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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57화 (57/150)

057화 - 방랑자 데소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것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서 가는 데소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데소나 씨는 어디로 가던 길이에요?”

“응? 목적지? 그런 거 없는데?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던 중이야.”

“네? 목적지도 없이 왜 돌아다니는 건데요?”

“그냥?”

그냥이라니,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이야.

“그럼 여행 중에 돈은 어떻게 마련한 거예요? 아무리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한다 해도 먹고 자고, 입으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응, 그거야 가끔씩 용병 길드에서 몬스터 토벌이나 호위 같은 걸 맡아서 여행비를 마련했었지. 근데 얼마 전에 주머니를 잃어버렸거든. 돈은 없고 먹을 건 떨어지고…….”

그래서 강도질을 시도하려 했던 건가.

내가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뒤통수로도 느껴졌던지 데소나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 그래도 강도질을 해보려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딱 봐도 그래 보이던데.

내가 보거나 들은 강도들 중에서 가장 얼빠진 강도의 모습이었으니 말이지.

“아무튼, 이번에는 제가 용병 길드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사드릴 테니까 다음부터는 그런 짓은 하지 마요.”

“알았어, 알았어. 나도 그런 짓은 체질에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말한 데소나가 히죽 웃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보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혹시 나한테 반한 거야?”

잠시 어이가 없어져서 침묵했다.

분명 데소나는 예쁘장한 편이기는 했지만 내 주변만 해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많았다.

멀리 찾을 것 없이 아리안 누나만 해도 엄청나게 아름답지.

그녀와 비교하자니 데소나가 약간 불쌍하게 느껴졌다.

내가 측은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데소나가 뭐 씹은 표정이 되었다.

“뭐야! 나 정도면 예쁘잖아.”

“그게 타의적으로 너무 눈이 높아지다 보니… 데소나 씨는 그냥 평범하게 보이네요.”

그나저나, 왜 아름다운 사람을 떠올리는데 아리안 누나부터 떠오른 걸까.

“으, 뭔가 기분 나빠.”

입을 배죽 내밀며 툴툴거리던 그녀가 다시 돌아서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어째서 나를 도와준다는 거야?”

“여유가 있으면 남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해서요. 뭐, 그냥 변덕이라고 생각하세요.”

드래곤의 보물을 생각하면 데소나를 도와주는 것 정도야 별것 아니지.

“너 참 이상한 사람이구나?”

그게 도와주는 사람에게 할 말이야?

정말이지 이상한 여자라니까.

잠시 후, 그녀는 언제 툴툴거렸냐는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 마을이다!”

그녀의 말대로 저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이고 있었다.

“나 배고파. 빨리 가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에게 비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도 꽤나 허기진 터였다.

마을로 들어선 우리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에는 여행자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만이 자리에 앉아 식사 중이었다.

“여기 가장 빨리 되는 음식 2인분! 듬뿍 줘요!”

데소나가 자리에 앉으며 기운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좀 전까지 배가 고파서 잔뜩 지쳐 있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튜와 빵이 나왔다.

스튜는 미리 끓여놓은 듯한 느낌이 강했고 여러 개의 작은 빵은 반쯤 말라서 푸석푸석했다.

음식을 내어오는 식당 주인에게 데소나에게 줄 것과 내가 챙겨 갈 건량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으으! 얼마 만의 음식인지!”

데소나는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음식임에도 감격한 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좀 먹어요.”

“너야말로 빨리 먹어. 내가 네 음식을 뺏어 먹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그녀는 순식간에 자신 몫의 빵을 다 먹어 치우고 내 몫의 빵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뭐 이런…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나도 재빨리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러다간 빵 한 개도 제대로 못 먹겠어.

스튜에 빵을 찍어 먹으며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서야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야 살겠네.”

감자와 당근이 대부분이고 고기 조각은 조금밖에 없는 스튜였으나 그녀에게는 충분한 듯했다.

“그래서, 이젠 앞으로 어디로 갈 셈이에요?”

“글쎄… 나도 이젠 돌아다니기도 지쳤으니 슬슬 정착이나 해볼까 해.”

“생각해 둔 곳은 있어요?”

“응. 트럼벨로 가볼까 생각 중이야. 일단은 나라의 수도이니 재미있는 것도 많고 돈벌이도 많겠지.”

“흠, 트럼벨이라. 나쁘지 않죠. 저도 지금은 잠시 떠나 있지만 집이 거기 있어요.”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잘됐네. 내가 얼마나 트럼벨에 머물지는 몰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게 도움을 구하라고! 오늘 도와준 것에 대해 보답을 해줄 테니까.”

“하하, 말만으로도 괜찮아요. 어차피 한동안은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넌 트럼벨에 집도 있다면서 왜 이런 곳에 있는 건데?”

“아, 사정이 있어서 공기 좋은 곳에서 수련을 하는 중이에요.”

“그러고 보니 넌 마법사였지? 시골로 내려온 걸 보니 건강이 안 좋은가 보네.”

“뭐, 그런 셈이죠.”

그 정도가 몸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있는 수준이긴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잔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신 데소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히죽 웃어 보였다.

“그럼 밥도 사주고 한동안 먹을 것도 챙겨줘서 고마워! 그 보답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귀찮은 걸 하나 처리해 줄게! 너처럼 좋은 녀석에게 들러붙어 있는 놈이라면 분명 나쁜 놈이겠지. 음!”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그렇게 말한 그녀는 식당 주인이 준비해 온, 자신 몫의 건량이 담긴 자루를 받아 어깨에 걸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후, 정말이지 이상한 여자였어.

그나저나, 귀찮은 걸 처리해 준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나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감시자의 연락이 끊겼다고?”

루리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은 말에 그의 앞에 부복해 있던 복면인이 움찔! 했다.

“네. 표적이 두 달 전쯤 갑자기 트럼벨을 떠나서 라제스에서 한참 떨어진 야산으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 그 후로 흔적을 놓쳤으나 잠복하던 끝에 어제 다시 발견했었는데… 연락이 끊겼습니다.”

“마지막 메시지는?”

“‘갈색 머리의 미친년이 쫓아온다!’이었습니다.”

그 말에 루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갈색 머리의 미친년이라니.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지?”

분명 표적에게는 호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루리스였다.

갈색 머리의 미친년에 대해 고민해 보던 루리스에게 수하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다른 감시자를 보낼까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루리스가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괜히 또 다른 감시자를 보냈다가 그 갈색 머리의 미친년이라는 것에게 당한다면 놈에게 경각심만 높여줄 뿐이다. 언젠가는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날 터, 그때까지 기다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수하가 방을 나서자 루리스는 흐음, 하는 신음을 흘리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설마, 우리가 노리는 것을 알고 누군가가 그놈을 보호하고 있는 건가.”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세력을 의심하는 루리스의 근심은 깊어져 갔다.

“일단은 한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군.”

한숨 쉬듯 말하는 루리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시각, 그 갈색 머리 미친년은 육포 조각을 우물거리며 트럼벨로 향하는 중이었다.

* * *

“후, 확실히 마나 수련에 도움은 되는데…….”

식량을 보충하고 카이서스의 둥지로 돌아온 나는 수련을 마치고 중얼거렸다.

창고에 가득한 아티팩트들로 순도가 높아진 주변 마나와 미트라움 쟁반으로 인해 증폭되는 것까지.

그런데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만 늘어난다고 해서 일곱 번째 서클을 만들 수 있는 건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나는 고민에 잠겼다.

“카이서스, 7서클에 오르려면 지금처럼 마나의 사용량만 늘리면 되는 거야?”

<그럴 리가 있냐! 멍청아, 그런 거였으면 개나 소나 7서클에 올라섰겠지.>

“그럼 여기서 이렇게 수련만 하고 있는 것도 쓸모없는 것 아니야?”

<하여간 멍청한 놈 같으니. 일단 기본 토대는 갖춰야 할 것 아니냐.>

“끄응, 그건 그렇지만…….”

<걱정 마라. 이 몸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너는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하면 된다.>

으음, 어쩐지 찜찜하기는 하지만 카이서스의 말대로 해서 손해 본 적은 거의 없으니까.

나는 다시금 미트라움 위에 앉아 마나 수련 자세를 취했다.

* * *

그리고 6달 후.

“정말이지 이 미트라움이라는 광석은 대단한 것 같아.”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면서 미트라움에서 일어났다.

미트라움 위에서 수련한 지 8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마나의 사용량은 7서클 마법사를 뛰어넘는 수준까지 와 있었다.

<흠, 그래. 내 예상보다도 미트라움의 효과가 뛰어나군. 생각보다 마나 사용량을 늘리는 시간이 단축되었어.>

“그럼 일단 기본 토대는 완성되었다 치고, 어떻게 7서클에 올라가게 해줄 거야?”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일단 내일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라. 식량을 두둑이 챙기고, 잠을 푹 자둬라.>

“대체 네가 준비한 방법이 뭐기에 식량까지 준비하라는 거야?”

<크크, 가보면 알 거다.>

가본다니?

뭔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건가?

카이서스는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카이서스가 시킨 대로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며칠 전에 마을에 들러서 식량은 충분히 구해둔 터였다.

나는 마법 주머니에 든 식량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물에 적신 수건으로 세수를 하고, 떠나기 위해 짐을 챙겼다.

“자, 이제 그럼 출발해 볼까. 어디로 가야 해?”

그렇게 말하며 보물 창고를 나서려는데 카이서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 창고를 나갈 필요는 없다.>

“뭐? 여기서 떠날 준비를 하라며?”

내가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며 묻자 카이서스는 재차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내 모습을 조각한 미스릴 조각상이 어디 있는지는 알겠지?>

그 조각상이라면 지난번에 내가 악취미라고 했던 그 미스릴로 만들어진 카이서스 조각상?

“응, 그거라면 저쪽에 있잖아.”

내가 고개를 돌려 조각상을 쳐다보며 묻자 카이서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 조각상을 만져봐라. 그럼 알 거다.>

분명 지난번에는 조각상을 보기만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 카이서스 조각상을 만져보라니?

혹시 만지면 그 안에 깃든 힘이 나에게 흡수되어서 나를 7서클로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건가?

나는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조각상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크크크, 잘 살아남아라. 네가 죽으면 나도 곤란하니까.>

엥? 살아남으라니?

그 불안한 말에 조각상으로 향하던 손을 급히 거둬들이려 했으나 이미 손끝이 카이서스 조각상의 아랫배에 닿아 있었다.

“어, 어어?!”

텔레포트를 할 때와 같은 이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뭐야!”

내가 당황해서 외친 말에 카이서스가 여전히 웃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거? 내 보물 창고에 들어오는 침입자를 위한 깜짝 선물이다.>

한마디로 함정이란 거잖아!

왜 그딴 걸 나더러 만지라고 한 거야?!

“미친놈아! 함정을……!

내가 외치던 도중 마법의 빛이 금세 내 몸을 휘감았다.

“…만지라고 하다니 제정신이야?!”

내가 뒷말을 내뱉은 곳은 보물 창고로는 보이지 않는, 어둡고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넓은 공동이었다.

“여긴 대체 어디야?”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네가 수련할 장소지.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었다간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에서 불이 환하게 밝혀지며 어둠 속에 있던 것을 드러냈다.

피처럼 새빨간 피부와 이마에는 날카로운 뿔이, 등에는 박쥐의 것과 같은 커다란 날개가 달린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였다.

<마계의 마물 중 하나다. 만만한 놈이 아니니 조심하는 게 좋을걸?>

붉은빛이 일렁이는 마물의 눈동자가 나에게 향했다.

“크아아아아!”

“…씨발.”

나는 나도 모르게 욕설을 되뇌며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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