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충격과 공포
“황제 폐하께서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도저히 모르겠군.”
노장의 말투는 담담했으나 표정에선 숨기지 못할 못마땅함이 그대로 나타났다.
타이런 제국 2군단장 프레이 마리우스는 자신의 하얗게 샌 수염을 매만지고는 곁에 있던 부관에게 말했다.
“그래,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지원군’은 어디까지 왔나?”
“곧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알았다, 전 병력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도록 전하고 천인장 이상 장교들을 불러오도록.”
“예!”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린 마리우스는 부관이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막사를 나가자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전쟁을 시작한 이상 예전처럼 프레첸 제국이 개입해 오기 전에 어떻게든 속전속결로 끝을 봐도 모자랄 판에 공세를 늦추라는 명령이 내려왔을 때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크라우드에 새로운 대마법사가 나타났다고 하질 않나,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이종족연합이라는 것들이 크라우드에 붙지를 않나.
아군에게 있어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만이 들려왔다.
그러던 중 어제 새로 전달받은 명령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백가량의 지원군이 도착하는 즉시 공격을 재개하라니.
이제라도 공격을 재개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고작 일백의 지원군이 온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지원군이라는 것들의 정체조차 알 수가 없으니… 쯧!”
그는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2군단장이라는 직위에 걸맞게 제국군의 편제에 대해서는 빠삭한 프레이였으나 이번에 지원군으로 온다는 집행자라는 부대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이곳은 곧 수만의 병력이 맞붙을 전장이다.
“고작 일백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프레이는 바깥에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사들이 전투를 준비하며 소리치고 움직이는 소란스러움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지휘 막사를 나서며 프레이가 소리쳐 묻자 때마침 달려오던 부관이 대답했다.
“그것이…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거냐! 그들이 도착한 게 전투를 준비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고!”
“지원군으로 온 자들을 본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지원군을 보고 동요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라는 의미를 담아 프레이가 눈을 찡그리며 묻자 부관은 난감해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게… 말로 설명하기가 곤란합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해 온 부관이었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끄응, 그들을 데리고 와라.”
결국 부관의 말대로 그는 황제의 지원군을 직접 보기로 했다.
“1대대가 선봉에 서고 2대대와 3대대는 각자 좌우에서 뒤따르며 적진의 우회를 막도록. 그리고……”
부관을 보낸 이후 도착한 장교들에게 전투에 앞서 지시를 내리던 프레이는 갑자기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말을 멈췄다.
멀리서 주춤거리며 길을 여는 병사들 사이로 황제의 지원군임이 분명한 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지원군의 면면을 본 프레이는 부관이 어째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이었다.
전신을 갑옷으로 가린 탓에 생김새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나 투구의 틈으로 보이는 붉은 안광과 마주치면 소름이 절로 돋았다.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는 것 같은 기분.
거기다 무기도 하나같이 갑옷 색과 맞춘 듯한 검은색 쇠몽둥이였다.
일반 병사들이 이들을 보고 동요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누가 지휘관인가?”
그의 물음에 검은 기사들에게 가려 잘 보이지도 않던,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작은 체구의 마법사가 앞으로 나섰다.
“황제 폐하 직속 특무부대 ‘집행자’ 소속의 루만 하스웰 남작입니다. 과분하지만 제가 이 집행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제국군 2군단장 프레이 마리우스 후작일세. 그런데 내 앞에서는 후드를 좀 벗지 그러나?”
못마땅한 기색을 숨길 기색이 없어 보이는 프레이의 모습에 루만은 천천히 후드를 뒤로 젖혔다.
“송구합니다. 제 얼굴이 그리 보기 좋은 편은 아닌 터라…….”
확실히 그의 말대로 후드를 벗자 보인 얼굴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비쩍 마른 데다 얼굴 전체가 흉터와 화상자국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본 후에 보이던 태도를 떠올린 루만은 쓰게 웃어 보였다.
“얼굴 좀 못생긴 것 가지고 내 앞에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건가? 쯧!”
끔찍한 몰골을 그저 못생긴 것 정도로 격하시켜 버리는 프레이의 발언에 루만은 오히려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무튼 잠시 후에 공격을 시작할 것이니 그대들은 뒤따르도록 하게.”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만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듣지 못하셨습니까? 이들이 선봉에 서게 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뭐라?”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부라리며 되묻는 프레이에게 루만은 명령서를 품에서 꺼내어 건네었다.
집행자를 선봉에 서게 하라는 명령서에는 황제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전장에서 선봉에 서는 부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실 터인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찌푸리던 프레이가 루만에게 물었다.
“듣자 하니 서둘러 오느라 게이트를 쉬지 않고 건너왔다던데. 괜찮겠나?”
못 미더워하며 묻는 말에 루만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저는 지금도 속이 미식거립니다만… 전투를 치러줄 이 친구들은 무척이나 튼튼한 덕인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잠시 침음을 흘리던 프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으니까.
“황제 폐하의 명대로 자네와 그… 뭐냐, 집행자들이 선봉에 서는 걸로 하지.”
루만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선봉을 맡겨야 한다는 게 여전히 못마땅한 프레이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곧 공격을 개시할 것이니 준비나 하게.”
“예.”
물러나는 루만의 뒤를 조용히 뒤따르는 검은 기사의 무리를 응시하던 프레이는 재차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인지는 몰라도 영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로군.”
이내 고개를 한 번 휘저은 프레이가 뒤에 있던 부관과 장교들을 불러 변경 사항을 전달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평원을 사이에 두고 양 진영의 병력이 대치하고 있었다.
전쟁이 소강상태인 동안 크라우드 측은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신들의 진영 앞에 구덩이를 파고, 목책과 울타리를 잔뜩 세워 방어를 굳건히 해두고 있었다.
“쯧, 놈들에게 괜한 시간을 주었으니 이리되는 것이 당연하지.”
그런 크라우드의 방어를 뚫어야 하는 입장의 제국군의 사령관인 프레이로서는 공세를 멈추라 했던 지난번의 명령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저들을 선봉에 세워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크라우드의 방어를 뚫기도 전에 전멸할 것 같습니다만…….”
곁에 있던 부관이 걱정스레 내뱉은 말에 프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집행자 부대는 본대와는 따로 떨어진 채로 가장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고작 100명 남짓한 숫자로는 크라우드의 방어를 뚫기 어려워 보였다.
심지어 그들의 손에는 방패조차 보이질 않아서 가까이 가자마자 화살에 벌집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럼 어쩌자고? 황제 폐하의 명을 무시하고 저들더러 뒤에 빠져 있으라고 할까?”
자신을 흘겨보며 짜증 내는 상관의 모습에 말을 꺼냈던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는 혀를 차며 다시 앞을 응시했다.
황제가 보내온 지원군이 가장 먼저 몰살당해 버리면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전쟁에서 사상자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제께서도 이해하시겠지.”
결단을 내린 프레이는 스스로에게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소리쳤다.
“공격!”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에 전투 개시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평원 전체로 퍼져 나갔다.
열과 오를 맞춘 채로 전진하는 군사들을 보던 프레이가 별안간 당황하며 소리쳤다.
“저런 미친! 저놈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가 소리치며 가리키는 곳의 끝에는 집행자들이 있었다.
본대와 속도를 맞춰서 전진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저 미친놈들, 그대로 죽겠다는 건가?!”
산전수전 다 겪은 프레이로서도 저런 참신한 자살 공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서 저놈들을 뒤로 물러나게 해!”
아무리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해도 황제가 신경 써서 보낸 병력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돌아올 수 있었다.
프레이가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부관이 당혹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무리입니다! 너무 빠릅니다!”
그들은 분명 말도 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속도가 말을 탄 기사들보다도 빨랐다.
결국 어찌 손쓸 새도 없이 집행자들은 크라우드군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섰고 기다렸다는 듯 화살 세례가 날아들었다.
“으음… 아니, 뭣?!”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프레이도 집행자 부대가 벌집이 될 것을 예상하고 침음을 흘리던 중 보이는 광경에 경악하며 소리쳤다.
집행자들은 빗발치는 화살을 피하거나 들고 있던 쇠몽둥이를 거칠게 휘둘러 쳐내면서도 달려가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끼아아아아아!”
순식간에 크라우드군의 목책 앞에 도달한 집행자들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그 한 번의 휘두름에 목책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괴, 괴물이다!”
“으아아악!”
그들이 순식간에 크라우드군의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자 양 떼 사이에 늑대 무리를 풀어놓은 꼴이 되었다.
하나같이 괴력을 지닌 집행자들의 쇠몽둥이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크라우드 병사들의 몸은 갑옷과 함께 짓이겨지고 터져 나갔다.
사람의 피와 살점으로 검은 갑옷이 붉게 물들고, 그 모습에 크라우드의 병사들은 재차 공포에 질렸다.
사람을 단숨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오우거 같은 놈들이 100여 명이나 된다.
심지어 소수의 인원인 그들이 넓게 퍼져 나가며 크라우드군의 진영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끼아아아아!”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괴성까지 쉴 새 없이 내질렀다.
보다 못한 기사들이 나서서 그들을 막아보려 했으나 검은 몽둥이가 몇 번 더 휘둘러졌을 뿐, 병사들과 같은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고작 100여 명이서 크라우드군을 유린하는 그 참혹하고 흉악한 광경에 아군인 제국군들조차 치를 떨며 두려워했다.
압도적인 무력과 잔혹함, 그리고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과도 닮은 괴성은 인간을 피아 구분 없이 공포로 몰아넣기엔 충분했다.
사령관인 프레이조차도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말을 잃고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는 소리쳤다.
“다들 뭘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거냐! 돌격해!”
프레이의 외침에 돌격을 의미하는 나팔이 울려 퍼지고 그제야 주춤거리던 병사들이 진격을 재개했다.
고작 100명의 집행자들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충격과 공포로 진영 내부가 흔들리던 크라우드군이었기에 제국군 본대의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갔다.
결국 크라우드군은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집행자들과 계속해서 밀려오는 제국군에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패배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일찍, 그것도 엄청난 격차로 끝나 버린 전장의 모습에 프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진 시체들과 도망치느라 아군에게 밟혀 죽은 자들의 시체들.
“살다 살다 이런 전투는 처음이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압도적인 공포가 불러온 결과였다.
아군마저도 공포에 질리게 한 집행자들은 언제 악마처럼 날뛰었냐는 듯 루만의 앞에 얌전히 도열해 있었다.
갑옷 전체에 덕지덕지 묻은 인간의 살점과 피를 떼어 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본능적으로 프레이의 머릿속에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폐하께서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도저히 모르겠군…….”
힘없이 중얼거리는 프레이를 대변하듯 제국군은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환호성을 내지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