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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21화 (121/150)

121화 - 일시정지

왕궁의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통신구를 통해 전해지는 내 말을 듣는 내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통신구 너머의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왕실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외할아버지였다.

[9서클… 9서클이라니. 인간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건 없군요.

“드래곤이 도와준 덕분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외할아버지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타이런 제국의 검은 기사들이 만들어진 마인이었다는 건 확실한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국왕 전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네, 저와 연결된 드래곤이 확인해 준 사실입니다.”

[인간을 마물로 만든다니… 끔찍하군.]

어두운 목소리로 내뱉는 국왕전하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대신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타이런 제국이 마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못 할 겁니다.]

[하나 증거가 없지 않소? 우리에겐 드리안 자작의 증언뿐인데 섣불리 공론화해 봐야 제국은 부정하고 증거를 감출 겁니다.]

[드리안 자작을 수호하는 드래곤이 직접 말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드래곤의 말을 대놓고 부정할 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겠지요.]

그들이 말한 방법이 제일 좋긴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게… 저와 연결된 드래곤은 제가 죽을 정도로 위험하지 않으면 직접 나서지 않을 겁니다.”

지난번 내가 죽을 뻔했을 때 일시적으로나마 카이서스가 내 몸을 장악해서 메테오를 사용했던 것처럼.

<대충 내가 증언하려면 네 녀석이 반쯤 죽어야 한단 소리지. 조금만 실수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말이다.>

‘하겠냐?!’

<굳이?>

[으음… 그렇다면 이번처럼 드래곤의 환영으로 그 사실을 공표하는 건 어떻겠소?]

[전투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에 통한거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아무리 드리안 자작이 9서클이라 해도 환영이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소이다.]

[으음, 그렇게 되면 제국이 마인을 만든다는 우리의 말조차 신빙성을 잃게 되겠지요.]

회의장에 모인 고위대신들이 여러 의견을 내놓았으나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다.

다들 침음을 흘리고 있던 도중 지금껏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로라스 왕자가 입을 열었다.

[우선은 이번에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에 대신들 중 하나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 환영이지요. 하지만 그 사실은 아직 우리만 알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제국은 그 사실을 모르기에 모든 전선에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한 로라스 왕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국이 눈치채고 공격을 재개하기 전에 뭔가를 해야겠지요.]

“그 뭔가가 마인제조에 대한 증거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미 타이런 제국에 잠입해 둔 저희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려두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로라스 왕자의 말에 대답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국왕 전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대는……?]

“세인트 혼의 수장인 데스웬이라고 합니다.”

[아!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군.]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인사를 드리는 게 늦었습니다.”

그 직업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는지 국왕 전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그런데 조금 전에 왕자님이 하신 말씀 말입니다.”

[제국이 드래곤의 등장으로 공격을 멈춘 동안 방도를 찾자는 것 말인가?]

“예. 기왕 드래곤의 등장을 이용하는 김에… 시간을 더 벌어보는 것은 어떠신지요.”

[어떻게 말인가?]

“비록 환영일 뿐이라 해도 거짓과 소문으로 뼈와 살을 입히면 제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진실을 알아내는 데 더욱 시간이 걸리겠지요.”

[…계속 얘기해 보게.]

정보를 은폐할 방법과 소문에 뼈와 살을 입히는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가 한참 오간 후 통신이 끝났다.

통신기의 빛이 꺼지자 나는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마인을 만드는 건 제국에서도 극비로 숨기고 있을 텐데 알아낼 수 있을까요?”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때는 힘들었지만 네 덕분에 그것들이 마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실마리를 찾은 이상 전보다는 낫겠지.”

확실히 마기는 아무리 잘 숨긴다 해도 찾고자 마음먹으면 찾아낼 수 있는 강렬한 기운이니까.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중요한 통신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들이지 말라고 해뒀는데.

“들어오세요.”

어차피 통신이 끝났으니 다른 사람이 들어와도 상관없었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온 것은 이드라실에서 만났던 드워프의 장로와 엘프의 장로였다.

뭔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며 들어선 드워프 장로가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봐! 아까 그 드래곤! 아직도 여기 있나?!”

“이보게, 이 친구야! 드래곤에게 밉보이면 어쩌려고 그러나!”

옆에서 따라온 엘프 장로는 불안한 기색으로 두리번거리며 드워프 장로를 만류하고 있었다.

두 장로의 행동에 나는 당혹해하며 대답했다.

“아,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내 머릿속에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 빨간 드래곤! 카이서스 맞지?!”

드워프 장로의 물음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내 물음에 드워프 장로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우리 선조께서 그 망할 드래곤에게 이것저것 뺏기셔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었거든!”

<엥? 저 자식 검은 모루부족이었나?!>

당황스러워하는 카이서스의 목소리에 나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너를 아는 드래곤이건 드워프건 좋은 이야기는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너 살아 있을 때 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닌 거야?’

카이서스가 대답을 못 하고 침묵하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드워프 장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 본 이동요새라는 건 대체 뭔가요?”

그래도 카이서스의 험담을 대놓고 듣기는 좀 그렇기에 화제를 돌릴 겸 이동요새에 대해 묻자 드워프 장로는 금세 환하게 밝아진 표정이 되었다.

“,아 그거 말이야?!”

잔뜩 신이 나선 설명하려는 드워프 장로의 모습에 엘프 장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보게, 카락스. 또 그 지루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셈인가?”

“흥! 비유 네 녀석처럼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엘프들이나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대부분은 이동요새처럼 끝내주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어한다고!”

비유 장로에게 타박을 준 카락스 장로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이동요새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동요새는 우리 드워프들이 새로 만들어낸 걸작이라 할 수 있지! 외부 전체를 두른 드워프제 합금장갑은 6서클의 마법까지 가볍게 막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곳곳에 만들어둔 창문을 통해 탑승자 수십 명이 동시에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지! 그리고 마정석으로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기관 덕분에 어지간한 장애물은 밀어버리고 돌파가 가능하단 말씀!”

의기양양하게 설명하는 카락스 장로의 말을 듣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정석… 이라면 꽤나 귀하지 않나요?”

마정석이란 자연의 마나가 뭉쳐서 만들어진 마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광석이었다.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기에 꽤나 귀하다고 들었는데 그걸 동력원으로 사용한다고?

내 물음에 카락스 장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살짝 피했다.

내 물음에 대신 대답한 것은 비유 장로였다.

“마정석이 워낙 귀하다 보니 우리도 가진 게 얼마 없어서 아껴 쓰느라 평소에는 이동요새 한 대당 삼십여 마리의 말로 끌어야 한다네. 게다가 이곳에 올 때도 이동요새의 크기가 크다 보니 넓은 길로 이동하느라 돌아와서 늦어졌고 말이야.”

“그러면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한정적이지 않나요?”

내 물음에 시선을 피하고 있던 카락스 장로가 눈치를 살피듯 되물었다.

“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끝내주잖아?”

“그거야 그렇죠.”

확실히 열 대의 거대한 이동요새가 앞을 가로막는 것을 다 밀어버리며 제국군의 군대를 휘젓고 다닐 때는 정말 끝내줬다.

내가 동의하자 금세 표정이 밝아진 카락스 장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이동요새는 정말 끝내준다고! 샌님 같은 엘프들이나 그 가치를 모르는 거라니까!”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카락스 장로의 모습에 비유 장로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드라실이 본격적으로 참전을 개시한 건가요?”

내 물음에 한창 엘프의 면전에서 엘프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던 카락스 장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미 여러 곳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연합의 전사들이 움직였지. 물론 이동요새는 아직 시험작이라 이곳에만 투입됐지만.”

시험작이라서가 아니라 마정석이나 이동 문제 때문에 다른 곳에 투입하지 않은 것 같은데.

“뭐, 기껏 지원을 오긴 했다만… 그 빨간 드래곤이 나타난 이상 한동안은 조용하겠지.”

우리의 판단과 다르지 않은 말을 한 카락스 장로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한동안은 우리도 정비를 하며 나중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여기 맥주 있나?”

그 말에 비유 장로가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이 드워프야, 여기서도 맥주를 찾을 생각인가?”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잖나! 맥주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해? 딱 봐도 이 요새는 우리 애들이 손봐야 할 곳이 장난 아니게 많은데 맥주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나!”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이종족 장로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장의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 * *

“드래곤이라니! 드래곤이 인간의 전쟁에 나설 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황제는 옥좌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말 그대로 목이 날아갈 듯한 살벌한 분위기에 대부분의 대신들은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으나 한 사람은 아니었다.

“폐하,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루리스의 모습에 황제는 마음 같아선 그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당장 끌어내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소리쳤다.

“당장 진격을 재개하라고 전해라! 그까짓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게 무슨 상관이냐!”

이번에 대답한 자도 루리스였다.

“그까짓 드래곤이란 존재로 인해 역사상 멸망당한 국가가 9개고 그중 타이런 제국과 비견되는 국가가 3개였습니다.”

담담하게 역사적 사실을 늘어놓으며 속을 긁어놓는 루리스의 말에 황제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네놈이 쓸모가 없었더라면 지금껏 몇 번은 죽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겠지.”

“폐하께 충언을 드리는 것 역시 저의 쓸모이겠지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하는 루리스의 모습에 질린다는 듯 혀를 찬 황제는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은 기색으로 물었다.

“이리도 나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해 뒀겠지.”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드래곤이 인간들의 일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입니다. 어째서 직접 나타난 건지, 앞으로 계속해서 개입할 것인지를 알아봐야겠지요.”

“드래곤이 앞으로도 개입하려 한다면?”

“크라우드 왕국에선 손을 떼건, 제국 전체가 드래곤을 상대하건 그것은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너무나 정석적인 말에 황제는 굳은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이내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대신들에게 말했다.

“황제의 권위로 그대들에게 명하겠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 망할 드래곤에 대해 샅샅이 조사해 오라!”

황명이 떨어지자 지금껏 입을 다문 채로 눈치만 살피던 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대답은 잘하는 대신들을 서늘한 눈으로 쳐다보던 황제가 나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다른 대신들이 모두 나간 이후에도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 남아 있는 루리스를 보며 황제가 말했다.

“마인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 그 책에 드래곤을 상대하는 법은 없던가?”

약간은 신경질적인 황제의 목소리에 루리스는 그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흡족하진 않은 대답이었으나 애초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물음이었다.

“그 망할 드래곤이 등장했다고 해서 진행 중인 다른 일들에는 지장이 없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좋아. 이만 물러……

루리스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고는 나가보라 말하려던 황제가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는 요즘 어떻지?”

“점점 쇠약해지는 중입니다만 예상한 대로의 수준입니다.”

말이야 쇠약해지는 것이라 순화해서 말하기는 했으나 사실 천천히 죽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황제도 모르지는 않았다.

“흠, 그 여자가 마인 생산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 했으니 금방 죽어버리는 것도 곤란하겠군. 오래 살려두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보내야겠군. 이만 가봐라.”

선심이라도 쓰듯 이야기하며 루리스를 내보낸 황제는 시종을 불러 조금 전에 자신이 말한 것을 지시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의 명이었기에 그 일은 금방 시행되었다.

* * *

황제가 보냈다는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노려보던 모니카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제가 갑자기 돌았나, 왜 이런 걸 보낸 거지?”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한 터라 두려움도 없어진 것인지 고향에 있을 때의 말투로 돌아온 그녀였다.

지금껏 필요한 물건들은 제공되었으나 이렇게 특별하게 뭔가가 제공된 것은 처음이었다.

모니카의 물음에 말에 어느새 상자들을 열어보던 바이엔이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뭔지 확인이나 해보죠.”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넌 왜 그걸 열어보고 있어?”

“그야 어차피 저더러 열어보라고 하실 거 아닙니까?”

그동안 모니카뿐만 아니라 바이엔도 현실을 받아들이며 간이 많이 커진 모양이었다.

“어휴, 말을 말자. 대체 뭔데.”

그동안 함께 지내며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데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모니카는 바이엔의 대답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여기 적힌 대로라면 여신의 눈물이라는데요?”

자신에게 물어보며 다가오는 모니카에게 내용물을 확인하던 바이엔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상자 안에 들어있던 쪽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여신의 눈물이라 똑똑히 적힌 것을 읽은 모니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상자 안에 곱게 들어있는 유리병을 쳐다보았다.

여신의 눈물은 영혼초라는 식물이 100년을 묵으면 맺는 열매의 액체였다.

한 모금만 마시면 죽어가는 사람도 일으켜 세운다는 명약이지만 영혼초라는 것이 워낙 찾기 어려운 데다 100년 동안 살아남기도 힘든 탓에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보물이기도 했다.

“사기 치는 거 아냐?”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도 진짜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바이엔은 상자에 든 손바닥만 한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아름답게 세공된 유리병 안에는 옅은 푸른빛을 내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걸 봐. 너무 수상하지 않아?”

모니카가 쪽지의 내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바이엔도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 찜찜하기는 하네요.”

성자의 눈물이라는 이름과 효능에 대해 적어둔 쪽지에는 매일 한 방울씩 섭취하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이게 진짜라면 죽어가는 사람 다섯 정도는 살릴 수 있을 텐데, 그런 걸 매일 한 방울씩 먹으라고 준다고?”

유리병 안에 든 액체는 다섯 모금 정도로 보였다.

너무 귀한 보물이다 보니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유리병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찜찜하니 그냥 두는 게……”

바이엔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니카가 병의 뚜껑을 열었다.

퐁-!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청량한 향기가 방 안 가득 퍼지자 바이엔은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모니카는 바이엔이 말릴 새도 없이 병에 든 여신의 눈물을 손바닥에 한 방울 따르고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마마?”

자신의 입으로 수상하다 해놓고는 쪽지에 적힌 대로 섭취하는 모니카의 행동에 당황하던 바이엔은 이내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모니카의 인상이 찡그려지지는 않았다.

“후, 독 같은 건 아닌 것 같네.”

“아니, 수상하다면서 그걸 왜 먹어요?! 거기다 독인지 아닌지 마마가 어떻게 알아요?”

바이엔이 어이없어하며 묻는 말에 모니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차피 나를 해칠 생각이라면 이런 것도 필요 없겠지.”

“그래도……”

“게다가 황제 성격대로라면 자신이 하사한 것을 마시지 않으면… 나를 죽이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은 충분히 죽이고도 남지 않겠어?”

그 다른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바이엔은 멍청하지 않았다.

“마마…….”

결국 믿지 못하는 자가 내린 것을 자신을 위해서 마셔주었다는 소리다.

바이엔이 억눌린 소리를 내며 말을 채 잇지 못하자 모니카는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한 방울만 마신 건데도 몸이 가벼워진 걸 보니 가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말입니까? 그럼 저도 한 방울만…….”

금방 태도가 돌변한 바이엔의 모습에 모니카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너 뭔가 전과는 많이 바뀐 거 같지 않아?”

“출세는커녕 자유도 포기하고 나니 원래 성격이 나온 거라 해주시죠.”

출세는 몰라도 자유를 포기하게 된 이유에 자신의 탓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모니카는 말없이 여신의 눈물 한 방울을 바이엔의 손에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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