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 정면 암살
<인마! 꾸물대지 마라!>
“나도… 알고 있거든?! 블레이즈 캐논!”
머릿속에서 연신 떠들어대는 카이서스의 목소리에 짜증을 섞어 대답하며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사들의 요격을 피해 착지한 마인들과, 성벽 위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제국병사들로 인해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마인들의 주변으로는 제국군조차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기에 우리 쪽의 오러 마스터들이 마인을 상대하는데 방해는 되지 않았다.
말레온 경의 대검에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진 마인의 상체를 향해 내가 쏘아 보낸 화염 덩어리가 빠르게 날아갔다.
타이밍과 각도 모두 완벽했기에 블레이즈 캐논이 마인의 몸뚱이를 성벽 밖으로 내던졌어야 했는데.
“아니?!”
말레온 경을 공격하던 다른 마인이 갑자기 끼어들더니 블레이즈 캐논을 대신 맞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마인이라도 코 아래까지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진 이상 살아날 수는 없을테니까.
“폭발한다! 모두 물러서!”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말레온 경의 목소리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터진다!”
내 블레이즈 캐논을 대신해서 맞은 마인은 다른 마인이 그 자리에서 폭발할 수 있게 하려던 것이었다.
블레이즈 캐논에 의해 몸의 절반이 불타고, 폭발의 범위 안에 자신이 있음에도 말이다.
“고얀 것들!”
매서운 눈으로 전장 곳곳을 주시하고 있던 대스승님이 일갈하며 블레이즈 캐논을 쏘아보냈다.
대스승님도 다급한 나머지 마나를 계산보다 많이 불어넣으신 듯 화염 덩어리가 무척 불안정해보이기는 했으나 그만큼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몸 전체가 꿈틀거리던 마인이 블레이즈 캐논에 얻어맞고 날아갔다.
하지만 급하게 쏘아 보낸 탓인지, 머리가 쪼개진 마인은 성벽 아래로 날아가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떨어졌다.
“이런!”
대스승님이 낭패감에 안타까운 외침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마인의 몸이 폭발했다.
쾅-!
폭발은 무척이나 크고 강력했다.
마인이 폭발한 성벽은 거인이 짓밟고 지나간 듯 움푹 패여 있었고 말레온 경도 폭발에 직접적으로 휘말리지는 않았으나 피해를 입은 듯 했다.
말레온 경은 화가 났는지 내 블레이즈 캐논을 대신 맞고 쓰러진 채 무방비한 상태로 반쯤 타들어가고 있는 마인을 대검으로 후려치듯 베어서 성벽 너머로 날려 보냈다.
성벽 아래로 떨어진 마인이 폭발하며 사다리 몇 개와 병사들 수십 명을 휩쓸었다.
하지만 말레온 경 또한 조금 전 폭발 때문인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볼 셈인 모양이구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한 대스승님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껏 세 명의 오러 마스터들을 중심으로 마인들을 상대해왔는데 그들 중 하나인 말레온 경의 상태가 좋지 않다.
당연히 제국군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누군가가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의 위를 달려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하하하! 거 몸이 편찮으신 모양이오! 내가 푹 쉬게 해드리리다! 아주 영원히!”
두 손에 도끼를 든 채로 날렵하게 성벽 위에 착지한 거한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카르노프… 지금껏 숨어 있다 이제야 나서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카르노프라는 제국의 오러 마스터는 말레온 경이 분노하며 외친 말에도 껄껄 웃었다.
“푸하핫! 전쟁터에서 그런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것도 모르오? 왜냐면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다 죽으니까!”
소리치며 도끼를 내려찍어오는 카르노프의 모습에 말레온 경이 이를 악물며 대검을 휘둘렀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도끼를 말레온 경이 막아내고는 있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는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말레온 경이 위험해질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오러 마스터들은 마인을 상대하느라 도움을 줄 수 없어보였다.
여기서 마법으로 지원을 하자니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지금 섣불리 마법을 사용했다간 오히려 말레온 경이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던 나에게 카이서스가 진정하라는 듯 말했다.
<저길 봐라.>
의식의 공유를 통해 카이서스가 가리킨 방향을 자세히 보자 누군가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기척을 숨긴 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언제 저기에?”
순식간에 카르노프의 등 뒤에 도달한 아버지는 들고 있던 소검을 소리 없이 휘둘렀다.
“크하하… 응?!”
광포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레온 경을 향해 도끼를 내려찍던 카르노프는 괜히 오러 마스터가 아닌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눈치 채고 피하려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은신이 너무 교묘했기 때문에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어깻죽지를 베이고 말았다.
“큭! 감히, 웬 놈이냐!”
당황한 카르노프가 뒤로 훌쩍 물러서며 소리치자 아버지는 칼날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내며 대꾸했다.
“뭐긴 뭐요. 암살자지.”
“하! 암살자 따위가 당당히 내 앞에 나타나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군!”
“뭐… 일반적인 암살자라면 상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금물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흥, 그래봐야 네놈을 처리하느라 말레온이 죽는 것이 조금 늦춰질 뿐이다!”
어깨를 베인 것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카르노프가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는 것과는 달리 말레온 경은 그를 상대하느라 부상이 더 악화되었는지 움직이기조차 힘들어보였다.
“난 괜찮으니 물러나게. 그러다 자네도 죽네!”
탁한 기침을 내뱉으며 설득력이 없는 소리를 하는 말레온 경에게 아버지는 태연하게 말했다.
“잠시나마 쉬고 계십시오. 이자는 제가 상대할 테니.”
그 말에 카르노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미치겠군. 가소로운 소리를 하는구나! 말레온을 마무리 지어야하니 빠르게 끝내주마!”
카르노프의 도끼날에 푸른 오러가 거칠게 피어올랐다.
“아버지! 위험해요!”
거리가 멀어서 들릴 리가 없는데도, 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곁에 있던 아리안 누나가 당혹해하며 물었다.
드래곤의 감각으로 멀리 떨어진 곳도 마음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아리안 누나에게는 저곳의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가 위험… 어?”
입술을 깨물며 대답해주던 나는 내 눈에 들어온 광경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말도 안 되는?! 암살자 따위가 오러 마스터라고?!”
아버지가 쥔 소검에서 피어오른, 전혀 흐트러짐 없는 형태와 밝은 빛을 지닌 오러를 보며 카르노프가 경악했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잖소? 나름대로 실력으로 조직의 수장 자리에 오른 몸인지라.”
담담하게 대답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더 화가 난 듯 카르노프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암살자치고는 칭찬해줄만 하다만 네 놈의 오러에 담긴 기세를 보아하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을 터! 이 몸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의 말대로 불타오르듯 피어오르는 카르노프의 오러에 비하면 아버지의 오러는 초라하게 일렁거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쳐대는 카르노프의 목소리가 거슬린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쪽은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안되는 병이라도 걸렸소? 뭐 나야 그렇게 그쪽이 흥분해대면 독이 더 빨리 퍼지니 좋긴 하다만.”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으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 독이라고?!”
흥분하면 독이 더 빨리 퍼진다고 말해줬음에도 흥분하며 소리치는 카르노프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아버지가 대답해주었다.
“암살자가 아무 생각도 없이 나설 거라고 생각했소? 오러 마스터이니만큼 독으로 죽이기는 힘들더라도 약화는 되겠지.”
<그렇군. 처음부터 오러를 사용해서 암습하지 않은 것은 칼날에 발라둔 독이 타버릴까봐 그랬던 건가.>
상황을 파악한 듯 카이서스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등 뒤를 노린 공격은 애초부터 카르노프를 중독 시키기 위한 거였나.
“이… 이 비겁한!”
“암살자에게 있어 비겁할 것이 뭐가 있겠소? 아, 슬슬 반응이 오는 것 같군. 꽤 귀한 독을 사용한 보람이 있어.”
카르노프의 코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아버지는 입가를 슬며시 들어 올리며 웃어보였다.
손등으로 코를 닦아보곤 묻어나오는 검은 피에 당황하는 카르노프에게 아버지는 이어 말했다.
“참고로, 계속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던 것도 독이 퍼질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소. 처음부터 끝까지 흥분해서 독이 더 잘 퍼지게 해준 것은 생각 외였지만.”
비웃음이 가득 담긴 아버지의 말에 카르노프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이놈! 죽어라! 아무리 내가 중독되었다 해도 네 놈 혼자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독에 당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껏 도끼를 휘둘러오는 카르노프를 아버지는 가볍게 땅을 박차며 뒤로 피했다.
“하나 물어보겠소만, 어째서 내가 혼자서 당신을 상대할 거라 생각한 거요?”
“뭐?”
당황하는 카르노프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옴과 동시에 내 옆에서 강렬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익스플로전!”
아버지 때문에 혼란스런 상황인데다 중독으로 인해 감각이 무뎌진 탓이었는지 카르노프는 자신의 발밑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격류와, 뒤이어 터져 나오는 폭발에 반응하는 것이 늦었다.
“내가 이딴 식으로……!”
쾅-!
카르노프의 뒷말은 폭발음에 삼켜졌기에 아무리 나라고 해도 들을 수가 없었다.
“후, 네 부친이 예상한대로구나.”
익스플로전을 시전한 대스승님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아버지와 사전에 협의가 되어 있던 모양이다.
어느새 아버지는 카르노프가 쓰러지고 난 후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뒤로 물러난 말레온 경을 대신해 검은 마인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가 오러 마스터라고는 해도 말레온 경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인 데다 암살자라는 특성상 정면 승부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검은 마인을 상대하는 아버지는 조금 힘겨워하는 듯했다.
이래서야 간신히 버텼을 뿐,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의 상황이 예상된 거라면 이후의 계획도 있는 건가요?”
아버지가 치명상을 입힌 검은 마인에게 블레이즈 캐논을 날려 보내곤 대스승님에게 물었다.
“으음, 우리 측의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제국군이 알아낸다면 그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 이제 남은 건 지원군이 언제쯤 당도하느냐인데…….”
지원군? 그러고 보니 제국군이 공격해 오기 직전 말레온 경이 지원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이곳의 상황이 어려운 만큼 다른 곳도 힘겨운 상황이라 지원 와줄 만한 군대가 있던가?
“지원군이라니요? 대체 어떤……”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계속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뭔가 일이 생긴다는 건 내 착각이겠지.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크기에 걸맞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회백색의 금속으로 사방을 두른 사각형의 무언가가 큰 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요새를 향해 다가오던 제국군도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채만 한 크기의 금속 덩어리가 다가오는 일은 겪어본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열 개라면 더더욱.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제국군의 측면으로 다가오던 금속 사각형들이 멈춰 섰다.
그리고 그중 하나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체만 보임에도 짧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남자는 드워프였다.
그는 음성 증폭의 마법이 걸려 있는 듯한 깔때기를 들고는 소리쳤다.
“야, 이 제국 자식들아! 이것은 이동요새라는 것이여! 죽기 싫으면 얌전히 항복하라고!”
그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제국군 일부가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움직이는 쇳덩어리가 나타났다고 항복할 만큼 제국군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제국군 쪽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치고, 드워프를 향해 화살이 날아갔다.
짧고 땅딸막한 체형임에도 재빠르게 창문 뒤로 숨어 화살을 피한 드워프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비겁한 놈들, 말하고 있는데 화살을 쏴? 활 쏜 놈 너 내가 얼굴 봤다! 거기 꼼짝 말고 서 있어! 내가 이동요새를 끌고 가서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어!”
그렇게 말하곤 창문을 닫자마자 이동요새라는 쇳덩어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저건 뭘까요?”
“글쎄… 나도 처음 보는구나.”
대스승님조차도 저런 것은 처음인지 당황한 눈치였다.
<나도 저런 건 처음 본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카이서스조차도 모르는 것을 보니 지금껏 세상에 나온 적이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