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65화 (65/150)

065화 - 제국으로

“뭐? 제국으로 직접 가겠다고? 제정신이야?”

그 말은 내가 제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아리안 누나의 첫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누나, 이번에는 꼭 가야 할 이유가 생긴걸요.”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니. 만약 네가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에이, 설마요. 일단은 정식 사절단으로 가는 건데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는 않겠죠.”

“그래도… 다른 곳도 아니고 제국이잖니, 남의 눈치를 안 보고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확실히, 대륙에서 단둘밖에 없는 제국 중 하나라면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하건 무시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제국이기에 더더욱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제국이라는 자부심.

그 프라이드가 대놓고 일을 벌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뭐, 이건 전부 내 개인적인 예상일 뿐이지만.

그러니까 아리안 누나가 이렇게나 걱정하는 거겠지.

나는 걱정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아리안 누나의 손을 붙잡았다.

“으, 응?!”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당황한 듯 몸이 굳었다.

“누나,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난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그리고 돌아오면…….”

“도, 돌아오면?”

내 손에 붙잡힌 채로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그 뒷말은 돌아오면 들려 드릴게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아리안 누나는 오히려 더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그거 어쩐지 더 불안해지는데.”

…어, 그러고 보니 ‘이 전쟁이 끝나면 그녀에게 청혼할 거야’라든가 ‘돌아와서 말하겠다’라는 말은 불길한 말이라고 했던가?

에, 에이. 설마.

<인간들 사이에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지?>

카이서스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

아, 제발…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말라고!

잠시 멈칫하는 나를 보고 있던 아리안 누나가 조용히 나를 끌어안았다.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알았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이내 남은 손으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걱정 말아요. 반드시 돌아와서 하고 싶은 말을 해줄 테니까요.”

“응.”

나와 아리안 누나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있자니 옆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흠, 흠. 청춘이로구나. 그래도 주변은 좀 살피지 그러니?”

으에에에!

그러고 보니 스승님이 옆에 계셨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스승님의 말에 나와 아리안 누나는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나와 아리안 누나는 부끄러움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서로 시선을 피했다.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스승님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너희 둘은 보고 있으면 참 답답하구나.”

<클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군.>

“네? 뭐가요?”

내가 영문을 몰라 되묻자 스승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인사를 끝마쳤으면 이만 왕궁으로 가자꾸나. 곧 출발이란다.”

“네.”

외가에는 이미 아침 일찍 찾아가 제국으로 떠난다는 이야기와 함께 인사를 드리고 온 길이었다.

당연하지만 어머니와 누나도 내가 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에 무척이나 걱정을 하셨다.

어머니는 걱정에 눈물을 보이실 정도였다.

외가에 들른 김에 아리안 누나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보니 오늘은 쉬는 날이라 하여 이렇게 직접 아리안 누나의 하숙집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 것이다.

사절단이 왕궁을 출발하는 시간은 정오.

지금이 오전 10시쯤이니 서둘러야 했다.

시간이야 넉넉하지만 출발 전에 있을 국왕 전하의 환송 연설이라든가 기타 등등의 행사를 치르려면 서둘러 가야만 했다.

“그럼 누나, 금방 다녀올게요.”

“응. 무사히 돌아와. 적색 마탑주님도 무사히 돌아오세요.”

“그래.”

나와 아리안 누나는 금방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몰랐다.

금방 보자고 한 것이 다시 만나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 * *

“…그러므로 경들은 이번 사절행에 있어서 본국의 위상을 실추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제국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예!”

사절단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왕궁 안을 울렸다.

다행히 나와 스승님은 출발 행사에 늦지는 앉았지만 국왕의 연설은 꽤나 지루했다.

<끝났냐? 인간들이란 뭐 이리 말이 많은지 원…….>

쓸데없는 말이 많은 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그럼 출발하라!”

총 10명으로 이루어진 사절단과 50여 명의 수행원들, 그리고 그들을 국경 지대까지 호위할 100여 명의 호위부대가 왕궁을 나섰다.

왕족들과 대소신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 사절단은 왕궁 밖에 위치한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했다.

목적지는 타이런 제국과의 국경지대.

160여 명의 인원이 동시에 텔레포트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순차적으로 이동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녁.

해가 진 이후에 이동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고 무리가 있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국경 지대의 도시 칼데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제국으로 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구나.”

사절단이 묵을 숙소로 이동하던 도중에 스승님이 말했다.

나야 지난번 칼라마쉬의 서를 찾아서 돌아다닐 때 제국의 수도, 하이넨까지 가봤었지만 스승님은 정말로 오랜만에 제국으로 가보시는 거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승님을 쳐다보며 뒷말을 기다렸다.

이전에는 내가 올려다보아야만 했었던 스승님의 얼굴이 이제는 내가 살짝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다.

내가 그동안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귀족들을 상대할 때 조심하렴. 그들은 온갖 암수와 비열한 암투가 난무하는 곳에서 살아남은 자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에는 비수를 품은 자들뿐이니.”

“네. 조심할게요.”

적어도 스승님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제국에게 있어서 나는 눈엣가시,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에게 뭔가를 뒤집어씌우려 할 것이다.

스승님의 말대로 조금의 틈이라도 내비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스승님도 조심하셔야 해요.”

내 말에 스승님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내 예상대로라면 루리스가 스승님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접근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때 무슨 짓을 할지는 나도 모른다.

“내 걱정은 말거라. 내가 아는 그 아이는 그렇게까지 무모한 이가 아니니까.”

그렇게 무모하지 않은 사람이 제국의 황제를 꾀어서 칼라마쉬의 서를 훔치고, 지금까지의 만행을 저지른답니까?

라고 말하고는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도 ‘그 아이’라고 부르는 스승님의 말에서 나를 아끼는 만큼 얼마나 그를 아꼈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스승님이 만약에 그를 만났을 때, 제대로 추궁이나 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로군.

스승님은 언제나 강인하신 분이시지만 자신의 사람들과 관련된 일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약해지시는 분이시니까.

아마 그때는 내가 나서야겠지.

나라도 정신 차리자.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숙소에 도착했다.

다들 낮부터 쉬지도 않고 움직였기에 피곤했기 때문일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우리는 칼데바를 떠났다.

사절단의 수는 적어도 그에 딸린 수행원, 그리고 각자의 짐과 황제와 중요 인물들에게 전달할 선물들이 있었기에 마차의 수만 해도 삼십 대가 넘었다.

인원이 인원인 데다 마차의 수도 많다 보니 속도를 그리 빠르게 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잠깐잠깐 멈춰 서서 쉬기는 했으나 많은 시간을 마차에 앉아서 보내야 했다.

그 탓에 조금은 속이 울렁거렸다.

“힘들지? 조금만 더 참으렴.”

함께 마차를 타고 있던 스승님이 내 속사정을 눈치채곤 걱정해 주었다.

“으으, 네.”

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 같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대답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갔을까.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간.

마차의 창문 밖으로 저 멀리 제국의 깃발이 휘날리는 요새가 보였다.

“멈춰라! 여기서부터는 타이런 제국의 땅이다! 어디서 온 누구이며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밝혀라!”

요새의 벽 위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며 소리친 탓에 우리는 멈춰 섰다.

사절단의 단장인 마일렌 공작이 마차에서 내려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우리는 크라우드 왕국에서 온 사절단이다! 나는 사절단장인 마일렌 사이닉이다!”

마일렌 공작의 말에 고개를 내밀었던 제국의 병사는 사절단 가운데 솟은 크라우드 왕국기를 확인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투마저 바뀐 제국 병사가 성벽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얼마나 지났을까.

요새의 성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병사들을 이끌고 누군가가 나왔다.

“저는 이 세프트 요새의 성주인 사울펜 바록 백작입니다. 크라우드 왕국 사절단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국의 땅이니 크라우드 왕국의 병력은 이만 돌려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요새의 성주의 말에 마일렌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소이다.”

마일렌 공작이 손짓으로 부르자 호위대의 대장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이곳까지 호위하느라 수고했네. 이만 돌아가 보시게.”

“알겠습니다. 귀국하실 때 연락 주시면 마중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호위대장이 호위대를 이끌고 말머리를 돌렸다.

호위대가 떠나가자 다시 앞으로 나선 마일렌 공작이 사울펜 성주에게 말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

그 말에 사울펜 성주가 웃으며 화답했다.

“하하, 물론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국은 크라우드 왕국의 사절단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울펜 성주의 뒤에 서 있던 병력이 둘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환영해 줘서 고맙구려.”

성주에게 감사를 표한 마일렌 공작이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사울펜 성주의 뒤를 따라 우리가 탄 마차들이 세프트 요새로 들어섰다.

국경에 위치한 요새라서인지 성벽도 높고, 병력의 숫자도 많고 장비도 우수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감히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겠냐는 생각에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우리는 곳곳에서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세프트 요새의 내성으로 들어섰다.

사절단에 대한 대접이야 어느 나라건 비슷비슷하기에 우리는 세프트 요새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징검다리식으로 이용해 가며 이동했다.

텔레포트 멀미가 있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고된 여정이었다.

게이트가 있는 도시에 들를 때마다 그곳의 최고 권력자들에게 대접을 받으며 이동하다 보니 우리 사절단은 제국에 들어선 지 열흘이 지나서야 제국의 수도, 하이넨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대륙력 757년 4월 11일.

“크라우드 왕국에서 오기로 한 사절단이 도착했다고 했나?”

책상에 앉아 보고서들을 읽고 있던 루리스의 말에 앞에 서 있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 오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루리스는 보고서를 읽던 것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흠, 얼마 전에 카리야 황녀가 억지로 우겨서 크라우드 왕국에 다녀온 것 때문인가. 대체 무슨 용건으로 여길 온 거지? 명목상으로는 양국의 관계 개선이겠지만…….”

잠시 생각하던 루리스가 고개를 들어 앞에 선 사내에게 말했다.

“크라우드 왕국에서 사절단으로 온 자들은 누군가?”

“사절단장인 마일렌 사이닉 공작을 필두로 대부분 크라우드의 고위귀족들입니다만…….”

“입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수하의 말에 루리스가 한쪽 눈꼬리를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 모습에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조금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중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와 그의 스승인 적색 마탑주가 끼어 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루리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네?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가 끼어 있다고……”

“그 뒤에!”

버럭 소리치는 루리스의 모습에 움찔한 사내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 스승인 적색 마탑주도 함께라고 했습니다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수하의 모습에 루리스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침묵했다.

그 모습에 왠지 불안해진 수하가 눈치를 살폈다.

“루, 루리스 님?”

자신을 부르는 말에 루리스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나가 있어.”

“네?”

“나가 있으라고.”

이마를 매만지는 손가락 사이로 내비치는 싸늘한 시선에 수하는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황급히 방을 나갔다.

방에 혼자 남게 된 루리스는 조용히 이마를 매만지다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여기에 왔다고……? 설마 내 정체를… 아니, 그럴 리가…….”

한참을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리던 그의 손가락이 어느새 왼쪽 눈가까지 내려갔다.

그는 눈가에 새겨진 깊은 상처 자국을 매만졌다.

“카밀라…….”

스승이자 옛 연인이자 원수인 여인의 이름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채로 소용돌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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