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화 - 드라이어스
거세게 뿜어져 나오던 화염 브레스가 힘을 잃고 잦아들자마자 워터 실드도 모습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젠장! 잭슨!”
“거스토도 당했어!”
화염이 잦아든 자리에서 동료들을 발견한 기사들이 분노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외침에도 물러나지 않았던 기사 몇몇이 화염에 휩싸였던 모양이다.
아마 전신을 뒤덮은 화염은 비명마저 삼켰겠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숯덩이가 되어버린 동료들의 모습에 툼스톤 기사단은 분노하면서도 공포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쓰레기들아! 쫄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뒈진 새끼들 복수는 해야 할 거 아냐!”
그때 데히른이 잔뜩 열받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예, 옙!”
그 말에 칼자루를 바로 잡으며 자세를 바로잡은 툼스톤 기사단의 기세가 변했다.
소리 한 번 지른 것만으로 부하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안 좋은 소문이 많다고는 해도 기사단의 일 개 대를 맡고 있는 작자.
나름대로 실력과 통솔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가.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는 기사들의 모습에 드라이어스가 낮은 소리를 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왜 그랬냐는 듯 원망하는 시선이다.
대체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나도 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단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툼스톤 기사단과 협력해서 드라이어스를 처리해야만 하나.
찜찜한 기분으로 드라이어스를 살피던 중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드라이어스는 불을 내뿜으며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했다.
그 말은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어째서 날아오르지 않는 거지?
둥지는 무척이나 넓어서 드라이어스의 거대한 덩치가 날아올라도 충분해 보인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마법사인 나와 활을 챙겨 온 몇몇을 제외하면 공격할 방법이 없는데 말이야.
위협하듯 펼친 날개도 그다지 다친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어째서 굳이 땅에서 싸우는 거지?
<흐음, 날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날지 않는 거라면?>
‘뭐? 그게 무슨……’
카이서스의 알 수 없는 말에 무슨 소린지 되묻던 중에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한껏 펼쳐진 날개 너머로, 드라이어스가 웅크리고 있던 자리에 뭔가가 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는 그늘이어서 어두웠으나 반인반룡의 눈을 지닌 내게는 똑똑히 보였다.
“저건…….”
내가 어둠 속에 웅크린 것들의 모습을 확인한 그 순간.
“저 괴물의 뒤에 뭔가가 있다!”
기사단 중에서도 유독 눈이 좋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소리치며 그곳을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늘로 향했다.
지금까진 다들 드라이어스에게 시선이 빼앗겨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드라이어스와 비슷한 생김새, 하지만 무척이나 자그마한 것 두 마리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날아오르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날개를 활짝 펼쳤던 이유.
“새끼들이다!”
“저놈, 새끼가 있었던 건가!”
그것은 최대한 시선을 끌어 자식들을 적에게서 숨기기 위함이었다.
기사들의 시선이 어린 자식들에게 향하자 드라이어스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
샤아아아!
드라이어스가 시선을 다시 돌리기 위해 난폭한 소리를 내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새끼들 때문에 날지 않았던 거였냐! 좋았어! 이 자식들아! 새끼들을 노려! 그러면 저 괴물은 막느라 급급할 거다!”
상황을 파악한 데히른이 작전을 지시했다.
두 마리의 새끼를 노리면 어미 드라이어스가 공격을 막느라 피하지 못할 거라는 말이었다.
어린 새끼를 노린다니, 명예를 중요히 여기는 보통의 기사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툼스톤 기사단, 명예와는 담을 쌓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들이었다.
검과 창이 어미 드라이어스의 뒤에 숨겨져 있던 어린 것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마나를 실은 화살이 날아들었으나 어미는 피할 수 없었다.
피했다간 어린 자식들의 피를 볼 테니까.
샤아아아!
지켜야 할 것이 들통나 버린 드라이어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날뛰었다.
하지만 점점 드라이어스의 몸에 박히는 화살과, 상처는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만, 새끼가 있다는 건… 성체 드라이어스가 두 마리라는 건가?
자식이 있다는 건 아비와 어미가 있다는 말이니까.
<아아, 그건 걱정 마라. 드라이어스는 자웅동체라서 혼자서도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으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쳇, 이건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긴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이야.”
곁에 있던 바이엔이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이건… 이건 뭔가 아니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몬스터라도, 자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을 이용하는 건 기분이 더러웠다.
나는 즉시 스태프를 고쳐 잡고 주문을 영창했다.
“쏴!”
활을 지니고 온 기사들이 동시에 화살에 마나를 터질 듯이 담아 쏘아 보냈다.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드라이어스가 온몸으로 화살을 막아냈다.
“죽어라아아아!”
그 순간 부하들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데히른이 드라이어스의 목을 노리고 대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드라이어스가 데히른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놔뒀다간 둘 다 위험할 듯했다.
“실드! 실드!”
전력을 다한 두 개의 실드가 각각 데히른의 대검과 드라이어스의 꼬리를 막아냈다.
캬르르?!
“뭐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드라이어스도, 꼬리에 얻어맞을 뻔한 데히른도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짓이야!”
황급히 드라이어스에게서 물러난 데히른이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툼스톤 기사단은 물론이고 도움을 받은 드라이어스도 상황이 이해가 안 된 듯했다.
“저놈을 구해준 건 그렇다 치고, 저 검은 괴물까지 도와주다니 무슨 생각이지?!”
곁에 있던 바이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지만 나는 무시하고 앞으로 나섰다.
기사단과 드라이어스가 갑작스러운 내 움직임에 긴장하며 주시했다.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제가 상대해 보겠습니다.”
“뭐? 네놈 혼자 상대하겠다고? 웃기지 마라!”
나직이 울려 퍼진 내 말에 데히른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소리쳤다.
어느새 어울리지도 않는 높임말은 때려치운 그였다.
“방해한다면 방금 전처럼 저도 방해할 겁니다. 잠시 시간을 주세요.”
내 말에 데히른의 험상궂은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이내 무슨 생각인지 히죽 웃어 보였다.
“좋아, 모두 잠시 뒤로 물러나!”
데히른이 먼저 뒤로 물러나며 명령하자 기사들은 순순히 물러났다.
드라이어스를 상대하면서 6서클 마법사로 알려진 나의 방해를 받으면 곤란하단 판단을 내렸겠지.
“대체 무슨 짓이지?! 이번 일을 황제 폐하께 보고할 거다!”
뒤에서 바이엔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샤아아아!
내가 다가서자 드라이어스가 경계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조금 전에 자신의 브레스를 막아낸 것 때문에 화가 난 모양이다.
나는 잠시 드라이어스와 기사단 사이에 멈춰 서서 스태프를 내려놓았다.
“무슨?!”
“미친 건가?!”
기사들 사이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끄러, 얼간이들아! 저런 놈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마!”
“미치겠군! 네가 죽으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다!”
데히른이 부하들에게 소리쳤고 바이엔은 내가 죽었을 때의 뒷감당을 생각하고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드라이어스의 붉은 눈을 응시했다.
“얌전히 있다면 해치지 않을게. 내게 뭘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 거야?”
나를 조용히 응시하던 드라이어스의 붉은 눈에서 경계심이 잦아들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겨 드라이어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거대해 보이는 몸 곳곳에는 조금 전의 전투로 인한 상처 외에도 오래된 상처와, 얼마 전에 생긴 듯한 상처가 뒤덮여 있었다.
손만 대면 닿을 거리.
드라이어스는 나에게는 적의를 내뿜지 않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드라이어스의 몸에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드라이어스의 기억이었다.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자식들을 위해 어미는 사냥을 나섰다.
그리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둥지에선… 인간들이 갓 태어난 자식들의 몸을 해체하고 있었다.
드라이어스의 전신을 뒤덮은 격렬한 증오와 분노.
어미는 미쳐 날뛰며 주변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을 공격했다.
아무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라이어스라도 분노에 집어삼켜진 상태.
점차 거세지는 인간들의 반격에 점점 상처 입으며 생명이 다해갔다.
생이 끊기기 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공격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유희 중에는 방해하는 거 아니다.’
싱긋 웃으며 막아선 푸른 머리의 사내는 드라이어스를 이 협곡으로 데려와 잠재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드라이어스는 긴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 빠져 있던 동안 분노도 가라앉은 드라이어스는 다시금 알을 낳았다.
드라이어스의 산란은 기나긴 생에 많아봐야 두 번이 최대였다.
이번이 마지막 산란이다.
자신의 피와 마나를 불어 넣어 무정란을 수정란으로 바꾸었다.
다섯 개의 알 중에서 성공적으로 부화한 것은 단 두 마리.
자식들을 위해 드라이어스는 밖으로 사냥을 나섰다.
이상하게도 주변에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기에 인간들이 기르는 가축에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피했다.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들키면 과거의 일이 재현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숨어 있던 자신의 둥지를 찾아냈다.
옛날의 일이 반복될 것이 두려워진 드라이어스는 필사적으로 인간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찾아온 인간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푸른 머리의 존재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존재.
드라이어스의 기억을 읽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었겠구나.”
캬르르…….
드라이어스가 낮게 울리는 소리를 내며 쳐다보았다.
아마도 100년 전 드라이어스를 이곳으로 데려와 잠재운 것은 드래곤.
드라이어스의 기억 속에 나온 푸른 머리의 사내는 나도 아는 존재였다.
어쩐지 이런 촌구석에 말도 안 되는 고위 결계가 있다는 것부터가 수상하더니만.
협곡을 뒤덮었던 결계도 드래곤의 것이었다.
드래곤이 만든 결계였으니 사람들이 100년간 이 협곡의 존재도 몰랐던 것도 이해가 가는군.
캬아아아!
진정되었던 드라이어스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려는 그 순간.
촤아악!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며 내 얼굴에 쏟아졌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든 데히른이 대검의 대검이 드라이어스의 목덜미를 베어버린 것이다.
캬아아악!
드라이어스는 뒤늦게 긴 팔을 휘둘러 공격했으나 데히른은 대검으로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오오오!”
“역시 대장이야!”
기사들의 환호성에 드라이어스의 피를 뒤집어쓴 데히른이 대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시끄러! 아직 안 끝났으니 긴장 풀지 말고 끝장을 내!”
데히른의 외침에 기사들이 크게 부상을 입은 드라이어스에게 다가갔다.
“무, 무슨 짓입니까!”
상황 파악이 안 돼 멍하니 있던 내가 소리친 말에 데히른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무슨 짓이긴, 네 녀석이 놈의 주의를 분산시킨 틈에 해치운 거지.”
드라이어스가 내게 기억을 보여주기 위해 집중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애초부터 내 말에 뒤로 물러났던 것 자체가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내가 죽던 말건 시선을 끌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던 거겠지.
다가오는 기사들의 모습에 드라이어스는 깊게 베인 목덜미를 손으로 누르면서도 끝까지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두 마리의 새끼는 어미가 죽을 거라 직감한 듯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삐이이익-!
이대로라면 어미 드라이어스는 물론이고 새끼들까지 죽는다.
“죽이지 않고 해결할 수도 있었다고요!”
내 외침에 데히른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대꾸했다.
“우리 임무는 저 괴물을 해치우는 거다. 게다가 내 똘마니들까지 죽었는데 왜 살려둬야 하지?”
“하지만 드라이어스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을 뿐이에요!”
“저놈에게 죽어간 병사들이나 내 똘마니들은 가족이 없는 줄 알아?!”
“윽!”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내려놓았던 스태프에 손을 뻗으려 하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바이엔이 소리쳤다.
“제압해!”
그와 동시에 언제 다가온 것인지 모를 호위대원이 나를 제압하고는 바닥에 내리눌렀다.
“큭!”
“팔이 부러지기 싫다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무심한 목소리는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호위대는 원래부터 내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제압하거나 제거할 목적으로 배치된 특무대원들이니까.
팔을 뒤로 꺾인 채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나에게 바이엔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움은 못 줄망정 방해를 하려 하다니, 그랬다간 당신은 물론이고 우리까지 처벌받는단 말이다.”
호위대원이 막지 않았다면 나는 데히른과 그의 부하들을 막았을 거다.
그랬다면 나는 물론이고 호위대까지 피해를 봤겠지.
어차피 두 팔이 꺾인 채 제압당한 이상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