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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55화 (55/150)

055화 - 드래곤의 유적

“으, 으음.”

눈부심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나는 다른 곳에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빛과 함께 나 혼자만 이동한 모양이었다.

문은 열리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으로 보내주는 블링크 마법진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여긴 대체 뭐기에 저렇게 단단히 막아둔 거야? 그것도 서클 브레이크까지 잔뜩 써가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겠지.>

카이서스의 말대로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내가 이동한 장소는 넓은 통로와 같은 곳이었다.

뒤쪽이 막혀 있었기에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천장에는 빛을 내는 구슬이 박혀 있어서 어둡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길 만든 드래곤에 대해서 짐작 가는 건 없어?”

<글쎄다. 내가 아는 드래곤들 중에 이런 걸 만들었다고 한 놈은 없는데 말이지.>

카이서스도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곳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엄청나게 긴데 아무것도 없네.”

<잘 살펴봐라.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

빛을 내는 구슬이 곳곳에 박혀 있어서 주변을 살피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카이서스의 말에 따라 계속 걸으며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뭔가를 발견했다.

“저건… 문인가?”

통로의 끝에 작은 문이 있었다.

“트레이스!”

이것도 혹시 블링크 마법진이 아닐까 해서 트레이스를 써보았지만 이것은 평범한 문이었다.

<일단 열어봐라.>

카이서스의 지시에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히이익!”

나는 깜짝 놀라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문 맞은편에는 은발의 중년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누, 누구지?!

사람이 이 안에 있을 리는 없고…….

서, 설마 드래곤인가?!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라엘이라고 합니다!”

<뭐 하는 거냐? 멍청아, 저건 환영이다.>

“에, 엥? 환영?”

환영이라면 할루시네이션으로 만들어낸 가짜라는 건가.

“후우, 깜짝이야. 진짜인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나는 카이서스에게 투덜거리며 환영을 지나치려 했다.

-나는 실버 드래곤 아슈트반이다.

“히에에엑!”

갑자기 옆에서 환영이 말을 하자 나는 재차 놀라 이상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환영이라며! 환영이라며!”

<평범한 환영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만? 저건 의지를 담아 만든 환영이다. 정해진 말을 하는 게 가능하지. 그나저나 아슈트반이라면… 내 동족 중 한명인데.>

“그런 건 좀 일찍 말하라고!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그리고 드래곤의 환영이 왜 있는 건데?!

내가 놀라서 소리치거나 말거나 아슈트반의 환영은 자신의 할 말을 했다.

-이곳은 나의 둥지. 나는 현재 수면기이니 다음에 찾아오도록 해라.

<아, 그러고 보니 아슈트반의 둥지가 이 근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수면기라는 건 몰랐군. 어쩐지 안 보인다 싶더라니.>

뭐?! 여기가 드래곤의 둥지라는 거야?!

유적 같은 게 아니잖아?!

“그, 그럼 빨리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자는 걸 방해했다가 아슈트반이라는 드래곤이 화라도 냈다간…….”

게다가 자신의 둥지를 인간들이 유적인 줄 알고 발굴하려 했다는 걸 알면 무지하게 화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갈 방법을 찾으려던 그 순간.

피유우우우웅!

안쪽에서부터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흠, 일어났나 보군.>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일이 아니잖아!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벽의 한쪽이 열리더니 환영과 똑같은 모습을 한 자가 나타났다.

“하암, 잠이 덜 깨서 뒹굴거리고 있던 차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져서 나와 봤더니. 넌 누구냐? 분명 동족만 들어오게끔 해놨을 터인데.”

하품을 길게 하며 나타난 것은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아슈트반 본인이었다.

“앗! 저는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끊으며 계속해서 아슈트반이 말했다.

“흠, 분명히 동족의 냄새는 느껴지는데…….”

계속 놔두면 제 말만 할 것 같아서 서둘러 내 소개를 했다.

“저, 저는 라엘입니다!”

“라엘?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군.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어… 그러니까 저는 대충 반은 인간이고 반은 드래곤입니다.”

“반인반룡이라?”

내 말에 아슈트반이 흥미를 가진 듯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았다.

“어, 그러니까…….”

나는 카이서스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아슈트반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카이서스가 죽어서 너와 하나가 되었다 이 말이냐?”

“네.”

“흐음, 그것 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드래곤이 한낱 인간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니.”

“하하, 저도 신기해요.”

<신기하긴 개뿔. 개같은 일이지.>

나도 개같거든? 그렇다고 드래곤 앞에서 ‘드래곤이 내 안에 들어와서 엿같아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이냐? 분명 동족들에게 말도 없이 잠에 빠져든 거라 카이서스도 모를 텐데.”

“그, 그것이…….”

멀쩡히 살아 있는 드래곤의 둥지를 유적인 줄 알고 파헤치러 왔다고 어떻게 말해?

내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고 있던 중 아슈트반이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

“음? 둥지 바깥에서 여러 인간들의 기척이 느껴지는데. 침입자인가? 잠시 기다려 봐라, 반쪽 동족이여. 침입자들을 해치우고 오겠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 하는 아슈트반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 해치우려는 침입자들 중에는 우리 아버지도 있다고!

“자, 잠시만요! 밖에 있는 건 제 일행들입니다!”

“일행? 내 둥지에 인간들을 이끌고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설마……?”

눈매가 날카로워지는 아슈트반의 모습에 나는 다급히 대답했다.

내가 사람들을 이끌고 아슈트반을 공격하러 온 걸로 오해하겠어!

“사실 사람들은 여기를 유적 같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슈트반 님이 계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어요. 제가 돌아가서 얼씬도 못 하게 할게요!”

“흠, 원래라면 모두 죽여 버려야겠지만… 절반은 동족인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버려 두도록 하지.”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로군.>

잠이 덜 깨서 반쯤 잠긴 눈을 보아하니 카이서스의 말대로 내가 말해서라기보다 귀찮아서 그런 것 같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넵. 그럼 전 이만 나가서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니까 나가는 방법을 알려줘!

드래곤이란 족속과는 한시도 같이 있기 싫다고.

“잠깐.”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슈트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네, 네?”

당황한 내가 긴장해서 쳐다보자 아슈트반은 여전히 졸린 눈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

“겁먹지 마라. 선물을 주려는 것이니.”

그렇게 말하며 아슈트반이 내 머리에 손을 뻗었다.

“네? 무슨 선물이요?”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아슈트반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로 말했다.

“카이서스라면 알 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리를 통해 무언가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 미친 자식이? 수면 이후의 뒹굴거림을 방해했다고 이런 짓을 하다니!>

카이서스가 어이없음과 분노가 반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뭔데? 대체 뭘 한 건데?’

내 물음에 카이서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슈트반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마법을 익혔더군. 마법을 더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네 안에 잠든 카이서스의 심장을 일깨워 주었다.”

엥? 마법을 더 쉽게 익힐 수 있는 거라면 좋은 것 아니야?

내가 의아해하는 사이 카이서스가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멍청아! 내 심장을 일깨웠다는 건 내 심장이 네 몸을 잠식해 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거다!>

그 말인즉슨…….

내가 서클 브레이커에 오르지 못하면 죽는 시점이 더욱 앞당겨졌다는 거야?!

“아슈트반 님……?!”

같은 드래곤인 아슈트반이라면 인간의 몸이 드래곤의 심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였다.

내가 뭐라고 말하려던 차에 아슈트반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좀 더 쉬어야 하니 이만 나가봐라.”

그가 손을 휘젓자마자 나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어, 어어?!”

번쩍!

“드리안 자작님!”

“무사하십니까?!”

눈을 감았다 뜨니 나는 어느새 문 밖으로 나와져 있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발굴단의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걱정하며 다가왔다.

‘마, 망할 드래곤들 같으니! 하여간 제멋대로라니까!’

<아무리 잠결이라지만 이딴 짓을 하다니, 빌어먹을 놈 같으니.>

내가 아슈트반에게 속으로 화를 내고 있을 때 카진이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안으로 들어가셨던 겁니까? 안에는 대체 뭐가 있습니까?”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모두 짐을 챙겨요! 서둘러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뜬금없는 내 말에 카진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재차 말하여 설명해 주었다.

“여긴 유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드래곤의 둥지란 말입니다!”

내 말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히익!”

“저, 정말입니까?!”

“다들 철수 준비! 서둘러!”

드래곤의 둥지에 침입했다는 것은 드래곤에게 죽임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떠올린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를 철수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카이서스의 심장이라는 시한폭탄의 폭발이 얼마나 앞당겨졌는지는 몰라도 한동안 마법 수련에만 매진해야겠어.

* * *

“유적을 탐사하러 간다더니, 금방 돌아왔군?”

왕궁에 출근하자 로라스 왕자가 나를 맞이하며 말했다.

“하아, 그게…….”

아슈트반의 둥지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내가 한숨을 내쉬자 왕자가 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알고 있네. 유적인 줄 알고 갔더니 드래곤의 둥지였다면서? 깜짝 놀랄 만도 하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선생이 있어서 다들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더군.”

저는 무사히 나오지 않았는데요.

시한폭탄의 도화선이 짧아져 버렸다고요.

“후, 제 덕분이긴요. 그곳의 드래곤이 잠이 덜 깨서 귀찮아했기에 다행이었죠.”

“후후, 아무튼 선생 덕분에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어 다행이야. 왕국 내에 드래곤의 둥지가 있다는 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물론 드래곤의 심기를 건드리긴 싫으니 둥지가 있다는 산을 출입 금지 시켜야지.”

음, 일단 둥지 주변에 사람들을 얼씬도 못 하게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서 다행이로군.

“저… 그래서 말입니다만. 왕자님, 마법 선생 자리를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뜬금없이 그만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작스러운 퇴직 요청에 왕자는 배신이라도 당했다는 듯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이번에 만난 드래곤이 자신의 잠을 방해했단 이유로 제게 벌을 내렸거든요.”

“벌이라니? 그런 보고는 받지 못했는데?”

“그야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흠, 내게 가장 먼저 말하는 거라 이건가. 그래, 벌이 무엇인가?”

“그건 말하기 곤란합니다만…….”

서둘러 서클 브레이커에 오르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걸 어떻게 쉽게 말 하냐고.

“흐음, 드래곤이 비밀로 하게 한 모양이로군. 하지만 그만두는 건 허락할 수 없네, 대신 휴가를 주지. 얼마 정도면 되겠는가?”

“적어도 일 년 정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 년? 그렇게나?”

“네.”

카이서스가 적어도 7서클까지는 올려놔야 남은 시간이 얼마 정도인지 짐작이나마 할 수 있다고 했고…….

솔직히 조금 더 시간을 부르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었다.

6서클에서 7서클로 올리는 건 보통 사람이라면 일 년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기간이었으니까.

“좋아, 알겠네. 내일부터 일 년간 쉬도록 하게. 하지만 그 후에는 꼭 돌아와야 하네.”

“네, 감사합니다.”

일 년으로 7서클에 오르는 것은 보통이면 불가능함에도 내가 일 년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카이서스가 일 년 안에 7서클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다.

‘젠장, 카이서스. 금방 서클을 올리는 방법이 있었다면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잖아.’

<멍청아,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도 이른데 급하니까 어쩔 수 없이 쓰는 거다.>

‘그래서 그게 어떤 방법인데?’

<지금은 비밀이다.>

‘하여간 숨기는 것만 많아.’

아무튼, 나는 휴가를 받은 다음 날 외갓집으로 향했다.

일 년간 떠나 있어야 하니 말은 해둬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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