아챈 모양입니다.”

모니카 황후가 사라진 걸 알아채고 근위대가 사방을 뒤지고 있는 모양이다.

놈들이 이곳까지 오기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야 할 텐데…….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비밀 통로의 출구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길, 놈들이 오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할 텐데…….”

곁에 있던 요원이 초조해하며 중얼거렸다.

컹!

숲 사이에서 튀어나온 근육질의 검은 사냥개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젠장!”

깽-!

요원이 재빨리 품에서 꺼내어 던진 단검이 사냥개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번 임무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어서 피하…….”

요원이 내게 도망치라고 말하려던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비밀 통로의 문이 이제야 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땅처럼 보이던 바닥이 아래로 내려가며 계단을 올라오는 다섯 사람이 보였다.

세인트 혼의 요원 두 명과 모니카, 그리고 파렐이라는 시녀.

그리고… 바이엔?

내가 의아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니카와 바이엔도 나를 보고 놀랐다.

“우릴 구하러 왔다는 게 너였어?”

바이엔이 깜짝 놀라며 물었지만 느긋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쪽이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근위대의 기사가 쏘아 올린 신호탄이 하늘을 물들이고, 귀가 아플 정도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우리가 있는 곳 주변을 제국 근위대가 둘러싸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사이로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던 근위대의 기사가 소리쳤다.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됐다! 순순히 황후 마마를 풀어주고 항복해라!”

말을 하는 와중에도 포위가 늘어나고 있었다.

“망할, 구해준다고 온 사람이 이게 다야? 이 인원으로 저걸 어떻게 뚫어?”

기사와 마법사들도 보이는 포위망의 모습에 바이엔이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모니카를 따라오기로 한 것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놈들! 감히 황후 마마를 납치하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황후를 감금하고 생명력을 착취해서 마인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었기에 납치당한 것으로 알려진 모양이다.

그중에서 마법사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나를 알아봤는지 소리쳤다.

“라엘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대마법사라 해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다!”

내가 제국의 볼모로 잡혀 있을 때 나를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끄응, 제국 황실 마법사 디아그까지 왔군요.”

그를 알아본 세인트 혼의 요원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제국의 볼모로 잡혀 있던 때 언뜻 지나가다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하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황실 마법사의 외침에 내가 슬쩍 웃어 보이며 대답하자 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아무리 네가 대마법사라고는 하나 나 또한 대마법사! 내가 널 막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제국의 3인의 대마법사 중 하나.

아직까지 내가 8서클이라 생각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닌지 주변의 마나를 장악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공격하면 황후마저 휩쓸릴 테니 아예 서로 마법을 못 쓰게 만들 셈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8서클의 그가 주변의 마나를 장악해 봐야 9서클인 나라면 금세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지만 마법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사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근위대들이 가만히 구경하지 않겠지.

그의 말에 나는 품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 스크롤? 고작 꺼내 든 게 스크롤인가! 뭔지는 몰라도 내가 순순히 사용하게 놔둘 것 같나?”

8서클 대마법사가 전력을 다해 방해를 한다면 시간을 끌기엔 충분하겠지만.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잊었나 본데.”

“응?”

여전히 자신만만한 내 태도에서 뭔가 불안함을 느낀 듯 황실 마법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드래곤이 직접 만든 스크롤도 방해할 자신 있어요?”

드래곤이 만든 거란 말에 황실 마법사의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내가 꺼내 든 것은 이전에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챙겨둔 초장거리 텔레포트 스크롤.

9서클을 뛰어넘는, 서클 브레이크를 이룬 드래곤의 능력으로 어디서건 지정된 위치로 이동한다.

9서클의 마법조차 제한하는 황궁의 결계라면 모를까, 8서클의 대마법사 한 명으로는 방해조차 할 수 없다고 카이서스가 장담했지.

“마, 막아!”

뒤늦게야 내 손에 들린 것이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스크롤임을 깨달은 황실 마법사가 소리쳤다.

영문도 모르고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고 있던 근위대가 그의 다급한 외침에 서둘러 달려오려고 했고 일부는 황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살까지 쏘았다.

“수고하세요.”

하지만 이미 나는 스크롤을 발동시킨 후다.

화살이 닿기 전에 스크롤에 담겨 있던 강대한 마나가 터져 나오며 화살은 물론 주변의 근위대도 날려 보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와 일행의 시야가 바뀌었다.

황급히 달려오던 제국의 근위대 대신 보이는 것은 내게 익숙한 장소.

카이서스의 둥지였다.

<심심풀이로 만들어뒀던 귀가용 스크롤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군.>

도주용으로 쓰였다는 게 언짢은지 카이서스가 머릿속에서 툴툴거렸다.

서클 브레이크의 능력이 담긴 스크롤은 8서클 대마법사의 마법 방해를 무시하고, 무려 국경까지 넘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다른 녀석들까지 내 둥지에 들이게 될 줄이야, 쯧!>

계속해서 툴툴대는 카이서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내했다.

“자자, 여기 있는 것들은 건드리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성질 더러운 드래곤이 무슨 함정들을 설치해 놨는지는 저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 말에 호기심으로 조각상 하나를 만지려던 모니카가 움찔하며 손을 거두는 것이 보였다.

바보가 아니니 내 말에서 이곳이 드래곤의 둥지라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

처음으로 와본 드래곤의 둥지에 다들 긴장하는 것을 보며 나는 멋쩍게 말했다.

“그럼 이만… 나가죠. 미리 허락받았기는 해도 외부인이 오래 머무르면 이곳의 주인이 싫어할 테니까요.”

지금은 이 둥지의 주인은 죽어서 내 안에 있지만 이곳을 구경시켜 줄 생각 같은 건 없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내 마법을 방해할 사람도 없었기에 느긋하게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카이서스처럼 단숨에 국경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진 못해도 게이트가 있는 가까운 도시까지 이동할 수준은 된다.

거기서 우리는 게이트를 이용하여 트럼벨로 향했다.

제국은 더 이상 새로운 마인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 * *

“다시 한번 말해봐라.”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내가 침을 꿀꺽 삼키곤 대답했다.

“비밀 통로를 통해 잠입한 자들이 감시자들을 죽이고… 컥!”

대답하던 도중 머리를 걷어차는 발길질에 사내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자신에게 보고하던 사내를 힘껏 걷어찬 황제가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떻게 놈들이 황궁의 비밀 통로를 알고 있다는 거냐!”

라엘의 등장으로 황후를 데려간 자들이 크라우드 왕국 짓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어떻게 황궁의 비밀 통로를 알아낸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사오나 내부의 협력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입안이 찢어졌는지 피를 흘리던 사내가 힘겹게 자세를 바로잡으며 대답했다.

황제 직속의 정보 조직인 ‘고귀한 시선’의 수장이 내뱉은 말에 황제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 말은 황실에 첩자가 있다는 소리더냐?”

첩자를 찾아내어 처리하는 것 또한 고귀한 시선이 해야 할 일.

그 수장인 사내로서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그 침묵에 황제는 억지로 분노를 참듯 이를 악물었다.

“찾아내라. 첩자 놈들은 물론이고 연관된 자들은 모조리 목을 베라.”

찾는다고 해서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첩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법.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결과를 만들기 위해 생길 피바람에 사내는 속으로 몰래 한숨을 내쉬며 황제의 앞에서 물러났다.

고귀한 시선의 수장이 물러나자 황제는 근처에 서 있던 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받은 황실 마법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디아그 그라브. 놈들이 텔레포트로 도망치는 걸 코앞에서 구경만 했다지?”

자신의 풀 네임을 부르며 질책하는 황제의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디아그는 그저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송구스럽습니다. 분명 주변의 마나를 장악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 했으나… 드래곤의 마법을 막기에는 소신의 능력이 모자랐사옵니다.”

“드래곤의 마법이라고? 드래곤이 직접 나타났다는 소리냐.”

“그건 아니오나… 제가 이해할 수도 없는 경지의 마법이 깃든 스크롤이었습니다. 드래곤이 직접 만든 것이라 하였습니다.”

드래곤을 언급하자 황제는 재차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또 그 망할 드래곤인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토하려던 황제는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드래곤 때문에 화를 내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깨달았으니까.

“후우, 드래곤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보라 한 건 어떻게 됐지?”

디아그는 어떻게 하면 황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할까 고민하다 이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온갖 서적은 물론 신화나 전설, 곳곳의 설화까지 모두 찾아보았으나… 모두 드래곤의 분노를 산 자들의 최후만을 말하고 있었사옵니다.”

그 최후는 대부분 불행하고 끔찍했다.

디아그의 말에서 그것을 눈치챈 황제는 눈을 찌푸렸다.

솔직히 디아그는 드래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으나 조사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생겼고 이번에 드래곤의 능력이 담긴 스크롤을 보고 그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스스로 제국에서 제일 뛰어난 마법사라고 자부하던 자신조차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모를까, 알고 있기에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경외심.

흡족한 대답을 듣지 못한 황제는 아름답게 치장된 자신의 옥좌에 힘을 빼고 앉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것에 대해선 더 알아보도록 하고, 이만 나가보도록.”

“예, 폐하.”

디아그가 조심스레 물러난 후, 황제는 분노와 모욕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분명 모니카에 대한 것은 알아내지 못할 거라 자신하지 않았었나? 마인에 대한 것도 알아냈을 텐데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셈이지?”

그의 싸늘한 시선에 기둥 뒤의 어둠 속에서 루리스가 걸어 나왔다.

“드래곤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은 알아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드래곤이 깊게 참견하는 모양입니다.”

“그따위 무책임한 소리나 지껄이라고 네놈을 지원해 준 것이 아니다!”

으르렁대듯 소리치는 황제의 모습에 루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황제의 말을 끊으며, 루리스는 음울하게 웃어 보였다.

“말 그대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소리입니다.”

루리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진득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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