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58화 (58/150)

058화 - 7서클

마물이 손을 펴자 기다란 채찍이 주르륵 펼쳐졌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나를 향해 휘둘러 왔다.

휘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채찍이 뱀처럼 휘며 내 몸을 후려치려 했다.

“실드!”

당황하는 와중에도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늦지 않게 실드를 펼쳐낼 수 있었다.

“크윽!”

그러나 실드 너머로도 전해져 오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나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채찍이 아니라 무거운 해머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다.

“대체 이놈은 정체가 뭐야?! 파이어 볼!”

나는 카이서스에게 짜증 섞인 외침을 내지르며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이 빠르게 날아가 마물의 머리에 명중했다.

<크크, 마계의 중급 전투병이지. 참고로 화염에 내성을 지녔으니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 거다.>

카이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물의 머리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잦아들었다.

“그르르르.”

마물은 약간 목이 뻐근하다는 듯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 것 외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미친! 왜 하필 화염 내성을 지닌 놈인데?!”

<그래야 어렵지 않느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마물이 휘두르는 채찍을 옆으로 몸을 굴러 피해냈다.

화염 마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내 상대로는 최악의 상성이잖아.

마물은 쉴 새 없이 채찍을 휘둘러 댔다.

나 역시도 쉴 새 없이 몸을 굴러 채찍을 피하거나, 피할 수 없을 때는 실드를 펼쳐 공격을 막아냈다.

“크윽!”

실드로 채찍을 막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막다 보니 충격으로 온몸이 징징 울려댈 정도다.

“카이서스! 저놈의 약점은 대체 뭐야?!”

<그걸 순순히 말해주면 너무 재미없잖아.>

“미친! 재미는 무슨! 이러다 죽게 생겼는데!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걸 잊어버린 거야?!”

<크크, 7서클이 되기 싫은 거냐? 7서클에 오르고 싶다면 죽기 살기로 저놈과 싸워봐라.>

쳇!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군.

나는 카이서스에게서 마물의 약점을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썩을, 아무리 내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공격하다 보면 통하겠지!

“플레임 스피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에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마법을 사용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의 창이 마물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탄탄한 가슴팍에 꽂혔다.

“쿠와아악!”

가슴에 박힌 플레임 스피어가 터져 나가자 마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마구 채찍을 휘둘러 댔다.

나는 이중 영창으로 두 개의 실드를 만들어내서 놈의 공격을 막으며 속으로 안도했다.

후, 아무리 화염에 내성을 지닌 마물이라 해도 고서클의 마법은 어느 정도 통하기는 통하는 모양이다.

플레임 스피어가 놈의 몸을 관통하지는 못했어도 조금이나마 근육을 뚫고 박히기는 했잖아?

볼과 같은 폭발 계통의 마법보다는 볼트나 스피어 같은, 관통력이 있는 마법으로 저 질긴 근육을 뚫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폭발에도 충격을 받기는 하겠지만 폭발로 인한 충격을 누적시켜서 쓰러뜨리려면 하루 종일이 걸릴 거야.

그런 판단을 내린 나는 즉시 조금이나마 효과를 보았던 플레임 스피어를 이중 영창으로 시전했다.

고서클의 마법인지라 마나와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긴 하지만…….

드래곤의 심장으로 강화된 정신력과 마나 운용력만으로는 7서클에 달하는 나이기에 문제는 없다.

“플레임 스피어! 플레임 스피어!”

한 번으로 안 된다면 연속해서 쑤셔주마!

두 발의 플레임 스피어가 마물의 흠집 난 가슴팍에 명중했다.

덩치가 하도 커다랗다 보니 맞히기는 쉽네.

“크아아아!”

마물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러댔다.

안 그래도 다친 곳에 두 발의 화염창이 다시 꽂히니 아플 만도 하겠지.

두 번의 플레임 스피어가 가슴에 꽂히자 작은 구멍이 생겼다.

“크르르르!”

상처에서 검은 피가 꿀렁꿀렁 흘러나오며 마물의 검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망할 놈, 아무리 가죽이 질기고 화염에 내성이 있다고 해도 계속해서 갈기다 보면 언젠가는 쓰러지겠지.

“크아아아!”

마물은 더욱더 분노하며 채찍을 휘둘러 댔다.

발버둥 치며 움직이는 탓에 더 이상 가슴의 상처를 노리는 것은 어려울 듯했다.

그럼 다른 곳도 똑같이 만들어주면 그만이지!

채찍은 빠르고 강하지만 마물 자체의 움직임은 둔한 편이었다.

거대한 체격 때문에 날렵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대신 무척이나 튼튼한 거겠지만.

그렇다고 해봐야 해결책을 찾은 내게는 소용없는 일이지만.

“플레임 스피어! 플레임 스피어!”

계속해서 나는 화염의 창을 마물에게 쏘아 보냈다.

우선은 다리!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어서 더 맞히기 쉽게 한다.

“캬오오!”

계속해서 오른쪽 무릎에 꽂히는 플레임 스피어에 마물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면서도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아마 저거에 맞았다가는 피부가 찢어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

나는 실드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놈의 채찍을 막아냈다.

“크윽!”

아무리 실드로 채찍을 막아낸다 해도 계속해서 막다 보니 충격이 중첩되는 것 같아.

울컥, 하고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계속 막다가는 너도 쓰러질 거다. 빨리 해치우는 게 좋을걸?>

“나도 알아!”

이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카이서스 말대로 계속 공격을 막고 있다간 내가 먼저 쓰러지겠어.

피하자니 채찍이 너무 빨라서 피하다가 실수라도 한번 했다간 몸이 두 동강 날 거다.

그리고 피한다 해도 금방 지칠 거고 말이야.

“크오오오!”

무릎에 계속해서 플레임 스피어가 꽂히자 마물도 충격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비틀거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마물의 무릎은 이미 검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비틀거리는 그 순간, 놈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며 상처 입은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지금이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법을 재차 시전했다.

이번에는 플레임 스피어가 아닌 익스플로전, 화염이 폭발하는 마법이다.

“가죽은 질긴지 몰라도 속살은 어떤지 볼까! 익스플로전!”

드러난 마물의 파헤쳐진 가슴을 향해 마나를 인도하고 재배열, 그리고 터뜨린다.

콰앙!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폭발음과 함께 마물의 가슴이 터져 나갔다.

역시, 가죽은 질기더라도 속살은 그렇지 않군!

“크오오오오!”

마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발버둥 쳤다.

한 번에 숨통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폭발로 인해 마물의 너덜너덜해진 가슴 속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살점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힘차게 뛰고 있는 저것이 바로 심장이겠지.

“이제 끝이다. 파이어 볼트!”

크고 강력한 마법 대신 약하지만 정확성이 높은 파이어 볼트를 사용했다.

단단하고 질긴 가죽이 아닌 심장이라면 그 정도로도 충분할 테니까.

내 손을 떠난 파이어 볼트가 빠르게 놈의 심장으로 파고 들어가며 폭발했다.

“끄오오오!”

심장이 폭발하며 숨이 끊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마물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잠시 마물이 쓰러진 모습을 바라보다가 완전히 숨이 끊어졌음을 확인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고는 침을 내뱉었다.

침 속에 붉은 피가 섞여서 튀어나왔다.

“크으, 놈이 쓰러지지 않았으면 내가 채찍을 막다가 쓰러졌을 거야.”

<그래도 쓰러뜨렸으니 다행이지 않느냐.>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다행은 무슨! 애초에 네가 함정을 만지라고 하지나 않았으면 되는 거잖아!”

<이게 다 7서클로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다.>

“개뿔이!”

<크크, 일단은 배도 채우고 좀 쉬어두는 게 좋을 거다.>

“뭐… 설마 이게 끝이 아닌 거야?”

<크크, 이게 끝이라면 내 둥지에 들어올 정도의 침입자를 위한 함정치고는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

“이런 미친!”

<나한테 화를 내기보다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다음 단계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거다.>

“젠장!”

순간 냉정해진 내 머리도 카이서스의 말이 옳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응급약을 꺼내어 마시고 자리에 앉아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준비를 해둬야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어쩌겠어.

화를 낸다고 해서 카이서스가 들을 놈도 아니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한참 후,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마나 운용을 마치고 일어났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해야 이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거야?”

<마물이 서 있던 자리 뒤에 있는 문을 열고 지나가라.>

카이서스의 말을 듣고 보니 쓰러진 마물의 뒤에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문을 열어보았다.

“그어어어?!”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수십 마리의 각종 언데드들이 문을 열자마자 나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음, 조금만 더 쉬었다가 갈까.”

<크크, 참고로 한번 문을 열면 그 전의 방은 무너진다.>

그의 말대로 지금 있는 방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두 손에 파이어 볼을 띄운 채로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이런 썩을!”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드는 구울의 머리통에 파이어 볼을 던지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카이서스!”

<크하하하하!>

머릿속에서 카이서스가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들려왔다.

* * *

그리고 또 한 달 정도 후.

대체 몇 개의 방을,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을 해치웠는지 모르겠다.

죽을 뻔한 위기도 수십 번이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털썩.

드디어 마지막 마물이 쓰러졌다.

마계의 상급 전투병이라는 마물이었다.

쓰러진 마물의 뒤에는 더 이상의 문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끝이지? 끝인 거지?”

나의 간절한 목소리에 카이서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끝이다.>

“드디어 이 망할 함정이 끝났다아!”

나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환호했다.

어, 그런데…….

“카이서스, 나가는 문은 어딘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함정의 수많은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돌파한 후에는 갇혀서 굶어 죽는 건가?!

이제 남은 식량도 얼마 없는데?

<나가는 문은 없다.>

“진짜냐?!”

미친 카이서스 놈, 갑자기 맘이 변해서 같이 죽을 생각으로 이 함정에 나를 끌어들인 거였나!

<죽기는 누가 죽냐, 멍청아. 마나를 담아 ‘리베라티오’라고 말해라.>

“리베라티오?”

내가 마나를 담아 카이서스가 알려준 말을 내뱉자.

주변의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어? 이건 또 뭐야?”

<뭐긴 뭐야, 환상 마법이 해제되는 거지.>

“환상… 이라고?!”

일그러지던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며 나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동 안에 서 있었다.

마물의 시체도, 코끝을 괴롭히던 피의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 설마 지금까지 전부 환상이었다는 거야?”

<물론. 설마 하니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널 밀어 넣겠냐? 그러면 나도 죽는데? 킬킬, 멍청한 놈.>

큭, 그럼 나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리저리 구르고, 빈 허공에다 마법을 쏘면서 움직였던 거란 말이야?

“크윽! 그런 거라면 미리 말하든가!”

<멍청한 놈아. 그러면 제대로 긴장조차 안 했겠지.>

하긴, 정말 진짜인 줄 알았기에 사력을 다해 싸웠던 거니까.

<뭐, 아무리 환상이라도 크게 당했다면 쇼크로 반쯤 죽을 수는 있었겠지.>

그만큼 환상이라고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진짜 같았다.

“그래서, 그 함정은 그냥 환상 마법이 걸려 있는 이곳으로 텔레포트시킬 뿐이었던 거야?”

<그래, 나가는 길은 뒤쪽이다.>

카이서스의 말에 뒤를 돌아보니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그곳은 카이서스의 보물 창고였다.

뭐야, 바로 옆방에서 혼자 지랄발광을 한 거였어?

그것도 한 달이나?

“하아, 대체 이 짓을 왜 한 거야?”

<응? 알아채지 못한 거냐? 지금 너의 심장에 서클이 몇 개가 있는지.>

“뭐?”

나는 깜짝 놀라 내면을 관조했다.

내 심장을 둘러싼 마나의 서클이… 7개로 늘어나 있었다.

“이게 대체…….”

내가 영문을 몰라 중얼거리자 카이서스가 설명해 주었다.

<마법은 앉아서 수련만 한다고 늘어나는 게 아니다. 실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할 때도 있는 거지.>

“내가 겪은 그 환상들이 그 시련이었다는 건가.”

<그래.>

“으으, 그래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

내가 치를 떨며 하는 말에 카이서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겠지.>

대륙력 757년 2월 22일.

스물두 살이 된 나는 드디어 7서클 마법사가 되어 카이서스의 둥지를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