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 투옥
뒤통수의 얼얼한 통증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방 안에는 화장실 대용으로 쓰이는 양동이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단단하게 닫혀 있는 철문의 철창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빛이 조명의 다인지라 실내는 꽤나 어두웠다.
“감옥… 인가?”
<당연하지, 그럼 설마하니 특등실에 가둬놓겠냐?>
카이서스의 목소리 때문에 머릿속이 징징 울리는 것 같다.
게다가 딱딱하고 차가운 맨바닥에서 일어난 탓에 온몸이 뻐근했다.
“끄응, 머리 아파… 응?”
머리의 통증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머리로 가져가다가 뭔가를 알아챘다.
절그럭!
팔다리에 무거운 쇠사슬이 묶여서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다.
게다가 룬어가 잔뜩 새겨진 그것은 평범한 쇠사슬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마법의 사용을 차단하는 구속구인 듯하다.
게다가 입고 있던 옷 외에는 가지고 있던 마법 주머니와 같은 소지품들이 없다.
아마도 이곳에 가두면서 압수한 거겠지.
나는 뻐근한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절그럭거렸다.
나는 문에 나 있는 철창을 손으로 잡고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은 내 감방 안에 비하면 밝은 편이었다.
두세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복도와 내 감방의 것과 같은 철문들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문 안에서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이곳에는 나 혼자 갇혀 있는 건가?
게다가 복도에는 간수로 보이는 자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밖에 누구 없어요?!”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내가 다시 소리를 지르려던 차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자기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4번방 죄수. 일어난 모양인데?”
“무시해.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지시 없이 접촉하지 말란 명령 잊었어? 깨어났다고 보고하면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다시 말을 멈춘 그들의 걸음 소리가 멀어져갔다.
4번방 죄수는 아무래도 나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죄수라니, 용의자도 거치지 않고 곧장 죄인 확정이야?
아무래도 상황이 내 예상보다도 더 나쁜 것 같은데.
<적대적인 국가의 황궁 한복판에서 주요 인물 암살을 시도한 범인으로 붙잡힌 것보다 더 나빠질 것이 있냐?>
‘끄응 내 말은… 하아, 네 말이 맞아. 더 나빠질 것도 없지.’
간수들로 짐작되는 이들의 대화에서 아무리 불러봐야 나를 상대해 주지 않을 것임을 짐작한 나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지?
시종이 루리스가 나를 부른다고 하기에 따라서 갔고…….
아니, 그 시종의 말은 아마 거짓이겠지.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
그것을 밝혀내려면 그 시종을 붙잡아서 진실을 불게 해야 하는데…….
젠장, 내가 갇혀 있는 동안 가만히 있겠냐고!
멀리 도망가거나, 배후에 의해서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날 방에 들어가서 발견한 등에 단검이 박힌 채 쓰러져 있던 루리스.
그때까지만 해도 루리스는 살아 있었다.
만약에 그 후에 루리스가 죽었다면… 무척이나 상황이 곤란해진다.
살인미수와 살인은 그 무게가 다르니까.
게다가 공격을 받은 당사자인 루리스라면 진짜 암살자의 얼굴을 봤을지도 모른다.
그가 죽지만 않는다면 내 누명을 벗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하, 내가 그 인간이 죽지 않기를 바랄 줄이야.
정말 아이러니하군.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던 나는 골치가 아파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스승님도 내가 누명을 쓰고 잡혀 있다는 걸 알면 무척이나 걱정하고 계실 텐데.
게다가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받아서 심문을 받으실지도 몰라.
사절단의 다른 사람들도 이번 일로 인해 고생하겠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이 보이지 않는 감방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들로 괴로워하던 중이었다.
<야, 누가 온다.>
카이서스의 말에 그제야 나는 가까워져오는 발소리를 알아차렸다.
생각에 잠겨 있느라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문을 보았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뒤에서 비치는 역광 때문에 들어선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구……?”
“제국 대법원의 3급 사법관, 바이엔 라터스 자작이다. 어젯밤 발생한 루리스 크리스토 백작 암살 미수 사건…….”
체구는 작았으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들어 내 얼굴과 대조해 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사건의 용의자인 크라우드 왕국의 라엘 드리안 자작, 당신의 기소를 맡았다.”
제국군의 군복과는 다른, 검은 정복 차림의 사내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으음, 적어도 재판은 치르게 해줄 모양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이건 함정입니다. 저는 크리스토 백작이 급하게 볼일이 있어서 부른다는 시종의 말을 듣고……!”
“진술은 취조실에서 하도록.”
그럼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내가 어이없어하는데 카이서스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쯧, 멍청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분명 좀 전에 저놈이 암살 미수 사건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 그러고 보니 분명…….
“암살 미수라니, 그럼 그는 살아 있다는 겁니까?”
“다행히도 피해자인 크리스토 백작은 중상을 입고, 출혈 과다로 혼수상태이긴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뭐, 당신에게는 아쉬운 일일지도 모르지.”
그 말에 나는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적어도 누명을 벗을 길이 하나는 생긴 셈이로군.
물론 그자식이 내게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지만.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한 자들을 이용해서 나를 없애려 들지도 모르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생각이 들자 힘이 풀렸던 몸에 다시 긴장이 돌았다.
“그 시종! 저를 안내한 시종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를 확보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관련 인물들은 모두 확보하여 심문 중이니 걱정할 바가 아니다. 물론 당신의 스승과 일행들도 숙소에 연금되어 조사 중이지.”
역시 스승님과 사절단원들까지…….
안 그래도 무겁던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고개를 숙인 나에게 바이엔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황궁 지하에 위치한 특별 감옥, 감방 내부는 24시간 감시중이며 밖에는 수십 명의 기사가 지키고 있는 삼엄한 곳이지. 게다가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 쇠사슬은 마나 서클을 봉인하는 특수 구속 장치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황궁 안이면 마법을 사용 못 하는데 마나 서클을 봉인하는 쇠사슬까지 따로 채우다니.
너무한 것 아니야?
<네 녀석에겐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라는 칭호가 있지 않느냐. 별 볼 일 없는 네가 아니라 위대한 드래곤이 두려운 것이겠지, 크크.>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고, 이 멍청한 드래곤아!’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런 게 어딜 봐서 위대하다는 거야, 대체?!
속으로 내가 카이서스를 욕하거나 말거나 바이엔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간수들에게 쓸데없는 접촉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취조는 내일부터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말을 끝마친 바이엔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돌아서서 나갔다.
“잠깐!”
내가 황급히 불렀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고 문은 닫혀 버리고 말았다.
대답 없이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살아 나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지.
…응? 그런데 아까 감방 내부를 24시간 감시한다고 하지 않았나?
<음, 아마 아티팩트 같은 걸 몰래 숨겨두고 이곳의 모습을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거겠지.>
‘그럼 설마 먹고 자고… 싸는 모습까지 누군가 감시한다는 거야?’
<그럴걸?>
젠장, 누군지는 몰라도 누명을 씌운 놈을 찾으면 처절하게 복수해 주고 말겠어!
* * *
감방 문이 열리며 세 사람 정도가 들어섰다.
사법관의 검은 정복 차림의 바이엔과 간수로 보이는 기사 둘.
“일어나라, 취조실로 이동하겠다.”
여전히 싸늘한 바이엔의 목소리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스트레스와 불편한 잠자리 탓에 제대로 잠을 못 자서 몸은 피곤했지만 어느 때보다 정신은 맑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사람의 기사가 내 양옆에 서더니 안대로 내 눈을 가렸다.
“하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자 내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서클을 봉인하는 쇠사슬을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안대까지 씌우다니.
“절차에 따르는 것뿐이다. 그럼 출발하지.”
바이엔의 담담한 목소리에 내 좌우에 있던 기사들이 팔을 잡아당겼다.
일단은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괜히 저항할 필요도 없거니와 사법관인 바이엔의 신경을 거슬러 봐야 내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감방을 나와서 걷고, 계단을 오르고 몇 번의 문 열리는 소리를 지났을까.
갑자기 옆에 있던 기사가 안대를 벗기자 눈에 들어오는 환한 빛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오니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잠시 후 눈이 빛에 적응하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좁지만 밝은 방 안에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 사법관 정복 차림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일단 앉지.”
밝은 곳에서 본 바이엔의 얼굴은 냉랭하게 들리는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다.
제국의 법을 무자비하게 집행하는 사법관이라기보다는 뭐랄까… 한마디로 무해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뭘 그리 쳐다보나.”
나의 시선에 그는 불쾌하다는 듯 눈을 살짝 찌푸렸다.
나름대로 위협하려는 모양이었으나…….
앳되어 보이는 인상에다가, 지금 보니 키도 작고 호리호리한 편이라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많아봐야 서른 정도로 보이는 외모였다.
3급 사법관이라면 꽤나 높은 자리라고 알고 있다.
젊은 나이에 그 정도 자리에 오른 걸 보니 능력이 좋은 모양이다.
“아니, 생각보다 젊어 보여서요.”
내 말에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가볍게 내려쳤다.
쿵!
“지금 감히 제국의 사법관을 모욕하는 건가?!”
그의 얼굴은 분노 때문인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럴 리가요.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오히려 의아해하며 되묻자 그는 머쓱한 듯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앳되어 보이는 외모 때문에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모양이다.
“당신은 용의자고 나는 사법관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그러죠.”
자신의 경고에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바이엔은 옆에 놓아둔 가방에서 이것저것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부터의 모든 대화는 기록되며 당신의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가 될 수 있다.”
기록 아티팩트로 보이는 물건을 작동시킨 그는 이름, 국적, 직위, 출신지와 같은 인적 사항을 묻고, 나의 대답을 종이에 적어나갔다.
인적 사항에 대한 확인이 끝나자 그는 본격적인 취조를 시작했다.
“4월 18일 저녁, 당신은 무슨 이유로 크리스토 백작의 사무실에 간 거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진술하기 시작했다.
루리스가 보냈다고 주장한 시종이 나를 데리고 간 것.
그 시종이 문을 멋대로 열고 나를 밀어 넣은 것.
등에 단검이 박힌 채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루리스.
내 이야기가 끝나자 바이엔은 흐음, 하고 침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당신 말만 들으면 그 시종이 가장 의심스럽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증언과 현장의 증거들은 다르게 말하는데?”
아무래도 그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당연하겠지, 누가 함정을 팠는지는 몰라도 대충 파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리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지는 않았겠지.
취조는 한참이나 계속해서 이어졌다.
바이엔이 나도 모르는 증인의 증언과 증거를 제시하며 추궁하면 내가 부정하는 식이었다.
한참동안 진전이 없자 바이엔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이 빠져나갈 구석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위에서 고문 기술자를 투입할지도 몰라.”
아무래도 바이엔의 상관들은 나를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인데, 순순히 당해줄 수는 없지.
“고문을 할 거라면 처음부터 했겠죠. 제국이 언제부터 그리 신사적이었다고. 저를 가호하는 드래곤 때문에 고문하지 못하는 거잖습니까.”
고문이라는 말에 나도 조금은 화가 났기에 대놓고 생각을 이야기했다.
“감히!”
내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바이엔은 화를 내면서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제국의 사법부는 없는 자들과 죄인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무자비하기로 유명했다.
고문이나 협박과 같은 것은 그들에게 있어 숨 쉬듯이 가벼운 일.
죄인으로 만들려고 맘먹은 나를 아직 고문하지 않은 것은 역시 드래곤 때문이겠지.
애초에 내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라는 칭호가 없었더라면 재판조차 받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면 이것도 명심해 두시죠.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인간에게 거짓으로 누명을 씌운다면… 드래곤들이 분노할 겁니다.”
잔뜩 목소리를 내리깔며 한 말에 바이엔이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음? 그런 거 신경 쓰는 녀석들 없을걸? 넌 아직도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해서 모르냐?>
카이서스가 어이없다는 듯 쫑알거렸다.
드래곤은 해츨링을 건드린 것이 아닌 이상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면 세계에 간섭하지 못한다.
간섭할 수 있다 해도 귀찮다며 안하겠지.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겪은 드래곤의 실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몰라.’
<흐음, 평소에도 머리가 좋으면 좋을 텐데.>
쓸데없이 덧붙이는 카이서스의 말은 무시한 채로 바이엔에게 한마디 더 하려던 차였다.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황제 폐하께 승인받았다. 감히 폐하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그, 그것이 아니라…….”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척이나 당황하며 말리는 자들을 황제의 이름으로 단숨에 제압한 목소리는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루리스?”
비웃음이 섞인 얼굴로 들어선 것은 분명히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던 루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