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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62화 (62/150)

062화 - 스승님과의 재회

대륙력 757년 3월 10일.

카리야 황녀는 어떻게 할지 대답해 주지 않은 채, 사흘 전에 제국으로 돌아갔다.

아직까지는 왕실에서도, 세인트혼에서도 루리스라는 마법사에 대한 소식은 없다.

새로운 소식을 듣지 못한 채로 나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흠, 역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황제의 측근.

역시 쉽게 알아내는 건 무리겠지.

오늘도 나는 수업을 마치고 왕자에게서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후우, 대체 그 사람은 정체가 뭐야?”

아무리 제국에서 숨기고 있는 사람이라지만 이렇게나 알아내기 힘들다니.

내가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 사람? 누굴 말하는 거니?”

낯익으면서도 반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 스승님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스, 스승님? 스승님이 어떻게 여기에?”

내 물음에 스승님은 웃음을 띤 채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만난 게 불편한 거니?”

“아뇨! 그럴 리가요! 그저 스승님이 무슨 일로 오신지 궁금해서요.”

“후후, 네가 내게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혼내러 왔지.”

아차, 그러고 보니 스승님께는 내가 수련을 하러 떠난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었구나.

스승님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리안에게서 네가 떠났다는 걸 듣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니?”

“죄송해요. 워낙 급하게 떠나다 보니…….”

내 말에 스승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뭐, 수련을 하러 갔다니 방해가 될까 봐 먼저 연락은 하지 않았다만… 그래도 서운하더구나.”

“죄송해요.”

“그래. 수련으로 소득은 있었던 모양이구나.”

스승님은 대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나이에 벌써 7서클에 도달하다니.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구나.”

이미 스승님은 나를 부르기 전부터 내가 7서클에 도달한 것을 알아차리셨던 모양이다.

“스승님, 제가 7서클이 되었다는 것은 한동안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지. 나도 내 제자가 괜한 고생을 하는 건 싫으니 말이다. 그런데…….”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스승님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조금 전에 누군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스승님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스승님은 믿을 수 있다.

거기다가 칼라마쉬의 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시기도 했으니 말씀드려도 괜찮겠지.

“칼라마쉬의 서를 훔쳐 간 것과 그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 아무래도 타이커스 황제의 뒤에서 일을 꾸미는 마법사가 있는 듯해서요.”

그 말에 스승님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니? 그게 누군데?”

“아직까진 루리스라는 이름밖에 몰라요. 그 이름이 진짜인지도 모르고요.”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은 루리스라는 이름에 스승님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루리스라고?”

마치 역린을 찔린 듯한 모습이었다.

너무 놀란 것인지 내가 앞에 있다는 것도 잊은 듯 스승님은 루리스라는 이름을 되뇌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루리스… 하지만 분명… 그럴 리 없어.”

“스승님?”

뭔가 이상하단 생각에 내가 말을 걸자 그제야 스승님은 깜짝 놀라며 상념에서 깨어났다.

“으, 응?”

“루리스라는 자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신 건가요?”

내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스승님은 무겁게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아는 루리스는… 죽었단다. 네가 말한 그 사람일 리가 없어.”

뭔가가 마음에 걸렸으나 스승님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기에 지금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입을 다물자 스승님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라엘, 지금 네팔렌 백작가에 들를 생각인데 같이 가겠니?”

“네? 스승님이요?”

“그래, 네팔렌 백작님이나 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같이 갈 거지?”

“으음… 저는…….”

내 목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망설임을 알아챈 듯 스승님이 의아해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뇨! 아무 문제 없어요! 외갓집에 가는 건데 문제가 있을 리가요!”

의아해하는 스승님의 물음에 다급히 대답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사실 한동안 외가에 가지 않았던 나였다.

바빠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끄응… 외가에 가면 분명 아리안 누나를 만날 텐데.’

<크크, 네가 마음에 품은 그 계집 말이냐?>

‘뭐, 뭐라는 거야? 그리고 계집이라니? 말 좀 가려서 해.’

<크크, 지난번에 그 아티팩트를 쥐고 있을 때 네가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더냐?>

‘그, 그건…….’

나는 카이서스의 말에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아리안 누나가 내 맘 속에서 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외가에 가기가 껄끄러운 것이었다.

나 자신도 내 마음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는데 어떻게 아리안 누나를 봐야 할지…….

카이서스와 대화하느라 침묵에 빠져 있던 내게 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자꾸나. 지난번 결혼식 때는 바빠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지 않니. 하나뿐인 제자의 가족인데 이참에 제대로 인사 정도는 해야지.”

지난번 결혼식 때는 모두가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지나가듯 인사한 것이 다였다.

끄응,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어쩔 수 없지.

나도 어머니와 누나에게 스승님을 제대로 소개시켜 드리기는 해야 하니까.

“후, 알았어요. 그럼 같이 가시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외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 *

“라엘 님, 오랜만에 오시는군요.”

네팔렌 백작가의 집사인 브루스는 나를 보자마자 웃으면서도 약간은 책망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지난번 누나의 임신 사실을 알았던 날 이후로 찾아오질 않았으니 어머니나 누나가 많이 서운해하는 것 때문이겠지.

“적색 마탑주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브루스는 내 뒤에 서 있던 스승님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우선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인어른께선 지금 바쁘시기에 만나시려면 조금 기다려야 하실 것 같습니다만… 두 분이 오신 것을 알면 마를렌 님과 메이엔 아가씨가 기뻐하시겠군요.”

브루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으로 들어서자마자 브루스는 근처의 하녀에게 무어라 속삭이듯 말했다.

“마를렌 님과 메이엔 님께 라엘 님이 오셨다고 전하게.”

뭐, 작게 말해봐야 드래곤의 심장으로 청력도 좋아진 내 귀에는 잘 들린다.

그나저나 이제는 누나도 결혼했다고 더 이상 아가씨라고 부르지는 않는군.

잠시 후 하녀의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와 누나가 2층에서 내려왔다.

“라엘! 요 며칠간 얼굴도 비치지 않고… 너무한 것 아니니?”

어머니가 눈을 찡그린 채 투정을 부리듯 말했고 그 뒤를 이어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타박했다.

“맞아. 내가 임신했단 소식을 들은 날에는 심심하면 놀러 올 것처럼 해놓고선, 그날 이후로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니.”

모녀의 잔소리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게 좀 일이 있다 보니…….”

내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흘겨보던 어머니가 뒤늦게 내 뒤의 스승님을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카밀라 님! 오랜만에 뵙네요. 딸아이의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죠?”

반가워하는 어머니의 말에 스승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난번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린 것 같아서 왔답니다.”

스승님의 말에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 인사라뇨. 라엘을 거두어서 가르쳐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오히려 저희가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갔어야 하는데…….”

무척이나 죄송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스승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녜요. 제게 있어서도 라엘은 소중한 제자이자 제 보람이랍니다. 어머님의 소중한 아이를 맡고 있으니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러 오는 게 당연하죠.”

나를 한껏 치켜세워 주는 스승님의 말에 어머니는 감동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멍하니 서 있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누나가 콕콕 찌르며 말했다.

“엄마, 언제까지 손님을 세워둘 셈이야?”

그제야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카밀라 님, 응접실로 같이 가시겠어요? 여쭙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답니다.”

그 말에 스승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응접실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차와 쿠키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주로 세 여자가 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주로 내 어린 시절에 관해서, 스승님은 나를 가르치면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했다.

세 사람은 서로가 몰랐던 나의 이야기에 재미있어했지만 듣는 나로서는 부끄럽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내가 잊고 싶었던, 이른바 흑역사라고 불리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크크크, 너 어릴 때는 정말 웃긴 녀석이었구나.>

‘닥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서스가 비웃으며 말할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지.

그렇게 내가 한참을 부끄러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던 중이었다.

“아참, 카밀라 님. 조금 있으면 아버지의 일이 끝나는데 함께 저녁이라도 하시겠어요?”

어머니의 물음에 스승님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접해 주신다면 감사하죠. 게다가 네팔렌 백작님께도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다른 용건이 있다는 말에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드릴 말씀이라니요?”

내 물음에 스승님은 작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밀이란다.”

윽, 스승님은 아직도 나를 어린아이로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머리를 쓰다듬으시다니, 나도 어엿한 성인인데 말이지.

내가 속으로 툴툴거리는 사이 시간이 흘러 오늘의 연구를 끝마친 외할아버지가 나왔다.

“응? 적색 마탑주 아니신가? 여긴 어쩐 일이시오?”

손님이 왔다는 소식에 응접실로 왔던 외할아버지가 스승님을 발견하곤 의아해하며 물었다.

“제자의 가족분들께 인사를 하려고 들렀답니다. 그리고 네팔렌 백작님께도 용건이 있고요.”

“나에게?”

외할아버지가 의아하다는 듯 되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직접 찾아올 정도라면 중요한 일이겠지. 어차피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이쪽으로 오시게.”

스승님과 외할아버지는 단둘이서 이야기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라엘! 오랜만이야.”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아리안 누나가 들어왔다.

평소와 같은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렸다.

“누, 누나. 오랜만이에엽!”

윽, 나도 모르게 혀를 살짝 씹어버렸다.

그 모습에 아리안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뇨! 괜찮아요!”

걱정해 주는 아리안 누나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끄응, 얼굴을 차마 못 보겠어.

내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어머니와 누나가 즐거워하는 것이 보였다.

“왜요?”

어쩐지 구경거리가 된 듯한 기분에 내가 툴툴거리며 묻자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냥 청춘이구나 싶어서.”

“젊으니까 당연히 청춘이죠!”

어머니에게 그렇게 대답하고는 슬쩍 아리안 누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하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왠지 모르게 싫어하진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아리안 누나에게 익숙해져서 그녀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건가.

“적색 마탑주님도 오셨다며?”

그러고 보니 아리안 누나는 스승님을 존경했었지.

“네. 외할아버지와 잠깐 이야기하러 가셨어요.”

“시간이 시간이니 저녁 먹고 가.”

메이엔 누나의 말에 아리안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님과 외할아버지가 돌아왔고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를 하는 내내 아리안 누나가 신경 쓰였다.

내가 정말로 좋아한다면… 아리안 누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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