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43화 (43/150)

043화 - 6서클

‘지난번에 가르쳐 준 트레이스 말이야. 그거 나 자신에게도 쓸 수 있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뜩 생각난 것을 물었다.

<물론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쓸 수 있지.>

카이서스의 대답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트레이스로 내 자신의 내부를 해석할 수 있다면…….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나는 5서클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스승님께선 너무 빨리 서클을 올린 탓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방법을 찾은 이상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나는 곧장 침실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정자세로 앉았다.

“트레이스!”

주문을 읊고 트레이스를 시전하자 마나의 흐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머릿속으로 전해져 오는 내 몸의 정보들.

“찾았다.”

문제가 생긴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급격한 서클의 확장으로 마나의 고리가 살짝 뒤틀려 있었다.

평범하게 마나 수련을 하는 것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뒤틀림.

“이게 문제였군?”

<크크, 조만간 말해주려 했는데 스스로 알아낼 줄이야. 내 심장 덕분에 지능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군.>

‘뭐? 그럼 이 방법을 알고 있었단 거야? 왜 그럼 어째서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야?!’

<내가 그렇게 친절해 보이느냐?>

‘크으, 나쁜 놈 같으니. 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너도 좋은 거잖아.’

<으, 으음? 그, 그건 그렇지>

음, 어쩌면 이 녀석, 트레이스를 나 자신에게 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가끔 보이는 멍청한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럴싸한데 말이지.

“후우.”

나는 고개를 내저어 잡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내고는 심호흡을 했다.

뒤틀린 마나의 고리를 교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문제가 있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생겨난 다섯 번째 고리.

좋아, 결정을 내린 이상 최대한 빨리 해야겠지.

결심을 내리고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의 고리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고리를 건드려선 안 된다.

다섯 번째 고리를 교정한다 해도 다른 고리가 뒤틀리면 곤란해지니까.

마나를 집중시켜 실체화시킨 후 뒤틀린 다섯 번째 마나 고리를 감싼다.

그리고 살짝 힘을 주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나의 고리는 애초에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너무 힘이 과했다간 더 뒤틀리거나, 아니면 아예 부서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 마나의 고리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나를 움직이며 고리를 정상적으로 움직여 나갔다.

식은땀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카이서스는 서클 브레이커가 되려면 마나의 고리를 부숴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서클의 끝, 9서클이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다.

그 전에 마나의 고리가 부서진다면 마법사로서의 생명이 끝나고 폐인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마나를 움직이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크윽!’

심장을 감싼 고리를 억지로 움직이자니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진정해라, 얼간아. 마음을 급하게 먹으면 망가질 거다. 뭐, 마법사로서의 인생이 끝나면 검술이라도 배우면 되겠지만. 내 심장으로 변화된 몸은 검술을 익히기에도 제격이니까.>

‘이제 와서 검술을 익힐까 보냐?!’

마법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데.

게다가 검술은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잖아!

그런 거 딱 질색이라고!

내가 마법사로서 얻은 많은 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이제 와서 잃을까 보냐.

나는 이를 악물고 마나를 조정했다.

움직여라……. 움직여!

아, 그렇다고 너무 많이 움직이진 말고.

마나에 의지를 가하자 뒤틀려 있던 마나의 고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조금만 더…….

번쩍! 하고 심장과 머릿속에서 뭔가가 빛나는 기분이 들었다.

뒤틀려 있던 마나의 고리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으어어?!’

나는 비명을 지르려던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고리가 제자리를 찾음과 동시에 그동안 만들어지지 못했던 여섯 번째 고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고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6서클로의 상승이라니!’

그렇지만 들뜰 때가 아니었다.

고리의 생성 때도 집중하지 않으면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만다.

마나를 집중하여 생성되려는 고리에 힘을 더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근!

고리가 완성됨과 동시에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나는 6서클이 된 것이다.

“허억, 허억.”

간신히 마나의 고리를 고치고, 6서클로 올라선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우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 나는 누운 상태 그대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낮에 시작했는데 벌써 저녁이라니.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시간이 빠르게 흐른 모양이다.

꼬르륵-

너무 정신력을 쏟아부었더니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해 먹기는 피곤하니 나가서 사 먹어야지.

오늘 메뉴는 뭐가 좋을까…….

대스승님 때문에 쓸데없이 눈만 높아져서 이젠 어지간한 음식은 맛있다고 느끼지도 못한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자마자.

“응?”

“어, 어어?!”

약간은 당황한 듯 새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리안 누나가 눈앞에.

“무슨 일이에요?”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하며 말했다.

“그게……. 저녁을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까 해서……. 내, 내가 먹자는 게 아니라 집주인 할머니가 너를 초대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나랑 네가 아는 사이라니까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하셨거든!”

흠, 그냥 같이 밥 먹자고 하면 될 걸 왜 이렇게 설명이 긴 거지?

<끌끌, 청춘이구먼.>

‘둘 다 이십 대니까 당연히 청춘이지, 멍청아.’

<멍청한 건 네놈이다!>

카이서스의 말을 무시하며 아리안 누나에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저녁은 사 먹을까 하던 참이에요. 저녁 식사 초대라면 저야 감사하죠.”

오늘의 저녁 식사는 가정식이었다.

으깬 감자와 샐러드, 고기를 듬뿍 넣은 스튜와 따끈한 빵.

일류 식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손맛이 느껴지는, 그리운 맛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요리를 못 먹은 지 오래되었군.

다음에 외가에 가서 어머니에게 간만에 사과파이나 해달라고 해야겠어.

“잘 먹었습니다.”

“입맛에 맞았는지는 모르겠구먼.”

할머니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맛있었어요.”

주름진 얼굴로 웃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마주 웃어주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 시간이 늦었으니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여자들만 사는 집에 너무 오래 있으면 좀 그러니까.

“흘흘, 다음에도 또 놀러 오구려.”

“아, 배웅해 줄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리안 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겨우 앞집인데 배웅까지야…….”

“그래도 배웅 정도는 해줘야지.”

굳이 배웅해 주겠다는 걸 말릴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아리안 누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저녁은 좀 쌀쌀하네.”

“그러게요. 이제 곧 추워지겠어요.”

날씨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내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으, 응.”

뭔가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리안 누나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기에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아, 맞다. 저 오늘 6서클이 되었어요.”

지나가듯 내뱉은 말에 아리안 누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정말이야?”

얼마나 놀랐는지 무표정하던 그녀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갈 정도였다.

“설마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벌써 6서클이라니……. 나보다 낮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나를 추월할 줄이야.”

약간은 힘없어 보이는 목소리에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보다 못했던 내가 어느새 추월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일 테니까.

“축하해!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사람의 재능은 역시 남다르구나.”

그럼에도 아리안 누나는 환한 목소리로 축하해 주었다.

어쩐지 미안해지려고 한다.

“카밀라 님께도 알려 드리도록 해. 정말 기뻐하실 거야.”

음, 그러고 보니 스승님께 연락을 안 드린 지도 꽤 됐지.

연락드리면 연락이 없었다고 혼내시려나…….

내가 생각하는 사이 아리안 누나가 말을 이었다.

“어쩐지 피곤해 보인다 했더니, 서클을 올리느라 그랬던 거구나? 빨리 들어가서 쉬도록 해.”

“네, 누나도 쉬세요.”

인사를 하고 현관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등 뒤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나도 꼭 어울리는…….”

“네?”

그녀의 혼잣말에 내가 돌아보며 묻자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냐! 아무것도.”

아리안 누나는 황급히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뒤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갔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의아해하는 나에게 카이서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니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모르겠군.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스승님께 연락은 내일 하기로 했다.

침실로 들어간 나는 새롭게 올라선 6서클에 익숙해질 겸 마나 수련을 한 차례 마치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수업을 하는 방으로 들어선 왕자가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늘따라 선생의 표정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하, 저하, 어제부터 저는 5서클 마법사가 아니라 6서클 마법사가 되었습니다.”

내 말에 왕자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정말인가? 와아! 과연 내 선생이야!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군!”

“하하, 감사합니다.”

“기왕 6서클이 된 김에 궁정 마법사가 될 생각은 없나?”

왕자의 제안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직 저는 많이 모자랍니다.”

“하하, 겸손이 과하군? 선생 나이에 6서클이 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사상 최연소가 아닌가. 자네가 궁정 마법사가 된다면 궁정 마법단장인 마이서스 백작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그냥 하기 싫은 것 아닌가?”

“하, 하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어오는 왕자의 말에 나는 그냥 웃음만 흘렸다.

“뭐, 아직 선생도 젊으니까. 나중에 할 마음만 생기면 말만 하게. 내가 추천해 주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자, 그럼 슬슬 오늘 수업을 시작할까요?”

“그래! 오늘도 잘 부탁하네!”

오늘의 수업도 내 기분처럼 술술 진행되었다.

왕궁에서 퇴근하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스승님께 통신을 걸었다.

잠시 대기 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더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스승님의 목소리에는 섭섭함과 걱정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아뇨, 무슨 일이 생겼다기보다는……. 죄송해요. 그동안 너무 연락도 없었죠?”

-후후,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도 나도 연락해 보려던 참이었다. 귀족이 되었다면서?

“네, 헤헤……. 아, 그리고 저, 6서클이 되었어요.”

-정말이니?! 역시 내 제자로구나. 정말 기쁘구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시는 스승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헤헤, 감사합니다.”

-후후, 왕자님을 가르치는 일은 할 만하니?

“네, 왕자님이 저를 잘 따라주셔서 괜찮아요. 아참, 그리고 저 가족을 찾았어요.”

-아, 나도 들었단다. 네팔렌 백작님이 네 외할아버지라면서?

“어, 그것도 들으셨어요?”

-후후, 나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듣는 곳이 있단다.

스승님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조만간 트럼벨로 갈 테니 그때 보자꾸나.

“정말요?”

-그래. 그때까지 열심히 수련해 두렴.

“네!”

나는 통신을 종료하고 침대에 앉아 마나 수련을 할 준비를 했다.

6서클이 되었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지.

내 목표는 9서클, 아니, 그 이상……. 서클 브레이커가 되는 거니까.

‘드래곤의 심장과 재능을 얻었는데 어디 한번 끝까지는 가봐야 하지 않겠어?’

<크크,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나저나 너는 네가 들어갈 몸을 구해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분명 내게 마법을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사용할 육체를 찾아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흠……. 아직 기억하고 있었나.>

카이서스는 뭔가 듣기에 찜찜한 말투로 말했다.

‘육체를 이동할 방법은 찾았어?’

<아직 생각 중이다.>

‘그래? 그럼 마음에 드는 육체가 나타나면 알려줘.’

<너도 참 이상한 놈이다. 그 조건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다니.>

‘흥, 너만 하겠어?’

카이서스에게 투덜거리며 말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앉아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