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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77화 (7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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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화 - 툼스톤 기사단

대륙력 757년 5월 3일.

타이런 제국 북서부에 위치한 브로발렌 영지.

텔레포트 게이트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자그마한 영지인지라 근방의 도시에서 마차를 타고 와야만 했다.

고급 마차가 아니었기에 마차는 꽤나 덜컹거렸지만 말을 탈 줄 모르는 나로서는 그것도 감지덕지다.

마차를 타는 건 나와 바이엔뿐.

바이엔 휘하의 호위대원 열 명은 말을 타고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몬스터를 해치워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보내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맞은편 좌석에 앉은 바이엔에게 묻자 그도 짜증 내는 기색으로 대꾸했다.

“나도 모르니 투덜거려 봐야 소용없다. 당신과 우리는 그저 명령에 따르면 될 뿐이다.”

바이엔의 말에 나는 황궁을 떠나기 전에 받았던 두루마리를 떠올렸다.

[브로발렌 영지를 위협하는 몬스터가 있다. 해결하도록. 자세한 내용은 그곳의 영주에게 들으면 된다. 늦장 피우면 어떻게 될지 기대해도 좋다.]

이렇게나 무성의한 명령이라니.

일을 시킬 거면 어떤 몬스터인지 정도는 알려주라고!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릴 정도면 평범하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라는 소린데…….

그런 강력한 몬스터일수록 습성이나 서식지 같은 정보가 생명이었다.

어떤 몬스터인지라도 알았다면 이곳까지 오는 길에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이라도 했었을 텐데.

<뭐, 설마하니 처음부터 죽을 정도로 위험한 일을 시키진 않겠지.>

카이서스는 내 속을 알면서도 맘 편한 소리를 해댔다.

아마 녀석에게 육체가 있었다면 코까지 후벼가면서 말했을 거다.

그사이 목적지에 도착한 듯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리자 마중을 나온 듯한 사람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브로발렌의 영주인 캇셀 브로발렌 남작입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풍채 좋은 아저씨가 반쯤 벗겨진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인사했다.

“황제 폐하께서 보내셨소. 나는 5급 사법관 바이엔 라터스 자작이고 이쪽은 라엘 드리안 자작이오. 자세한 사항은 영주에게 들으라고 하셨소만.”

나를 대신하여 바이엔이 영주의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일단은 바이엔이 영주보다 작위가 높았기에 말을 높이지는 않았다.

“아, 예! 일단은 영주성으로 들어가시죠.”

영주가 가신들과 함께 안내하자 나와 바이엔이 뒤따랐다.

호위대원들이 나와 바이엔의 주위를 둘러쌌다.

겉으로는 호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딴짓을 못 하도록 호송하는 거나 다름없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호위대의 어깨 사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잘사는 영지 같지는 않았다.

영주성 인근인데도 크고 화려한 저택들보다는 수수하고 자그마한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영주가 맞이하러 나온 손님을 구경하러 나온 영지민들의 표정이었다.

뭔가를 두려워하듯 겁에 질린 표정과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듯한 표정.

확실히 이곳에 나타났다는 몬스터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영주성은 마차가 멈춰 선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성이라기보다는 조금 규모가 큰 3층 저택이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응접실로 안내되어 갔다.

“이런 작은 영지에 황제 폐하께서 직접 신경을 쓰실 정도면 이곳에 나타난 몬스터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오.”

바이엔의 말에 브로발렌 영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은 영지 내의 목장에서 가축 몇 마리가 사라진 사소한 일이었습니다만…….”

영주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이상한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몇 군데의 목장에서 가축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것이 몬스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이 근방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몬스터가 희귀한 지역이었으니까.

아마도 도적들이 훔쳐 간 것이겠거니 하고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도적들은 계속해서 범행을 저질렀고, 영지민들의 분노는 커져갔다.

이 영지는 축산업으로 먹고사는 곳이었기에 목장의 가축들은 영지민들의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러던 중 영지 외곽의 숲에서 버섯을 따던 소년이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갈라진 대지 사이의 협곡을 발견했다.

지금껏 사람들이 몰랐던 것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협곡이었다.

갈라진 대지 사이의 협곡으로 내려갔던 소년은 가축들의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에 겁에 질려 도망쳐 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협곡이 도적단의 소굴이라 판단한 영주는 즉시 경비대를 보내서 토벌을 명했다.

창검으로 무장한 100여 명의 병사들이 협곡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협곡 가장 안쪽에 있던 것은 도적단 따위가 아니었다.

다음 날 협곡으로 들어섰던 병사들 중 단 한 명만이 피투성이로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

생존자는 공포에 질려 외쳤다.

“배, 백 년 전의 검은 괴물이 그곳에 있었어! 놈이 그곳을 나오면 우리 모두를 죽일 거야!”

영주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백 년 전의 검은 괴물이라니, 그게 뭐죠?”

내 물음에 영주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말했다.

“이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백여 년 전의 날개 달린 사악한 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백여 년 전, 불을 내뿜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은 괴물은 미쳐 날뛰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일대를 초토화시키던 검은 괴물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갑자기 다시 나타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영주의 모습에 바이엔이 물었다.

“그 생존자를 만나볼 수 있겠소?”

“살아남은 병사는 간신히 그 말을 하곤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힘없이 대답하는 영주의 모습에 바이엔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 검은 괴물이 어떻게 생긴 몬스터인지 아시나요?”

내 물음에 영주는 눈치를 살피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옛이야기를 조사해 봤지만 거대한 몸체에 날개가 달린 검은 괴물이었다는 것 외에는 저도 잘…….”

“흠, 큰 도움이 안 되는 정보로군.”

바이엔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투덜대자 영주가 시선을 피했다.

과거에 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던 몬스터라면 황제가 신경 쓸 만도 하군.

“그보다 설마 100여 명의 경비대를 몰살시킨 정체도 모를 괴물을 우리끼리 상대하라는 건 아니겠죠?”

젠장, 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그런 괴물을 해치우라니!

첫 임무부터 죽으라는 거잖아!

내가 불안해하며 내뱉은 말에 바이엔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

“우리라니 무슨 헛소리지? 나와 내 대원들의 임무는 당신이 죽지 않게 지키는 것뿐, 돕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차하면 튈 거지만.”

이런 썩을? 호위대면서 위험해지면 튈 거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다니!

내가 어이없이 쳐다보자 바이엔은 작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저번 일로 깨달은 바가 있다면 시킨 대로 일하더라도 빠져나갈 곳은 마련해 놔야 한다는 거지. 난 목숨까지 걸고 싶지는 않거든.”

내가 눈을 찌푸리며 노려봤으나 그는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툼스톤 기사단의 1번대가 황제 폐하의 명으로 와 있으니까요!”

눈치를 보고 있던 영주가 할 말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툼스톤 기사단?”

묘비라니, 기사단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네.

그보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기사단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되묻자 바이엔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아 하는 표정으로 알려주었다.

“북서부지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타란티노 후작이 소유한 기사단 중 하나다.”

“아아, 그…….”

이제야 기억났다.

크라우드에까지 이름이 들릴 정도로 꽤나 유명한 기사단이었다.

뭐, 강해서라기보다는… 워낙 안 좋은 소문이 많아서 그런 거지만.

흉악한 범죄자 출신으로 이루어졌다거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기사단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문들이었다.

“쳇, 하필이면 그런 놈들이라니…….”

혀를 차며 못마땅해하는 바이엔의 표정을 보아하니 툼스톤 기사단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무척이나 싫어하는 듯한데…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건가?

잔뜩 경직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던 영주가 조심스레 말했다.

“어, 음… 일단 툼스톤 기사단 1번대 대장부터 만나보시겠습니까?”

영주의 말에 바이엔은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자식은 만날 필요도 없어.”

말하는 걸 들어보니 확실히 아는 사이인 모양이군.

그보다 혼잣말을 할 거면 좀 작게 하든가.

다 들리거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영주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댁 때문에 스트레스로 후드득 빠지려고 하고 있거든?

지금이라도 당장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외쳐줘야 할 것 같거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일단은 만나보죠. 어찌 됐건 같이 일을 하게 될 사이니까요.”

“쳇.”

바이엔은 딱 봐도 그를 만나기 싫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임무를 위해서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

“집사, 데히른 경을 데려오게.”

영주의 말에 집사가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하녀가 내어 온 차를 마시며 검은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었다.

잠시 후, 응접실에 들어온 것은 덩치 크고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였다.

그의 손에는 내용물이 반쯤 비어 있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한창 마시던 도중이었는지 너저분한 옷차림의 사내에게서는 술 냄새가 풀풀 풍겼다.

저 남자가 툼스톤 기사단의 1번대 대장인가?

“아아~ 이분들이 우리와 같이 괴물을 잡을 분들입니까?”

건들거리는 태도와 어조로 우리를 슬쩍 쳐다보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영주가 오히려 당황했다.

“데히른 경, 황제 폐하의 명을 따르는 분들이오. 예의를 갖추시오.”

“예이, 예이.”

영주의 말에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반갑습니다. 툼스톤 기사단 1번대 대장인 데히른 모스토입니다.”

귀찮아하는 태도로 자기소개를 한 그는 들고 있던 술병을 입에 대고 마셨다.

대낮부터 손님을 앞에 두고도 술을 마시다니, 확실히 기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행태로군.

“여전히 기사라기보다는 범죄자 같은 자로군.”

바이엔이 경멸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그를 쳐다본 데히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호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엘리트 사법관님.”

“흥!”

약간은 비웃듯이 말하는 데히른의 모습에 바이엔은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확실히 이전부터 아는 사이로군.

그것도 무척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야.

“크라우드 왕국의 라엘 드리안 자작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내가 인사를 건네자 데히른은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대놓고 상대를 훑어보는 행위는 무척이나 무례한 짓이었으나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호오! 그쪽이 그 유명한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는 분이시군? 황제 폐하께 찍혔다지? 크크, 이번에 잘 부탁합니다.”

대놓고 황제에게 찍혔다고 하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멀뚱히 있자니 데히른이 킬킬 웃으며 돌아섰다.

“인사는 했으니 전 이만 가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응접실을 나서는 그의 모습에 영주가 당황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데히른 경은 워낙 자유분방한 사람인지라.”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라 뒷배를 믿고 오만방자한 것이겠지요.”

그 말에 바이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하며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하, 하하…….”

영주는 애써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하아, 아무리 싫어한다지만 왜 가만히 있는 사람들까지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멀리서 왔더니 피곤하군요. 좀 쉬고 싶은데요.”

“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집사!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해 드리게!”

내 말에 영주는 눈에 띄게 기뻐하는 기색으로 집사에게 명령했다.

분위기를 완전히 박살 내는 바이엔과 같이 있는 게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드리안 자작님의 방은 이곳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영주가 내어준 방은 깔끔하고 편안해 보이는 방이었다.

침대 위에 짐을 내려놓고는 다시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곧장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시길.”

안에서 들려온 대답에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슨 일이지?”

짐을 풀고 있던 바이엔이 내 얼굴을 보며 용건을 물었다.

그가 내 옆방인 이유는 호위대장으로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아직도 짜증으로 가득한 바이엔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대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하지는 마시죠? 거기다 이번에 같이 일할 사이니 조금은…….”

듣고 있던 바이엔이 화가 난 듯 내 말을 끊으며 투덜거렸다.

“흥, 그런 쓰레기 같은 작자와 친한 척을 할 바에야 혀를 깨물고 말겠다.”

“누가 친한 척하랍니까? 그냥 시비만 걸지 마요. 황제가 지시한 일에 지장이 가면 그쪽도 곤란할 텐데요?”

내 말에 움찔한 바이엔은 잠시 후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쳇, 알겠다. 업무를 위해서라면… 최대한 무시하도록 해보겠다.”

뭐, 어찌 됐건 바이엔을 조금은 진정시켰으니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1년간이나 황제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다고.

그 덕분인지 출정하는 날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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