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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87화 (87/150)

087화 - 의문

“저자들을 쫓아라!”

딱 봐도 수상한, 달아나는 복면인들을 추격하라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었다.

“특무대 그림자박쥐의 대장 웨인 루스입니다. 모니카 공주님은 무사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바이엔은 언제 날뛰었냐는 듯 얌전한 태도로 서 있는 공주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사하시다. 늦지 않게 와줘서 고맙군.”

바이엔은 긴장이 풀린 듯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면서도 웨인이라는 특무대장 앞에 섰다.

“부상이 심하시니 응급처치부터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건 이쪽의 마법사에게 맡기면 되니 주변 경계를 부탁하네.”

바이엔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웨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보호 대형으로!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마라!”

복면인들을 뒤쫓으러 간 자들을 제외하고 남은 30여 명의 특무대원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모니카 님부터 치료해.”

가장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자신임에도 바이엔은 공주부터 챙겼다.

“상처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잘 부탁드려요.”

언제 몬스터처럼 날뛰었냐는 듯 웃으며 말하는 공주의 모습에 가볍게 몸을 떨고는 힐링을 사용했다.

공주는 여기저기 베이기는 했으나 그저 살짝 베인 수준이어서 금방 치료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바이엔이었다.

깊게 찔린 그녀의 왼쪽 어깨는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찌르고 비틀었군. 효과적인 수법이지.>

이런 부상을 입고도 검을 휘둘렀다니, 지독하네.

나는 혀를 차며 힐링을 사용했다.

내 수준의 힐링으로는 도저히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연속으로 힐링을 사용해야 했다.

마나가 계속해서 퍼부어지며 어깨에 난 구멍이 천천히 아물어갔다.

흉터는 남겠지만 재활만 제대로 한다면 움직임에 지장은 없을 거다.

치유가 끝나자 바이엔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으나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창백했다.

이미 소실된 피를 만들어서 채워 넣을 수는 없으니까.

그건 8서클의 대마법사가 사용하는 고위 치유마법인 리커버리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한동안은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야 해요. 다친 곳을 무리해서 움직이지도 말고요.”

다쳤던 팔을 고정할 부목이나 붕대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다른 사람이 해주겠지.

사람들은 가끔 치유마법이 만능인 줄 아는데 결코 만능이 아니다.

새살이 돋게 하고, 부러진 뼈를 이을 수는 있지만 힘줄이나 신경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치유마법으로 다친 곳을 치유해도 곧바로 움직이거나 할 수 없다.

힘줄과 신경의 기능이 복구되기 전까지는 움직이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움직인다 해도 고통이 느껴질 거다.

그것쯤이야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바이엔을 뒤로하고 7호와 11호도 치료했다.

이 둘도 결코 가벼운 상처가 아니어서 나는 연속해서 힐링을 사용해야만 했다.

치료를 마칠 때쯤에는 어느새 밤이 끝나고 멀리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때맞춰 복면인들을 쫓아갔던 자들이 돌아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보고를 받은 웨인이 표정을 찡그리더니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피를 많이 흘려 지쳐 있는 바이엔을 대신해 7호가 물었다.

“몇몇을 붙잡았으나 모두 입안에 숨겨두고 있던 독으로 자결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외의 나머지 복면인들을 놓쳤다는 소리다.

기껏 붙잡은 놈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힘들 듯했다.

그럼에도 바이엔은 담담했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단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모를 꾸미는 자들이니 죽음 정도는 이미 각오했겠지.”

어차피 붙잡히면 끔찍한 고문을 잔뜩 받다가 결국엔 죽을 테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차라리 나은 거겠지.

그렇다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붙잡히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자결할 정도라니, 대체 복면인들의 배후는 누구야?

잠시 생각하던 바이엔이 웨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공주님을 노리는 자들에 대해 새로 알아낸 정보는 없나?”

“저희도 명령을 받자마자 쉬지 않고 곧장 이동해 오느라 새로운 정보는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바이엔이 무지카에서 상부에 보고를 했을 때 이미 특무대의 파견이 결정된 모양이다.

“그렇군. 일단은 빠르게 베네프로 이동하지. 역도들이 언제 또 공주님을 노릴지 모르니 말이야.”

“마차 수리가 끝나면 곧바로 출발할 테니 그때까지는 쉬고 계시지요.”

웨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무대원 몇몇이 마차에 달라붙어 있었다.

문짝이 뜯겨져 나간 것을 제외하면 문제가 없지만 문짝이 떨어진 것보다 문을 고치는 편이 호위하기 편했다.

마차를 끄는 것은 특무대의 말을 빌리면 될 테니 출발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뒤처진 사람들을 기다렸다 합류하면 좋겠지만 이곳에 계속 머무르기는 위험하다.

복면인들이 또다시 뭔가를 꾸밀지도 모르니까.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피가 묻은 문짝을 의아해하면서도 특무대원은 마차를 수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차의 긴급 수리를 마치고 게이트가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 베네프로 향했다.

* * *

대륙력 757년 7월 2일.

두 번째 임무를 마치고 별궁으로 돌아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돌아온 이후 나는 줄곧 방에서 늘어져라 쉬고 있었다.

연속해서 게이트를 갈아타며 이동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해 피로가 잔뜩 쌓여 있었으니까.

연속으로 게이트를 이용하는 일은 무척이나 괴롭다 못해 끔찍했다.

울렁거리는 속이 진정될 새도 없이 다음 게이트에 올라서는 일이란…….

게이트에 문제가 생겨 기다리는 일이 생기길 바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각 도시마다 게이트를 엄중히 통제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기에 하이넨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

결국 나는 하이넨의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구석에다 거나하게 구토를 해버렸다.

하하,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이란…….

드래곤의 마법 중에서 기억을 지워 버리는 마법이 있으면 좋겠다.

목격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기억을 지워 버리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 기억마저 지워 버리면 완벽해!

<완벽은 개뿔. 네가 까먹어도 내가 언제든 기억을 되살려 주마!>

빌어먹을! 카이서스 자식이 있었지.

‘다른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잡귀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나?’

<자, 잡귀라니! 이 미친놈이?! 나는 위대한 드래곤의 영혼이다!>

‘그래 봤자 무단침입 해서 눌러앉은 거잖아! 꼬우면 나가시든가!’

<끄으응…….>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앓는 소리만 내는 카이서스를 무시했다.

한참을 침대에서 늘어져 있다가 일어나 수련을 하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겠다.”

바이엔은 여전히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지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답을 듣지 않을 거면 노크를 하는 의미가 없지 않아요?”

나는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온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야 피곤이 쌓인 정도라지만 그녀는 부상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다쳤을 때 잔뜩 흘렸던 피를 모두 회복하지 못한 탓에 아직도 조금은 창백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왼쪽 팔과 어깨를 고정시키는 붕대.

회복이 많이 되었어도 팔을 크게 휘두르거나 힘을 주긴 어렵겠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은 걱정되었다.

성치 못한 상태에서도 싫어하는 나를 찾아올 정도면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무슨 일이에요?”

조심스레 묻는 말에 바이엔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모니카 공주를 만나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네? 갑자기 공주는 왜요?”

“공주가 우리를 불러달라고 했다더군. 어째서인지는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말고 서둘러 방문 준비나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갑자기 우리를 불러오라고 했다니, 복면인의 습격 때 그녀가 날뛰던 모습을 봐서인가?

나는 닫힌 문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욕실로 들어갔다.

서둘러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로브를 걸치고 나갔다.

현관홀로 내려가자 이미 바이엔은 준비를 마치고 호위대원들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면인들로부터 시간을 벌기 위해 뒤에 남았던 나머지 사람들도 사흘 전에 복귀했다고 했다.

파이썬 수행원들 중에서는 사망자가 꽤 나왔다고 들었는데 호위대원 중에서는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다고 했다.

감시하던 얼굴들 중에서 안 보이는 자가 없어 보이니 그런 거겠지.

내가 내려오는 것을 확인한 바이엔이 걸음을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준비 다 됐으면 가지.”

외곽의 별궁과 공주가 머물고 있다는 제 23궁전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제 와서 깨달은 건데 궁전을 번호로 구분하다니, 제대로 이름을 지을 생각은 없는 거야?

게다가 23궁이라면 최소 23개의 궁전이 있다는 소리잖아.

황궁 안에서 마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규모가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니카 공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궁전의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가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우리를 따라온 호위대원들은 다른 방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나와 바이엔만이 응접실에 들어왔다.

과연 일국의 공주에게 내어준 궁전이라서인지 응접실 내부도 무척이나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크라우드와 내가 싫어선지, 아니면 모니카 공주가 중요해선지… 크라우드의 사절단에게 내어준, 지금 내가 지내는 별궁과 비교하면 차별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쪽에 세워진 귀금속으로 장식된 조각상만 가져다 팔아도 평생 먹고살겠네!

가만히 앉아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바이엔과는 달리 제국의 차별을 구경하고 있던 중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님께서 들어가십니다.”

시녀의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며 모니카 공주가 파이썬의 시녀들과 호위기사들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우리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예를 취하며 인사를 올렸다.

“모니카 공주님을 뵙습니다.”

“고개 들어도 돼. 귀찮게 오라고 해서 미안.”

공주는 더 이상 연기할 생각도 없는지 우아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털털한 말투였다.

“공주마마!”

곁에 있던 시녀, 파렐이 공주의 태도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수행원들의 표정을 지겹다는 듯 바라보던 공주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괜찮아. 이 둘은 내 진짜 모습을 봤거든.”

역시 파이썬에서 곁에 붙인 사람들은 공주의 진짜 성격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나… 이곳은 파이썬의 왕궁이 아니옵니다. 체통을 지키셔야……”

“알았어, 알았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조심할게.”

무성의한 목소리로 파렐의 말을 끊으며 공주는 가장 안쪽의 1인용 소파에 삐딱한 자세로 앉았다.

나와 바이엔이 손님용 소파에 앉는 것을 확인한 공주가 눈짓하며 물었다.

“몸은 좀 어때? 꽤나 크게 다쳤었잖아.”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붕대로 고정된 바이엔의 왼쪽 어깨였다.

“지금은 거의 다 회복되었습니다.”

바이엔의 대답에 공주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이네. 억지로 불러달라고 한 보람이 있겠어.”

그 말에 바이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몸 상태가 저희를 찾으신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아직 몸이 안 좋으면 술을 마실 수가 없잖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기에 이상한 점을 잠시 느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렇… 아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술이야, 술. 같이 마시자고 부른 거라고.”

“어어…….”

“공주님! 대체 그게 무슨!”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나와 바이엔을 대신해 파렐이 대신 소리쳐주었다.

아무래도 진짜 성격을 숨기지 않은 것도, 술에 대한 것도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고 공주가 독단적으로 한 모양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느라 한 모금도 못 마셨는걸! 지금까지 얌전히 있었으니까 조금은 마셔도 되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만약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파렐이 시녀로서 합리적이고도 당연한 걱정을 하자 공주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숨기려 해도 내 원래 성격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알잖아. 제국의 황제도 그걸 알면서도 언니가 아니라 만난 적도 없는 내게 청혼한걸?”

황제도 이미 그녀의 본성에 대해 알면서도 청혼했다고?

설마 한눈에 반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 공주는 황제를 만난 적도 없다고 했지.

타이런 제국과 파이썬 왕국의 동맹을 위한 국혼이라기엔 파이썬의 공주는 모니카만이 아니다.

파이썬이 감추는 모니카 공주의 성격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모니카 공주에게 청혼한 건… 대체 무슨 이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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