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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46화 (46/150)

046화 - 쉘던 왕국으로

“왜 하필이면 새해를 코앞에 두고 간다니?”

새해를 함께 맞이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인지 어머니는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만난 후 처음 맞는 새해인데 따로 보내야 한다는 것 때문이겠지.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오늘은 같이 보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 미리 모인 것이다.

새해는 함께 보낼 수가 없으니 그 전에 가족끼리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려는 거다.

사절단의 출발은 바로 내일 오전.

왕자의 말동무로서 따라가는 나는 딱히 준비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여유롭게 외가에 들러서 저녁 식사나 할 수 있는 거고 말이야.

“어… 그런데 아리안 누나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내 물음에 아리안 누나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이엔이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해서.”

“맞아, 내가 저녁에 초대했어. 한동안 못 볼 텐데 미리 봐둬야지.”

“메이엔? 무슨 쓸데없는 말을…….”

아리안 누나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자 메이엔 누나가 웃음을 지었다.

미리 봐두기는 뭘 봐둔다는 거야?

어차피 앞집에 살아서 자주 보는데 말이야.

“흠흠, 일단은 식사나 하지.”

외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나이프로 잔을 가볍게 두드리자 음식이 나왔다.

내가 내일 사절단으로 떠나는 것 때문인지 평소 외가에서 식사할 때보다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사였다.

“어떠니? 주방장 아주머니께 특별히 부탁했단다.”

어머니가 어깨를 쭉 펴며 말했다.

“에이, 그리 오래 다녀오는 것도 아닌걸요?”

뭐, 맛있는 식사라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말이야.

내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하자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걱정 마세요. 이제 아이도 아닌걸요? 게다가 어머니가 예법도 가르쳐 주셨으니 별문제도 없을 거예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나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얘, 어머니가 보기에는 넌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일걸?”

누나가 웃으며 한 말에 어머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너는 아닌 줄 아니?”

“아이, 어머니도 참! 저는 다다음달이면 결혼하는 몸이라고요.”

“그래서 더 걱정이다, 얘.”

흠, 그러고 보니 누나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군.

어머니의 말에 메이엔 누나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고 아리안 누나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어?

“아리안 누나가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요.”

내가 깜짝 놀라 말하자 아리안 누나는 자신 스스로도 놀란 듯 자신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처음 본 아리안 누나의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무표정할 때도 꽤나 미인이긴 했지만 웃으니 더 예뻐 보인다.

“그, 그래? 요즘 연습했… 아, 아냐!”

밝은 목소리로 말하던 아리안 누나가 당황한 듯 말을 흐리다 고개를 내저었다.

흐음, 늘 무표정한 것 때문에 자신도 고민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웃는 연습까지 할 정도였어?

후후, 어쩐지 귀엽네.

“자, 그럼 라엘이 쉘던 왕국에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라며, 건배!”

어머니가 잔을 들며 선창하자 메이엔 누나와 아리안 누나도 잔을 들었다.

“아버지는 뭐 해요?”

건배 제의에도 가만히 있던 외할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뚱한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다.

“흥, 내가 왜…….”

“아버지.”

어머니가 담담한 목소리로 재차 자신을 부르자 외할아버지는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잔을 들었다.

정말이지 자존심은 강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약한 분이라니까.

예전 같았으면 어머니의 말에도 나를 무시하셨을 외할아버지만…….

요즘 들어 자주 외가에 찾아와서 그런지 외할아버지도 이전만큼 나를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다.

“그럼 라엘을 위하여!”

“위하여!”

건배를 하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까지 마신 후에 아리안 누나와 함께 외가를 나섰다.

“후우, 이제 완전히 겨울이네요.”

걸음을 옮기며 내가 말하자 아리안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쉘던 왕국은 더 춥다던데. 따뜻하게 입고 가는 게 좋을 거야.”

우리 크라우드 왕국보다 북쪽에 위치한 쉘던 왕국은 무척이나 춥겠지.

“걱정 말아요. 따뜻한 옷은 미리 챙겨놓은 데다가 쉘던에서 야외 활동을 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그래? 다행이네. 추운데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거든.”

“누나야말로 외할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아요?”

외할아버지 성격은 꽤 괴팍한 편이라서 밑에서 일하기 꽤나 힘들 텐데.

내 물음에 아리안 누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네팔렌 백작님은 연구에 관해선 무척이나 배울 게 많거든.”

흠,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안 하는군.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아, 갔다 올 때 선물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마음만 받을게… 어라?”

내 말에 대답하던 아리안 누나가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요? …응?”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던 나도 깜짝 놀랐다.

“눈이 내리네요.”

“그러게. 첫눈이네.”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예년보다 훨씬 추운 겨울임에 비하면 한참이나 늦은 첫눈이었다.

“함께 보는 눈이란 좋네.”

아리안 누나의 나직한 목소리.

우리 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올겨울의 첫눈을 바라보았다.

* * *

대륙력 756년 1월 1일.

쉘던의 왕궁에서 나는 스물한 살이 되었다.

“아아, 왕궁 밖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건 처음이로군.”

쉘던 왕궁의 귀빈실 창문 밖으로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왕자가 투덜거렸다.

나도 그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게요. 저도 간만에 새해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었는데 말이죠.”

“쉘던 왕국의 셋째 왕자는 왜 새해를 앞두고 태어나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야?”

“아니, 그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툴툴거리며 대꾸한 왕자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길게 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행사는 언제 한대?”

쉘던의 왕궁에 도착한 이후로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만 있으려니 답답할 만도 하지.

명색이 사절단의 단장이라고 해도 왕자는 그저 얼굴마담일 뿐.

대부분의 실무는 사절단에 속한 다른 실무자들이 담당하니까.

왕자가 직접 나서서 높으신 분들을 만나는 것은 연회가 끝난 다음 날부터다.

뭐, 그게 관습이라나 뭐라나.

그러다 보니 왕자는 무척이나 지루해하고 있었다.

작년 말에 태어난 쉘던의 셋째 왕자의 출생 기념 겸 새해 기념 연회는 오늘 저녁에 열릴 거라고 했다.

“저녁 7시랍니다.”

“한참 남았군.”

조금 전에 점심을 먹었으니 연회까지는 아직 6시간 정도가 남았다.

준비하는 시간을 뺀다고 쳐도 네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왕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마 전부터 읽고 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이나 읽으면서 기다려야겠군.”

“그럼 저도 이만 쉬러 가보겠습니다.”

“응.”

왕자의 방 옆에 마련된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흐음, 시간도 아직 넉넉하게 남았으니… 낮잠이나 조금 자둘까나.

* * *

나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진득하게 검은 그림자가 일어선다.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커지더니 사방을 가득 채우고 나를 노려본다.

어둠을 불태우며 빛나는 붉은 안광.

이질적인 그 시선은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어디서 이 그림자가 튀어나온 거야?

분명 나는 쉘던 왕궁에서 낮잠이나 자려고…….

아, 이건 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꿈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쩌억, 하고 입을 벌리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오오!

그 포효는 전혀 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이 그 포효에 휩쓸려 갈가리 찢겨 나가는 기분.

“으, 으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헉… 헉…….

대체 무슨 꿈이지……?

<악몽을 꾼 모양이군.>

“너도 봤어?”

<아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너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보지는 못한다.>

꿈의 내용은 나만 봤다 이거군.

<대체 무슨 꿈을 꿨기에 그렇게 겁먹은 거냐?>

카이서스의 물음에 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을 말해주었다.

내 말을 다 들은 카이서스는 잠시 침묵했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그렇군.>

“뭐야 그 애매하게 늦은 대답은?”

<어쩌면 그 꿈은…….>

“그 꿈은?”

말끝을 흐리는 카이서스의 말을 반복하며 뒷말을 재촉했다.

<개꿈이로군!>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뭔가 심각한 것인 것처럼 분위기 잡으면서 하지 마!”

나는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으으, 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

아무래도 씻어야겠군.

창문 밖을 바라보니 이제야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너무 오래 잠들어 있지는 않았군.

방에 딸려 있는 욕실에서 땀을 씻어내고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밖으로 나와 로라스 왕자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시게.”

“로라스 저하, 곧 연회 시간이니 준비를 하시지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책에 빠져 있었던 듯한 왕자는 내 말에 창밖을 내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왕자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예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나는 왕자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며 말했다.

“이번에 여러 나라에서 사절단이 왔겠죠?”

“음, 그렇지. 한 나라의 왕자가 태어났으니 우리 외에도 각국에서 사절단이 왔을 거야.”

우리 사절단은 호위 병력을 제외하면 총 10명.

다른 왕국들에서도 사절단이 왔으면 꽤나 많겠군.

“그러면… 타이런 제국에서도 사절단을 보냈을까요?”

내 물음에 왕자는 겉옷을 걸치며 침음을 흘렸다.

“흐음, 글쎄… 아마도 보내왔지 않을까?”

타이런 제국의 사절단이라…….

칼라마쉬의 서를 훔쳐 가고, 그것을 이용해 사악한 짓을 꾸미는 제국을 생각하자 잠시 눈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사절단으로 와서 뭔가를 꾸미지는 않겠지.

“그럼 가지.”

어느새 준비를 끝마친 왕자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왕자와 내가 방을 나서니 사절단의 다른 인원들도 어느새 준비를 마치고 방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모두 준비되셨으면 안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쉘던 왕궁의 시녀가 우리에게 묻자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하게.”

왕자는 나를 포함한 사절단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우리 사절단은 호위 병력과 기타 인원을 제외하면 총 1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입장했는지 연회장 내부는 떠들썩해 보였다.

“크라우드 왕국의 로라스 크라우드 왕자님과 사절단이 입장하십니다!”

시종장으로 보이는 듯한 이의 외침과 함께 팡파르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연회장에 미리 도착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니 약간은 기분이 불편했다.

“그럼 다들 알아서 연회를 즐기게.”

왕자의 말에 사절단의 다른 사람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

“선생, 그대도 연회를 즐기게.”

“네? 그래도 전 왕자님을 수행해야…….”

내가 망설이며 말하자 왕자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생보다는 내가 이런 자리에 더 익숙해. 내 필요하면 부를 테니 그때까지는 연회를 즐기게.”

하긴, 아주 어릴 때부터 왕족으로서 이런 자리를 많이 겪어본 왕자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그럼 주변에 있겠습니다.”

나는 왕자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바로 음식들이 가득 쌓여 있는 큰 식탁.

‘후후, 쉘던 왕국의 음식은 어떨까나.’

대스승님 때문에 맛있는 음식에 대한 식탐이 조금 생겨난 나였기에 외국의 음식에 기대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식탁 옆에 쌓여 있는 접시를 가지러 가려던 그 순간.

“타이런 제국의 카리야 타이런 황녀님과 사절단이 입장하십니다!”

타이런 제국?

정말로 놈들이 온 건가.

아니, 그보다… 카리야 황녀라고?!

나는 깜짝 놀라 연회장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지난번에 만났었던 비밀의 황녀, 카리야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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