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63화 (63/150)

063화 - 루리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린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침대 맡에 앉아 생각했다.

어제 스승님이 보여주셨던 표정.

그건 분명히 뭔가를 숨기고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물어보기에는 스승님이 보이셨던 표정이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슬픔에 잠긴 모습이었다.

하지만 루리스라는 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아내야만 하는 상황.

“음, 일단은 주변에 물어보도록 할까.”

그렇게 정한 나는 곧장 적색 마탑으로 통신을 걸었다.

[적색 마탑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른 아침부터 통신이 걸려와서인지 대기하고 있던 수습생의 모습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마탑주님의 직계 제자인 라엘 드리안입니다. 칸델 씨께 통신을 연결해 주세요.”

[앗?! 그 라엘 님이신가요?! 그 드래곤의 가호를 받으시는 분이자 천재 마법사이신?!]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수습생은 내 이름을 듣자 깜짝 놀라며 흥분한 표정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도 나름대로 인기인이 되긴 한 모양이야.

그나저나 천재 마법사라니, 조금은 쑥스러운데.

뭐, 듣기 싫은 건 아니지만.

[저, 정말로 라엘 님과 대화를 하다니 영광이에요! 아참! 칸델 님에게 통신을 연결해 달라고 하셨죠? 잠시만요!]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수습생이 내 말을 뒤늦게 떠올렸다.

통신기 너머로 수습생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이내 칸델 씨에게 통신이 연결되었다.

[오! 라엘 군. 이런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인가?]

부지런한 마법사답게 일찍 일어나 있었던 듯한 칸델 씨가 반가워하며 통신을 받았다.

“네. 뭔가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꽤 긴한 것이라 아침부터 연락드렸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내 말에 칸델 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네. 누군가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아무래도 스승님은 뭔가를 알고 계신 듯한데 말해주지 않으셔서요.”

[그래? 자네가 알아보고 있는 자가 대체 누군데 그러시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칸델 씨에게 나는 말했다.

“칸델 씨. 혹시 루리스라는 이름에 대해 아십니까?”

루리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칸델 씨의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듣지 말았어야 할 것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 이름을 대체 어디서 들은 겐가?]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칼라마쉬의 서와 관련된 일입니다.”

칼라마쉬의 서라는 말에 칸델 씨는 침음을 흘렸다.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스승님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칸델 씨의 모습에 나는 재차 말했다.

“몹시 중요한 일입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 침묵하던 칸델 씨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마탑주님이 말하시지 않은 것을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내 말해줌세.]

루리스라는 자에 대해 뭔가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루리스라는 이름은… 마탑주님이 아꼈던 옛 제자의 이름이라네. 자네에게는 선배라고 할 수 있겠군.]

…선배… 라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가 제자가 되기 이전에 스승님께 다른 제자가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칸델 씨. 루리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주세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칸델 씨는 무겁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건 안 되겠네.]

“왜죠?”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지만 내가 함부로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네. 마탑주님께 직접 물어보도록 하게. 그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네.]

무거운 표정으로 말하는 칸델 씨의 모습에서 더 이상은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하네.]

“아뇨.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마탑에 한번 돌아오게. 다들 자네를 보고 싶어 해.]

“네, 알겠습니다.”

칸델 씨와의 통신을 종료하고 침대에 드러누우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스승님께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는 일어났다.

일단은 출근부터 해야겠다.

* * *

수업이 끝난 후 왕자가 말했다.

“하아, 그 루리스라는 자는 대체 정체가 뭐야?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대. 그렇다고 대놓고 조사할 수도 없으니…….”

아무래도 루리스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애로 사항이 많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제국의 시선이 있으니 비밀리에 조사를 해야 하겠지.

드러내고 조사하기보다 비밀리에 조사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니까.

순간적으로 스승님의 첫 번째 제자였다는, 그 루리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했으나 관두기로 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괜한 이야기를 할 수 없지.

거기다 제국의 루리스와 동일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마탑과 관련된 일이니 쉽게 말할 수도 없다.

“아무튼, 오늘 할 일 없으면 같이 밥이나 먹자고.”

식사를 권하는 왕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일 보자고.”

조금은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보내주는 왕자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분명 스승님은 트럼벨에 머무는 동안 시내에 있는 고급 여관에서 지낸다고 하셨지.

어디 안 가셨으면 좋겠군.

왕궁을 나온 나는 곧장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내, 사과 따는 아가씨라는 고급 여관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딸랑-

문이 열리며 종이 울리자 가게 안에 있던 주인장이 돌아보았다.

“어서 오세요.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아, 투숙객 중 한 분을 만나러 왔는데요. 카밀라 루드비히라는 분이 여기 묵고 계시죠? 제자가 찾아왔다고 전해주세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관 주인장은 종업원을 부르더니 위층으로 올려 보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내려와서 전한 말을 들은 주인장이 말했다.

“만나시겠답니다. 올라가서 왼쪽으로 쭉 가시면 209호가 보일 겁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스승님이 머물고 있다는 209호로 향했다.

똑똑-

“스승님, 접니다.”

“들어오렴.”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스승님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연락도 자주 안 하는 애가 직접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니?”

스승님의 미소가 힘없어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아마 옛 제자를 떠올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스승님께는 미안하지만 나는 꼭 그에 대해서 물어봐야만 했다.

“스승님……. 제 선배, 루리스라는 자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내 말에 스승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엇보다도 선배라는 말에 놀란 듯했다.

“그건 어떻게…….”

놀라 묻는 스승님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스승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으렴.”

내가 탁자 맞은편에 앉자 침중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스승님이 한참 후에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벌써 30년 전의 이야기로구나.”

스승님은 흐릿한 시선으로 창밖을 응시하며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스승님은 우연히 들른 고아원에서 만난 9살의 소년을 제자로 맞아들였다.

재능으로 넘쳐나는, 마법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빠르게 마법을 익히고, 스승의 지식을 습득해 갔다.

스승은 그런 제자를 아끼고, 소년 또한 스승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따랐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청년은 스승을 사랑하게 되었다.

스승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제자의 사랑이 부담스러웠으나 이내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사제이자 연인.

그때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10년 전, 그 제자가 칼라마쉬의 서에 손을 대기 전까지.

“칼라마쉬의 서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흉, 칼라마쉬의 서라는 이름에 나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래…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나 몰래 칼라마쉬의 서에 손을 대려 했단다.”

“그가 칼라마쉬의 서에 손을 대려한 이유는 뭔가요?”

“그때 그 아이는 정체를 겪고 있었단다. 서클을 올리기 위해 그런 거겠지.”

“어제 분명히 스승님께선 그가 죽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내 물음에 스승님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떠올리기 싫은 것을 억지로 떠올리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문 스승님이 천천히 말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그 아이를 막으려 했고… 결국 싸움이 벌어졌단다. 그 결과… 그 아이는 내 마법에 부상에 입고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떨어졌지.”

“그럼…….”

“그래, 아무리 찾아도 시신은 찾을 수 없었지만…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지금 황제의 뒤에 있는 그 루리스가 그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칼라마쉬의 서가 적색, 청색 마탑에 있는지 알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내 생각을 짐작한 듯 스승님이 힘없이 말했다.

“만약 그 아이가 정말로 살아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스승님, 스승님이 알던 옛 제자는 그때 죽은 겁니다. 만약 살아남아서 제국의 그 루리스가 된 거라면… 지금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내 말에 스승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 스승님을 말없이 쳐다보던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승님께는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스승님은 생각에 잠겨 내가 간다는 말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관을 나온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께 나 이전의 제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게다가 그가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일 수도 있다니.

스승님도 무척이나 마음이 복잡하시겠어.

점심을 걸렀음에도 불구하고 입이 써서 그런지 입맛이 없었다.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했다.

오늘은 그냥 집에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그렇게 정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는데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나의 사과에도 후드를 깊게 눌러쓴 상대는 아무 말도 없이 가던 길을 갔다.

뭐야, 정말 매너 없는 사람이네.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흘겨보다가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온 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로브를 벗으려고 할 때였다.

“응? 이건 뭐지?”

로브의 주머니에 뭔가가 만져졌다.

나는 의아해하며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그것은 곱게 접혀 있는 작은 종잇조각이었다.

“언제 이게…….”

의아해하던 나는 조금 전 집에 돌아오던 길에 부딪쳤던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을 떠올렸다.

“혹시?”

나는 접혀 있는 종이를 펴보았다.

종이에는 휘갈겨 쓴 듯한 글씨체로 두 마디만이 적혀 있었다.

[루리스는 크라우드 왕국 출신으로 추정됨. 자세한 정보는 녹색 구름에서.]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정말로 그 루리스가 이 루리스란 말이야?

집에서 쉬고 있을 때가 아닌 듯했다.

나는 그대로 다시 집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뒷골목에 위치한 녹색 구름 주점.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이 정보의 신빙성도 확인해 봐야 하니까.

뒷골목의 녹색 구름 주점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지난번처럼 불량배들과 시비를 붙는 일은 없었다.

딸랑-

“어서 오슈.”

녹색 구름 주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컵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귀찮음이 잔뜩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맞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부를 둘러보았다.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선 술을 들이켜고 있는 로터스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로터스 씨.”

내가 부르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던, 그러나 눈빛만큼은 생생했다.

아무리 봐도 허름한 차림새의 노인인데… 실체는 겉보기와는 다르단 건가.

“왔군. 지난번의 그 방으로 가보게. 열쇠는 바텐더에게 말하면 줄 거네.”

그렇게 말한 로터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으음, 정보를 알려주는 건 로터스가 아닌 다른 사람인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바텐더에게로 다가가 지난번에 로터스가 했던 대로 말했다.

“그 방을 빌리고 싶어요.”

바텐더는 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게 열쇠를 건넸다.

지난번에 갔던 통로를 따라 그 방의 문 앞에 섰다.

이 문 너머에 루리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자가 있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너머에 앉아 있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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