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 마인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 이젠 아예 지원군이 전멸을 했다고?!”
보고서를 보곤 황당함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소리치며 황제는 전령을 노려보았다.
새해 첫 소식으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소식을 가지고 온 전령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했다.
“그, 그래도 다행히 4함대와 제 3마법병단은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분노에 전령이 변명이라도 하듯 조심스레 말해보았으나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다행이라고? 그러고도 살아 돌아온다는 게 다행이라고? 크라우드 놈들이 보내준 덕에 간신히 도망친 것이?”
자신을 노려보며 묻는 황제의 말에 전령은 겁에 질려 고개만 숙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던 황제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꼴도 보기 싫다. 썩 물러가라.”
“예, 예!”
부들부들 떨고만 있던 전령은 그 말에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황제의 집무실을 나섰다.
쾅!
“이런 망할! 또 그놈인가? 그놈이 나타나는 곳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게 하나도 없군!”
분을 못 이기고 책상을 주먹으로 거세게 내려치며 황제가 소리쳤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다 황제가 내던진 보고서를 조용히 집어 들고 읽던 루리스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인어들에게 쓸 만한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점령하고 있던 항구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더 이상의 피해 없이 물러날 수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어가 바다를 조종했다는 이야기였다.
바다를 조종한다니,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도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피식 웃어 보이는 루리스의 모습에 황제의 눈썹이 씰룩였다.
“네놈은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기라도 한 것이냐?”
“제가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해십니다.”
사뭇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여 보이는 루리스를 황제는 당장에라도 걷어차고 싶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아직 루리스는 쓸모가 많은 놈이었으니까.
“아침부터 찾아온 용건이나 이야기해 봐라. 만일 별것 아닌 일이라면 아무리 너라 해도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으르렁대며 말하는 황제의 모습에도 루리스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말했다.
“지시하셨던 것이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 말에 황제는 조금 누그러든 듯했지만 여전히 언짢은 기색이었다.
“일전에 말했던 병기라면 분명 올해가 되기 전에 완성품을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조금 늦었군?”
비아냥거리며 말함에도 루리스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결과물부터 보시지요.”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황제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걸음을 옮겼다.
집무실 책장에 다가가 무언가를 만지자 책장이 열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에서도 황제와 그 측근 몇몇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황제를 루리스가 뒤따라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자 여기저기로 뻗어 있는 지하 수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너 명이 탈 수 있는 보트에 올라탄 두 사람은 수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금 보러 가는 것은 제국의 황제가 이렇게까지 몰래 움직여야 할 정도로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될 끔찍한 것이었다.
“쯧! 이 몸이 이렇게 숨어 다녀야 하다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럼에도 제국의 지배자인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하는 것에 대해 황제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물이 튀지 않는 보트의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황제의 말에 끄트머리에 달린 관을 통해 마나를 불어 넣어 보트를 움직이던 루리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륙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힘이 모이게 된다면 다른 나라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테니까요. 물론 그 전까지는 철저히 숨겨야겠지요.”
그 말에 황제는 쯧! 하고 혀를 찰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빠르게 나아가던 보트는 또 다른 비밀 통로의 앞에 멈춰 섰다.
숨겨진 장치를 조작하자 열린 철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황제는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악취에 코를 막으며 루리스를 노려보았다.
“지독하군. 나를 부르면서 청소조차 하지 않은 건가?”
불쾌함이 잔뜩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도 루리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냄새는 좀 심하더라도 병기로서의 성능만 확실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황제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제가 곧 제국이라 생각하는 자로서는 이 악취로 인해 제국의 권위가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생각을 쉽게 읽어낸 루리스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조만간 이 악취가 전장에 풍기면 적들은 공포로 떨게 될 것입니다.”
“…흥. 어디 네 녀석이 자신하는 만큼 병기가 내 마음에 들어야 할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황제는 경고하듯 말했으나 옅은 미소를 띠었다.
황궁의 지하 깊숙한 곳에 마련된 넓은 공간은 수조들로 가득했다.
반투명한 검은 액체로 채워진 수조 안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몸을 웅크린 채 들어가 있었다.
“냄새만 지독한 줄 알았더니 생긴 것도 흉측하군.”
수조 안을 들여다보자마자 황제는 눈을 찡그리며 내뱉듯 말했다.
황제의 말대로 수조 안에 든 것은 결코 볼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덩치 큰 인간의 형상을 하긴 했으나 온몸의 피부가 짓무른 것처럼 일그러진 데다 두꺼운 핏줄과 힘줄이 뚜렷하게 겉으로 드러난 그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에 더욱 가까웠다.
눈을 찡그리면서도 이리저리 수조 안을 살펴보던 황제가 루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연을 해 보일 준비는 되어 있겠지? 어서 이것의 성능을 보고 싶군.”
흥미를 보이며 재촉하자 루리스는 이미 준비해 두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 편히 보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과연 수조로 가득한 공간을 지나가니 한층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의자가 있었다.
튼튼한 벽으로 주변을 둘러놓은 아래층은 투기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황제가 의자에 앉자 루리스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손뼉 소리에 투기장의 양쪽에 있던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한쪽에서 나타난 것은 수조 안에 들어있던 것과 같은 인간 형상의 무언가였다.
그러나 수조 안에서 얌전히 웅크리고 있던 것과 달리 눈을 뜬 그것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반대편을 쳐다보며 거친 숨을 내쉬는 그것의 눈은 흰자위까지 붉게 물들 정도로 충혈되어 있었고 뚜렷하게 드러나 있던 힘줄은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반대편의 문에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덩치의 오우거.
루리스의 괴물도 보통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지만 2미터에 달하는 오우거에 비하면 왜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다 인간들에게 잡혀 갇혀 있던 것으로 인해 잔뜩 화가 나 있었는지 숨을 씩씩 내뱉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통 사람이 본다면 비명도 못 지르고 덜덜 떨기만 할 것이 분명했다.
“호오, 흥미롭군.”
시연 상대가 오우거라는 사실에 황제가 흥미로워하자 루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결과는 더욱 흥미로우실 겁니다.”
주변을 올려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오우거가 그제야 반대편에 있던 괴물을 발견했는지 크게 포효하며 덩치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 숨을 거칠게 내쉬며 오우거를 응시하고 있던 괴물이 움직였다.
쏘아져 나가듯 달려든 그것은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는 대신 그대로 두 팔을 마주 휘둘렀다.
커다란 바위마저도 쪼개 버리는 오우거의 주먹을 직접 막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멍청한 짓이었다.
순수한 힘으로 오우거를 이길 수 있는 생물체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쾅-!
팔과 팔이 부딪치는 소리라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소리가 지하공간에 울려 퍼졌다.
“호오?”
황제는 더욱 흥미로워하며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앉은 채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오우거의 주먹을 향해 마주 팔을 휘둘렀던 괴물은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오우거의 주먹을 손으로 쳐내 뒤로 튕겨나게 했다.
쿠, 쿠워어?!
조그마한 것이 자신의 주먹에 짓뭉개지기는커녕 자신의 주먹을 쳐내자 오우거의 입에서는 당황으로 가득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앞에 있는 것을 짓뭉개려 했던 오우거는 자신의 상대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는지 슬쩍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괴물이 먼저 오우거를 향해 움직였다.
그르르르-!
오우거의 포효에 비하면 조용하다 못해 초라한, 그러나 소름 끼치는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괴물은 순식간에 오우거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대로 손을 뻗어 조금 전에 쳐냈던 오우거의 팔을 붙잡았다.
쿠워어?!
본능적으로 괴물이 하려는 짓을 눈치챈 오우거가 당황한 소리를 내었으나 저항하기에는 괴물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괴물은 자신의 머리통보다 두꺼운 오우거의 팔을 잡고, 발로 오우거의 배를 박찼다.
뿌드드득!
강철만큼이나 질기다는 오우거의 피부와 근육이 찢어지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괴물은 오우거의 팔을 말 그대로 뜯어낸 것이다.
크아아아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에 오우거는 듣는 사람의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괴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통스러워하며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는 오우거의 팔과 다리, 뼈와 살을 하나하나 분해하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오우거의 몸부림이 점차 그쳐가더니 이내 멈췄다.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루리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떠신지요?”
자랑하는 기색도 없는 태연한 루리스의 모습에 황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상적이야. 그런데 저것들을 통제하는 것은 문제가 없나?”
그 말에 루리스는 괴물을 향해 말했다.
“우리로 돌아가서 다음 명령을 대기해라.”
그 말에 근육을 부풀리고 있던 괴물의 거친 숨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조금 전의 흉포한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 모습을 드러냈던 문으로 얌전히 돌아갔다.
“표식을 가진 이에게는 절대복종합니다. 죽으라는 명령조차도요. 물론 다른 명령들보다도 황제 폐하의 명령이 우선하지요.”
절대복종이라는 말이 흡족한지 황제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성능은 충분한 것 같군. 얼마나 만들 수 있지?”
그 말에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던 루리스가 대답했다.
“재료만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면 매달 백 기가량 생산이 가능할 겁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움직이는 수많은 병력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기에 황제는 눈을 찌푸렸다.
“고작 일백?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건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황제에게 루리스는 차분히 설명했다.
“새로운 병기는 보셨다시피 일반 병사 수십 명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뜻 수는 적어 보이더라도 1년이면 수만의 병력보다도 강력한 군대가 완성되지요. 그것도 사기가 낮아질 일도, 발칙한 생각을 품지도 않는 군대가 말입니다.”
“흐음.”
황제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도 루리스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병기들을 하나로 모아 운용한다면 어떤 군대도 막지 못할 것이고, 나누어 배치한다면 제국의 군대 전체가 강해질 겁니다.”
황제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으나 실망한 기색은 많이 옅어져 있었다.
“얼마든지 재료를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해주지. 그 대신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황제 폐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루리스는 대답과 함께 잠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내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연이 너무 금방 끝나서 실망하실까 봐 다른 것들도 준비해 두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자랑하는 기색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루리스의 모습에 황제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 됐다. 충분히 만족했거니와…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군. 난 이만 가보겠다.”
병기를 연구 및 생산하는 공간 전체에 가득한 악취는 시연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황제는 말을 이었다.
“저것들에 대한… 음, 저것들은 이름이 뭐지?”
말을 하려던 황제는 방금 본 병기의 이름을 아직 못 들었다는 것을 깨닫곤 물었다.
“아직 이름은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실험체나 병기라고만 부르고 있었지요.”
“그럼 이참에 내가 지어주지. 흠… 집행자라고 하지.”
잠시 생각하던 황제는 이내 쓸 만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누가 들어도 대충 지은 듯한 이름을 무심하게 내뱉었다.
“예. 앞으로는 그리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집행자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하도록. 그럼 난 이만 돌아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야겠군. 신년맞이 연회에 악취가 배어든 옷을 입고 갈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뜨는 황제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무심하게 쳐다보던 루리스가 뒤돌아섰다.
“다들 작업을 재개하도록.”
그의 말에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모를 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조용히 움직였다.
하나같이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그들의 몸에서는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