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화 - 망자의 군대
“뭐?! 그게 사실인가?”
다음 날 아침.
사절단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각자가 알아온 소식을 전해 들은 왕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사절단원 중 하나, 존 맥칼렌 백작은 왕자의 말에 무거운 표정으로 재차 말했다.
“예. 평소 친분이 있던 쉘던 왕국의 대신에게 알아낸 사실입니다. 갑자기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가 나타나 쉘던 왕국 북쪽 끝에 위치한 아서슨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다른 사절단원들이 제각기 알아낸 정보와 같은 말이었다.
“언데드의 군단이라니. 설마 이것도 제국의 짓인가.”
“당연히 그들로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요.”
무겁게 대답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단시간에 엄청난 수의 언데드들을 일으킨 건 역시 칼라마쉬의 서 덕분이겠지.
지난번 아바툴도 그렇고… 역시 제국은 청색 마탑주님이 칼라마쉬의 서에 걸어둔 봉인을 풀어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데.
칼라마쉬의 서에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수록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끔찍한 것들일 것이 분명하다.
아바툴 같은 마물부터 시작해서 언데드, 그리고 저주와 같은 것들…….
아마도 제국은 칼라마쉬의 서에 수록된 것들을 하나씩 실험해 보고 있는 것이리라.
언데드 군단이라는 것도 무섭지만 그다음에 나올 것이 무엇인지 더더욱 두려워진다.
“으음, 언데드 군단이라. 쉘던 왕국의 반응은?”
“곧장 군대를 파병을 함과 동시에 국경의 수비를 늘렸다고 합니다.”
“당연한 반응이군.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서 침략을 해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말이야. 다른 왕국에 도움을 요청할 기미는 없나?”
“네. 아직까지는 쉘던 왕국이 지닌 힘만으로 언데드 군단을 무찌를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불안하다는 듯 중얼거린 왕자가 다른 사절단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국의 동태는?”
본국과의 연락을 맡았던 자가 왕자의 물음에 답했다.
“본국의 정보부에 따르면 제국은 아직까지 평소와 같은 움직임이라 합니다.”
“여기 와 있는 제국의 사절단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진 않습니다.”
“으음,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언데드 군단을 일으켜 놓고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니 왕자로서도 제국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일단은 쉘던 왕국의 사정이 좋지 않으니 더 오래 머무는 것은 여의치 않겠군.”
“알겠습니다. 본국에 보고하여 돌아가는 일정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다들 돌아가서 일들 보시게.”
임시회의를 끝마치고는 다들 왕자의 방을 나갔다.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일단은 스승님께 이 정보를 전하려고 했는데 왕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 선생은 잠시 남아.”
응? 나는 왜 남으라는 거지?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다시 왕자의 앞에 섰다.
“일단은 앉게.”
사절단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왕자가 자리를 권했다.
“제게 남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십니까?”
내 물음에 왕자는 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난번 아바툴 때도 그랬지만 선생을 가호하는 드래곤의 지식이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순식간에 언데드 대군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언데드 대군을 일으킨 방법이라…….
‘카이서스, 뭐 아는 것 있어?’
<흥, 뻔하지.>
‘뭔데?’
<일일이 언데드를 소환한 게 아니라 순식간에 많은 언데드를 일으킬 수 있는 고위 언데드를 만들어낸 거다.>
‘그런 게 있어?’
<그래, 망자의 군주, 언데드 로드라고 불리는 것이지. 그것은 주변의 모든 죽은 것들을 일으켜 지배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공격한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죽음이지.>
“언데드 로드…….”
내가 카이서스의 말에 멍하니 중얼거리자 왕자가 되물었다.
“언데드 로드라니? 역시 뭔가 아는 게 있는 건가?”
“네,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능력을 지닌 고위 언데드인 모양입니다.”
“그럼 그것만 해치우면 된다는 건가?”
왕자의 말에 카이서스는 내가 묻기도 전에 말해주었다.
<그건 쉽지 않을 거다. 꽤나 교활하고, 짜증 나는 놈이거든.>
음, 언데드 주제에 지능도 지니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그 언데드 로드만 해치우면 나머지 언데드들은 가만히 놔둬도 흙으로 돌아갈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자에게 말했다.
“네, 그 언데드 로드만 해치우면 해결될 거랍니다.”
“그렇군. 일단은 그 정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네?”
다들 나가게 한 후 단둘만 남았을 때 물어본 것도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거지?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왕자는 피식 웃었다.
“계속 숨기라는 것이 아니야. 우리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쉘던 왕국에 알려줄 거야. 쉘던 왕국으로서는 해결 방안을 찾고, 우리로서는 빚을 지워두는 셈이니 둘 다 이득이지. 다만 그 전에 다른 경로로 그 정보가 전달되는 건 곤란해서 그런 거야.”
음, 정보를 줌으로써 빚을 지워두는 것은 오롯이 우리 왕국이어야 한다는 건가.
하긴 그 정보를 알게 된 이가 많을수록 유출될 가능성도 높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왕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선생도 이만 쉬어.”
“네.”
왕자의 방을 나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카이서스, 그 언데드 로드라는 놈, 강해?’
<내 기준에서야 약해 빠진 잡것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강하겠지. 언데드를 일으켜 세우는 능력뿐만 아니라 본신의 능력도 8서클 정도니까.>
지능을 지닌 강한 언데드 정도가 아니라 8서클이라고?
전쟁에서 8서클 마법사 한 명이 발휘하는 위력을 생각하면…….
수없이 늘어나는 언데드와 8서클의 능력을 지닌 언데드 로드.
거의 작은 국가의 전체 군대와 비슷한 정도다.
아직까지는 쉘던 왕국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만큼 언데드의 수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데드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갈 것이다.
산 자들을 죽이고, 그들을 언데드로 다시 태어나게 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대륙에 있어서 엄청난 위협이 되겠지.
“8서클이라니… 정말 쉘던 왕국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중얼거린 혼잣말에 카이서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크크, 칼라마쉬의 서를 가져간 놈들, 간덩이가 부었군. 언데드 로드라면 먼 과거에 대륙 삼분의 일을 시체 밭으로 만들었던 놈이거늘, 그런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풀어놓다니.>
인간들에게는 이미 잊혀진, 드래곤 정도나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과거에 언데드 로드가 나타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어떻게 언데드 로드를 해치운 거야? 혹시 드래곤이 나섰어?’
<그럴 리가. 언데드 로드는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기는 해도 다른 차원의 존재는 아니다.>
‘그럼?’
<인간 중에서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자가 소수 정예들을 이끌고 기습해서 해치웠었지.>
그랜드 오러 마스터라니, 마법으로 따지자면 9서클에 맞먹는 경지다.
물론 지금의 대륙에는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자가 없다.
으음, 아무래도 쉘던 왕국만의 힘으로는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방을 나서서 다시 왕자를 찾아갔다.
“무슨 일인가?”
“추가로 알아낸 정보가 있습니다.”
나는 카이서스가 뒤늦게 알려준 정보들을 왕자에게 말해주었다.
8서클이라는 것과 먼 과거의 일.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왕자의 표정이 전에 없이 심각해졌다.
“끄응, 그 정도란 말이야? 때를 보다가 중요할 때 쉘던 왕국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네.”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쉰 왕자가 말을 이었다.
“쉘던 왕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도 알려야겠어. 내가 자리를 만들 테니 선생이 직접 그 사실을 말해.”
“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로라스 왕자의 주선에 의해 각국의 사절단장들과 쉘던 왕국의 국왕,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슨 일로 이 자리를 마련한 게요? 우리 왕국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다들 지금쯤이면 알고 있을 텐데.”
쉘던 국왕이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로라스 왕자에게 물었다.
자국에 나타난 언데드 군단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 있는 차이니 그럴 만도 하지.
바쁜데 왜 불렀냐는 그 반응에도 로라스 왕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문제 때문에 다들 모이시라 부탁드린 겁니다.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가 그 언데드 군단을 이끄는 존재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흐음?”
로라스 왕자의 말에 쉘던 국왕과 대신들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사절단장들도 흥미를 보였다.
“드리안 자작, 설명해 드리게.”
로라스 왕자의 뒤에 서 있던 내 이름이 나오자 카리야 황녀가 약간은 경계하는 기색을 띠었다.
저게 또 제국에 무슨 해가 되는 말을 하려나… 라는 거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크라우드 왕국의 라엘 드리안 자작입니다.”
아직까진 내 이름 뒤에 붙는 드리안 자작이라는 말이 익숙지 않다.
“여기서 그대에 대해 모를 사람은 없을 테니 어서 그 존재에 대한 것을 말해보게.”
쉘던 국왕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재촉하듯 말했다.
“네. 드래곤의 말에 따르면 언데드 군단을 일으키고, 이끄는 존재는 아마 언데드 로드일 거라고 합니다.”
“언데드 로드?!”
처음 듣는 말에 당황한 듯 쉘던 국왕이 미간을 찡그렸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네.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지배하는 고위 언데드입니다. 그 능력만으로도 위협적이지만… 본신의 능력도 대마법사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언데드가 8서클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누군가 소리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 언데드를 끝없이 일으켜 세우는 능력과 8서클의 마법, 그리고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죠. 먼 고대에는 대륙의 삼분의 일을 황폐화시켰을 정도라고 합니다.”
대륙의 삼분의 일이라는 말에 다들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한 국가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겁니다.”
쉘던 왕국만의 힘으로는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그것도 가설이 아닌가요? 분명, ‘아마’라고 했었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제국의 카리야 황녀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 사건의 주범일 것이 거의 분명한 제국 측에서 저렇게 말하니 우습군.
카리야 황녀야 제국의 음모에 대해 모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확실히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니니 언데드 로드가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순식간에 언데드 대군을 일으킨 것을 보면 언데드 로드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 깜짝할 사이에 영지 하나를 쓸어버릴 정도로 많은 언데드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내 말에 카리야 황녀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렇지 않고서야 단시간에 엄청난 수의 언데드들을 일으킬 방법이 없으니까.
대륙의 공적으로 찍혀 지금은 명맥이 끊긴 네크로맨서가 수백 명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것이 수백 명의 네크로맨서가 움직였다면 누군가는 눈치를 챘을 터.
결국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카이서스가 말한 대로 언데드 로드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그 언데드 로드만 해치우면 되는 일인가?”
쉘던 국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그 언데드 로드는 어떻게 해치우지?”
“과거에는 그랜드 오러 마스터에 오른 자가 소수 정예를 이끌고 기습하여 해치웠다고 합니다만…….”
“허어, 그랜드 오러 마스터라니.”
내 말에 쉘던 국왕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황당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들과는 달리 육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자들 중 무기에 마나를 담는 수준이 아니라 한계까지 집약한 마나를 자신의 뜻대로 다루는 자들이 무기에 완전한 형상과 빛을 지닌 기운, 오러를 담게 되면 오러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는다.
오러 마스터는 대마법사와 비슷한 수준이며, 그보다 위에 존재한 그랜드 오러 마스터는 마법사로 따지자면 9서클의 수준이다.
그런 그랜드 오러 마스터를 대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래서 말입니다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내게 설명을 맡기고 가만히 서 있던 로라스 왕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안이라?”
뭔가 방법이 있다는 듯한 말에 쉘던 국왕이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로라스 왕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쉘던 왕국만으로 해결하려 했다간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그렇다고 타국의 군대를 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쉘던 국왕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각국에 정식으로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의 지원을 요청하는 겁니다. 이번 일은 쉘던 왕국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언데드들에게는 국가도, 세력도 없다.
“으음…….”
정식으로 지원을 요청하라는 말에 쉘던 국왕이 침음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로라스 왕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저희 크라우드 왕국은 쉘던 왕국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도와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미 국왕 전하와는 이야기가 끝난 것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왕자가 어제 급하게 본국에 연락하여 국왕과 통신을 하여 결정한 것이다.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쉘던 국왕은 이내 결심한 듯 다른 나라의 사절단장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식으로 사자를 보내어 각국에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의 지원을 요청하겠소. 그러니 그대들도 돌아가 각자의 본국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부탁드리리다.”
죽은 자를 지배하는 언데드 로드의 위협은 쉘던 왕국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한 말에서 충분히 언데드 로드의 위험성을 느낀 다른 사절단장들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쉘던 왕국의 사자들이 각국을 향해 출발했다.
쉘던 왕국에 방문했던 사절단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