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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61화 (61/150)

061화 - 협력

한참이나 고민에 잠겨 있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셨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물음에 황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오라버니가 어째서 그런 짓을…….”

“사람 속은 가족이라도 모르는 법이죠.”

내 대답에 황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정말로 타이커스 황제를 위하신다면 막아야만 합니다. 더 이상 칼라마쉬의 서를 이용한다면… 타이런 제국은 대륙의 공적이 될 겁니다.”

내가 말하는 와중에도 하얗게 반짝이는 구슬을 응시하던 황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가 더 이상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저도 원하지 않아요. 난, 난 어떻게 해야…….”

고민하는 카리야 황녀의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흐음, 황녀가 황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

나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의 측근들 중에 수상한 자가 있어요.”

황녀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며 말했다.

“수상한 자라니요?”

“오라버니 가까이에 있는 자들 중에서 출신을 전혀 알 수 없는 자가 하나 있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은 자인데… 오라버니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마법사예요.”

“…마법사요?”

“그래요. 언제나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다니는 자인데… 이름 외에는 모든 것이 비밀로 감춰져 있어요.”

마법사에다가 황제의 측근, 그리고 모든 것이 비밀이라… 설마 그가 칼라마쉬의 서와 관련된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자인가?

“그자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마… 루리스라고 했던 것 같아요.”

루리스… 그자가 모든 일의 원인일지도 몰라.

아무래도 그자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어.

“후우,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어요.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렇게 말하며 황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식당을 나섰다.

넓은 식당 안에 잠시 혼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제대로 소화가 안 될 것 같다.

식당을 나오자 시종이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국왕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 내가 황녀와 단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가죠.”

시종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뒤늦게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을 눈치챘다.

아, 이런… 그러고 보니 너무 분위기가 심각한 나머지 돌려준다는 걸 깜빡했네.

으음… 일단 내일 만나러 가서 돌려줘야겠다.

나는 구슬을 품에 넣고 시종의 뒤를 따라 국왕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국왕은 왕자와 함께 영광의 궁전 안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왔는가. 기다리고 있었네.”

내가 들어서자마자 국왕은 소파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왕자가 물어왔다.

“선생, 카리야 황녀가 단둘이 보자고 한 용건은 뭐였어?”

왕자의 물음에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국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흠, 적어도 제국 내부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생겼다고 볼 수 있겠군. 그나저나 루리스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황제의 측근 중에 그런 자가 있었나?”

그렇게 말하고는 깊은 생각에 잠긴 부친을 대신하여 왕자가 말했다.

“선생, 수고했어.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게. 그 루리스라는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보도록 하지.”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국왕과 왕자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낮에 대기하던 방에서 다시 평상복과 로브로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섰다.

이미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어두웠다.

“왕자님께서 모셔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밖에 마차가 대기 중입니다.”

영광의 궁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근위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은 데다 피곤하니 편하게 마차를 타고 돌아가면 좋겠지.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 먼 길도 아니니 걸어갈게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거절했다.

“네? 하지만…….”

나를 데려다주라는 것이 왕자의 명령인지라 나의 거절에 근위기사는 당황해서 무어라 말하려 했다.

“좀 걷고 싶어서 그래요. 왕자님께는 제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근위기사는 곤란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길.”

근위기사의 배웅을 받으며 왕궁에서 나왔다.

아직까지 날씨가 조금은 쌀쌀했기에 나는 로브의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빨리했다.

…음, 생각보다 좀 더 쌀쌀하네.

그냥 마차를 탈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밤바람에 부들부들 떨며 집에 거의 다 와갈 때쯤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분명 내가 아는 그녀라고 확신한 나는 걸음을 빨리해서 따라잡았다.

“아리안 누나?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리안 누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라엘? 깜짝 놀랐잖아. 그러는 너야말로 이제 집에 가는 거야?”

“네. 궁에서 조금 일이 있었거든요.”

내 말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연구를 돕다 보니 좀 늦었어. 마침 잘됐네. 혼자 귀가하기 쓸쓸했는데 너를 만나서 다행이야.”

“네, 저도 누나를 만나서 기뻐요.”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내 대답에 아리안 누나의 몸이 살짝 굳었다.

그러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은 좋아하는 여자한테나 하는 거야.”

또다시 내 입이 멋대로 움직이며 말을 뱉어냈다.

“그러고 있어요.”

“뭐, 뭐?”

그 말에 아리안 누나는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당황했다.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굳은 움직임이나 떨리는 목소리가 당황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보다 잠깐, 어째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말이 튀어나온 거야?!

나 역시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아, 카리야 황녀가 내게 쥐여줬던 그 구슬!

깜짝 놀라며 품에서 그것을 꺼내보니 구슬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 어어… 저 먼저 갈게요!”

잠시 가만히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그대로 집을 향해 달려갔다.

“라, 라엘?”

등 뒤로 당황한 아리안 누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으으, 갑자기 이게 무슨……?!

그보다, 내가 조금 전에 내뱉었던 낯부끄러운 말이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구슬 때문이라면… 나 설마?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 * *

“당신이 먼저 저를 만나자고 하다니. 의외네요. 어제 저녁에 이야기했던 그 건이라면 아직 생각 중이에요.”

나의 방문에 차를 마시고 있던 카리야 황녀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어제 이것을 놓고 가셨기에…….”

내가 그렇게 말하며 진실을 말하게 하는 구슬을 건네자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머나, 어제 너무 당황한 나머지 놓고 갔던 모양이군요. 가져다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내게서 구슬을 받아 곁에 서 있던 호위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군요.”

“아하하… 잠을 좀 설쳤더니…….”

사실은 아예 잠을 못 잔 거지만.

“그럼 이만 돌아가 주겠어요? 지금은 생각할 것이 많아서 다른 사람을 상대하기엔 피곤하네요.”

“네.”

어차피 오늘 용건이라고는 구슬을 돌려주는 것밖에 없다.

황녀에게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겠지.

아무래도 자신의 오빠와 관련된 일이니 말이야.

나는 황녀에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왕자의 수업도 마쳤고, 구슬도 카리야 황녀에게 돌려줬으니 오늘 해야 할 일은 끝낸 셈이다.

나는 왕궁을 나오며 생각했다.

일단 루리스라는 정체불명의 마법사에 대해서는 국왕이 조용히 알아보겠노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그자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그자는 어떻게 황제의 측근이 되어 그 많은 일을 벌인 걸까.

내 개인적으로도 알아보고 싶기는 한데… 정보를 구할 만한 곳이 없네.

시내를 걸으며 생각하던 내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세인트혼이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암살단에게 있어 정보는 중요할 터, 나름대로의 정보 수집 방법이 있을 것이다.

설마하니 아들이 부탁하는데 못 들은 체하지는 않겠지.

분명 녹색 구름 주점에서 로터스라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었지.

나는 그대로 근처의 경비병에게 다가가 녹색 구름 주점의 위치를 물었다.

“녹색 구름 주점 말입니까? 거기라면 분명 저쪽 뒷골목의 가장 안쪽에서 찾아보면 될 겁니다. 그런데… 뒷골목으로 가실 거면 조심하십쇼. 저희가 간간이 순찰을 돌기는 하지만 워낙 막 사는 놈들이 많습니다.”

“염려해 줘서 고맙습니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경비병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뒷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뒷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시내의 길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직 해가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거리 곳곳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영역에 침입한 자를 경계하는 시선이었다.

으음, 경비병이 걱정할 때부터 조심해야겠단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조심해야겠어.

분위기 자체가 잠깐 방심했다간 변사체로 발견될 것만 같은 분위기야.

아버지는 왜 하필 이런 곳에 접선처를 만든 거야?

아니, 암살단이니까 이런 곳이 어울리는 건가.

잔뜩 긴장한 채로 녹색 구름이라는 간판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어이, 여긴 너처럼 곱상한 놈이 올 만한 곳이 아니야. 이쪽은 무슨 일로 온 거지?”

내 앞을 세 명의 사내가 가로막아서며 말했다.

끄응, 뭔가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나타나다니.

일부러 눈에 띌까 봐 로브를 벗고 왔는데도 시비가 붙다니.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생겼나?

“진정해요. 전 그냥 녹색 구름이라는 주점을 찾아가는 길이에요.”

녹색 구름이라는 말에 오히려 사내들의 경계심만 더 심해졌다.

“녹색 구름? 거긴 무슨 일인데?”

“로터스 씨를 만나려고요.”

“로터스? 그 양반을 너 같은 샌님이 왜?”

로터스라는 이름에 그들은 더욱 경계하고 의심하며 물어왔다.

“그건 말하기 좀 곤란한데요…….”

암살단의 수장을 만나려고 한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냐고.

내가 대답을 피하자 사내들 중 하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뭐? 수상한데… 혹시 경비대의 끄나풀 아냐?”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그의 태도에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등신. 경비대 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눈에 띄는 샌님을 끄나풀로 보내겠냐?”

“어, 그건 그러네? 그렇지만 이런 샌님이 녹색 구름을 찾아오는 것도 이상하잖아.”

수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세 사람은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저기, 저는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게 아닌데요. 그냥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앙? 너 우리가 만만해 보이냐?”

내 말에서 대체 무엇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사내가 한껏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내가 그들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누더기를 걸친 노인 하나가 다가왔다.

“이보게들, 무슨 일인가?”

노인의 등장에 사내들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 로터스 영감. 마침 잘 왔어. 이 샌님이 영감을 찾는다지 뭐야. 여기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 영감을 찾기에 캐묻는 중이었어!”

“나를?”

사내의 말에 로터스라고 불린 노인은 잿빛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응? 로터스라면 내가 찾는 그 사람이잖아?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겐가, 젊은이?”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차갑게 가라앉은 눈에는 경계심이 떠올라 있었다.

“어… 데스웬 씨가 자신을 만나려면 녹색 구름 주점에서 로터스 씨를 찾으라고 해서요.”

사람들 앞에서 데스웬이 아버지라는 건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기에 남인 양 말했다.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로터스가 사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친구들, 고맙네. 아무래도 내 손님이 맞는 모양이야. 다음에 술 한잔 사지.”

“뭐야, 정말로 로터스 영감 손님이었어? 샌님 양반, 미안하게 됐수다.”

그렇게 말하며 내게 시비를 걸었던 사내 세 명은 자리를 떴다.

그들이 사라지자 로터스는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단장님께 자네에 대해선 들었네. 일단 자리를 옮기지.”

그렇게 말하고 로터스는 그대로 뒤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나는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이나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로터스가 멈춰 선 것은 어느 허름한 가게 앞이었다.

낡은 간판에는 녹색 구름이라는 글자가 반쯤 지워진 채로 적혀 있었다.

“들어오게.”

나는 로터스의 뒤를 따라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로터스는 아직 해가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술을 퍼 마시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바텐더에게로 다가갔다.

“그 방 좀 빌리지.”

바텐더는 그 말에 조용히 열쇠 하나를 건넸다.

로터스는 열쇠를 받아 들더니 당연하다는 듯 카운터 뒤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내려가니 이번에는 길게 뻗은 좁은 복도가 나왔다.

그 끝에는 문 하나가 있었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방으로 들어간 로터스가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방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아마도 세인트혼과 같은 비밀 조직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인 듯했다.

로터스가 방 안의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용건은?”

“누군가에 대해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이름은 루리스, 타이런 황제의 숨겨진 측근이라고 합니다.”

“…루리스?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 알겠네. 상부에 조사 요청을 넣어두도록 하지. 그 외에 다른 용건은?”

순간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누나에게 얼굴이라도 내비치란 말을 전해달라고 할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내가 고개를 내젓자 로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나갈 때는 이쪽 문으로 나가면 되네.”

“그럼 이만.”

나는 인사를 건네고는 그가 가리킨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서서 보이는 다른 문을 열었다.

그곳은 뒷골목의 거리가 아닌 시내 한복판이었다.

어쩐지 복도가 길더라니, 여기까지 이어진 거였나.

나는 주변을 한번 살펴보고는 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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