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 함정
유리아의 말에 나와 스승님은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반품이라니, 무슨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반품한다는 거야?
잠시 침묵하던 스승님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이미 내 제자가 아니야.”
차갑게 선을 긋는 스승님의 말에 유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녀석은 지금 와서 돌려준대도 받기 싫겠지.”
가볍게 대답하는 유리아와는 달리 스승님은 무거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의도가 뭐지?”
어느새 빈 술잔에 다시 위스키를 채우며 유리아가 대답했다.
“지금 제국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
그 말은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리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생각 같은 건 전혀 모른다는 듯 담배만 피우며 히죽 웃어 보였다.
“그러니 잘 찾아보라고, 분명 댁들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생각보다 많을걸?”
그녀의 말은 제국 내에 황제와 루리스에게 반감을 지닌 자들이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제멋대로에다 난폭한 성정에, 칼라마쉬의 서를 이용하여 금기시된 일들을 행하는 것은 반발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일이었으니까.
“혹시 유리아 님도…….”
내가 그렇게 물으려던 차에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단장님! 1번대대 대대장 그루버 슐츠입니다. 간부회의 시간이지 말입니다. 병단 보급 담당관이 이번에도 늦으시면 연초 보급을 끊겠다고 하지 말입니다.”
그 말에 유리아의 표정이 뭐 씹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뭐?! 누가 뭘 끊어? 한동안 오냐오냐해 줬더니 이게 돌았나. 감히 병단장 연초 보급을 끊는다고? 야! 그 새끼 위로, 내 밑으로 다 집합시켜!”
“이미 회의실에 다 집합해 있지 말입니다. 병단장님만 오시면 되지 말입니다. 그리고 연초 정도는 보급 말고 사서 피우시지 말입니다. 거 봉급도 많이 받으시는 분이…….”
“이 새끼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잡동사니 중 하나가 문으로 날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먼저 가 있겠지 말입니다!”
문 밖에서 후다닥 하고 도망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건을 집어 던진 유리아가 씩씩거리며 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개새끼들, 내가 한동안 풀어줬더니 아주 군기가 빠져 가지고 말이야. 제대로 굴려줘야겠어. 미안한데 이만 돌아가. 오늘은 부하 놈들 조지느라 바쁠 것 같거든.”
그렇게 말한 유리아는 우리가 대답할 새도 없이 병단장실을 나가 버렸다.
아주 군대가 개판이네.
나와 스승님은 어이가 없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제국군의 마법사 중에서도 엘리트만 모여 있다는 마법병단이 이런 곳이었나.
그런데… 너무나도 타이밍이 정확했다.
어떻게 내가 유리아에게 ‘당신도 황제와 루리스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냐’라고 물어보려는 순간에 딱 맞춰서 그루버가 끼어든 거지?
마치 기다리고 있다가 유리아가 부르는 순간 문을 두드린 것처럼.
의심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던 스승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이만 가자꾸나. 주인 없는 방에 오래 앉아 있으면 실례란다.”
“네, 스승님.”
나와 스승님이 병단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마법병단의 장교 하나가 우리를 위병소까지 안내하겠다고 했다.
확실히 조금 전의 소란은 정확한 타이밍에 대화를 끊기 위한 연기였던 모양이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제3마법병단 본부를 나섰다.
제국 내에 지금의 황제에게 반발하는 자들이 있다고?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니…….
대체 유리아는 우리에게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걸까.
위병소를 나오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나온 직후 곧장 철문이 굳게 닫혀 버린 탓에 안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제3마법병단 본부에서 나오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이던 마부가 마차를 끌고 왔다.
나와 스승님이 마차에 올라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출발했다.
“생각을 알 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슬쩍 쳐다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그녀는 선대 황제가 제국을 통치할 때부터 군부에 몸을 담아온 사람이다. 어지간한 정치인들보다 그 속을 알기 어려울 테지.”
내 물음에 스승님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긴 스승님의 모습에 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무리 루리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그녀는 오래전부터 제국을 지켜온 사람이야. 제국에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도 타국 사람인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는 건…….”
스승님은 말끝을 흐렸지만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리아도 뭔가 꾸미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로군.
그것도 우리를 이용하려는 뭔가가.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지금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한동안 조심하는 것이 좋겠구나. 특히나 너는 더더욱.”
걱정이 가득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스승님의 말에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은 이곳에 온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를 더 걱정하시겠지.
내가 위험할지도 모를 일을 하는 것은 바라지 않으실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다가 당하는 것은 딱 질색이니까.
<괜히 손대다가 망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모르느냐?>
카이서스가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했으나 나는 애써 무시했다.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 뛰어다니는 아이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활기가 넘쳐나는 풍경이다.
저 사람들은 이 나라의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모르고 있겠지.
나도 저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좀 더 마음이 편했겠지.
거리의 풍경을 구경하는 사이에 우리가 탄 마차가 황궁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마부가 길을 헤매지 않은 덕분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려 별궁에 들어서려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며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라엘 드리안 자작님 되십니까.”
“무슨 일이죠?”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는 황궁 시종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은 경계하며 묻자 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말했다.
“루리스 크리스토 백작께서 만나고자 하십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그 이름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며칠 전 밤에 만난 것만 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또 봐야 한다고?
게다가 스승님이 아니라 나를?
스승님도 의아하다는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밖에 나갔다가 이제 돌아오는 길입니다만.”
이제 해도 지고 있는 데다가 저녁 식사도 하지 못했다.
가기 싫다는 뜻을 담아 돌려서 말하자 시종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외출하셨던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토 백작님도 계속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러니 서두르시지요.”
이 시종은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이러는 거야?
이러면 거절하기가 힘들어지잖아.
“끄응…….”
일단은 제국 황제의 측근인 데다 작위도 나보다 높은 놈이다.
갑작스러운 초대이니 거절한다 해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시종이 재차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백작님께서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지 않는다면 특수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이건 그냥 협박이잖아!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좋아요, 갈…….”
결국 순순히 시종을 따라나서려는데 스승님이 내 손을 붙잡았다.
“스승님?”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내가 돌아보자 스승님은 잔뜩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라엘… 어쩐지 불길하구나.”
나는 스승님의 손을 마주 잡으며 웃어주었다.
“에이, 걱정 마세요. 설마 자기가 불러놓고 무슨 짓을 하겠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나는 애써 스승님을 안심시키고는 시종에게 말했다.
“그럼 가죠. 안내 부탁합니다.”
“그럼 따라오시죠.”
시종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스승님을 뒤로한 채, 나는 시종이 몰고 온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몇 개의 궁전을 지나, 다른 궁전들에 비하면 투박한 건물들 몇 채가 모여 있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는 거지만 이른바 황궁 내의 행정구역이라고 불리는 곳 중 하나다.
마차가 멈춰 서고, 시종이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시종을 따라갔다.
“응? 크레센, 뒤에 계신 분은 누군가.”
건물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기사 중 하나가 나를 안내하던 시종을 보곤 의아해하며 물었다.
“크라우드 왕국에서 온 사절분입니다. 루리스 크리스토 백작님께서 초대하셔서 모시고 오는 길입니다.”
그 말에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조용히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백작님에 대해서 아시잖습니까.”
“흠, 하긴… 그분이야 원래 비밀이 많으신 분이니까.”
기사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은 담담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그러니 이 일도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낱 시종에게 입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 기분 나빴던지 기사는 눈을 찌푸렸다.
“알았으니 들어가 보게.”
시종은 기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원래 황궁의 보안상으로는 통보되지 않은 방문자에 대해서는 확인해 보고 들여보내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하지만 루리스가 암암리에 미치는 위세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겠지.
“그럼 라엘 드리안 자작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시종은 건물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터라 건물 곳곳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이 켜진 방들 중 하나에 루리스가 있는 거겠지.
시종은 2층 맨 끝에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루리스 크리스토 백작님,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안에 없는 건가?
사람을 불러놓고 자리를 비우다니, 뭐 하자는 짓거리야?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짜증을 내던 차였다.
“…으으.”
희미한 신음 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드래곤의 심장으로 강화된 청력이 아니면 듣지 못할, 무척이나 작은 소리였다.
<어이, 뭔가 이상한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뭔가가 심상치 않았다.
불길하다며 내 손을 붙잡던 스승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 시종은 들어오라는 말도 없었는데도 문을 벌컥 열었다.
뭐지?
황궁에서 일하는 시종 정도면 예의범절이 누구보다 몸에 배어 있을 텐데.
어째서 이런 무례를……?
시종에 불과한 그가 내가 들은 신음을 들었을 리는 없다.
말했다시피 그것은 드래곤의 심장으로 강화된 청력을 지닌 나에게도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으니까.
내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돌아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 일단은 돌아가는 게……>
카이서스의 경고가 머릿속에 들리는 것과 동시에 시종이 예상치 못한 몸놀림으로 내 등을 쳐서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컥!”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충격에 나는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고 방 안으로 나뒹굴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종은 문 밖에서 태연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으윽, 이게 무슨……!”
그를 노려보며 외치던 것도 잠시였다.
코끝에 느껴지는 비릿한 냄새에 말을 멈추었다.
이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맨 처음 보인 것은…….
<허, 이거 완전히 엿 됐는데?>
바닥에 흥건히 번져 있는 피,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루리스.
그의 등에는 단검 한 자루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함정이다!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루리스를 공격한 자가 나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함정.
만약 이대로 루리스가 죽는다면, 그리고 그 죄를 내가 덮어쓴다면…….
크라우드 왕국과 타이런 제국의 전면전이다.
내 목숨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은 덤이고!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루리스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보았다.
다행히도 약하기는 해도 아직까지는 맥이 뛰고 있었다.
치료 마법을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황궁 내에는 마법 사용을 방해하는 마법진이 전체적으로 펼쳐져 있다.
특수한 아티팩트를 지닌 자가 아니면 원천적으로 황궁 내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지 않고.
“이봐요! 도와줄 사람을……!”
누군가를 불러오라고 문 밖의 시종에게 말하려던 차였다.
<멍청하긴, 저 시종이 널 함정에 빠뜨린 녀석들과 한패인 게 당연하지 않느냐!>
“…어?!”
내가 카이서스의 말에 얼빠진 신음을 흘리는 그 순간.
문 밖에 서 있던 시종이 큰 소리로 외쳤다.
“크라우드의 사절이 크리스토 백작을 살해했다!”
그 외침에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빌어먹을!
“당신, 대체 누가 시킨 거야!”
나는 분노에 차서 시종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하지만 시종은 대답 대신 주먹을 내 복부를 향해 가볍게 내질렀다.
“큭!”
나는 숨이 막히는 통증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뭐야 이 실력은.
평범한 시종이 이런 격투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말이 돼?!
시종은 무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넌 대체…….”
누구냐고 말을 이을 새도 없이, 나는 뒤늦게 도착한 기사가 휘두른 검의 손잡이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나는 흐릿해져가는 시야 속에서 급히 달려온 사람들이 루리스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젠장, 맘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은… 죽지… 마라…….
<참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카이서스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