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화 - 강행 돌파
“게이트 담당자는요?”
안내해 준 기사에게 묻자 그는 잠시 기다려 달라더니 누군가를 불러왔다.
“게, 게이트 관리장 톤치카입니다.”
기사에게 불려 온 남자는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기저기 검댕이 잔뜩 묻은 데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제외하면 괜찮아 보였다.
중요 시설이자 많은 가치를 지닌 텔레포트 게이트를 관리하는 것은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 게이트가 파괴되었으니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터, 그 처벌이 두려운 거겠지.
미안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써줄 수는 없었다.
“게이트를 복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그, 그게…….”
내 물음에 당황한 듯 그가 쉽게 답하지 못하자 기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어서 답하시오!”
기사의 반응에서 내가 높은 사람이라 생각한 것인지 관리인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안간힘을 다해 계산했다.
“사, 삼 주는 족히 걸릴 겁니다!”
삼 주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
그것도 최대한 서둘렀을 때의 기간이겠지.
공간 이동 게이트라는 게 단순한 마법진이 아니니 재료라든가 설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곤란하군.”
내 옆에서 관리자의 대답을 같이 들은 바이엔도 눈을 찡그렸다.
황제가 내린 두루마리에는 시급한 일이니 지체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복구하는 것을 기다리느라 늦어지면 황제가 꽤나 짜증을 내겠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그것이……”
긴장 때문인지 더듬거리며 말한 것에 따르면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하던 도중에 갑자기 게이트가 설치된 방에서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한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올 때쯤엔 이미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한다.
“흐음…….”
관리자의 말에 나는 침음을 흘렸다.
크라우드 왕국에선 게이트 건물을 지을 때는 신경 써서 튼튼하게 짓는다고 했다.
아마 제국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실하지는 않을 터.
그런 게이트 건물이 빠르게 무너졌다…….
“수상한 자는 없었는가?”
바이엔이 수사관 출신답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게이트라는 게 높으신 분들이나 긴급한 공무에나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이용자도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오늘은 이용자가 아예 없었다고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과 화제, 그리고 게이트와 건물의 파괴.
나는 게이트가 있었던 자리와 건물 잔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직 폭발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탓인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인위적인 마나의 강렬한 흔적.
이건 강력한 마법으로 인한 테러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우리가 떠나기 전에 테러가 일어나다니.
마치 우리가 하이넨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한…….
순간 바이엔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은 내성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겠군.”
내성으로 돌아오는 도중 게이트 테러범들의 의도를 생각해 봤다.
목숨을 노린 것이었다면 우리가 게이트를 이용하는 순간을 노렸을 거다.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한 내가 마나의 파동을 느끼고 대처할 수도 있었겠지만 피해가 전무하진 않았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가 가기 전에 게이트 건물을 폭파시킨 거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언제는 네 아둔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했느냐?>
‘늘 그렇듯이 네가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이해했어.’
내성으로 돌아오자마자 바이엔은 상관에게 현 상황을 보고한다며 통신실로 직행했다.
나는 응접실에서 모니카 공주, 성주와 함께 차를 마시며 바이엔이 보고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바이엔의 보고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바이엔이 응접실로 돌아온 것은 거의 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뭐랍니까?”
조금은 어두워 보이는 바이엔의 얼굴에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통신으로 상황을 보고받은 상관에게 좋지 않은 대답을 들은 모양이다.
“게이트가 복구되길 기다리는 건 힘들 것 같다. 그게 게이트를 폭파시킨 자들이 원하는 바인 모양이니까.”
역시 테러범들이 노린 것은 우리의 발을 묶으려는 거였나.
그런 거라면 그들이 게이트의 복구를 방해할 수도 있겠군.
“그럴 리가! 분명히 이번 일은 극비에 진행되었을 텐데.”
성주가 당혹해하자 바이엔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극비라고 하더라도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온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아 성내에도 범인들의 손이 닿아 있을지도 모르죠.”
“으음… 그럼 이제 어찌할 셈인가?”
“다음 게이트까지 마차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하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오히려 내가 놀라 버렸다.
“네? 정체도 모르는 자들이 노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공주님을 호위할 사람이 너무 적잖아요.”
애초에 호위 대상의 정체도 감춘, 비밀스러운 일이었던 데다 게이트를 경유하며 이동할 계획이었기에 인원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나와 바이엔과 10명의 호위대원.
육로로 이동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적들이 직접 습격해 올 수도 있는 데다 몬스터나 도적들의 위협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범인들의 목적이 뭔지 모르는 이상 그들의 뜻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으니까.”
갑작스러운 사태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야만 한다니, 좋지 않았다.
“그리고 호위가 우리뿐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건가?”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바이엔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성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므로…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방의 벨을 울려 집사를 부른 성주가 자신의 측근들을 소집했다.
* * *
무지카 성을 떠난 지 이틀째, 초원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따라 이동 중이다.
목적지는 게이트가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바이엔이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공주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네에. 덕분에요.”
공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예의를 차리며 대답하자
“저희가 부족하여 공주님께 불편을 끼쳐 드려 송구할 따름입니다.”
“괜찮아요. 이해한답니다.”
파이썬이 제국에게 보내는 선물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처지 때문일까.
일국의 공주라면 조금은 짜증을 낼 법도 한데도 그녀는 전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면 원래부터 성격이 유순한 것이거나.
파이썬에서 공주가 타고 온 사두마차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선지 겉에는 신분을 드러내는 문장이나 장식이 없었다.
그러나 내부는 무척이나 넓고 훌륭했다.
여덟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데도 앉아있는 것은 고작 네 명.
나와 바이엔과 모니카 공주, 그리고 공주의 시녀인 파렐.
시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파렐은 공주가 어린아이일 때부터 모셔왔다고 했다.
우리가 탄 마차의 뒤에는 파이썬에서 공주를 모시고 온 수행원들이 타고 있는 마차 3대가 뒤따른다.
그리고 무지카 성주의 군대가 앞뒤에서 우리를 호위한다.
육로로 이동하는 것을 결정한 다음 날 무지카의 성주가 소집한 삼백여 명의 병력과 함께 우리는 출발했다.
하루 만에 완전군장을 꾸리고 출동할 준비를 했을 병사들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있나,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그래도 국경을 지키던 군대다 보니 하나하나가 혹독한 훈련을 버텨낸 정예들이다.
도적 떼나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그 숫자와 기세에 접근조차 못 할 거다.
하지만 우리를 노리는 자들은 성 한복판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폭파시킨 자들이니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특무대 출신의 호위대는 마부 역할을 맡은 한 명 빼고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감시하는 중이다.
마차의 창문 밖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자 근처에 있던 호위대원 중 하나가 말을 몰아 다가왔다.
“뭔가 필요하신 거라도?”
특무대 출신의 호위대원들은 자신들의 본명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편해서인지는 몰라도 1호에서 10호까지의 호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그중에서 마차에 다가온 여성은 7호라고 불렸다.
“게이트가 있는 도시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듯 허공을 응시하던 7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흘 뒤면 도착할 겁니다.”
게이트를 이용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도착하는데.
지금까지 당연하다는 듯 누렸던 것들이 무척이나 아쉽군.
나야 칼라마쉬의 서를 찾으러 다닐 때 게이트를 이용하지 않고 여행을 했었으니 괜찮지만…….
공주를 슬쩍 쳐다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이었던 그녀는 그런 여행을 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
아니, 애초에 수도 밖을 나가본 적이 있으려나.
왕자라면 모를까, 공주들은 대부분 왕궁을 나설 일조차 거의 없으니까.
지금은 겨우 이틀째라 그리 힘든 기색이 아니지만 가면 갈수록 힘들어할 거다.
아무리 고급 마차라지만 오래 타는 것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덜컹거림에 멀미를 느낄 거고, 아무리 푹신한 쿠션을 덧댔다곤 해도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아파올 테니까.
멀미날 것을 우려해서인지 창밖을 내다보는 공주를 슬쩍 쳐다보았다.
낯선 이인 우리 앞에서 왕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따금 관자놀이를 매만진다거나 눈을 살짝 찡그리는 것을 보면 피곤이 쌓이는 모양이다.
어쩌다가 황제의 눈에 띈 건지는 몰라도… 불쌍하네.
지금까지 보기에는 마음이 약해 보이는데, 개차반 같은 황제 때문에 울지나 않을지 걱정이군.
공주를 안쓰러워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그 개차반 황제에게 목줄이 매인 처지인 데다 나는 제국이나 파이썬 왕국의 사람도 아니니까.
그날 저녁, 주변에 묵을 만한 마을이 없었기에 길 근처의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근처에 작은 하천이 있었기에 그 옆의 공터를 야영지로 정했다.
다들 야영을 준비하고,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무지카의 군대는 각자가 들고 온 건량을 한곳에 모아 스튜를 만들어 먹었다.
조리 도구와 함께 마차에 실어 온 고기나 향신료를 조금 넣긴 했겠지만 그다지 맛이 좋지는 않겠지.
그에 비하면 나는 꽤 괜찮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파이썬의 수행원들이 공주와 자신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면서 나와 바이엔의 것도 만들어준 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음 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논의한 후 일찍 잠들었다.
한창 단잠에 취해 있던 도중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 느껴졌다.
슬쩍 보이는 텐트 바깥이 아직 어둑어둑한 것을 보아하니 아침은 아니었다.
“무슨… 히익?!”
텐트 안에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던 사람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를 감시하는 호위대 중 한 명인 7호였다.
한밤중에 남자 혼자 자고 있는 텐트에 들어오다니,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인상이긴 해도 여자다.
서, 설마 외로운 나머지 내 몸을 노리는 건가?!
“아, 안 돼요! 제겐 좋아하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려는 나의 입을 손으로 막은 7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차하면 몸을 피해야 하니 서둘러 준비를.”
그녀가 말하는 문제란 분명히 우리를 노리는 자들에 관한 거다.
황급히 스태프, 로브 같은 중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7호를 따라 텐트를 나갔다.
“이게 무슨……”
밖으로 나온 나는 곳곳에 피워놓은 모닥불의 불빛에 비쳐 보이는 모습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분명 불침번을 서고 있었을 자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병사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식사에 수면제 같은 걸 탄 것으로 보입니다.”
7호의 말에 쓰러져 있는 자들을 살펴보았다.
병사들의 상체가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마도 병사들 틈에 숨어 있던 첩자의 소행인 모양입니다.”
식사를 모아서 만들어 배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통 큰 냄비에 한 번에 음식을 준비해서 배급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니까.
그렇기에 독이나 이상한 것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를 한다.
게다가 삼백여 명에게 먹일 수면제라면 꽤나 많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아니,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자들의 소행인가요?”
텔레포트 게이트를 폭파한 자들.
“그 외엔 없겠지.”
그들을 언급하는 물음에 대답한 것은 나처럼 호위대원에게 깨워져 옆의 텐트에서 나오던 바이엔이었다.
“서둘러. 공주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
우리는 다급히 공주가 자고 있을 텐트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텐트보다 크고 고급스러운 텐트에서 잠에서 깬 공주가 나왔다.
이미 텐트 앞에는 호위대원들이 깨운 파이썬의 수행원들이 모여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공주의 시녀들 중 우두머리인 파렐이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게이트를 폭파했던 자들의 소행인 듯합니다. 혹시 모르니 우선은 마차를……!”
언제든 달아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하던 바이엔은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모닥불의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기척을 느낀 것이다.
“서두르십시오!”
언제부터인가 들고 있던 검을 뽑으며 바이엔이 소리쳤다.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복면인들의 모습에 파이썬의 사람들과 우리는 다급히 움직였다.
무지카의 군대는 소란에도 불구하고 깨어날 기미가 없다.
나와 바이론, 호위대 열 명, 공주와 수행원들 이십여 명이 현재 운용 가능한 전력의 전부였다.
심지어 파이썬 사람들 대부분은 전투 인원이 아니다.
그나마 이것도 파이썬 사람들과 우리는 따로 음식을 해 먹었기에 수면제에 당하지 않은 거다.
그에 비해 모습을 드러낸 검은 복면인만 해도 대략 백여 명에 달했다.
그 모습에 몸이 굳은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