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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41화 (41/150)

041화 - 내 집 마련

“네?!”

갑작스러운 시종장 브루스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나의 물음에 그는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까지는 작위가 없으셨기에 왕궁 안에서 지내는 것에 문제가 없으셨지만……. 작위를 받으신 이상 궁에서 생활하시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으음, 확실히 귀족이 왕궁 안에서 먹고 자고 한다면 보는 시선이 곱지 않겠지.

특혜처럼 보일 테고 말이야.

“그래도 당장 방을 빼라니요.”

“하하, 걱정 마시길. 오늘 하루는 왕자님께 말씀드려서 쉬게 해드릴 테니 집을 구하시면 됩니다.”

끄응, 말이야 쉽지.

하루 안에 집을 어떻게 구하냐고.

“며칠간의 말미를 주실 수는…….”

“곤란합니다. 드리안 자작님이 왕자님의 궁전에서 계속 사시면 왕자님도 곤란해지실 겁니다.”

끄응, 깐깐한 사람 같으니.

시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왕자의 교육도 쉬면서 왕궁을 나와서 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끄응, 어디서 지내지…….”

짐이랄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담아보니 배낭 두 개를 가득 채웠다.

앞뒤로 빵빵한 배낭 두 개를 메고서 시내 한복판에 서 있자니……. 뭔가 좀 한심하군.

새로 지낼 곳을 어디서 구하지……. 일단은 외가 쪽부터 가볼까.

나는 네팔렌 백작가의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그래서, 내 집에서 살게 해달라는 거냐?”

외할아버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와아, 정말이니? 그럼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거야?”

“잘됐네!”

어머니와 누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불허한다!”

“네에?!”

너무도 단호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아버지!”

“외할아버지?”

어머니와 누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외할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왜 안 된다는 거예요? 남는 방도 많잖아요.”

어머니가 눈을 찌푸리며 묻자 외할아버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 집에 다른 가문의 가주를 살게 할 것 같으냐? 오히려 저 녀석이 웃음거리가 될 거다.”

으음, 확실히 한 귀족 가문의 가주가 된 내가 다른 귀족의 집에 얹혀살면 우습게 보이겠지.

일단 아무 구성원도 없는 1인 가문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외할아버지가 이어서 말했다.

“게다가 저놈을 보면 그놈이 떠올라서 마음에 안 든다!”

그놈이란 아버지를 말하는 거겠지.

…사실은 이게 진짜 이유일지도.

확실히 나는 재능이나 키는 닮지 않았지만 얼굴만큼은 아버지와 많이 닮았지… 만 그런 이유로 거부하는 거야?!

“아버지도 참, 이제 그이를 인정할 때도 됐잖아요!”

어머니가 투덜거리듯 말하자 외할아버지는 흥! 하고 재차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범죄자 따위를 사위로 인정할까 보냐!”

“그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악역을 맡은 것뿐이에요!”

아니, 암살자가 범죄자인 건 맞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콩깍지가 씌었군.

“알겠어요. 그럼 제가 따로 집을 구할 테니 소개라도 부탁드려요.”

확실히 외할아버지의 말대로 한 사람의 귀족인 내가 다른 집에 얹혀사는 것도 좀 그렇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내 말에 어머니와 누나는 실망한 듯한 기색이었으나 외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 정도라면 도와주도록 하지. 그런데 돈은 있느냐.”

“돈이라면 생각하신 것보다 훨씬 많을걸요?”

“그러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으나 외할아버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주택 관리부의 슐란을 찾아가 봐라. 그라면 괜찮은 집을 소개시켜 줄 거다.”

“네, 감사합니다.”

“흥, 용건이 끝났으면 나는 하던 연구나 하러 가겠다.”

외할아버지가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간 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다.

주택 관리부라면 주택의 거래를 관할하는 관공서였다.

분명히 외할아버지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 저기 있군.

나는 주택 관리부 건물로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슐란이라는 분을 찾아왔는데요.”

“응? 부장님은 왜 찾으시우?”

슐란이라는 분은 주택 관리부의 우두머리였던 모양이다.

앳된 얼굴의 내가 그를 찾자 직원이 의아해했다.

“집을 구하려는데 아는 분이 소개해 주셔서요.”

“아는 분이라면……?”

“프란시스 네팔렌 백작님이요.”

“아, 그분의 소개라면야.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대자 직원의 말투까지 공손해졌다.

역시 사람은 명성이 있어야 하는 거군.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주택 관리부장]이라는 팻말이 적힌 문을 두드렸다.

“네. 열려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팔렌 백작님의 소개로 왔는데요.”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네팔렌 백작님의?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외할아버지의 소개라는 말에 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이번에 작위를 받은 라엘 드리안 자작입니다만.”

내가 신분패를 꺼내 보이며 말하자 그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드래곤의 가호를 받으시는 분! 네팔렌 백작님의 외손자라 하시더니 정말이었던 모양이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 정체를 알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슐란 씨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하게 물어왔다.

“음, 집을 하나 구하려는데요.”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그의 정중한 태도에 약간은 부담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아, 그렇다면 알아봐 드려야죠. 잠시만 앉아계십쇼.”

그렇게 말한 슐란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슐란 씨가 돌아왔다.

“때마침 괜찮은 매물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고 싶지만 근무 중인지라…….”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더 있으면 오히려 더 불편해질 것 같아서 슐란 씨가 건네는 서류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음, 일단 가장 가까운 곳은 이곳인가.”

매물의 정보가 적힌 서류는 세 장.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향했다.

…패스.

첫 번째로 간 집은 들어가지도 않고 패스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으리으리하게 큰 저택이었다.

혼자 사는데 너무 큰 집은 부담스럽기만 하니까.

관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말이야.

두 번째로 간 집은 어느 중년 부부가 살고 있는 2층 집이었다.

혼자 살기에는 조금 컸지만 관리를 잘해왔는지 보수를 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거기다 왕궁과 가까워서 출퇴근하기에도 좋을 듯하다.

외가인 네팔렌 백작가와도 그리 멀지 않고…….

세 번째 집으로 갈 필요도 없었다.

두 번째 집이 그만큼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왕궁과도 가깝고 땅값이 비싼 동네라 꽤나 가격이 많이 나가기는 했다.

어차피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들고 온 돈이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그 길로 곧장 집주인과 함께 주택 관리부로 가서 계약을 하고 그 자리에서 집값을 지불했다.

새로 작성된 집문서에 내 이름이 적힌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자그마한 집을 산 것이 그렇게 좋으냐?>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카이서스가 말했다.

뭐, 카이서스의 둥지에 비하면 자그마하다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내 이름으로 된 첫 번째 집이라고. 기뻐하는 게 당연하지. 넌 잘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신 소유의 집을 갖는다는 건 의미가 크다고.’

<흥, 인간들이란…….>

이해할 수 없다는 카이서스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집문서를 소중히 품속에 넣었다.

일단은 전 집주인인 부부가 집을 비울 때까지 며칠이 걸릴 것이기에 그동안 지낼 여관부터 구해야겠다.

* * *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내 집이다!”

비어 있는 집의 거실에서 감회에 차서 소리쳤다.

가구나 집기 같은 것은 전 주인이 집을 비우는 동안 준비해 두고, 어제 모두 집에 들여놓았다.

“축하해, 아들. 좋은 집이구나.”

“흐음, 혼자서 잘 관리할 수 있겠어?”

내가 집으로 입주하는 날이라고 같이 따라온 어머니와 누나가 집 내부를 살피며 말했다.

누나는 혼자 살기에 큰 집을 살피며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 청소라든가 관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을 부를 거니까 괜찮아요.”

“그렇다면 괜찮겠네.”

“아들, 혼자 지내면 외롭지는 않겠니?”

어머니의 걱정 어린 시선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도 참, 제가 앤가요? 저도 성인이라고요.”

나의 대답에 어머니는 그저 흐뭇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래, 우리 아들도 다 컸구나.”

흐뭇해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헤헤…….”

“이제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쿨럭.”

뜬금없이 튀어나온 그 말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어머니도 참, 아직까진 그런 생각 없다니까요.”

한창 마법을 익히기도 바쁜데 결혼이라니.

어머니도 참…….

내가 툴툴거리며 한 말에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줄 아니? 사랑이란 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거란다.”

어머니는 꿈을 꾸는 듯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소녀 같다니까.

“아무튼 한동안은 그럴 여유가 없어요.”

“후훗, 두고 보렴.”

어머니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듯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뭐, 연애란 것도 주변에 상대가 있어야 하지.

주변에 상대가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

나는 어머니의 말을 그리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 넘겼다.

* * *

다음 날.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을 마치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왕자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은 집을 구했다면서? 집들이는 못 가지만 필요한 게 있다면 말만 해. 내 보내주도록 할 테니까.”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는 궁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흐음, 역시 내 집을 갖는다는 건 좋구나.”

흔들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마법서를 읽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마탑에서는 개인 방을 쓰긴 했으나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었고, 마찬가지로 왕궁에서도 개인 방을 사용했으나 장소가 장소다 보니 뭔가 불편했었다.

혼자만의 공간이라…….

좋구나.

<늙은이가 따로 없군.>

카이서스가 웃으며 말하거나 말거나 흔들의자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로 나는 낮잠에 빠져들었다.

* * *

얼마나 낮잠에 빠져 있었을까.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음냐, 찾아올 만한 사람이 있던가? ……윽!”

의자에 앉은 채로 잤더니 몸이 굳어서 삐걱거렸다.

굳은 몸을 풀면서 나는 현관문으로 갔다.

“으음……. 이 집이 아닌가?”

누구냐고 물어보려는데 문 밖에서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안 누나?”

여기 있을 리가 없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현관문을 열자 아리안 누나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아, 라엘. 한참이나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기에……. 잘못 찾아온 줄 알았어.”

“아, 낮잠을 자고 있었거든요. 그보다 누나가 여긴 웬일이에요?”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그녀는 차가운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그게…….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트럼벨에서 지내게 됐거든. 따, 딱히 다른 뜻은 아니고 오늘 도착한 김에 얼굴이나 볼까 해서 왕궁으로 찾아갔더니 여기로 가보라고 해서…….”

“아, 작위를 받은 후에 여길 샀어요.”

“그래? 좋아 보이는 집이네.”

그녀는 내 어깨 너머로 보이는 집안 내부를 슬쩍 살펴보며 말했다.

“아, 일단 들어오세요. 대접할 건 변변찮지만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죠.”

아리안 누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래도 돼?”

“물론이죠.”

“그럼 실례할게.”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음, 여전히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야.

나는 거실 겸 응접실로 아리안 누나를 안내하고 차를 끓이러 주방으로 갔다.

아직까지 이것저것 없는 게 많았지만 차나 간식 같은 것은 어제 다녀간 어머니와 누나가 가져다 놓았기에 손님 대접에 문제는 없었다.

홍차를 끓이고, 과자를 접시에 담아 응접실로 내어갔다.

누나는 소파에 앉아선 연신 두리번거리며 집 안을 살피고 있었다.

“아직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없는 게 많아요.”

“아, 아니야. 깔끔하고 좋은걸.”

테이블에 찻잔과 과자를 내려놓으며 한 말에 아리안 누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으음, 표정은 담담하지만 어쩐지 잔뜩 긴장한 듯한 목소린데.

뭔가 불편한 거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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