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 언데드 로드(1)
“저기 언데드들이 보입니다. 준비들 하십시오!”
토벌대의 대장인 백색 마탑주 다프간 님의 말에 모두가 말을 멈춰 세웠다.
모두가 말에서 내려 미리 정해둔 진형을 갖추었다.
오러 마스터들이 마법사들을 둘러싸서 보호하는 진형이었다.
대마법사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하이드 마법을 걸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오러 마스터들에게도 하이드 마법을 걸어주었다.
“하이드 마법이 인기척을 숨겨준다고는 해도 만능은 아니오. 조용히 움직이도록 합시다.”
“알겠소이다.”
하이드 마법이 모두에게 걸린 것을 확인한 백색 마탑주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갑시다. 오러 마스터분들은 길을 열어주시오.”
그 말에 앞줄의 오러 마스터들이 조용히 검을 뽑아 들며 걸음을 옮겼다.
말을 타고 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하이드 마법을 건다고 해도 돌발 상황에 말이 어떻게 행동할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문제가 생기느니 그냥 걸어서 언데드들을 돌파하기로 한 것이다.
그어어-
맥없는 신음 소리를 흘리며 바스칼 영지를 향해가는 언데드들의 뒤에서 오러 마스터들이 검을 휘둘렀다.
오러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단련한 오러 마스터들의 검은 언데드들의 썩어가는 몸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언데드들이 쓰러지며 생겨난 길로 토벌대가 아무 말 없이 전진했다.
다행히도 저급한 언데드들은 카이서스의 말대로 하이드 마법 덕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언데드들을 베어 넘기며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저 멀리서 언데드 로드가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짙은 암흑을 뿜어내는 것이 보였다.
언데드 로드를 앞에 두고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던 그 순간
크오오오-!
어디선가 흉포함이 느껴지는 괴성이 들려왔다.
하이드 마법이 통하지 않는 고위 언데드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시오!”
백색 마탑주 다프간 님이 소리치며 말했다.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 하나가 좀비와 구울, 스켈레톤과 같은 하급 언데드들을 마구잡이로 쳐내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듀라한의 외침에 주변에 있던 다른 고위 언데드들도 포효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바스칼 영지를 응시하고 있던 언데드 로드의 공허하고 어둠만이 가득한 시선이 우리 쪽을 향했다.
끼아아아아아-!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고음이 고막을 강하게 때렸다.
“크윽!”
그와 동시에 하이드 마법이 풀려 버리고 말았다.
“쳇,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의 언데드들이 검붉은 안광을 빛내며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언데드 로드를 향해 길을 여시오!”
백색 마탑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러 마스터들은 검에 일렁거리는 오러를 피워 올리며 언데드들을 베고, 대마법사들은 각자가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폭발음이 난무하며 언데드들은 찢기고, 불타고, 폭발하고, 얼어붙고, 녹아내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파괴되는 언데드들의 대부분은 하급 언데드.
고위 언데드들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듀라한은 자신의 머리를 들어 오러 마스터의 검을 막았다.
리치는 흑마법으로 대마법사들의 마법을 막아냈다.
데스 나이트는 검과 방패를 휘둘렀다.
아무리 언데드 로드를 상대하기 전까진 힘을 아끼는 중이라 해도 언데드들이 오러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의 공격에 쓰러지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큭, 언데드 로드의 영향하에 있어서인가. 내가 아는 듀라한보다 강하군.”
산전수전 다 겪어본 오러 마스터, 사무엘이 혀를 차며 한 말에 회색 마탑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나 역시도 리치를 상대해 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오!”
야생의 고위 언데드보다 언데드 로드의 영향을 받는 고위 언데드들이 훨씬 강하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주변에 가득 몰려 있는 하급 언데드들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간다 해도 그 수가 수이니만큼 토벌대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건 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한 오러 마스터와 대마법사라지만 나는 고작 6서클의 마법사.
고위 언데드들은 물론이고 몰려드는 좀비와 구울, 스켈레톤과 같은 하급 언데드들에게 붙잡히지 않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언데드 로드를 상대하기도 전에 곤란한 상황이 닥칠 것이 뻔했다.
하지만 대마법사들과 오러 마스터들은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여 대비해 둔 작전이 있다.
“두 번째 작전을 실행하겠소! 각자 맡은 대로 움직이시오!”
토벌대의 대장인 백색 마탑주의 말에 스물한 명의 토벌대가 둘로 나뉘었다.
언데드 로드와 고위 언데드들을 상대할 본대와 그 본대를 지원하며 몰려드는 다른 언데드들을 막을 지원대.
나와 스승님, 대스승님은 본대 소속이다.
원래라면 이 토벌대에 낄 수도 없었을 나지만 드래곤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언데드 로드를 상대하게 된 것이다.
“갑시다!”
지원대가 하급 언데드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길을 트자 본대가 언데드 로드를 향해 달렸다.
언데드 로드가 가까워질수록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크윽, 이거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한 것 아니야?
언데드 로드를 향해 다가가는 본대를 향해 고위 언데드들이 달려들었다.
듀라한 하나가 손에 든 머리통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서 다른 한 손에 든 커다란 투 핸드 액스를 휘둘러 왔다.
“어딜!”
듀라한의 도끼를 오러 마스터인 사무엘이 오러를 피워 올린 검으로 막아냈다.
커다란 투 핸드 액스를 그것의 반도 안 되는 롱소드로 막아내는 걸 보니 괜히 오러 마스터가 아니로군.
자신의 도끼가 막히자 듀라한이 손에 든 머리통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오오오!
“시끄럽다!”
대스승님의 플레임 스피어가 듀라한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그 와중에도 다른 듀라한들과 데스나이트들이 달려들고 리치들이 주문을 읊었다.
“에잇! 길을 막지 마라!”
“실드!”
“스톤 샤워!”
오러 마스터들이 오러가 실린 검을 휘두르고 대마법사들의 마법이 펼쳐졌다.
언데드 로드를 지키고 있던 서른 마리 정도의 고위 언데드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본대는 나를 포함한 열한 명으로 숫자에선 밀리지만 전력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훨씬 강하다.
아무리 고위 언데드라 할지라도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들을 상대로는 역부족이니까.
문제는 대마법사와 동등한, 어찌 보면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 언데드 로드였다.
가만히 서 있던 언데드 로드가 입을 벌리자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내 앞에 나타나다니… 무모한 자들이여… 너희도 곧 우리처럼 될 것이다.]
느릿느릿한 말투였으나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어쩌면 대화가 통할지도 모르겠다.
대스승님이 플레임 샷을 리치에게 쏘아 보냈다.
화염에 불타며 괴성을 내지르는 리치를 다른 오러 마스터가 베어버리는 것을 확인한 대스승님은 언데드 로드를 노려보았다.
“이봐! 해골바가지! 어째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냐! 거 얌전히 지낼 수도 있잖나!”
대스승님의 물음에 언데드 로드는 검붉은 안광을 빛냈다.
[살아 있는 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망자의 증오를…….]
“흠, 아무리 언데드 로드라고 하더라도 언데드가 지닌 살아 있는 자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는 억누를 수 없다는 건가.”
혀를 차며 중얼거린 대스승님은 그대로 마법을 시전했다.
“플레임 웨이브!”
허공에서 나타난 화염의 파도가 언데드 로드를 덮쳤다.
대스승님께서 시작부터 강하게 나가시는군.
화염의 파도에 휩싸인 언데드 로드에게 프레첸 제국의 오러 마스터 스로반이 오러 블레이드를 날렸다.
“해치웠나?!”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간…….
그건 마치 치유 계열 궁극의 마법, 부활의 마법인 레저렉션과 마찬가지라고.
[…어리석다!]
어느새 펼쳐낸 검은 실드로 몸을 보호한 언데드 로드가 뼈밖에 없는 팔을 거칠게 휘두르자 용암의 파도와 오러 블레이드가 땅으로 처박혔다.
쾅!
오러 블레이드가 폭발하고, 용암이 땅을 녹였다.
그러나 녹슨 갑옷이 약간 그을린 것을 제외하면 언데드 로드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흐음…….”
그 모습에 대스승님이 침음을 흘렸다.
“위험해요!”
침음을 흘리는 대스승님에게 데스나이트 하나가 검을 휘둘러 왔다.
나는 다급히 빠르게 시전이 가능한 파이어 볼트를 데스나이트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6서클인 내가 날린 파이어 볼트다.
낮은 서클의 마법임에도 실린 마나가 꽤나 있어서인지 데스나이트의 머리가 크게 흔들렸다.
구오오!
대스승님을 공격하려던 것을 방해받은 데스나이트가 분노한 듯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거참 단순한 놈이군… 이 아니라! 내게 달려들잖아?!
“우왓!”
황급히 옆으로 굴러서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피해냈다.
내가 있던 자리를 내려친 데스나이트의 대검이 땅을 파헤쳤다.
으으, 저거에 맞았더라면 뼈도 못 추릴 뻔했군.
곁에 있던 오러 마스터 사무엘이 나를 공격한 데스나이트의 목을 베어버리며 말했다.
“조심하게, 젊은이!”
“감사합니다!”
아무리 강철보다 단단한 데스나이트의 육체라고 해도 오러 앞에서는 평등하군.
“네놈을 지키는 것들은 모두 쓰러졌다! 순순히 목을 내놔라!”
오러 마스터 스로반이 검을 언데드 로드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대스승님과 백색 마탑주, 오러 마스터 세 명이 언데드 로드를 상대하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이 주변의 고위 언데드들을 모두 해치운 것이다.
언데드 로드는 주변을 슬쩍 훑어보고는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냈다.
[크라라라라… 모두 쓰러졌다고……? 뭔가 착각한 게 아닌가……?]
무슨 말이지?
나는 물론이고 모두가 의아해하는 차였다.
“아니?!”
누군가가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았더니…….
오러에 찢겨 나가고, 마법에 불타고 녹아내렸던 고위 언데드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머리가 잘려 나간 데스나이트는 비척이며 일어나 떨어진 머리를 다시 목에 붙였다.
몸 절반이 불에 타 재가 되었던 듀라한은 근처의 좀비를 붙잡아 자신의 몸에 붙여 몸통을 재생시켰다.
녹아내렸던 리치의 몸 역시 검은 연기와 함께 재생되었다.
“미치겠군. 분명히 해치웠었는데.”
“아무래도 이것도 언데드 로드의 권능인 듯하오.”
어쩐지 언데드 로드가 휘하의 고위 언데드들이 쓰러질 때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더라니.
다시 부활시킬 수 있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거로군.
“으음, 결국은 저 언데드들과 언데드 로드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것인가.”
누군가 침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언데드 로드가 턱뼈를 달그락거렸다.
[모두… 죽음의… 일부가 되어라……!]
이제 본신의 힘을 다하려는 모양이었다.
언데드 로드의 벌어진 입에서 검은 연기와도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뭐지?”
누군가의 의아한 물음 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검은 연기가 주변 언데드의 몸에 스며들었다.
크아아아아!
주변에서 우릴 공격하던 언데드들이 광폭하게 울부짖었다.
붉게 빛나는 안광은 더욱 짙어졌고 덩치도 조금씩 커진 듯했다.
“제길, 언데드들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한 건가! 골치 아픈 녀석이로군!”
“조금 전처럼 일부는 언데드들을 상대하고 나머지가 언데드 로드를 해치우는 수밖에 없겠소!”
대스승님의 말에 백색 마탑주가 대답하듯 소리쳤다.
열한 명의 본대 중 나를 제외한 열 명은 자연스레 둘로 조를 나누었다.
대스승님과 백색 마탑주, 그리고 사무엘, 스로반과 라트마라는 오러 마스터가 언데드 로드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명이 강화된 고위 언데드들을 막으며 시간을 끌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란, 6서클 마법사인 나는 상황을 주시하며 위험한 쪽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가 두 조로 인원을 나누자마자 언데드 로드가 두 손을 펼쳐 마법을 사용해 왔다.
[데스 … 스팅어!]
검은 가시가 언데드 로드의 주변으로 떠오르더니 우릴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