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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52화 (52/150)

052화 - 언데드 로드(2)

“모두 조심하시오!”

십여 개의 검은 가시를 다들 실드를 펼치거나 오러가 실린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우왓!”

아무리 봐도 6서클의 실드로는 막기 어려워 보였기에 나는 옆으로 굴러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엘! 뒤로 물러나 있으렴!”

리치를 상대하고 있던 스승님이 그렇게 소리쳐 말했다.

아니, 뒤로 물러나라고 하셔봐야 주변에 언데드들로 가득한 이 상황에서 어디로 물러나느냔 말이죠!

나는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움직이며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월!”

불의 장벽으로 리치 하나의 마법 시전을 방해하며 언데드 로드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오러와 마법을 언데드 로드가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다섯 명의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

혼자서 모든 공격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죽어라!”

언데드 로드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마법과 방어를 뚫고, 오러 마스터 사무엘이 파고들었다.

“좋았어!”

오러가 푸른 불길처럼 일렁이는 검을 언데드 로드의 옆구리를 향해 휘두르는 사무엘의 모습에 모두가 작게 환호했다.

오러가 잔뜩 실린 검이 언데드 로드의 목을 파고들었다.

언데드 로드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잘했소! 사무엘 경!”

대스승님이 외친 말에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기도 전.

[…소용… 없다…….]

바닥에 떨어진 언데드 로드의 머리가 그렇게 말하고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거기서 끝났더라면 좋았겠지만… 가만히 서 있던 언데드 로드의 목 부분에서부터 검은 연기와 함께 머리가 빠르게 재생되는 것이었다.

[…이미 나는 죽은 존재… 나를 죽일 수는 없다!]

어느새 멀쩡한 모습으로 재생한 언데드 로드의 외침에 모두가 망연자실해졌다.

“이게 대체… 머리통을 날려도 죽지 않는다니!”

“엄청난 재생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건가?!”

본신의 능력도 강한데 계속해서 재생하는 능력까지 있다니, 완전히 사기잖아!

망연자실해할 틈도 없었다.

언데드 로드가 머리를 재생하자마자 곧장 마법을 시전해 왔으니까.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들은 계속해서 공격했다.

방어를 뚫고 대마법사의 마법과 오러 마스터의 오러가 언데드 로드의 몸 곳곳을 공격했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자리는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계속해서 재생하고 있었다.

“끄응.”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럴 때 기댈 구석이라고는 카이서스밖에 없었다.

‘카이서스! 저 자식 약점이 대체 뭐야?’

내 물음에 카이서스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약점, 약점이라… 나는 저런 것 따위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기에 약점은…….>

‘이런 쓸모없는 놈 같으니!’

<뭐, 인마? 나라고 뭐든지 알고 있을 것 같으냐? 나라면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저런 것에 대한 약점을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잖냐!>

으음, 확실히 카이서스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면 언데드 로드의 약점 같은 건 알 필요도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약하기 짝이 없는 내 몸에 갇힌 신세잖아.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언데드 로드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대스승님과 백색 마탑주, 그리고 세 명의 오러 마스터는 계속해서 재생하는 언데드 로드에게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라고 한들 일단은 사람.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무한정 상대할 수는 없었다.

“서두르시오! 이쪽으로 몰려드는 언데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소!”

지원대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잠시 기다려 봐라. 기억을 더듬어보마. 모든 것을 기억하는 드래곤이라 해도 관심 없는 기억을 떠올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서둘러!’

그러는 와중에도 언데드 로드를 상대하는 자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아무리 찢기고 불타고 녹아내려도 끊임없이 재생하는 적이라니.

아무리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그들이라 해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 것인가…….”

백색 마탑주 다프간 님이 힘없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죽지 않는 적을 상대로 계속해서 싸우기에는 위험했다.

여기 모인 자들은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

한 명이라도 죽어서는 곤란했다.

그러니 물러나려 하는 것도 당연했다.

‘카이서스! 좀 더 빨리!’

<재촉하지 마라, 얼간… 아! 떠올랐다!>

‘뭔데?!’

<저놈의 몸 한 곳에 핵이 있을 거다. 그 핵을 파괴하면 저놈은 소멸한다! 뭐, 그 핵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나는 곧장 카이서스가 알려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언데드 로드의 약점은 몸 안에 있는 핵이랍니다!”

“핵이라고?”

드디어 해결책이 나오자 대스승님이 조금은 밝아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언데드 로드가 안광을 빛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작은 인간…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냐…….]

흠, 언데드 로드가 저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핵이 약점인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그런데 인간이면 인간이지 작은 인간은 또 뭐야?

[죽… 어라!]

아무래도 자신의 약점을 밝힌 것 때문에 언데드 로드가 나에게 잔뜩 열받은 것 같다.

“우왁!”

내게로 날아오는 검은 창에 비명을 지르자 어느새 다가온 스로반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실린 검으로 검은 창을 박살내버린 스로반이 외쳤다.

“어딜! 네 상대는 우리다!”

[건… 방진!]

스로반의 말에 언데드 로드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런 언데드 로드에게 다섯 명의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가 다시금 공격을 가했다.

해치울 방법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들의 얼굴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놈의 핵은 어디 있는가?”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흠, 우리가 알아내는 수밖에 없군.”

오러 마스터 라트마는 그렇게 대답하며 쉴 새 없이 오러 블레이드를 언데드 로드에게 날려댔다.

베고 찢고, 터뜨리고 녹여대다 보면 언젠가는 그 핵의 위치를 알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불확실했다.

핵을 찾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지쳐 나갈 터.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몰랐다.

한 명, 한 명이 각국에 소중한 전력이다.

누구 하나라도 잃었다간 이번 작전을 제의한 우리 나라나 쉘던 왕국에 있어 큰 부담이 될 터.

한시라도 빨리 핵을 찾아내야 했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는 주변의 언데드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쉴 새 없이 파이어 월을 사용하면서도 고민에 잠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좋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카이서스! 트레이스 마법 말이야. 꼭 자신의 손에 직접 닿는 것에만 쓸 수 있는 거야?’

<호오, 간만에 쓸모 있는 생각을 하는군. 물론 직접 손에 닿아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마법이지만……. 수식과 운용, 마나의 양만 바꾼다면야……. 직접 닿지 않더라도 다른 것을 통해서 연결만 되어 있다면 쓸 수 있다.>

지금까지 언데드 로드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말인즉슨, 언데드 로드는 땅에 발을 디디고 있고, 그 땅은 나와 연결되어 있다!

‘카이서스, 트레이스를 수정하는 법을 알려줘!’

<오냐, 잘 들어라!>

카이서스가 머릿속으로 트레이스 마법의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꽤나 어려운 수식과 운용법이었으나 이미 트레이스 마법의 원판을 익힌 나다.

게다가 드래곤의 심장으로 성장한 나의 지능까지 합쳐지니 손쉽게 외울 수 있었다.

“후우.”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땅바닥에 손을 가져다 댔다.

“트레이스! 온!”

마나가 대지를 타고 흘러가며 언데드 로드에게 향했다.

낯선 마나가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언데드 로드가 흠칫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작은 인간… 뭘 한 거냐……!]

마나가 훑고 지나간 이후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자 언데드 로드는 의아한 기색이었으나 동시에 무척 언짢아하기도 했다.

그보다 말할 때마다 작은 인간이라니 듣는 키 작은 사람 서럽잖아!

언데드 로드의 몸을 훑고 돌아온 마나가 내 머릿속에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놈의 가슴께에 위치한 자그마한 구슬.

그 구슬에서는 트레이스로 전부 파악하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마력과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것이 분명 언데드 로드의 핵이겠지.

“언데드 로드의 핵은 오른쪽 가슴 부근에 있는 손가락만 한 구슬입니다!”

나의 외침에 언데드 로드가 고개를 획 하고 돌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작은 인간… 넌 대체!]

응, 그게 바로 네놈의 핵이라는 확인 감사하구요.

“저 반응을 보아하니 라엘 군의 말이 맞는 모양이로군! 오른쪽 가슴을 중점적으로 노리시오!”

백색 마탑주 다간프가 환호성을 내지르듯 소리쳤다.

[이… 용서하지 않겠다!]

제대로 열받았는지 언데드 로드가 나를 노려보며 검은 기운을 마구 뿜어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한데 뭉치더니 커다란 구체가 되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우왓, 저 정도 크기면 피할 수도 없겠어!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날아오는 검은 구체를 보며 내가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라엘 군을 지키시오!”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라오! 내 사손을 다치게 할 수는 없지!”

다프간 님과 대스승님이 그렇게 말하며 내 앞을 막아서며 실드를 시전했다.

“실드!”

“파이어 실드! 파이어 실드!”

총 세 겹의 실드가 내 앞에 쳐지며 검은 구체를 막았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소리가 나며 검은 구체와 실드들이 힘겨루기를 했다.

대마법사 두 명이 펼친 세 겹의 실드로도 막아내기 힘들 정도의 마법이라니, 대체 저건 뭐야?!

나는 물론이고 대스승님과 다프간 님이 당황하는 그때 다른 오러 마스터 세 명이 그 틈을 노리고 언데드 로드에게 달려들었다.

“약점이 어딘지 안 이상 힘을 아낄 필요가 없지!”

“죽어라, 이 해골아!”

“정의를 위하여!”

세 명의 오러 마스터가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언데드 로드의 오른쪽 가슴을 노리고 오러가 일렁이는 검을 휘둘렀다.

분노로 인해 나를 공격하느라 정신을 팔고 있던 언데드 로드는 그 공격을 막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크아아!]

가슴에 세 자루의 검이 박힌 언데드 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 덕에 나를 향해 날아오던 검은 구체는 힘없이 실드에 막혀 흩어지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인간들……!]

“시끄럽다!”

언데드 로드의 외침에 사무엘이 소리치며 검을 반 바퀴 돌리며 내리그었다.

그 순간, 콰직! 하는 소리가 모두의 귀에 들렸다.

[끄아아아아아……!]

언데드 로드의 입에서 듣기 싫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데드 로드의 가슴에서 뽑아낸 사무엘의 검 끝에 작은 구슬과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아, 안 돼……!]

“돼! 리커버리!”

언데드 로드의 숨이 끊어지는 듯한 비명에 대답하며 다프간 님이 8서클의 대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치유 마법을 검을 향해 시전했다.

치유 마법은 보통의 생물체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지만 언데드와 같은 어둠의 존재들에겐 다르다.

어둠의 존재에게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치유 마법인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사무엘의 검 끝을 뒤덮었다.

[크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언데드 로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빛이 가라앉자, 사무엘의 검 끝에 걸려 있던 구슬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언데드 로드의 몸도 천천히 재가 되어갔다.

[이 증오는… 풀지 못한단 말인가…….]

팔과 다리에서부터 재가 되어가는 것을 보며 힘없이 중얼거리는 언데드 로드의 모습에 대스승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네놈의 증오 따위 알 게 뭐냐.”

대스승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 로드는 전신이 재가 되어 폭삭 가라앉았다.

“끝났군.”

사무엘이 중얼거리며 검을 허공에 휘둘러 칼날에 묻은 재를 털어냈다.

“하하! 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모였으니 당연한 일 아니겠소?!”

라트마가 웃음을 크게 터뜨리며 외친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흠, 그런데 언데드 로드를 해치우니 언데드들의 상태가 이상하오만.”

다프간 님의 말에 모두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데드 로드가 소멸하고 난 후 사방에 가득한 언데드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언데드 로드의 재에서 가까이 있던 언데드부터 풀썩풀썩 쓰러지며 평범한 시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흐음, 이건……?”

사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언데드들을 움직이던 언데드 로드가 소멸하면 그 힘도 사라지는 모양이오.”

대스승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드들이 쓰러지며 멀리서 언데드 군대를 상대하던 쉘던의 군대가 보였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그들도 이내 우리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아아-!”

“영웅님들이 마물을 쓰러뜨렸다!”

“이겼다아!”

어찌나 환호성이 큰지 한참이나 떨어진 우리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본대의 나머지 다섯 명과 지원대의 열 명도 이쪽으로 다가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끝난 거지요?”

스승님의 말에 대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라엘 덕분에 언데드 로드를 쓰러뜨렸다. 약점도 알려주고, 미끼도 되어준 덕분에.”

미끼… 라니.

“허허, 아무튼 다 끝났단 소리시구려. 여보게들! 이제 끝났다니 다들 돌아가세나. 뒷정리는 쉘던 왕국이 알아서 하겠지!”

회색 마탑주 막시무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 말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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