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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04화 (104/150)

104화 - 참전

아버지가 떠난 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벌써 눈치채고 감시를 붙일 줄이야.

이전부터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다 이제는 두 나라가 전쟁 중이니 목숨을 노릴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 위험해지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네에게 방해가 되는 너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잖느냐. 너는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으니 쉽게 공격하진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겠지.>

카이서스의 말에 더욱 불안해졌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노린다면 내가 대응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니까.

<그게 싫으면 더욱 더 강해지면 된다. 누구도 함부로 네 심기를 거스르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쉽지, 제국처럼 거대한 상대가 겁먹고 대적조차 하지 않으려 할 정도의 강함이라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뭐 대충 메테오를 몇 번 던져주면 조용해지더라고.>

그건 좀 미친 놈이나 할 법한 발상이니 가볍게 못 들은 걸로 해야겠다.

걱정과 고민을 하던 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쉬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단장님께서 지금 찾으십니다.”

문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브를 매만지고 방을 나갔다.

다른 방에서 쉬고 있던 아리안 누나와 함께 병사의 안내를 받아 단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사람을 확인한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청색 마탑주님?!”

단장은 바로 아리안 누나의 스승이자 청색 마탑의 주인인 세르바인 님이었다.

어쩐지 아리안 누나가 너무 맘 편하게 따라오는 기색이더라니.

“그동안 많은 것을 얻은 모양이군.”

역시나 스승님과 비슷한 경지의 마법사이기 때문인지 나의 수준이 올라간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물론 여러모로 내가 감추고 있기에 내가 인간 최초의 9서클에 올랐다는 것은 모르겠지만.

“세르바인 님이 단장님으로 계시다는 건 전혀 못 들었습니다.”

“허허, 그야 당연하지. 내가 일부러 자네에겐 말하지 말라고 해뒀으니까?”

“어째서입니까?”

“그야 조금 전처럼 자네가 놀라는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으음, 뭔가 이전에 알던 진중한 세르바인 님이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내 귀여운 제자에게는 잘해주고 있겠지?”

짐짓 마음 상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세르바인 님의 말에 아리안 누나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스, 스승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 이거… 청색 마탑에도 나와 아리안 누나의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그 관계가 알려진 거구나.

나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전에 청색 마탑에서 지낼 때 느낀 건데… 거기 사람들은 아리안 누나를 무척 아꼈었지.

귀여운 손녀, 멋진 친구, 존경하는 선배 등등…….

아리안 누나의 아랫사람들 중에는 거의 추종하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만약 아리안 누나에게 잘못하기라도 하면 단체로 몰려와서 매달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허어, 나는 결혼도 안 했건만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세르바인 님이 탄식하듯 말하자 아리안 누나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릴 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고 적색 마탑의 카밀라처럼 될 거라더니… 청색 마탑주인 나의 자식과도 같은 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얼마나 질투가 났는지 아느냐?”

“스, 스승님.”

옛날이야기까지 꺼내며 놀리는 스승의 모습에 아리안 누나가 곤란해하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아리안 누나는 어릴 때부터 세르바인 님의 밑에서 자라다시피 했으니까.

이대로 두면 세르바인 님이 아리안 누나를 너무 놀릴 것 같아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세르바인 님, 저희가 속한 마법지원단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부단장으로 임명받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세르바인 님이 단장이시라는 것도 몰랐고요.”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웃음기 띤 얼굴로 아리안 누나를 놀리던 세르바인 님이 진중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게 당연하지. 자네가 출발하기 전까지도 완전히 편성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네? 그게 무슨……?”

“한마디로 이번 전쟁 때문에 급조된 집단이란 거지. 전쟁이 발발한 후에 국왕께서 내게 친히 도움을 청하시니 여기저기서 불러 모으기는 했는데,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었거든.”

“그러면 지금은 정해진 겁니까?”

“그래. 일단은 지원단이라는 이름대로 전선의 각 부대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할 걸세. 전면적인 전투에 나서기에는 내가 불러온 마법사들이 대부분 골방에 처박혀서 수련과 연구만 하던 작자들이라서 말이지.”

“그럼 전쟁에 나서기엔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원단으로 후방지원만 할 걸세. 거기다 보험으로 자네를 불러온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

“네?”

“적색 마탑주의 제자이자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라면 이 늙은이의 호위로 쓰기엔 딱 아닌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혼자 집단의 호위를요?

게다가 나이가 많으신 건 맞지만 스스로를 늙은이라 말하시는 건 마나의 힘으로 인해 전혀 늙어 보이시지 않는 탓에 어색합니다만.

“대부분의 인원이 군대와는 연도 없던 작자들인 터라 이름도 군대 냄새가 덜 나게 지원단이라고 칭했는데 직접 전투에 뛰어들기는 무리지! 하하!”

부대가 아니라 단이라고 칭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줄이야.

“으음… 그럼 저희는 언제부터 움직이게 되는 겁니까?”

“자네가 왔으니 이제 우리도 움직여야지.”

그렇게 말하며 손짓하며 나를 부른 세르바인 님이 책상 위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갈 곳은 여기라네. 워낙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 탓에 피해가 극심하다는군. 주변의 다른 지역도 상황이 여의치 못한 데다 사방이 제국군이라 지원군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힘든 상황에 우리가 간다고 해서 전황을 바꿀 수는 있을까?

그런 내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 세르바인 님이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일단은 피곤할 테니 지금은 가서 쉬도록 하게. 내일부터는 준비하느라 바빠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대답하고 돌아 나가려는데 세르바인 님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아, 쉬더라도 아리안의 방에서 함께 쉰다거나 그랬다간 가만 안 둘 테니……”

“피곤하지?! 어서 나가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장난삼아 말하는 세르바인 님의 말에 아리안 누나가 황급히 내 등을 떠밀었다.

쉬러 돌아가는 게 아니라 숫제 탈출을 감행하는 듯한 기세였다.

서둘러 나를 데리고 나온 아리안 누나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장난이 심해지셨다니까… 일단 오늘은 너도 방에서 푹 쉬도록 해.”

“네, 네.”

나 역시도 당황스러웠기에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쯧쯧, 이 상황에선 은근슬쩍 분위기를 타서 끝까지 가야지.>

‘미친놈아, 이런 상황에 끝까지 가기는 뭘 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전장으로 떠나기 직전이 가장 성공률이 높거든? 거기다 서로를 좋아하는데 무슨 문제야?>

‘그렇게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건 싫다고.’

<하, 멋진 곳에서 분위기 잡아가면서 하고 싶단 거군? 하여간 애송이라니까. 앞을 기약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탐하는 게 얼마나 흥분되는지……>

‘아, 됐거든?! 갑자기 뭔 변태 아저씨 같은 말을 하는 거야? 난 잠이나 잘 거니까 헛소리는 그만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운 나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뜻으로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뭐? 변태라고?! 아무래도 쥐꼬리만큼 짧은 생을 살아와서 잘 모르는 모양이니 내가 좀 가르쳐 줘야겠군, 후후후.>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시작된 카이서스의 유희 시절 이야기 중에서 주로… 밤의 이야기.

귀를 막아봐야 머릿속에서 들리는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던 터라 나는 결국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시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들을 수밖에 없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던 중에 갑자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을 보니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밤을 새웠다는 피곤함보다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수준의 고차원적인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비척거리며 걸어가서 힘겹게 문을 열었다.

“어… 라엘? 괜찮아? 어쩐지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문을 열자마자 아리안 누나가 내 얼굴을 보고는 걱정하며 물었다.

“잠을 좀 설쳐서요.”

사실 설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못 잔 거지만.

수많은 세월 동안 유희를 즐기며 여러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카이서스의 생생하고 끈적끈적한 경험담들은 아직 한 번뿐인 인생의 중반조차 들어서지 못한 내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강렬했다.

“어디 아픈 거야? 얼굴도 빨갛고… 열도 있는 것 같은데?”

아리안 누나의 고운 손이 이마에 닿자 나의 맥박이 빨라졌다.

지, 지금 머릿속에 온갖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 찬 상태에서 아리안 누나의 손길은 너무 위협적이야.

<피곤한 것치고는 몸에서는 무척이나 건강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 좀 닥쳐!’

“아직 세수도 안 했더니 졸려서 그런가 봐요! 잠시만 기다려 줘요!”

영문을 몰라 하는 아리안 누나를 두고 나는 황급히 문을 닫고 들어와 자기 전에 가져다두었던 대야에 얼굴을 처박고 거칠게 세수를 했다.

차갑지는 않아도 물이 머리를 적시자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고 진정되는 듯했다.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는 다시 문 밖으로 나갔다.

“괜찮은 거 맞지?”

“괜찮다니까요.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점심식사 이후에 이동할 거니 다들 필요한 것을 챙기고 준비를 해두래.”

조금은 굳어 있는 표정과 목소리.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품속의 마법주머니에 담겨 있으니 준비를 해야 할 것은 따로 없다.

굳이 준비해야 한다면 마음의 준비겠지.

* * *

마법지원단의 마법사들 대부분이 체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이동속도는 느렸지만 규모가 작은 덕에 제국군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나흘 후, 우리는 피해가 극심하다는 빌헬름 요새에 도착했다.

절벽을 등지고 야트막한 언덕 위쪽에 위치한 작은 요새는 그동안 제국군의 공세를 막아내는 동안 곳곳이 손상된 상태였다.

“전황이 좋지는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였습니까?”

요새의 상태도 상태였지만 안으로 들어간 후에 보이는 풍경은 더욱 참담했다.

곳곳에 부상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그나마 멀쩡한 자들도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으음,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꽤나 바쁠 것 같아.”

세르바인 님은 혀를 끌끌 차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던 중 고위급으로 보이는 기사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빌헬름 요새의 수비대장인 텔 마이어라고 합니다.”

“반갑소. 마법지원단의 단장인 세르바인 저스트요. 전달받은 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하오만.”

“사흘 전에 제국군이 다시 공격해 왔습니다. 사투를 벌인 끝에 격퇴시키긴 했으나……”

뒷말은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병력 충원과 보급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제국과는 달리 여러모로 불리한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상황이 나빠지겠지.

“일단 서로 인사는 나중에 합시다. 우선은 부상자들을 중상자와 경상자로 나누어주시오.”

“예!”

마탑의 주인이라는 권위 때문일까.

수비대장은 군말 없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움직였다.

백색 마탑 출신을 비롯한 치료마법이 주특기인 마법사들을 중심이 되어 움직였다.

지쳐 있던 병사들도 애써 몸을 움직이며 부상자들을 옮겼다.

“경상자들은 치료 후에 조금 휴식을 취하면 움직일 수 있을 거요. 하나 중상자들은 치료가 오래 걸리는 데다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은 움직이기 힘들 테니 쉴 수 있는 곳을 따로 마련해야 할 거요.”

“예.”

세르바인 님의 지시하에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사이 주특기가 다른 마법인 사람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흙을 굳혀 바위를 만들어서 부서진 요새의 성벽을 보강하고… 또……

정정한다.

치료와 대지계열의 마법이 주특기가 아닌 자들은 그다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솔직히 치료와 공사에 유용한 대지계열이 아니면 여기서 할 만한 건 제한적이니까.

애초에 지원단이라고 해도 숫자가 적다 보니 보급품을 들고 와서 지원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 비전문인 마법사들도 조금 수준이 떨어지기는 해도 치료마법을 사용해 부상자들의 치료를 도왔다.

으음, 내 실력을 전부 드러낸다면 뭔가 도움이 될 것이 많겠지만 그건 문제가 커지니 어쩔 수 없지.

열심히 부상자들에게 힐링을 시전하고 있는데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저 사람이?”

“잘못 본 것 아냐? 그런 사람이 여길 왜 와?”

“확실하다니까?! 전에 지난번 전쟁 때 본 적 있다고!”

주변에서 병사들이 나를 보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곤 소란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병사 하나가 소리쳤다.

“맞아! 그분이 맞아! 저 어벙한 얼굴! 확실해!”

그 병사의 말에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어벙한 얼굴이라니, 대체 누굴 말하는 거지?

내가 그 당사자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카이서스가 미친 듯이 웃었다.

<크하하하, 어벙한 얼굴이라니! 눈이 좋은 녀석이로군! 크하하하핫!>

그러고 보니 카이서스 자식이 이렇게 즐거워할 때는 대부분 내가 바보 취급을 당할 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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