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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18화 (118/150)

118화 - 인조 마인

“아, 아버지? 아버지가 왜 여기 있어요?”

내 물음에 아버지는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제국의 비밀 병기가 나타났다고 해서 알아보러 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비밀결사 조직의 수장이었지.

얼떨떨해하는 나를 내버려 두고 아버지는 아리안 누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갑자기 내 아버지를 이런 곳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아리안 누나는 당황해서 옷매무새를 만지다 그 시선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청색 마탑의 아리안입니다.”

“데스웬일세. 방금 들었다시피 라엘의 아비지. 앞으로도 이 녀석을 잘 부탁하겠네.”

담담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잔뜩 긴장한 아리안 누나가 주먹까지 꽉 쥐며 말했다.

“네, 아버님.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긴장하다 못해 결의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때문인지, 아버님이라는 호칭 때문인지 아버지는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웃음까지 보였다.

“그보다 시간이 문제라니 무슨 소리예요?”

어쩐지 아버지와 아리안 누나가 사이좋은 모습이 눈꼴시었던 탓에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는 듯한 말이 나왔다.

내 태도에도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하게 대답해 주었다.

“검은 괴물들은 뭘 처먹었는지 지치지도 않는데 우리 쪽은 전부 괴물이 아니라서 시간이 갈수록 피로가 쌓인다는 거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대도 못 할 정도로 강한 데다 죽으면 폭발까지 하고, 심지어는 지치지도 않는다고?

“게다가 처음에는 무작정 달려들던 검은 괴물들이 이제는 생각이라는 걸 하는지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는 번갈아가며 덤비더군. 게다가 죽이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부상은 빠르게 치유하는 모양이야.”

전투를 치를수록 놈들의 경험이 늘고, 그만큼 상대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죽지만 않으면 금방 회복한다니…….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아버지의 말에 아리안 누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러 마스터들조차 상대하기 힘들어할 정도라면 일반 병사들은 상대도 안 될 터.

들어오면서 보았던 병사들의 두려움이 이해가 되었다.

“그에 비해 제국 쪽의 오러 마스터들은 힘을 비축하며 뒤에서 기다리고 있지, 아마 우리 쪽의 오러 마스터 셋 중 하나가 틈을 보이는 순간……”

아버지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뒷말은 뻔히 짐작이 되었다.

나와 아리안 누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말레온 경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나섰다.

“자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오늘내일하는 상황은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는 말게, 게다가 조만간 지원도……”

하지만 그의 말 역시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놈들이 다시 공격해 옵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안으로 들어온 기사의 보고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랜스터 경과 발키온 경은?”

“이미 전투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단 말에 말레온 경이 대스승님과 세르바인 님, 그리고 아버지를 보았다.

“일단 저도 맡은 자리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게. 이 두 아이들도 도울 걸세.”

대스승님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우리도 서둘러 움직이지. 너희는 날 따라와라.”

대스승님의 말에 세르바인 님과 아버지도 방을 나섰다.

나와 아리안 누나는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 새도 없이 대스승님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대스승님이 자리를 잡은 곳은 요새의 두터운 성벽으로 보호받고 있는 첨탑의 꼭대기였다.

높은 곳에서 보니 말레온 경과 다른 오러 마스터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요새의 성벽 위에 흩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국군이 어느 쪽으로 올라오든 즉각 대응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들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은 쉴 새 없이 소리치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가끔 날아오는 화살은 이 친구들이 막아줄 거다.”

대스승님은 먼저 첨탑 위에 올라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방패병들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거친 전투일 테니 각오 단단히 해둬라. 그리고 제국 쪽의 마법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으니 조심하고.”

담담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대스승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섞여 있었다.

“놈들이 옵니다!”

방패병 중 하나가 외치는 소리에 우리는 밖을 내다보았다.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며 멀리서부터 제국의 수많은 병력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앞에 따로 떨어져서 달려오고 있는 검은 갑옷의 기사 수십여 명.

저들이 바로 그 검은 괴물들인 모양이었다.

멀리서 봐도 확연히 느껴지는 섬뜩한 분위기로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온 것과 동시에 카이서스의 잔뜩 열받은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친 새끼들이… 하다 하다 이제는 아예 마인을 만들었군.>

‘마인이라고?!’

<그래.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긴 하다만 마물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역겨운 것이 존재할 수가 없지.>

‘마인이라면 마계의 인간을 말하는 건가?’

카이서스는 내 물음에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저것들은… 마계와 중간계의 마나와 마기가 뒤섞여 있다. 여기서 만들어냈다는 거다!>

‘그 말은 인간을… 마물로 만들었다는 거야?!’

내 말에 카이서스는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도 만들어냈다는 것이 더 위험하다. 마계에서 불러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대로 불러올 수도 없거니와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위험성도 높지. 하지만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 놈들에게 능력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다!>

“뭐?!”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왜 그래?”

곁에서 스태프를 움켜쥔 채 적들을 응시하던 아리안 누나가 내 비명에 걱정스러워하며 쳐다보았다.

대스승님도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것들… 사람이 아니에요.”

내 말에 대스승님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니겠지, 저런 괴물들이 어딜 봐서 평범한 사람이겠느냐.”

“아뇨, 그게 아니라 마인이에요! 인간과 마물을 섞어서 만든!”

“뭐라?!”

뭔가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강화한 것이라 예상하던 대스승님은 내 말에 경악하더니 이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인을 만들어냈다니… 일단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고 나서 생각하자꾸나.”

“예.”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는 저것들이 마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선두에 선 마인들은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오는 화살을 손에 든 검은 몽둥이로 빠르게 쳐내고, 거칠게 날아드는 각종 마법들을 보고 피해내면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새 성벽 앞까지 도달한 검은 마인들 중 일부가 둘씩 짝을 짓더니 손을 맞잡았다.

‘뭘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자마자 뒤이어 달라오던 다른 검은 마인들이 맞잡은 손 위에 올라탔고, 손을 맞잡고 있던 검은 마인들이 그대로 띄워 올렸다.

“나, 난다?”

띄워 올려진 검은 마인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요새의 성벽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발사!”

그와 동시에 요새 내부에 준비되어 있던 투석기에서 쏘아진 바위들이 떨어져 내리는 마인을 향해 날아갔다.

몇몇 바위가 날아오던 마인을 맞혀서 다시 날려 보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맞지 않고 달려오는 제국군들의 위로 떨어졌다.

투석기의 바위 세례를 피한 마인들을 맞이한 것은 세르바인 님이 이끌고 있는 마법사들이 쏘아 보낸 마법이었다.

워터 캐논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며 마인을 다시 뒤로 날려 보내고, 인비지블 핸드에 붙잡힌 마인은 성벽을 넘어오기 직전에 붙잡혀 그대로 떨어졌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아이스 스피어를 마인은 공중에서도 몽둥이를 휘둘러 쳐냈으나 그 반작용으로 인해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 외에도 각종 마법들이 마인들이 성벽 위로 넘어오지 못하게 쳐내고 밀쳐냈다.

조금 전까지 전해 듣고, 성벽으로 다가오면서 보인 마인의 능력이라면 하나같이 피해를 입히기 어려웠을 테지만 저런 상황에서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아무리 재빠르게 움직인다 해도 공중에선 피하지 못할 테니까.

검은 마인들은 계속해서 뛰어올라서 진입하려 시도했고, 투석기가 쉴 새 없이 바위를 쏘아 보내며 요격했으나 진입에 성공한 마인이 나타났다.

쾅!

떨어질 때의 굉음을 들어보니 검은 마인이 걸치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상당한 듯했다.

마인 둘이서 마인 하나를 집어 던지다니… 심지어 성벽 위에 착지한 마인은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졌음에도 전혀 피해가 없어 보였다.

첫 번째 마인이 착지함과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말레온 경이 빠르게 다가가 자신의 대검을 휘둘렀다.

캉!

말레온 경의 대검과 검은 마인이 휘두른 쇠몽둥이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성벽 위에 울려 퍼졌다.

거기에 성벽에 당도한 제국의 병사들이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며 외치는 함성과 올라오는 적을 쳐내며 사다리를 부수려는 아군의 고함 소리도 뒤섞였다.

검은 마인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모습은 오싹할 정도로 흉포했으나 오러 마스터인 말레온 경의 상대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마인을 압도해 가는 말레온 경을 응시하던 대스승님이 내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시범을 보여줄 테니 잘 보거라.”

그렇게 말하곤 말레온 경과 마인의 전투를 지켜보던 대스승님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말레온 경의 대검이 마인의 가슴팍을 깊게 베고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블레이즈 캐논!”

말레온 경이 곧장 뒤로 물러나자마자 시전 된 화염덩어리가 빠르게 쏘아져간 곳은 깊게 베인 마인의 가슴팍이었다.

“끼아아아아!”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비명을 내지르며 마인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성벽 너머로 날아갔다.

잠시 후 성벽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국군의 병사들 사이로 떨어진 검은 마인이 폭발한 것이다.

“잘 봤겠지? 타이밍과 각도가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안 맞거나 각도가 잘못되면 아군이 다칠 테니까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시는 것치고 그 내용은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조금만 빨리 마법을 시전하면 우리 측의 오러 마스터도 휘말리고, 늦으면 그대로 마인이 폭발한다.

게다가 각도가 삐끗해서 아군 병사들 쪽으로 마인이 떨어졌다간… 내 손으로 아군 병사들을 학살하는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 파이어 볼트보다 빠르고, 불덩어리를 이루는 마나로 강력한 타격을 가해서 날려 보내는 데다 불태워서 확인 사살까지 하는 블레이즈 캐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흠, 쉽군.>

이라고 잘나신 드래곤은 말했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간 대가가 너무 크다.

<걱정 마라, 나와 정신을 공유하는 이상 그런 허접한 실수는 없을 테니. 나만 믿어라!>

대부분의 방면에선 그리 믿을 만한 놈이 아니지만 지식과 마법에 대해서는 믿을 만했기에 해보기로 했다.

아니, 하는 수밖에 없지.

<잠깐만, 대부분의 방면이라니? 어떤 면을 말하는… 에잇! 끝나고 나면 두고 보자!>

그러는 사이에도 세르바인 님이 조정하는 투석기의 바위를 피해 성벽 위에 착지한 마인들과 오러 마스터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대스승님이 보여주신 대로 오러 마스터들과 마인의 전투를 지켜보다가 마인이 치명상을 입으면 블레이즈 캐논을 이용해 마인을 적진으로 날려 보냈다.

짬짬이 성벽 위로 올라온 제국 병사들에게 파이어 볼과 같은 간단한 마법을 날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8서클 수준의 파이어 볼은 당하는 입장에선 전혀 간단하지 않겠지만.

“으아아아!”

폭발하며 뒤로 넘어가는 사다리에 한가득 매달려 있던 제국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아군 병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면서도 재차 올라오는 사다리를 상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 해도 마인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기에 성벽 위의 마인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세 마리의 마인이 덤벼들자 오러 마스터들의 움직임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다른 마인들은 방해 없이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위에 맞아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듯 마인 몇 마리는 팔다리가 부러졌는지 움직임이 둔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병사들을 상대로는 무척이나 강했다.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기사들이 마인 하나를 협공하고는 있으나 피해가 속출했다.

“으음… 이전에는 다친 놈들은 그대로 뒤로 빠지더니… 오늘은 뭘 잘못 처먹은 모양이구나!”

그 모습에 대스승님은 당혹해하며 소리치면서도 쉴 새 없이 파이어 볼트를 날리며 오러 마스터들이 상대하지 못하는 마인들을 견제했다.

지난 전투까지는 마인들은 어느 정도 다치면 뒤로 물러났던 모양인데 어째선지 지금은 팔다리가 부러져도 악착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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