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 스승님의 슬픔
“왔느냐.”
“아버지?! 어떻게 여기에…….”
태연하게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에 내가 놀라서 물었다.
“내가 온 것이 불만인 거냐?”
“아뇨, 아버지가 직접 오실 줄은 몰랐거든요.”
내 말에 아버지는 보고 있던 서류를 덮으며 대답했다.
“제국의 음모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해서 내가 직접 온 거다.”
뭐,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닌 모양이네.
“그래서 그 루리스에 대한 정보는요?”
“이거다.”
아버지는 자신이 읽고 있던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 적힌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루리스 - 현재 타이런 제국의 황제인 타이커스가 아직 황태자였던 9년 전에 나타났음. 그의 정체는 물론이고 존재에 대해서도 아는 이는 거의 없음. 타이커스의 발언에서 그가 크라우드 왕국 출신이라는 것을 확인. 그 외의 정보는 미상. 초상화를 동봉하겠음. 앞으로도 계속해서 조사하겠음.]
한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이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충분한 정보였다.
“정말 우리 나라 출신이었다니… 게다가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 9년 전이라…….”
스승님의 첫 제자인 루리스가 사라진 시점으로부터 1년 후…….
정말로 황제의 측근 루리스가 스승님의 제자였던 루리스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서류를 넘겨 동봉된 초상화를 확인했다.
어둡고 음울한 표정.
왼쪽 눈가에 깊은 상처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훤칠하게 생긴 사내였다.
이 사내가 바로 그 루리스…….
“왜 그러냐? 뭔가 더 아는 거라도 있는 거냐?”
내 표정을 보고 의아해진 아버지가 물어왔다.
“아, 아뇨. 그보다 이 정보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예요? 왕실에서도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내 물음에 아버지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는 근거지가 크라우드 왕국일 뿐, 활동 무대는 전 대륙이니까. 제국 황실에도 우리의 정보원이 있다.”
제국 황실에도 정보원이 있다니, 그 정도였나?
세인트혼의 규모나 정보력에 놀라며 나는 초상화를 품에 집어넣었다.
“이 초상화, 가져가도 되죠?”
“초상화를 가져가는 걸 보니 역시 뭔가 짐작 가는 곳이 있나 보구나.”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요.”
내가 무겁게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먼저 가보마.”
“아버지, 이번에도 어머니와 누나는 만나지 않고 갈 셈이에요?”
내 물음에 문을 나서려던 아버지가 순간 멈칫했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안전하지 않다는 모양이다.
전 대륙을 무대로 하는 암살단의 수장의 가족이라는 게 밝혀지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니까.
…아니 잠깐, 그럼 난 왜 만나는 건데?
난 위험해져도 상관없다 이거야?
내가 무어라 하려고 하는 사이 아버지는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끄응, 어쩐지 기분이 나쁜데…….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품에 넣은 초상화를 만져보았다.
가장 빠르게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스승님께 이 초상화를 보여주는 거겠지.
그리고 만약 이 루리스가 정말 그 루리스라면… 스승님께선 무척이나 슬퍼하시겠지.
나는 재차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갔다.
* * *
스승님께 초상화를 보이기로 결정은 했다지만 실행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옛 제자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괴로워하셨는데.
그 제자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절망하실지…….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스승님이 계신 여관으로 걸음을 옮기고는 있으나… 발이 무거웠다.
느릿느릿한 걸음이었으나 어느새 내 몸은 스승님이 묵고 계신 여관 앞에 서 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스승님이 묵고 계신 방의 창문을 올려다보던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여관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여관 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2층으로 곧장 올라갔다.
209호라고 적힌 문 앞에 선 나는 재차 심호흡을 하고는 노크했다.
똑똑-
“누구죠?”
“접니다, 스승님.”
“라엘? …미안하지만 오늘은 혼자 있게 해주겠니?”
“죄송합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스승님이 대답했다.
“…후, 들어오렴.”
안쪽에서 스승님의 허락이 들리자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확인해야 할 것이라니. 뭔가 새로운 소식이 있는 모양이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음에도 스승님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 데다 내가 찾아와 확인할 것이 있다고 하니 더욱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옛 제자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으신 거겠지.
“네. 타이커스 황제의 루리스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구했어요.”
스승님은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제국의 그 루리스는… 우리 크라우드 왕국 출신이라더군요. 그리고…….”
크라우드 출신이라는 말에 스승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천천히 품에서 초상화를 꺼내어 스승님께 건냈다.
“이게 그 루리스의 얼굴이랍니다. ….”
내가 건넨 초상화를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 스승님의 표정이 굳어갔다.
“아, 아아…….”
무어라 말도 못하고 신음과도 같은 소리만을 흘리는 스승님의 모습에서 나는 틀리길 바랐던 내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는 스승님의 옛 제자였군요.”
내 말에도 스승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스승님은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힘없이 중얼거리실 뿐이었다.
“말도 안 돼… 분명 그 아이는 죽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런 스승님을 보는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스승님이 이렇게 당황하고, 충격을 받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칼라마쉬의 서를 도난당했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떨리는 시선으로 초상화를 응시하던 스승님이 눈을 질끈 감으며 초상화를 내게 돌려주었다.
“이 초상화가 정말 타이커스 황제의 뒤에 숨어 있다는 그자의 것이니?”
“네.”
재차 확인시켜 주는 내 대답에 눈을 감고 있던 스승님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로구나… 두 루리스가 동일 인물인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어찌할 셈이니?”
스승님의 물음에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대응을 생각한다면 국왕이나 왕자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야겠지만… 모든 일의 원흉이 알고 보니 스승님의 옛 제자였다는 사실은 쉽게 말하기가 힘들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사람들이 스승님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스승님의 죄책감도 더욱 커지겠지.
스승님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제자인 나로서도 괴로운 일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스승님이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스승님의 눈에는 아직까지 슬픔과 충격이 깃들어 있었으나 뭔가를 결심한 듯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왕실에 보고하도록 하렴.”
“하지만 스승님, 그렇게 하면……”
내가 눈을 찌푸리며 말하려는 것을 끊으며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죄란다. 언제까지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니?”
그렇게 말하며 스승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미소였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정체를 알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로구나.”
적.
그 말을 하는 스승님의 얼굴이 무척이나 괴로워 보였다.
그는 스승님의 옛 제자이기도 했지만… 연인이었기도 했으니까.
“…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함께 입궁해서 보고하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말한 스승님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만 돌아가 주겠니?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구나.”
무척이나 지친 목소리였다.
“네.”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순순히 물러났다.
* * *
다음 날.
나와 스승님은 아침 일찍부터 왕궁으로 향했다.
스승님은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못한 듯했다.
“괜찮으세요?”
“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렴.”
스승님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지만 아직까지 괴로움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국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이 함께 어쩐 일인가?”
국왕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그의 옆에 선 왕자도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전하, 그 루리스라는 자가 누군지 알아냈사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 사악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어오는 국왕의 말에 대답한 것은 스승님이었다.
“10년 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제 첫 번째 제자인 듯하옵니다.”
스승님의 말에 국왕은 잠시 침묵했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히 이야기해 보게.”
국왕의 말에 스승님은 내게 들려주었던, 말하기 괴로운 과거의 일을 다시 말해야 했다.
과거의 이야기를 들은 국왕은 무거운 표정으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침음을 흘렸다.
“그런 일이 있었나… 설마하니 이 모든 일을 꾸민 자가 적색 마탑주의 제자였던 자라니.”
그의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말에 스승님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후우, 적색 마탑주여,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네. 이게 자네의 탓은 아니지 않나.”
“아닙니다. 제가 좀 더 처신을 잘했더라면…….”
국왕의 위로에도 어둡게 가라앉은 스승님의 얼굴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왕국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싶더라니. 결국은 그 루리스라는 자의 원한 때문이었던 것이란 말인가.”
침음을 흘리는 국왕의 말에 스승님은 침묵했다.
“그런데 라엘 군, 자네는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건가? 우리 왕국의 정보부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는데.”
국왕의 의아하다는 물음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으음, 그것이…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은 비밀결사에 부탁했더니 알아봐 주었습니다.”
사실은 그 비밀결사의 수장이 우리 아버지지만.
“호오, 그 정도로 유능한 집단이 있단 말인가? 기회가 된다면 우리 왕국에 스카우트하고 싶군.”
“으음,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음지에 속한 집단인 데다 자신들 나름대로의 사명을 지니고 있어서 중립을 지키려 할 겁니다.”
내 말에 국왕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흠, 그런가?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아쉬운 일이로군.”
“그런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의 원흉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군요.”
국왕의 옆에서 지금껏 가만히 듣고 있던 왕자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루리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어째서 크라우드 왕국을 적대하는지, 그 이유만을 알게 되었을 뿐.
국왕의 집무실에 모인 우리는 무거운 표정으로 잠시 동안 침묵했다.
“뭐, 그래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국왕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님의 얼굴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오직 슬픔과 죄책감, 불안감만이 스승님의 얼굴에 가득했다.
그런 스승님을 보는 나의 마음도 무거웠다.
“후, 그대도 상심이 클 터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내 다음에 부르도록 하겠네.”
국왕이 슬픔에 가득 찬 스승님을 배려하며 말했다.
그러자 아무 말 않고 있던 스승님이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 한 가지 청을 드려도 괜찮겠사옵니까.”
“어떤 것 말인가?”
갑작스러운 스승님의 말에 의아해진 국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스승님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이런 제국에 사절단을 보내시옵소서. 그리고 저도 그 사절단을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전혀 예상치 못한 스승님의 청에 국왕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그대…….”
나 역시도 다급히 말했다.
“스승님? 설마 루리스를 직접 만나기라도 하실 생각이세요? 안 됩니다.”
나의 만류에도 스승님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
“전하, 부탁드리옵니다.”
“흐음…….”
스승님이 재차 부탁하는 말에 국왕은 고민이라는 듯 침음을 흘렸다.
그때 왕자가 입을 열어 스승님의 의견을 거들었다.
“아바마마, 적색 마탑주의 뜻대로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카리야 황녀가 사절로서 본국을 방문했잖습니까. 저희도 사절을 보내는 것이 도리인 듯합니다.”
“왕자님!”
내가 그 말에 깜짝 놀라 소리치듯 말했으나 이미 그 말은 국왕의 마음을 정하게 하는 데에 충분했다.
“그것도 그렇군. 애초에 마수를 잡으려면 마수의 소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곧 타이런 제국으로 보낼 사절단을 꾸리도록 하지. 적색 마탑주, 그대도 준비를 하고 계시게.”
“스승님이 직접 가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내가 반발하자 스승님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라엘, 난 아직도 그 아이가 어째서 나를 배신한 건지, 어째서 칼라마쉬의 서에 손을 대려 한 것인지 모른단다. 그때 그 이유를 듣지 못한 것이 아직도 이 스승에게 있어서는 마음의 짐이란다.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이유를 들을 수 있다면 직접 듣고 싶구나.”
“하지만…….”
스승님의 말에도 내가 말끝을 흐리며 납득하지 못하자 왕자가 말했다.
“선생,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절로서 방문하는 거네. 다른 곳도 아니고 제국이야. 사절로서 온 손님에게 손을 대지는 않을 걸세.”
이미 결정이 난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스승님이나 국왕의 결정을 돌릴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저도 사절단에 동행하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도록 할 테니 오늘은 두 사람 모두 물러나도록 하게.”
국왕의 말에 나와 스승님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국왕의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왕궁을 나서는 동안 나와 스승님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대륙력 757년 3월 27일.
타이런 제국으로 향하는 사절단이 꾸려졌다.
미리 정해진 대로, 그중에는 나와 스승님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