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화 - 무사 귀환
우리는 멀리 세워두었던 말을 타고 바스칼 영지로 돌아왔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은 영지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영지로 들어서는 우리를 맞이했다.
“영웅님들 만세!”
“만세!”
환호를 받으며 영지에 들어선 우리를 바스칼 영주가 뛰어나와 환영했다.
“영웅님들! 그 마물을 처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허허, 고맙소. 왕궁에 보고는 하셨소?”
다프간 님이 웃으며 그 말을 받으며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언데드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자마자 여러분이 그 언데드 로드라는 마물을 해치우신 것을 알고 왕궁에도 보고했습니다!”
“허허, 국왕 전하의 근심이 하나 덜어졌을 테니 다행이로구려.”
“예. 국왕께서도 무척이나 기뻐하시며 여러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국왕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니 서둘러 돌아가야겠구먼.”
대스승님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사무엘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하, 힘든 상대를 처치하고 왔으니 포상을 두둑이 내려주시겠지요?”
그 말에 다프간 님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내 국왕 전하께 말씀드려 놓겠소이다. 여러분의 노고에 부족함이 없는 대접을 해주실 것이외다.”
우리는 언데드의 위협에서 벗어난 바스칼 영지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쉘던 왕국의 수도, 비엔타로 이동했다.
* * *
텔레포트 마법진을 나서자마자 쉘던 왕국의 재상이라는 자가 직접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모두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입궁하시지요.”
우리가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수많은 인파가 길 양옆에 늘어서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뉘엿뉘엿 지고 있는 노을빛에 비친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은 꽤나 보기 좋았다.
“영웅님들 만세!”
“다프간 님, 손 흔들어주세요!”
“저 젊은 사람이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야? 잘생겼어~!”
바스칼에서의 환영 인파보다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환호를 내지르니 귀가 울릴 정도였다.
그나저나 환호 속에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후후!
<그냥 치켜세워 주는 말인 것 아니냐?>
‘후후, 그럼 뭐 어때. 듣기 좋은걸.’
카이서스가 초를 치는 말을 했으나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일은 카이서스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망쳐지기에는 무척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우리는 준비된 마차를 6대에 나눠 타고 게이트에서 왕궁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 이동했다.
지붕 없는 마차인 데다 우리를 호위하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줄지어 늘어선 탓에 퍼레이드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허, 손이라도 흔들어주시지 그러십니까?”
다프간 님이 웃으며 마차에 대스승님에게 말했다.
내가 탄 마차에는 스승님과 대스승님, 다프간 님이 함께 타고 있었다.
다프간 님의 말에 대스승님은 눈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나이에 무슨 퍼레이드요? 애도 아니고.”
그 말에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던 나와 스승님이 멋쩍어졌다.
“허허, 그래도 우리들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아닙니까. 흠, 다들 손을 흔들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시면 더 눈에 띄긴 하겠군요.”
다프간 님이 재차 말하자 대스승님은 그제야 떨떠름해하면서도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한껏 환호를 받으며, 영웅이 된 기분을 즐기다 보니 쉘던 왕궁이 가까워졌다.
마차에서 내려 왕궁 문을 들어서자 기사들과 근위병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선 군례를 취했다.
일사불란하게 군례를 취해 보이는 그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그 군례를 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잔뜩 고양되었다.
흠, 그나저나 저거 연습하느라 평소에 꽤나 고생했겠어.
근위들의 군례를 받으며 왕궁 안으로 들어서자 쉘던 국왕과 대소신료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어서들 오시오! 대륙의 영웅들이여!”
쉘던 국왕의 환영사에 다프간 님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허허, 영웅이라니. 너무 과한 호칭에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프간 님의 겸양에 쉘던 국왕이 고개를 내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 나라는 물론이고 대륙을 위협할 뻔했던 언데드 로드를 해치운 그대들이 영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전혀 과하지 않소!”
국왕이 그렇게까지 말하며 치하하자 토벌대 전원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니까.
“자자,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세! 내 그대들을 위하여 연회를 준비해 두었소!”
쉘던 국왕이 직접 다가와선 다프간 님의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쉘던 국왕이 준비한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 * *
며칠 뒤 아침.
나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끄응, 너무 마셨어…….”
며칠째 토벌을 축하한다고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을 계속해서 마셨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물, 무울…….”
머리맡의 탁자에 놓인 물병을 통째로 들어 물을 마셨다.
<끌끌, 매일같이 숙취에 고생하면서도 자제라는 것을 모르느냐?>
“으으, 머리가 울리니까 잠시 조용히 해줄래?”
나보다 높으신 양반들이 권하는 술을 어떻게 거절한단 말이야.
나는 겨우 자작인데 연회에 참석하는 자들은 대부분 백작급 이상이었단 말이야.
아무리 소속 국가가 다르더라도 거절하긴 좀 그렇단 말이지.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욕실로 가선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자 그나마 좀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오니 침대 맡에 놓인 스태프가 보였다.
나는 스태프를 들어 올리며 자세히 쳐다보았다.
호두나무로 만든 고급스러운 몸체에 끝에 달려 있는 주먹만 한 루비.
화염 계열의 마법을 강화시켜 주는 꽤 좋은 스태프다.
왕궁으로 돌아온 첫날의 연회에서 쉘던 국왕이 토벌대에게 하사한 물건들 중에서 내가 받은 것이다.
원래 쓰고 있던 것보다 조금 더 좋은 것이다.
전에 쓰던 것이 드래곤의 둥지에서 들고 나왔다곤 해도 초보가 쓰기에 좋은 정도라서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던 터였다.
새로운 스태프를 이리저리 매만져 보고 있던 차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아침 식사를 안으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아, 네! 들어오세요!”
내 말에 시종이 음식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부드러운 빵과 해장에 좋다는 바리 수프였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숙취에 시달리다 보니 바뀌지 않는 아침 메뉴다.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불러주시길.”
시종이 나가자마자 나는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수프를 한 모금 들이켰다.
따스한 수프가 목구멍을 넘어 위로 들어가자 쓰리던 속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속이 조금 진정되자 나는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하며 생각했다.
흠, 언데드 로드를 해치우면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야.
애초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륙 전체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거지만.
쉘던 왕국의 대접도 한껏 받았으니 이제 슬슬 크라우드로 돌아가면…….
어? 그러고 보니 뭔가 까먹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뭘 잊고 있는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아! 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맙소사, 누나의 결혼식을 잊고 있었잖아!”
누나의 결혼식은 2월 13일.
그리고 지금은 2월 9일이었다.
나흘이 남아 있긴 했지만 돌아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나뿐인 누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뻔했잖아?!
나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 * *
“죄송해요. 저 때문에 급히 돌아가게 되어서.”
내 말에 스승님과 대스승님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이제 슬슬 계속되는 연회가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그래. 맛있는 음식과 술도 좋지만 사람 많은 곳은 역시 귀찮단 말이지. 네 덕에 돌아갈 이유가 생겼으니 오히려 잘됐지!”
껄껄거리며 말하는 대스승님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네 누이가 곧 결혼을 한다고?”
“네.”
“제자의 누이가 결혼하는 자리면 너도 참석해야겠구나.”
대스승님의 말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스승님도 함께 가실 거죠?
“뭐, 구경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괜찮겠지, 라엘?”
대스승님의 말에 스승님이 웃으며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당연하죠! 두 분이 참석해 주신다면 다들 기뻐할 거예요.”
내 말에 두 분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명의 귀한 하객을 모시고서 국경 지대로 가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섰다.
* * *
2월 13일 아침.
국경 지대를 지나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경유해 가며 트럼벨에 도착했다.
결혼식이 치러지는 외할아버지의 저택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으음,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사람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에 눈을 찌푸리고 있자니 대문 앞에 서 있던 집사 브루스가 나를 발견했다.
“라엘 님! 왜 이렇게 늦으신 겁니까? 빨리 이쪽으로 오십시오!”
다행히 브루스가 나를 부른 덕에 나와 스승님, 대스승님은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나 못 오시는 게 아닐까 하고 메이엔 아가씨께서 무척이나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요?”
쉘던 왕국의 대접을 받느라 정신이 팔려서 까먹고 있었던 것이 더욱 미안해졌다.
“그나저나, 하객들이 꽤나 많네요.”
대문 밖에 줄 서서 기다릴 정도라니.
내 예상보다도 많은 하객들이다.
외할아버지의 명성이 높기는 하지만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다고 누나의 지인이 이렇게나 많을 리도 없고…….
내가 의아해하며 내뱉은 말에 브루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라엘 님 덕분이지요.”
“네? 제가요?”
“드래곤의 가호를 받으시는 라엘 님의 누님께서 결혼하시니 여기저기서 청첩장을 달라고 난리더군요.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친분을 만들어보려고요.”
아하, 그런 거였군?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브루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로라스 왕자님께서도 참석하신다는 소문이 나서 더욱 사람들이 몰린 거지요.”
“네? 왕자님도 참석하신다고요?”
“네. 왕자님이 왜 자신에게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냐며 서운하다고 라엘 님께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왕자님이 참석하신다기에 저희도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고생 좀 했답니다.”
왕자 정도 되는 사람이 참석한다면 준비할 것이 더욱 늘어났겠지.
그나저나 왕자가 서운해했다니 나중에 만나면 또 한 소리 듣겠네.
브루스가 내 뒤에서 따라오는 스승님과 대스승님을 슬쩍 쳐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저 두 분은……?”
그러고 보니 스승님과 대스승님 모두 여기 오시는 건 처음이지.
“제 스승님과 대스승님이세요.”
“오! 라엘 님의 스승님과 대스승님이시라면… 두 분의 대마법사님도 참석하셨으니 더욱 멋진 결혼식이 될 겁니다.”
브루스의 말에 스승님과 대스승님은 흐뭇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메이엔 아가씨는 저쪽에 계십니다. 저는 이만 손님들을 맞이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누나가 있는 신부 대기실 앞까지 우리를 안내한 브루스가 다시 손님을 맞이하러 돌아갔다.
신부 대기실의 문을 지키고 있던 하녀가 나를 보고는 문을 열어줬다.
“누나! 나 왔어!”
“라엘! 늦었잖니!”
신부 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누나의 서운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어쩌다 보니… 와!”
사과하던 나는 눈에 들어온 누나의 웨딩드레스 차림에 놀라 탄성을 내뱉었다.
“후후, 누나 예쁘지?”
누나의 머리를 매만져 주고 있던 어머니가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말했다.
“으, 응! 누나 정말 아름다워!”
곱게 화장을 하고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누나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후후, 고마워.”
아름답다는 말에 늦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 가셨는지 누나가 웃으며 말했다.
“메이엔 양, 결혼 축하해요. 저는 라엘의 스승인 카밀라 루드비히라고 해요.”
“결혼 축하하네. 난 이 녀석의 대스승인 키린토라는 늙은이라네.”
내 뒤에 있던 스승님과 대스승님이 조심스레 나서며 축하를 건네자 누나와 어머니가 놀랐다.
“어머, 적색 마탑주 님과 은둔의 대마법사님까지?! 처음 뵙겠어요. 라엘의 엄마인 마를렌이라고 합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어머니의 말에 스승님이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뿐인 제자의 누이가 결혼하는데 어떻게 안 와볼 수 있겠어요?”
“뭐, 나는 그냥 따라온 거라오.”
스승님의 말에 대스승님이 말을 덧붙였다.
“두 분까지 오셨으니 더욱 멋진 결혼식이 될 거예요.”
어머니의 말에 스승님과 대스승님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아! 라엘 왔어? 카밀라 님과 키린토 님도 오셨네요?”
누나의 것으로 짐작되는 음료를 가지고 오던 아리안 누나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아리안, 너도 잘 있었니?”
스승님이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언데드 로드를 토벌하셨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어요. 모두들 다친 곳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라엘이 놈의 약점을 알아내 준 덕분이란다.”
스승님이 나를 돌아보며 한 말에 쑥스러워졌다.
“에이, 언데드들을 막고 놈을 해치운 건 스승님과 대스승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인걸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내 말에 대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아니, 그걸 그렇게 인정해 버리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다른 사람들이 뚱한 표정을 짓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