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 복귀
며칠 후, 나는 트럼벨에 도착했다.
거의 1년 만에 돌아온 집은 떠날 때와 변함이 없었다.
응……? 변함이 없다고?
1년이나 집을 비웠으니 먼지가 쌓여 있거나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게다가 내 기억과는 다르게 가구의 배치라든가 그런 게 조금씩은 달라진 듯한 느낌이야.
나는 긴장하며 마나를 주변으로 퍼뜨렸다.
설마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누가 내 집을 사용한 건가?
마나를 퍼뜨려 보니 2층의 내 방 쪽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필이면 내 방에 있다니, 깡도 좋은 녀석이로군.
나는 스태프를 꺼내 들고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 앞에 선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려 했다.
그 순간.
벌컥!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라엘! 드디어 돌아온 거야?”
“……?!”
상상조차 못 한 인물의 모습에 나는 말도 못 하고 어리둥절해했다.
“누나가 여기 왜 있어요?!”
잠시 후에야 나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두건과 앞치마를 걸치고 빗자루를 손에 든 아리안 누나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너희 어머니가 가끔 네 집에 들러서 관리 좀 해줄 수 없겠냐고 부탁하셨거든. 어차피 앞집이니까 나도 그러겠다고 했고.”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트럼벨을 떠나기 전에 남는 집 열쇠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갔었지.
“어어, 어머니가 누나한테 집 열쇠를 주면서 관리를 부탁했다고요? 귀찮으실 텐데 괜한 일을…….”
“아냐 괜찮아. 관리해 주는 대신 수고비도 받고 있거든.”
“그래도…….”
“아참, 식사는 했어?”
문뜩 생각났다는 듯 묻는 아리안 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막 돌아온 참이라 아직 식사는 안 했어요.”
“잘됐네. 나도 청소를 다 끝낸 참이야. 마음 같아선 직접 차려주고 싶긴 한데 집에 식재료가 없어서…….”
“아니에요! 제가 비운 동안 관리를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걸요.”
내 말에 아리안 누나는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럼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자.”
그렇게 말하며 아리안 누나는 앞치마와 두건을 풀었다.
머리를 묶었던 두건이 풀리면서 사르륵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아름답다.
“배고프지? 빨리 가자.”
아리안 누나가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리안 누나는 내 손을 붙잡은 채로 집을 나와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어… 누나. 이제 손은 그만 놓아도 될 것 같은데요.”
내 말에 그제야 아직까지 손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리안 누나가 깜짝 놀라며 손을 놓았다.
“아, 미안해.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불편했니?”
“아뇨, 불편하긴요.”
솔직히 말하자면 손을 놓으니 뭔가 좀 아쉽기도 하네.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아리안 누나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말도 없이 떠난 거야? 너희 어머니에게 뒤늦게 네가 트럼벨을 떠났다는 걸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너희 스승님도 갑자기 네가 사라져서 놀라셨어.”
아차, 그러고 보니 급하게 떠나느라 아리안 누나나 스승님께는 말도 안 했었구나.
그동안 수련에 집중하느라 연락도 못 드렸고 말이야.
식사를 하고 나서 스승님께도 연락을 드려야겠다.
“뭐 먹을래?”
식당의 자리에 앉으며 아리안 누나가 말했다.
“음, 신선한 샐러드와 스튜가 먹고 싶네요.”
한동안 건조시킨 식품들만 먹었더니 신선하고 국물이 있는 것이 먹고 싶었다.
“그래, 그럼 이번은 네가 돌아온 기념으로 내가 살게.”
“아니 그러실 필요는…….”
이번에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추가로 가져온 돈만 해도 엄청난데.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리안 누나가 말했다.
“식사를 하고 나서 곧장 어머니를 뵈러 갈 거지? 네가 떠나 있는 동안 무척이나 걱정하셨어. 너를 위해 매일 기도도 하시고.”
음, 어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신 모양이네.
어머니께는 자주 연락을 드린 편이었는데도.
“당연히 곧장 외가로 가서 인사를 드려야죠.”
“그래.”
그러는 사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어디로 갔었던 거야?”
“어, 음… 저를 가호하는 드래곤에게 가 있었어요.”
“드래곤에게? 왜?”
“음, 그건 비밀이에요.”
“그렇구나.”
비밀이라는 말에 그녀는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으나 금세 작게 웃으며 말했다.
“떠나 있는 동안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어?”
약간은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묻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수련을 하느라 바빠서…….”
먹고 자고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수련만 했으니까.
가끔 식량을 보충하러 근처 마을에 갈 때도 볼일만 보고 돌아왔고 말이야.
“그래……?”
어째선지 아리안 누나는 약간 실망한 기색이었다.
“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뜩 뭔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데소나를 만났을 때 예쁜 사람이라는 말에 아리안 누나를 떠올린 적이 있었지.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면 좀 부끄러워질 것 같으니까 그냥 입 다물고 있자.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아, 그런데 누나, 외할아버지의 연구는 어때요?”
애초에 아리안 누나는 외할아버지의 연구 보조로서 트럼벨에 온 거였으니까.
“아, 연구라면 순조로워. 아바툴에 대한 연구는 이제 끝마치고 이제는 다른 마물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어.”
으음, 과연 마물 연구의 선두 주자인 외할아버지야.
잠시도 안 쉬고 계속해서 연구하는구나.
“꽤나 오래 머물러 계시네요. 아바툴의 연구만 끝마치면 청색 마탑으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내 말에 그녀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게… 아!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나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스, 스승님께도 허락을 받았으니 더 오랫동안 머물러도 괜찮아!”
흐음, 아리안 누나가 마물 연구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는데.
뭐, 본인이 좋아하는 데다 청색 마탑주님의 허락도 받았다고 하니 상관없겠지.
“다 먹었으면 이만 일어날까요?”
“응. 그러자.”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네팔렌 백작가로 향했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팔렌 백작가의 집사, 브루스가 나를 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와 아리안 누나는 그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마를렌 님! 메이엔 아가씨! 누가 오셨는지 보십시오!”
저택 안으로 들어서며 브루스가 외친 말에 2층의 방문이 열렸다.
“손님이 온 건가요 브루스? …어머, 라엘?! 돌아온 거니?!”
무슨 일인가 싶어 문 밖으로 나왔던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라엘이 돌아왔다고요?”
어머니의 말에 다른 방의 문이 벌컥 열리며 메이엔 누나도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돌아올 거면 돌아온다고 연락이라도 하지!”
메이엔 누나가 툴툴거리면서도 반가움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하하, 마음이 급하다 보니 연락하는 것도 까먹었어.”
계단을 내려온 어머니와 누나는 내 대답에 웃으며 안아주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수련은 잘했니? 힘든 건 없었지?”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여 주며 묻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별일 없었어요.”
마지막에 빌어먹을 카이서스의 함정 때문에 몇 번 죽는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외할아버지는요?”
내 물음에 메이엔 누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외할아버지는 연구실에서 연구에 열중하고 계셔. 아마 저녁때에나 나오실 거야.”
흠, 연구를 방해하면 짜증을 내실 테니…….
“별수 없이 저녁까지 기다려야겠네.”
여기까지 와서 외할아버지에게 인사도 드리지 않고 돌아가기는 좀 그러니까.
“일단은 차라도 마시면서 그동안의 일을 말해주겠니?”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응접실로 이끌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떤 수련이기에 여길 떠나 있어야 할 정도였던 거야?”
응접실의 소파에 앉자마자 메이엔 누나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내가 작년에 트럼벨을 떠나기 전에는 자세히 말을 하지 않았었지.
“그게, 몸에 문제가 좀 생겨서 수련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거든요. 아, 물론 지금은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괜찮아요.”
사실 전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내 거짓말에 어머니와 메이엔 누나, 그리고 아리안 누나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뭐, 아리안 누나의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분위기상 그랬단 거다.
“다행이네. 그나저나 1년이나 수련을 했으니… 작년보다도 성취가 높아졌겠네?”
아리안 누나가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으음, 뭐 그렇죠.”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7서클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동안 숨기고 있을 생각이었다.
물론 8서클인 스승님과 대스승님을 만난다면 내가 7서클에 오른 게 들통나겠지만…….
두 분이라면 내가 부탁하면 비밀로 해주실 거다.
굳이 내가 7서클에 올랐다는 것을 숨기려는 이유는 하나다.
인간 역사상 최연소 7서클이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아무래도 귀찮은 일에 많이 휘말릴 테니까.
지금도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데다가 6서클 마법사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선을 받고 있는데.
7서클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후, 생각만 해도 귀찮군.
우리는 차를 마시며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야 먹고 자고 수련하는 것을 제외하면 할 만한 이야기라고는 데소나를 만났던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뭐? 임신?!”
메이엔 누나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소식을 말했다.
“응, 한 달 전에 자꾸 속이 메슥거려서 의사를 불렀더니 임신이라지 뭐니.”
이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자세히 보니 메이엔 누나는 자신의 배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미소를 지어 보이는 메이엔 누나의 얼굴과 배를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축하해, 누나! 이제 그럼 나도 삼촌이 되는 거야?”
“그럼. 물론이지.”
조카가 생긴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들뜨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선물은 뭘 해줘야 하지?! 어어… 이름은 정했어? 남자아이래, 여자아이래?!”
횡설수설하듯 떠들어대는 내 모습에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얘, 아직 낳으려면 몇 달 남았거든?”
누나의 말에 머쓱해진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얼마나 됐대?”
“이제 16주 정도래.”
16주면 이제 4달째라는 건가.
출산은 대충 5달 조금 넘게 남았다는 거로군.
“아직 많이 남았기는 해도… 축하해, 누나. 내일 왕궁에 출근하면 매형에게도 축하 인사를 해야겠네.”
“그이도 너에게 축하를 받으면 좋아할 거야.”
누나의 임신을 축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뭐야. 돌아왔느냐.”
오늘의 연구를 끝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연구실에서 나왔던 외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곤 별 감흥 없이 말했다.
“아버지도 참! 외손자가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반응이 그게 뭐예요?”
어머니가 투덜거리며 내뱉은 말에 외할아버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건강해 보이니 된 것 아니냐. 그보다 브루스! 저녁은 어떻게 됐나?”
외할아버지의 부름에 어디선가 나타난 브루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녁 식사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차리도록 할까요?”
외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접실을 나섰다.
연구실에서 계속 연구만 하셨으니 출출할 만도 하시겠지.
“우리도 식당으로 가자꾸나. 간만에 아들이랑 같이 식사를 하네?”
어머니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한 시간여 후.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리안 누나는 함께 네팔렌 백작가를 나섰다.
“그럼 내일 바로 왕궁에 복귀할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리안 누나가 내게 물어왔다.
“네. 그동안 많이 쉬었으니까요. 게다가 트럼벨에 돌아왔는데 곧장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왕자님이 무척이나 화내실 거예요.”
“흐음, 그건 그러네.”
내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아리안 누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튼 네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 말을 들으니 뭔가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