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70화 (70/150)

070화 - 유리아 발더스

제국의 수도답게 대륙에서 가장 크고 발달한 도시, 하이넨.

그중에서도 북서쪽 끄트머리의 한 구역.

근처 주택이나 상점들과는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높은 돌담장이 세워져 있다.

위병이 지키고 서 있는 정문 옆에는 [제3마법병단 본부]라는 글자가 은색으로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나와 스승님이 탄 마차가 멈추었다.

마차는 크라우드 왕국에서부터 타고 왔던 것이고 마부는 사절단의 수행원 중 하나다.

“그럼 저는 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나와 스승님이 내리자 마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는 마차를 몰아 근처의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1시까지니까… 늦지는 않았네요.”

하이넨이 워낙 넓은 데다 마부도 초행인 길이라 좀 헤매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는데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들어갈까요?”

“잠시만 기다리렴.”

내가 앞장서서 들어가려는데 스승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의아해하며 돌아보니 스승님이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뭐에요?”

푸른빛이 감도는 자잘한 보석이 박힌 팔찌였다.

“주변의 마나를 왜곡시키는 아티팩트란다. 네 진짜 실력을 감추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러고 보니 지금 만나러 가는 유리아 발더스는 대마법사 중의 1인.

그냥 만났다가는 내가 7서클에 올랐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거다.

“큰일 날 뻔했네요. 감사합니다.”

스승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아티팩트를 미리 구해놓으신 거겠지.

나는 팔찌를 오른 손목에 착용하고 소매로 가렸다.

나와 스승님은 정문을 지키고 서 있는 위병들을 향해 다가갔다.

“멈추십시오. 여기는 군사 구역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가 마차에서 내릴 때부터 주시하고 있던 위병들이 창을 교차하며 막아섰다.

“유리아 발더스 후작님의 초대를 받아서 만나러 왔습니다.”

위병의 물음에 답하며 어제 받았던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지휘관의 이름이 언급되자 놀란 듯 움찔한 위병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크라우드 왕국의 라엘 드리안 자작이고 이분은 적색 마탑의 카밀라 루드비히 님입니다.”

신분을 밝히자 위병은 미리 전해 들은 것이 있는지 위병소 안으로 들어가 누군가를 조심스레 깨우기 시작했다.

“오시기로 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의 중년 사내가 길게 하품하며 위병소에서 걸어 나왔다.

“그루버 슐츠라고 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다.

마법병단의 담장 내부는 꽤나 넓었다.

넓은 연병장을 가로질러 가자 크고 작은 건물들 몇 채가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 미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실용성과 내구성만을 중시한 건물들이었다.

마법사란 족속들이 다 그렇지.

거기다 군대니… 예술성은 기대도 하면 안 되겠지.

그중에서도 그루버가 안내하는 건물은 가장 작고 낡은 건물이었다.

흐음, 설마 병단장실이 저 건물에 있다고?

보통 고위급의 사무실은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에 위치하지 않나?

“참고로 제대로 안내해 드리는 거 맞습니다. 저희 병단장님이 굳이 저 건물에서 업무를 보신다더군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루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나 말고도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왜 굳이 다른 건물들을 놔두고 저 작고 낡은 건물에 병단장실을 차린 걸까?

갑자기 우릴 초대한 것부터 시작해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

나는 속으로 대체 그녀가 무슨 꿍꿍이인지 생각해 보았으나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건물에 들어선 우리는 병단장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문 앞에 섰다.

똑똑-

“병단장님, 1번대대 대대장 그루버 슐츠입니다. 손님을 모시고 왔지 말입니다.”

“들어와.”

내가 제국의 계급 체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대대장이면 꽤 높은 직급 아냐?

그런 양반이 위병소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던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쳐다보거나 말거나 그루버가 병단장실의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코에 훅 느껴지는 매캐한 냄새와 방 안을 가득 메운 뿌연 연기였다.

<으으, 마음에 안 드는 냄새로군.>

내 몸에 들어온 후로 나와 감각을 공유하는 카이서스로서는 담배 냄새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 역시도 담배 냄새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바닥에는 빈 술병이나 구겨진 종이와 같은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음… 그런데 굴러다니는 종이 중에 [기밀]이라고 적힌 게 보이는 건 내 착각이겠지.

정리라든가, 청소와는 담을 쌓은 듯한 방이었다.

<어, 음… 나 이거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맞아, 돼지우리다!>

남의 사무실을 돼지우리에 비교하는 건 좀 심하지 않냐…….

뭐, 연기가 자욱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비슷할지도.

그나마 정리가 되어 있는 것은 벽면 한쪽을 마법서와 전략서로 가득 채운 서가뿐이었다.

그것도 담뱃진으로 꽂혀 있는 책들이 대부분 누렇게 변색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중 가장 가관은 크고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와 왜 있는지 짐작도 안 되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책상 끄트머리에 밀쳐놓은 접시에는 말라비틀어진 고기 쪼가리와 빵 부스러기가 보인다.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밑의 애들 불러서 청소 좀 시키시지 말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환기라도 좀 하십쇼.”

그루버가 병단장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손님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다는 태도다.

그 말에 의자에 드러눕다시피 기대고 있던 여인이 똑바로 앉았다.

마흔 정도로 보이는 외형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푸석푸석한 회색 머리카락.

언뜻 보면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처진 실눈이 인상적이다.

그녀가 바로 우리를 초대한 유리아 발더스였다.

쉘던 왕국에 나타난 언데드 로드를 토벌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그때는 평범한 로브 차림이었다면 지금은 마법병단의 휘장과 계급, 훈장 같은 것이 붙어 있는 제국군복 차림이란 것이 차이점이랄까.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책상 위의 재떨이에 털었다.

재떨이는 이미 담배꽁초가 가득 쌓이다 못해 탑을 이루고 있어서 담뱃재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나도 늘 대답하지만 이 상태가 내가 제일 편하게 업무를 볼 수 있는 상태다. 그리고 창문을 열면 바깥의 소리가 들려서 시끄럽잖나.”

“담배 연기에 질식하는 것보다 시끄러운 게 백배 나을 것 같지 말입니다.”

그루버의 당연한 반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유리아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러는 네 녀석이야말로 뭐냐, 그 꼴은? 또 낮잠 자고 있었냐?”

부스스한 머리에 이곳저곳 구겨져 있는 군복, 거기다 눈가의 눈곱까지.

누가 봐도 자다 깬 모양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루버가 일과시간 중에 낮잠을 자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손님은 제대로 안내했지 말입니다.”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대답에 유리아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일단 나가 있어.”

“예. 알겠습니다.”

그루버가 경례를 해 보이고는 병단장실을 나가자 유리아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는 내뱉으며 말했다.

“1년 만인가?”

언데드 로드를 토벌한 것이 작년 2월의 일이다.

“대충 그 정도 되겠군요.”

스승님이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하자 유리아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편하게 말하자고. 댁이나 나나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국적도 다른 데다 계속해서 볼 사이도 아니니 말이야.”

그 말에 스승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 대답에 마음에 든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유리아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래도 넌 안 돼. 어린놈이 반말하면 패고 싶어지거든.”

<음, 공감되는군. 나도 이놈이 이 몸에게 함부로 말할 때마다 어찌나 열불이 나는지. 내게 육체만 있었어도…….>

헛소리하지 마, 인마.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만.”

어린놈이라는 말에 내가 툴툴거리며 대답하자 그녀는 킥킥거리며 책상 앞의 손님용 소파를 가리켰다.

“일단은 앉지 그래?”

병단장실 내부만큼이나 손님용 소파도 지저분했다.

이런저런 쓰레기에 덮여 있는 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듯했다.

손님더러 이런 데 앉으라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소파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유리아가 뻔뻔하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안 죽으니까 앉아도 돼.”

죽지는 않아도 한동안 앓아눕거나 할 것 같은데 말이지.

최소한 옷은 더러워질 것 같은데.

내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 스승님이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그러니 제자인 나도 얌전히 앉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보자고 한 거지?”

스승님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셨다.

앉자마자 용건부터 묻는 스승님의 말에 유리아는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후우우, 그 칼라마쉬의 서 말이야. 원래는 댁들이 갖고 있던 거랬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녀의 눈이 작다 보니 잘 안보여서다.

시야를 가리는 담배 연기에 눈을 살짝 찌푸린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스승님께 물려받은 것을 적색 마탑과 청색 마탑이 나눠서 보관하고 있었지.”

“칼라마쉬의 서. 그거 우리 황제가 갖고 있다는 게 확실해?

그렇게 물으며 그녀는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쉘던에서는 담배 피우는 모습을 못 봤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골초였군.

그런데 제국의 군인인 그녀가 대체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걸까.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스승님의 눈치를 살폈다.

제국 내에서 황제가 칼라마쉬의 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황제모독죄로 몰릴 수도 있다.

타이런 제국의 군인인 그녀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을 리가…….

“정확히 말하자면 황제가 아니라 그의 측근인 루리스 크리스토 백작의 손에 있겠지.”

“스승님?!”

예상치 못한 말에 내가 깜짝 놀라서 부르자 스승님은 조용히 있으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흐음, 역시 그놈인가? 이번엔 황제가 아예 황궁 만찬에서 새로 창설할 군대의 사령관이라고 소개했다지?”

유리아는 성냥으로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원래부터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네요.”

황제의 동생이자 황궁에서 지내는 카리야 황녀조차도 루리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황궁 밖에서 지내는 유리아는 어떻게 루리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그녀는 실소를 흘렸다.

“크크, 이런 나라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려면 뭐든 많이 알아둬야 하거든. 여기저기에 귀를 심어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담배 연기를 훅 하고 내뿜었기에 눈을 찌푸렸다.

<흐음, 생긴 것과는 달리 무서운 인간이로군.>

겉으로는 청소도 싫어하는 게으름뱅이처럼 보일 뿐이니까.

타이런 제국… 무서운 동네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보이지 않는 암투, 뭐 그런 건가.

유리아의 말에 스승님이 주변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나눈 대화가 흘러나가면 곤란해지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스승님의 말에 유리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걱정 마. 여긴 마법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으니까. 이것도 기본. 그쪽도 눈치채고 있었을 텐데?”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본 거야.”

두 사람의 대화에 깜짝 놀라 뒤늦게 마나를 퍼뜨려 보았다.

마나는 보이지 않는 막에 막힌 듯 병단장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둔한 녀석. 그러니까 타인의 영역에 들어갈 때는 네 스승처럼 조사해 보고 들어가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

‘그러는 너도 지금까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잖아.’

<그야 나는 네 녀석 안에서 영혼으로만 존재하기에 네 녀석이 보고 느끼는 것만 인지할 수 있으니까.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나도 느끼지 못한단 말이다.>

끄응, 그랬었지.

내가 이 방 안의 마나를 일부러 느끼지 않는 한 카이서스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니까.

아무튼 이렇게 개판인 공간인 주제에 보안만큼은 철저하다니, 아이러니하군.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에 적혀 있는 [기밀]이라는 글자가 더욱 눈에 띈다.

“그래서, 칼라마쉬의 서가 황제 쪽에 있다는 걸 확인한 이유는 뭐지?”

스승님이 유리아를 응시하며 물었다.

“아, 그렇지. 뭐라도 마실래? 어차피 있는 거라곤 위스키뿐이지만.”

스승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유리아는 책상 위를 뒤적거리다 술병을 들어 보였다.

“거절하지.”

“저도 괜찮아요.”

우리 둘 다 거절하자 유리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유리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아깝네. 이거 꽤 좋은 술인데 말이야.”

“그보다 내 질문에나 대답해 줬으면 하는데.”

제멋대로인 유리아의 태도에 스승님도 조금은 짜증이 난 듯 눈을 찌푸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알았어, 말해주면 될 거 아냐.”

그 말에 유리아가 투덜거리며 술잔을 내려놓곤 말을 이었다,

“우리 황제… 지금은 좀 삭았지만 어릴 때는 참 귀여운 꼬맹이였거든? 머리도 잘 돌아가고, 성격도 나쁘지 않았단 말이지. 뭐, 그때의 나도 병단장이 아니었지만.”

“그건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유리아는 선대 황제가 제국을 통치할 때부터 제국의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뜬금없이 황제의 어릴 적 이야기를 시작하자 스승님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일단 들어봐. 아무튼, 나름대로 기대가 컸단 말이지…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성격이 이상하게 변하더라고. 그전까지는 유리아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잘 따르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옛날 일을 떠올리곤 머리를 긁적이던 유리아는 빈 잔에 술을 더 따르며 말했다.

“대충 그 시기가 그 루리스라는 놈이 나타난 시기랑 비슷하단 말이지.”

그 말에 나와 스승님은 작게 침음을 흘렸다.

유리아는 술을 계속해서 홀짝였다.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해. 황제가 지금의 이상한 성격이 된 건 그 루리스라는 녀석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가만히 듣고 있던 스승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에 유리아가 씨익 웃어 보였다.

“루리스라는 놈, 원래는 댁의 제자였다며? 반품 좀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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