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목숨을 걸어라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몸 전체를 가득 채운 것은 분노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개같은 도마뱀 새끼야!”
소리를 내며 터져 나온 내 외침에 카이서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난번에 너도 비슷한 것을 해보지 않았느냐.>
그 말에 떠오른 것은 지난번에 내가 7서클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 왔었을 때의 일.
카이서스의 조각상을 만지고 이동한 곳에서 마물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었다.
그런 곳에 누나를 보냈다고?
마물들이 환상이라 하더라도 피해를 입으면 머릿속에서는 사실이라고 여기기에 충격으로 죽을 수도 있다.
“어째서 그런 걸 누나에게……!”
소리치는 내 말을 끊으며 카이서스가 설명했다.
<내가 봤을 때 지금 네게는 절박함이 없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너는 어떻게든 될 거라는 한심한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 이건 네놈 머릿속에 있는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너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어. 그리고 멍청한 네놈 때문에 나까지도 같은 운명을 맞겠지. 나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아리안 누나를 위험하게 만들어서 내게 절박함을 느끼게 하려고 그랬다고?’
<그래, 확신할 수는 없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전력으로 싸우다보면 한계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니까.>
“이 미친 새끼야, 확신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미친 짓이잖아!”
<그럼 이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라도 있냐? 네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가는 중인데?>
“이……!”
한바탕 욕을 쏟아내려는 것을 카이서스가 혀를 차며 막았다.
<쯧쯧, 멍청한 놈. 나라면 그런 무의미한 소리나 할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물어볼 거다.>
나는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힘겹게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래서 뭘 해야 하는데?”
카이서스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는 됐냐?>
만일 이놈이 내 눈앞에 있었다면 노려보기라도 했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카이서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라.>
나는 카이서스가 말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있던 보물 창고 가장 안쪽의 좁은 공간은 벽면의 조명 외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건데.’
<조명대를 붙잡고 부숴 버린다는 감각으로 마나를 불어 넣으며 ‘이어받겠다’라고 말해라.>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내게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명대를 붙잡고서는 거칠게 마나를 불어 넣으며 말했다.
“이어받겠다.”
그와 동시에 바닥이 울리더니 조명에서 눈동자 한 쌍이 떠올랐다.
-반갑습니다. 저는 위대하신 레드 드래곤 카이서스 님이 만드신 마도 지성체, 트라디티입니다.
‘이건… 또 뭐야.’
내가 황당해하며 쳐다보고 있자니 트라디티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명령어에 따라 계승 절차를 시작합니다. 암호를 입력하여 주십시오.
‘카이서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계승이라니? 아리안 누나를 구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데.’
<일단 내가 불러주는 암호나 따라 말해라.>
‘아니, 대체 어떻게 되가는 건지 설명부터 해.’
<그럴 시간은 없을걸?>
카이서스의 말과 동시에 트라디티에게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10… 9…….
‘이건 또 뭔데.’
<암호 입력 제한 시간이지.>
‘시간 안에 말하지 못하거나 틀리면 어떻게 되는데.’
<벽 속에 잔뜩 숨어 있는 각종 살상용 함정들이 가동되겠지. 내 자랑 같기는 하지만 동족인 드래곤조차 반죽음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
그 강력한 드래곤도 반죽음으로 만들 정도면 나는 아주 피떡이 되겠네.
‘미친놈아!’
<크크크, 그러니까 순순히 암호나 따라 말해라. 암호는 ‘위대한 카이서스가 결국에는 옳았다’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3… 2…….
“으으, 위대한 카이서스가 결국에는 옳았다!”
-…1. 암호가 입력되었습니다. 계승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계승… 으아악!”
싸우다 보면 한계를 넘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지난번처럼 마물들과 계속해서 싸우는 것을 예상했었기에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설명을 요구하려 했으나 온몸을 뒤덮는 끔찍한 고통에 말을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수많은 마력과 지식이 몸과 머리에 직접 쑤셔 넣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조차하기 힘든 그 방대한 양과 밀도에 머리와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했다.
심지어 온몸이 마비된 듯 손끝조차 움직여지지도 않아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을 까뒤집으며 경련하듯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고작이었다.
‘크으윽! 대체 이게 뭐야?! 싸우는 거라며!’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힘겹게 머릿속으로 카이서스에게 말했다.
<싸우다의 의미로는 시련이나 어려움을 이겨내려 애쓰는 것도 있다만?>
‘이 사기꾼!’
힘겹게 내면의 소리를 내지르고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점점 정신이 흐릿해져 갔다.
<응?! 정신 차려라, 이 얼간아! 여기서 기절해 버리면 네 머리통과 심장이 터져 버릴 거다! 이렇게 어이없이 둘 다 한심하게 죽는 건 내 계획에 없었단 말이다!>
다급하게 나를 깨우듯 소리치는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려 했으나 너무 극심한 고통에 그저 잠시, 아주 잠시 동안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끄으윽… 안 되겠어…….’
이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마저 힘겨워질 정도로 고통이 심해졌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내 정신을 느낀 카이서스는 화가 난 목소리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길! 이 약해 빠진 놈이… 이대로 죽을 거냐?! 넌 몰라도 난 이대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점점 정신이 흐릿해지며 고통도 흐릿해져 갔다.
‘아… 이대로 죽으면 더 이상 고통스러운 일도 없겠지… 그나저나 카이서스 너는 나와 같은 감각을 느낀다면서 멀쩡하네? …헤헤.’
<그야 내 정신력은 네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니까 이 정도 쯤은… 이 아니라! 정신 차려라, 이 얼간아! 네가 좋아 죽는 그 여자를 죽게 내버려 둘 셈이냐?!>
빙글빙글 돌며 약에 취한 듯 몽롱해지던 도중 들려온 카이서스의 말에 뺨이라도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아리안 누나.
곧장 온몸을 찢어발기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썩을… 이게 다……’
“네놈 때문이잖아아아악!”
머릿속으로 간신히 떠올린 생각이 비명과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크크, 이 몸을 욕하는 건 이게 다 끝난 다음에 하도록 하고 끝까지 버티기나 해라.>
“젠즈아아아아앙!”
나는 전신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아리안 누나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카이서스를 향한 분노로 악을 쓰듯 토해내며, 견디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식 하나하나가 나의 뇌를 날카로운 칼날로 그으며 새겨지는 듯했고.
흉포한 마나가 내 심장의 살점을 뜯어 먹으며 빈자리를 채우는 듯했다.
“끄으으… 버텨주겠어! 으아아악!”
아무도 들어줄 사람 없는, 보물만이 가득한 창고의 한쪽 구석에서 나는 끊임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몇 시간, 아니, 며칠의 시간이 지나도록.
고통은 계속되었다.
* * *
제국에서 가장 사치스럽고 화려한 황궁의 어느 곳.
그곳의 궁전 중 하나에는 호화로운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대체, 얼마나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지?”
그 궁전의 주인은 자신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 한구석의 의자에 앉아 한숨 쉬듯 말했다.
모니카 황후의 얼굴에는 무력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몹시 지치고 피곤한 표정임에도 두 눈에는 분노가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틀 전에도 또 한 사람의 시녀가 이 궁전에서 사라졌다.
입궁한 지 겨우 두 달째라던, 갓 성인이 된 아이였다.
감금당하다시피 지내는 자국의 황후가 안타까워 바깥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1주 전에 갑자기 제국에서 크라우드 왕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던가.
그러한 큰일이 일어났음에도 자신의 궁전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모니카 또한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 하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수상한 행동도 없이, 그저 얌전히 지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시녀는 어느 날부터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보나 마나 이 궁전을 지켜보는 구경꾼의 말에 어딘가 한적한 곳에 묻히거나, 불길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을 터다.
단지 구경꾼이 시녀가 황후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숨어 있는 감시자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겠지.
그리고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동안 진정시키려 했던 분노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모니카 황후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떨어진, 이곳보다도 화려한 건물에서 구경꾼의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창밖 건너편, 황제의 거처인 1궁전의 가장 높은 테라스에서 황제와 루리스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카 황후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것을 알아챈 황제가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남았지?”
“두 달 정도만 지나면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로도 열 달 정도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황제는 흡족해하면서도 기다리는 것이 지겨운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열 달마저 지나면?”
“제국 전체가 슬퍼하며, 성대한 장례를 치르겠지요. 여러 부서의 관리들이 몇 달간은 제대로 퇴근도 못 하겠군요.”
장례식의 주인공이 될 사람보다 야근을 할 관리들을 불쌍해하며 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흠, 그러고 보니 저는 슬슬 퇴근할 시간이군요. 먼저 물러가 봐도 되겠습니까?”
“요즘 들어 일찍 돌아가는 일이 잦은데,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도 있나?”
가볍게 떠보듯 말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심을 모를 리 없는 루리스는 정중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퇴근하는 데 이유가 있겠습니까?”
“흥.”
흥미 없다는 듯 황제는 코웃음을 치며 이만 물러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조용히 뒷걸음질로 황제의 방을 나온 루리스는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기다린다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를 않는군.”
그는 마른 입술을 혀로 가볍게 적셨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계속해서 차오르고, 끝없이 충만해지는 마나로 인해 배가 고프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고통도 점차 줄어갔다.
아마도 몸이 적응했거나, 아니면 내 몸 안에 새겨지는 것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지.
어쩌면 둘 다 거나.
내 예상대로 어느 순간부터 손끝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다.
서서히 몸의 마비가 풀려가고, 마침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는 고통도 끝나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으로 품 안의 마법주머니에서 수통을 꺼내어 물을 마셨다.
바짝 말라 있던 입안과 목구멍을 시원한 물로 적시자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우.”
<나의 힘을 일부나마 계승한 것을 축하한다.>
‘닥쳐. 너한테 육체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니까.’
<크크, 내게 육체가 있었다면 네가 밟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냐?>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아리안 누나를 구하려면 뭘 해야 하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며 누나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카이서스는 약간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거? 돌아보면 내 아주 멋진 그림이 붙어 있는 벽이 보일 거다. 그 벽의 왼쪽 구석에서 네 어깨 정도 높이 부분을 눌러봐라.>
그 말에 고개를 돌리니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레드 드래곤의 그림이 보였다.
내가 처음 만났었을 때와는 달리 기운이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카이서스가 말한 대로 왼쪽으로 가서 어깨 높이의 벽을 더듬었다.
뭔가 수상한 곳을 발견하고 누르자, 작은 진동과 함께 벽이 움직이며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 아리안 누나가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큭큭, 하여간 속이기 쉬운 놈이라니까. 내가 왜 굳이 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겠냐?>
‘후우, 하여간 넌 정말… 두고 보자.’
투덜거리며 아리안 누나에게 다가가려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리안 누……나?”
가까이서 보니 아리안 누나의 눈은 살짝 풀려 있었고 표정도 뭔가 평소와는 달랐다.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다며!’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다고 했지 아무것도 안 했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냥 단순히 환상을 보고 있는 것뿐이다. 간단한 방법으로 깨워주면 금방 정신을 차릴 거다.>
그 말에 재차 안도하며 누나를 깨울 방법을 물으려던 차였다.
“흐으, 라엘… 더 이상은 못 참아…….”
아리안 누나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흉한 목소리에 나는 카이서스에게 묻는 것도 멈추고 아리안 누나를 쳐다보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던 아리안 누나가 손을 뻗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깜짝 놀라 아리안 누나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오늘에야말로 너를 가지고 말겠어!”
그렇게 말하며 아리안 누나는 무언가를 찢어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이, 이거 설마……
‘카, 카이서스?’
<어…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내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들이 환상 속에서 이성이 마비된 채로 멍청한 짓을 하는 걸 구경하려고 설치했던 함정이긴 한데…….>
카이서스조차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잔말 말고 해제하는 방법이나 알려줘!’
어느새 아리안 누나는 허공의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체 어디를 만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봤다간 서로 민망해질 것 같았다.
<꿈 깨라, 멍청아.>
‘그런 말 하고 있을 때냐?! 빨리 해제하는 주문을 알려줘!’
<쯧쯧, ‘꿈 깨라, 멍청아’가 해제하는 주문이라고, 멍청아.>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라고! 듣는 사람 오해하게 하지 말고!’
“꿈 깨라, 멍청아!”
나는 속으로는 카이서스에게, 입 밖으로는 아리안 누나에게 소리쳤다.
마나를 담아 소리친 말에 아리안 누나의 반쯤 풀린 눈이 맑아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환상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자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돌아보던 아리안 누나가 나를 발견했다.
몹시 어색한 표정일 것이 분명한 내 얼굴을 본 아리안 누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라, 라엘?”
“음… 누나, 그… 욕망이라는 건 남자나 여자나 다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해해요.”
나름대로 배려해서 해준 말에 아리안 누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러니까 내가 너더러 한심하다고 하는 거다.>
어이없다는 듯 한숨 쉬는 말하는 카이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리안 누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뛰어갔다.
곁을 스치고 지나간 그녀를 차마 잡지도 못한 나는 생각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앞이 안 보일 텐데.
얼마 가지 않아 아리안 누나는 발에 뭐가 걸린 듯 바닥에 넘어졌다.
<푸하하핫!>
카이서스가 정신 놓고 웃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