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화 - 맹수 소굴
도시로 데려간다는 말에 그제야 수풀 속에 숨어 있던 나머지 페루스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하나같이 맹수의 얼굴인지라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분위기상으로는 그들도 우리를 도시로 데려간다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이끄는 자들이나 따라가는 자들 모두에게 긴장한 채였다.
그러던 와중 춤추는 강아지풀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귀공은 제국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여기 온 거요?”
“네? 그걸 어떻게?”
그 말에 내가 놀라서 되묻자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냄새가 다르오, 냄새가.”
냄새? 내 몸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나?
깜짝 놀라서 긴장된 분위기도 잊고 옷깃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후후, 그런 냄새가 아니오. 아무리 그대와 같은 자라도 맡지 못하는, 이른바 영혼에서 느껴지는 냄새지.”
영혼의 냄새?
처음 듣는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이서스가 알려주었다.
<페루스 자체가 희귀한 종족이지만 그중에서도 몇백 년에 한 번씩 특별한 능력을 지닌 변종이 태어나기도 한다던데. 이게 바로 그것인 모양이군.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내 존재도 느낀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그대와 같은 자’라는 건 뭔가를 눈치챘다는 것인 듯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변종이라, 그래서 말랑 발바닥이 춤추는 강아지풀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건가?
“그게 어떤 종류의 냄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하신 대로 제국의 사람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지시를 따르고 있죠.”
“고난은 언젠간 끝나기 마련이오. 많은 고통이 따르긴 하겠지만…….”
뭔가를 아는 것처럼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춤추는 강아지풀의 모습에 기분이 묘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내 물음에 강아지풀은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차차 알게 될 거요. 아, 다 왔구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절벽 사이로 어두운 동굴이 보였다.
“우리의 도시로 가는 통로요. 인간들에게는 어두울 테니 걸음을 조심하시오들. 아, 귀공에겐 해당되지 않겠구려.”
확실히 카이서스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내부의 광경에 사람들은 하나둘 횃불을 꺼내어 불을 밝혔다.
그럼에도 어두운 탓에 몇몇은 걸음을 옮기다 발을 헛디디기도 할 정도였다.
뭐, 나는 주변을 살피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울퉁불퉁하고 종유석들이 곳곳에 매달린,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동굴 내부의 모습은 도시로 들어가는 통로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정말로 당신들의 도시로 가는 것 맞나? 아무리 봐도 여긴 길처럼 보이진 않는데.”
바이엔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경계하는 태도로 말했다.
그러자 강아지풀은 작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지금껏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여 손대지 않았소만, 그 덕에 오랫동안 그대들과 같은 자들에게서 우리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으니 내 생각엔 나쁘지 않은 모양이오.”
그러고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그보다 먼 길 오느라 출출할 텐데, 이거라도 드시겠소?”
뜬금없이 강아지풀이 내민 것은 빨간 빛을 띠는 울퉁불퉁한, 누군가 먹다 남긴 듯한 모양새의 열매였다.
게다가 품에서 꺼내자마자 느껴지는 강렬한 냄새는 모두로 하여금 절로 눈을 찡그리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감각이 예민한 나에게는 마치 시체가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난 됐소.”
마치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바이엔은 당연하다는 듯 눈을 찡그리며 거절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나 역시도 거절하려 했다.
“저도 괜……”
<흐음, 뭐 어때. 먹어봐라. 호의를 거절했다가 저 녀석들이 화내면 어쩌려고? 아마도 사절인 너부터 죽이려 들 텐데.>
그렇게까지 못 먹을 정도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먹겠습니다.”
내가 강아지풀이 내민 것을 받아 들자 제국인들은 물론이고 다른 페루스들도 조금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강아지풀에게서 넘겨받은 그것을 손에 쥐자 느껴지는 물컹거리는 기분 나쁜 감촉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저, 정말 먹어도 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음식이긴 한 거야?’
<음식은 아니지만 먹어도 되는 거니 빨리 먹기나 해라.>
음식이 아닌데 먹어도 된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카이서스의 궤변에 더욱 먹기가 꺼려졌으나 먹겠다고 한 이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결국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대는 순간, 그것은 녹아내리듯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혀를 스친 그 짧은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맛이 내 감각을 지배했다.
“그웨엑!”
<…큭,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 예상보다도 훨씬 악독한 맛이로구나.>
나와 감각을 공유하는 카이서스도 자신을 공격하는 맛에 침음을 흘렸다.
어지간한 감각에는 별다른 반응도 없던 카이서스조차 기겁할 맛이라니.
‘그보다 말하는 걸 보니 이게 뭔지 아는 것 같은데. 대체 뭐야?’
<예상만 할 뿐이다. 아직 확실하진 않다.>
뭐야, 그럼 무엇인지도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 극악한 걸 먹으라고 한 거야?!
갑자기 내가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배배 꼬자 바이엔이 말했다.
“역시 독이었나! 감히 사절을 암살하다니! 하지만 하필 이놈이 죽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진심으로 어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바이엔의 모습에 나는 전신에 퍼졌던 그 엄청난 맛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안 죽었거든요?!”
“쳇!”
바이엔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거나 말거나 강아지풀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좋은 것은 입에 쓴 법이라오.”
“으으, 퉤퉤. 어디에 좋은 건가요?”
최후까지 혀끝에 남아 있는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을 뱉어내는 와중에도 좋은 거라는 말에 궁금해져서 물었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몸에 좋다면 개똥도 쪽쪽 빨아 먹을 것들이지.>
아니, 개똥은 좀… 뭐, 정력에 좋다면 찾아 먹을 사람들은 많겠지만.
“흠… 그건 나중에 어차피 알게 될 거요. 아, 다 왔군.”
강아지풀의 말에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동굴의 끝에 빛이 보이고 있었다.
강아지풀이 건넨 엄청난 것의 충격에 빠져 있느라 미처 못 본 모양이었다.
“와아.”
어둠 속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지나서 보이는 광경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첩첩산중에 어둡고 험한 동굴을 지나고서야 들어설 수 있는 절벽들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이러니 지금껏 세상에 이곳이 알려지지 않았던 거겠지.
꽤 넓지만 비포장 상태인 길 좌우로 이색적인 모습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곳곳의 나무 위에도 페루스 족 특유의 집으로 보이는 것들이 얹어져 있었다.
밖에서 본 거대한 도시들과 비교하면 초라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규모였으나 작은 것은 아니었다.
“흐음.”
바이엔도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양의 머리를 한 여인 하나가 달려왔다.
“말랑 발바닥아! 숲 밖에 또 인간들이 나타났다던데, 괜찮니?!”
자신이 말하는 인간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녀는 말랑 발바닥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집에서 기다리시지 왜 나오셨어요?”
…어머니?!
양 머리에게서 사자 머리가 어떻게 나온 거지?!
“자식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맘 편히 기다리겠니? 우리 영역으로 들어왔다던 그 인간들은 어떻게 됐니?”
발바닥의 어머니가 묻는 말에 강아지풀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흡족한 들풀 아주머니, 저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기 위해 데려가는 중입니다.”
그제야 우리를 발견한 흡족한 들풀이 화들짝 놀라며 말랑 발바닥의 두꺼운 팔을 잡았다.
“에구머니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기겁하는 태도에 바이엔이 인상을 쓰자 흡족한 들풀은 더욱 겁먹고 말랑 발바닥의 뒤로 숨어버렸다.
“이놈! 감히 우리 어머니를 위협하다니! 지난번에 왔던 인간들도 안하무인으로 설치며 사람들을 위협하더니! 강아지풀 님이 너희를 데려가기로 정하시지만 않았어도……”
아들이 버럭 소리치는 모습에 흡족한 들풀이 황급히 말렸다.
“얘야, 난 괜찮단다. 춤추는 강아지풀 님이 정하신 일이니 뭔가 연유가 있으신 거겠지.”
모친의 만류에 말랑 발바닥은 제 성질을 삭이듯 으으! 하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너무 심려치 마시고 하던 일을 계속하세요.”
어느새 멀찍이 다가와 인간들의 모습을 웅성거리며 보고 있던 페루스들이 춤추는 고양이 풀의 말에 하나둘 흩어졌다.
“아주머니도 걱정 마시고 집에 돌아가 계세요.”
춤추는 강아지풀이 그렇게 말하자 흡족한 들풀은 자식과 인간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어머니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던 말랑 발바닥이 춤추는 강아지풀을 슬쩍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쇤네는 이따금 아씨의 생각을 모르겠습니다요.”
말랑 발바닥의 투덜거림에 춤추는 강아지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저 수많은 길 중에서 최선이라 생각되는 것을 택할 뿐이오.”
씁쓸한 웃음을 흘리는 그녀는 나를 보고 있음에도 저 멀리 무언가를 보는 듯 뿌연 눈빛이었다.
“끄응, 하여간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신다니까… 너희! 잠시 지낼 곳으로 안내해 줄 테니 어서 따라와라.”
잠시 투덜거리던 말랑 발바닥이 우리에게 ‘잠시’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하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워낙에 거구인 탓에 그 걸음도 빨랐기에 우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걷는 듯한 강아지풀은 체구가 작음에도 뒤처지지 않는데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우리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요?”
나와 바이엔, 그리고 호위대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 중 하나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불만스레 소리쳤다.
사절단에는 이름만 사절인 나와 나를 호위(라고 쓰고 감시라고 읽는다)하기 위한 바이엔과 호위대 외에도 십여 명 정도가 더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같이 온 것인지는 난 아직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 중 하나의 말에 페루스의 전사들과 함께 앞서가던 말랑 발바닥이 코웃음을 치며 돌아보았다.
“거의 다 왔으니 징징대지 마라.
잠시 후 말랑 발바닥이 멈춰선 곳은 커다랗고 단순한 모양새의 나무 건물이었다.
“이곳에선 손님에게 창고를 숙소로 내주는 건가?”
바이엔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그 건물은 크기만 크고 투박하다 싶을 정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흥! 손님은 무슨! 불청객에게 창고나마 내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정말로 창고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아씨가 손님으로 대접해 주고 싶으셔도 여기 외에는 못 내줍니다. 손님인 줄 알고 맞이했던 처음 왔던 인간들이 했던 짓을 생각하면 그때처럼 자신의 집을 잠시나마 내어줄 주민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자신에게 변명하듯 말하는 말랑 발바닥의 말에 춤추는 강아지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의 보금자리를 억지로 빌려줄 수는 없는 법이지요. 맘 같아선 저의 집이라도 내주고 싶건만…….”
아무래도 앞서 왔던 자들에게는 주민들이 자신의 집을 내어줬던 모양이다.
“그건 더욱 안 됩니다. 아씨의 거처는 우리 페루스들이 아끼는 장소잖습니까.”
“조만간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때까지는 여기서 지내주시구려.”
선임자들로 인한 페루스들의 적대심을 계속해서 들으니 바이엔도 뭐라 말하지 못하고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말랑 발바닥이 경고했다.
“얌전히 이 안에 처박혀 있는 게 좋을 거다. 아무리 아씨가 너희에게 관대하셔도 나머지 사람들도 그러리란 법은 없으니까.”
창고라고 말은 했으나 바닥에서 자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공간도 넓고 외풍도 들어오지 않아 나름대로 지낼 만해 보였다.
문제는…….
“다들 짐을 풀고 쉬도록 합시다.”
바이엔의 말에 다들 각자의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따로 방이 나눠지지 않았기에 이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는 거지.
각자 짐을 푼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자기네끼리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통 사람들보다 감각이 발달한 나라도 그들의 대화 내용은 들을 수가 없었다.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각자가 챙겨 온 종이에 글을 써서 대화하는 필담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이번 방문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뭔가를 꾸미는 자들 가운데서 나만이 외톨이가 되어 따돌림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가만히 앉아 있자니 기분이 답답했기에 잠시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어딜 가려는 거지?”
멀뚱멀뚱 앉아 있던 내가 일어서자 나의 감시관인 바이엔이 즉각 반응했다.
“심심해서 바람이나 쐴까 하고요.”
“뭔지도 알 수 없는 것들의 본거지에 와서 심심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표정이나 목소리는 한심하다는 기색이지만 반대하거나 따라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저 야만스러운 것들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니 조심해라. 뭐, 그렇게 되면 내가 한결 홀가분해지기는 하겠지만 찜찜해지니 말이다.”
거참 듣는 사람 기분 좋게도 말하네.
온통 적대적인 자들로 가득한 이곳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리라 생각하기에 신경 쓰지도 않는 모습이다.
어차피 멀리 나갈 생각도 없었기에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으로 갔다.
창고에 인간들이 머물고 있단 이야기가 이미 퍼진 듯 근처에 페루스들의 모습은 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지?”
이상한 드래곤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이 되질 않나, 하나밖에 없는 스승님께 달라붙은 미친 스토커가 막강한 권력을 지닌 황제까지 이용해서 엄청난 일을 벌이는데 나까지 말려들어서 온갖 고생을 하고 말이야.
<이놈이? 나 덕분에 얻은 능력과 지위로 덕 본 것은 생각도 하지 않다니! 게다가 뭐? 이상한 드래곤? 내가 왕년에는……!>
카이서스가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으로 내뱉는 개소리를 본격적으로 하려던 차에 누군가가 머리 위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살다 보면 다 그런 것이 아니겠소?”
“으악! 씨……!”
비명을 지르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올려다본 나는 뒤이어 나오려는 발이라는 소리를 간신히 집어삼켰다.
두꺼운 나무줄기 위에 반쯤 드러눕듯이 기대어 있던 춤추는 강아지풀이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 강아지풀 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느긋한 태도에 내가 깜짝 놀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일부가 아닌 전체를 불러주시구려.”
자신을 부르는 방법을 고쳐달라 한 그녀는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여전히 나무줄기 위에 있는 채로 말이다.
“다시 한번 소개드리지요. 소녀는 페루스의 사만인 춤추는 강아지풀이라 하옵니다.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보인 게 아니라 정말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나무줄기 위에 서서 고개를 숙여 보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보다 뭔가 말투가 바뀐 듯한데?
“어째서 갑자기 존대를 하시는 겁니까? 그보다 기다리고 있었다니요?”
이해하지 못한 나의 물음에 그녀는 씨익 웃어 보였다.
작고 하얀 송곳니가 입술 사이로 보였다.
“귀공이 아니라 다른 분께 말하는 거라오. 이 자리엔 본녀와 귀공, 그리고 또 한 분이 계시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