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50화 (50/150)

050화 - 토벌대

대륙력 756년 2월 3일.

각국에서 모인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들이 쉘던 왕국의 바스칼이란 영지에 모여들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대마법사 열 명 중 여덟 명, 그리고 오러 마스터 열두 명.

본래대로라면 대륙의 모든 대마법사가 모이는 엄청난 사건일 수도 있었으나 타이런 제국은 갖은 핑계를 대며 대마법사 세 명 중 한 명만 보냈다.

그렇다 해도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가 스무 명이나 모이는 엄청난 사건임은 틀림없었다.

나라 하나를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집단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덤으로 끼어 있는 6서클 마법사인 나.

물론 우리의 칼과 지팡이의 끝이 향하는 곳은 언데드 로드라는 강대한 존재였지만.

바스칼 영지는 언데드 로드가 나타난 아서슨 영지에서 나흘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사이 언데드 로드가 이끄는 언데드들은 아서슨 영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계속해서 역병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중이었다.

쉘던 왕국의 군대는 최선을 다했으나 언데드들을 막는 것도 한계.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판국이었다.

우리가 모인 바스칼 영지에서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쉘던 왕국군과 언데드 군단의 전투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스승님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보이는구나.”

“그러네요. 숫자도 처음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늘어난 것 같아요.”

3만 정도로 추정되었던 초기 보고와는 달리 지금은 거의 7만에 달하는 숫자라고 들었다.

아마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과, 전투 중에 사망한 군인들의 시체도 언데드로 다시 일으킨 거겠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야.”

누군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군가 해서 돌아보니 쉘던 왕국의 백색 마탑주가 무척이나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서슨 영지에 파견된 병력들 중에 백색 마탑의 인원도 다수였었다고 했었나.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최우선적으로 후퇴한 덕에 피해가 적었지만…….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언데드에게 희생당한 마법사들 중에는 그의 제자들 중 한 명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 중 하나가 언데드 무리에 섞여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안색이 어두울 만도 하지.

그의 무거운 안색에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도 무거웠다.

“다프간 님! 언제까지 침울해하고 있을 거요? 그 제자 놈의 복수를 해줘야 할 것 아니오!”

파이썬 왕국의 회색 마탑주가 그와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소리쳤다.

그는 조용하고 근엄한 인상의 백색 마탑주와는 전혀 달리 삐죽삐죽 솟은 수염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열혈! 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러니까 가라앉는 듯한 회색보다는 타오르는 불꽃에 더 잘 어울리는 저분의 이름은 막시무스 인텔만.

“막시무스, 고맙소이다. 내 괜히 제자 놈 생각에 다른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들고 말았구려. 그대 말이 맞소. 복수를 해줘야지요!”

회색 마탑주 막시무스 님의 말에 다프간 님이 결연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주변 사람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데드를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는 마법 중 하나인 치유 마법 계통의 일인자가 계속해서 맥이 빠져 있는 건 곤란했다.

분명 본인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테니까.

“하하하! 좋소! 이 자리에 모인 면면들만 해도 저 빌어먹을 시체들의 우두머리쯤이야 단숨에 박살을 낼 테지! 그래!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꼬맹이! 우리들을 불러 모았으니 계획이 있겠지?”

꼬, 꼬맹이?!

내 나이가 이제 스물하나인데 꼬맹이라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꼬맹이나 꼬마, 어린애라는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은 꼬맹이라는 말이 상대를 배려하는 단어가 아님을 알기에 사용하지 않고 말이야!

“저는 스물한 살입니다. 꼬맹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나보다 한참이나 배분이 높은 회색 마탑주임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들은 꼬맹이 소리에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내가 대들며 외친 말에도 그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적색 마탑주가 꽤나 맹랑한 녀석을 제자로 삼았구먼! 스물하나라? 그래 봐야 여기 모인 늙은이들에 비하면 꼬맹이가 맞지 않느냐?”

자신들을 늙은이라 칭하는 회색 마탑주의 말에도 다른 사람들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건 그렇군요. 우리가 마나를 익히고, 검을 잡을 때 저 친구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프레첸 제국에서 파견되어 온 오러 마스터 사무엘 잭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색 마탑주의 말에 동의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한쪽 눈에 안대를 걸친 그의 나이는 올해로 쉰 살이 넘는다.

그나마 여기 모인 대마법사들과 오러 마스터들 중에서는 젊은 편이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는… 끄응, 확실히 나는 엄청난 애송이겠군.

그렇지만 꼬맹이는 너무했잖아.

<클클클, 꽤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간들이로군.>

‘뭐가?’

<사람들의 긴장을 풀기 위해 너와 한 편의 만담을 한 것이 아니냐.>

‘엉?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주변의 사람들 모두 손자를 보는 듯한 훈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안 돼! 뭔가 부끄럽단 말이야!

<클클, 마침 시선이 모인 김에 재롱이라도 부려보지 그러냐?>

‘웃기지 마셔.’

카이서스에게 툴툴거리는 나에게 회색 마탑주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튼 계획이 무엇이냐?”

조금 전의 모습은 사람들의 긴장을 풀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듯 회색 마탑주는 어느새 진지한 표정이었다.

으음, 계획이라…….

“저라고 딱히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 정예로 몰래 접근하여 언데드 로드를 집중 공격 하여 최대한 빠르게 해치우는 것뿐이죠.”

먼 과거에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언데드 로드를 해치웠던 방법.

“그러니까 저 많은 언데드들을 뚫고 어떻게 접근하냐는 말이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들 중 하나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프레첸 제국에서 온 녹색 마탑주였다.

“으음, 그것은…….”

‘그러고 보니 과거에는 대체 어떻게 언데드의 군세를 뚫고 언데드 로드에게 접근한 거야?’

나는 말끝을 흐리며 속으로 카이서스에게 물어보았다.

<간단하다. 하이드 마법을 걸고 언데드들을 지나치면 되는 일이지.>

“하이드?”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되물은 말을 들은 백색 마탑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이드라고?”

하이드는 기척을 숨기는 마법이었다.

주로 암살자나 첩자가 자신을 숨길 때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아무리 하이드로 기척을 숨긴다고 해도 이 정도의 인원이 움직이면 눈에 띌 텐데.

하이드는 기척을 지워주긴 하지만 안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잠입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내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대마법사들은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었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군! 그 방법이 있었군!”

엥?!

내가 그 반응에 영문을 몰라 하며 쳐다보자 카이서스가 설명을 해주었다.

<언데드는 시력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생기를 느끼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본능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를 찾아 공격하는 거다. 그러니까 하이드로 생기를 숨기면 대부분의 언데드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으음, 그런 거였나.

“하이드… 하이드라. 그런 방법이 있었군. 하긴, 적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닌 언데드. 일반적인 상식이 아닌 방법을 쓰는 게 당연하겠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는 이 정도의 인원이 하이드만을 사용해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언데드라면 다르다.

“본능만 따라 움직이는 언데드들이라면 하이드만으로도 충분히 속여 넘길 수 있겠어.”

“물론 고위 언데드들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언데드 군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급 언데드들을 지나쳐 가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다른 대마법사들도 하이드 마법의 효용성에 대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마디씩 보탰다.

평생 마법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게 살아온 오러 마스터들은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마법사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자,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작전을 세워보죠.”

스승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맞댔다.

“일단은 정찰부터 보내는 게 좋겠소.”

프레첸 제국의 자색 마탑주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정찰이라니, 저렇게 우글거리는 언데드 사이를 어떻게 정찰한다는 거야?

아무리 하이드 마법으로 하급 언데드들을 속여 넘긴다 해도 저길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간 큰 정찰병은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자색 마탑주에게 말했다.

내가 의아해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색 마탑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색 마탑주의 주특기가 그거였군.

스승님의 말에 자색 마탑주 아이올 로운이 말했다.

“나와라, 나의 검은 장미여.”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바로 앞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독수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삐이이이!

그의 주특기는 바로 소환 마법.

아무리 그래도 주문도 없이 바로 패밀리어를 소환하다니, 역시 대마법사야.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검은 깃털의 독수리는 자색 마탑주의 팔에 조용히 앉더니 그의 가슴에 부리를 비볐다.

“검은 장미야, 내 부탁을 들어주련?”

그의 자상한 목소리에 검은 장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삐이이익!

“저쪽으로 날아가 강력한 존재를 찾아봐 주렴. 무리하지는 말고.”

삐이익!

자색 마탑주의 말에 검은 독수리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검은 독수리가 높이 날아올라 언데드 군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독수리의 뛰어난 시력은 높은 상공에서도 언데드 군대의 자세한 모습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온!”

지그시 감은 자색 마탑주의 눈 주변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 독수리의 시선과 자색 마탑주의 시선이 동화된 것이다.

우리는 자색 마탑주가 언데드 로드와 상위 언데드들의 위치를 파악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자색 마탑주가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언데드 로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위험해 보이는 놈을 발견했소.”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할루시네이션 마법으로 자신이 본 이미지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할루시네이션이 보여주는 것은 검은 기운을 쉴 새 없이 흘려대는 2미터가량의 해골이었다.

녹슨 왕관과 갑옷을 걸친 그것은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든 채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카이서스?’

<흠, 언데드 로드가 확실하다.>

“언데드 로드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자색 마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고 싶었으나… 놈이 이쪽을 눈치채고 쳐다보는 데다가 주변에 듀라한, 데스나이트, 리치와 같은 고위 언데드들이 우글거려서 더 이상 가까이 가는 것은 불가능했소.”

그는 아쉽다는 듯 말했으나 이정도로도 충분했다.

“아닙니다. 위치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거기다 놈을 지키고 있는 고위 언데드들의 종류나 숫자도 확인하셨으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자색 마탑주에게 감사를 표한 스승님이 저 멀리서 바글거리는 언데드 군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준비를 하죠.”

나지막한 스승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언데드 군대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 * *

언데드 로드가 위치한 곳은 언데드 군대의 후방.

우리는 크게 돌아서 후방으로 잠입하기로 했다.

토벌대의 대장은 백색 마탑의 다프간 님이 맡기로 했다.

당사국의 사람인 데다 나이도 많은 편이고 경험도 많았기에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그럼, 출발합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전투에 필요한 각종 장비들을 모두 챙긴 다프간 님의 말에 모두가 말에 올랐다.

말을 몰 줄 모르는 나는 스승님의 뒤에 탔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 술이나 한잔합시다!”

회색 마탑주 막시무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물론이오!”

“후후! 난 술을 못 마시니 차를 마시리다.”

제각기 여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우리는 바스칼 영지를 나섰다.

“너무 여유로운 것 아닌가요?”

스승님의 뒤에 타고 있던 내가 너무나도 여유로운 사람들의 태도에 의아해하며 묻자 스승님은 나를 돌아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란다. 적을 앞에 두기 전부터 긴장하는 건 심력만 소모할 뿐이지.”

흐음, 그러니까 적을 상대하기도 전부터 진을 뺄 필요는 없다는 건가.

나는 벌써부터 긴장되어 손에 식은땀이 흐르는데.

이것이 바로 경험의 차이라는 거겠지.

“자, 그럼 서둘러 갑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바스칼 영지가 위험해지오!”

다프간 님의 말에 모두가 속도를 올렸다.

“라엘, 꽉 잡거라.”

“네, 네!”

내가 스승님의 허리를 붙잡는 것과 동시에 달리던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 토벌대가 뒤로 돌아가는 사이에도 언데드들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계속해서 바스칼 영지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작전에 돌입할 때쯤에는 바스칼 영지에 모인 군대와 언데드들이 한창 전투를 하고 있겠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우리는 그때를 이용할 셈이었다.

언데드들이 정면의 산 자들에게 정신이 팔린 동안 우리는 뒤에서부터 언데드 로드를 노리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